올해 설 연휴는 장장 6일간 이어진다. 명절에도 혼자 시간을 보내는 '혼족'에게 명절은 직장과 업무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긴 휴식과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는 꿀맛 같은 시간이다.

혹은 고향에 내려가는 사람 역시 하루 정도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길고 긴 연휴에 뭐 하며 보낼까,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 요즘 '핫'한 넷플릭스 영화를 장르별로 꼽아봤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스틸컷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스틸컷ⓒ 넷플릭스

 
[멜로/로맨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한국계 인기 작가 제니 한의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10대 로맨스의 통통 튀는 매력을 그대로 보여준다. 라라 진(라나 콘도르)은 풍부한 감수성과 상상력을 지닌 소녀다. 그녀는 짝사랑하는 남자들에 대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쓰지만 부치지 않는다. 이 편지들은 어디까지나 그녀의 상상이며 자신만의 판타지이다. 하지만 이 판타지가 현실이 된 순간, 그녀의 삶은 큰 변화를 겪게 된다.
 
누군가 그녀의 편지들을 부치고 남자들이 편지를 받게 되면서 진의 입장은 곤란해진다. 왜냐하면 짝사랑남 중 한 명이 그녀 언니의 남자친구 조시(이스라엘 브루사드)이기 때문이다. 이에 진은 조시가 오해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피터(노아 센티네오)와 계약 연애를 하게 된다. 

뜻하지 않게 진의 첫 키스를 가져간 남자인 피터. 그는 원래 젠의 남자친구였다. 진은 어린 시절 젠과도 친하게 지냈지만 학년이 올라가고 멀어진 사이가 됐다. 과거 젠이 진을 무시했을 때 자연스럽게 피터와 진의 사이에도 거리감이 있었다. 그러나 피터와 젠은 헤어졌고, 젠이 대학생 남자와 데이트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피터는 그녀의 질투심을 유발하기 위해 진과 가짜 커플 행세를 하기로 결심한다. 

여느 로맨틱 코미디처럼 계약 연애가 진짜 사랑으로 번져나가는 과정은 식상함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10대 로맨틱 코미디 물이 지니는 유쾌한 기운과 사소한 오해와 편견으로 인한 귀여운 착각, 아직은 덜 여문 풋사랑의 상큼한 기운이 인상적인 영화라 할 수 있다. 특히 제니의 로맨스 판타지가 이뤄지는 과정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가족과 친구들 간의 따뜻한 사랑은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든다.
  
 <서던 리치: 소멸의 땅> 스틸컷

<서던 리치: 소멸의 땅> 스틸컷ⓒ 넷플릭스

 
[SF/판타지] <서던 리치: 소멸의 땅>
 
2015년 A.I.를 소재로한 탄탄한 SF 스릴러 <엑스 마키나>로 평단의 극찬을 받았던 알렉스 가랜드 감독은 소재와 연출에 있어 더 자유로운 플랫폼인 넷플릭스를 통해 본인이 지닌 재능을 꽃피웠다. 우주에서 떨어진 의문의 물체가 만든 공간 '쉬머'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공식과 뼈대를 갖춘 SF 영화들과는 다른 기이하고 괴이한 느낌을 준다. 쉬머로 비밀작전을 떠난 특수부대 출신 남편 케인은 실종 후 1년 만에 세포/암 병리학 교수이자 아내인 리나 앞에 나타난다.
 
행복도 잠시. 케인은 뇌출혈로 쓰러지고 리나는 케인과 함께 군인들에 의해 X구역이라는 장소로 끌려가게 된다. 그곳에서 리나는 남편이 쉬머 비밀조사단 중 유일한 복귀자라는 걸 알게 된다. 리나는 남편을 구하기 위해 직접 '쉬머'로 들어가기로 결정하고 그녀를 포함한 6명의 여성들은 탐사대가 되어 쉬머 속으로 파견된다. <서던 리치: 소멸의 땅>은 세계관의 형성과 법칙에 따라 전개되는 기존 SF/판타지 장르의 작품들과는 다르다.
 
이 작품의 자유분방한 세계관은 언뜻 보면 개연성이 부족해 보인다. 하지만 리나를 비롯한 탐사대원들의 심리와 이 작품이 지닌 소멸의 의미를 중심으로 바라본다면 다르게 느껴진다. 리나를 비롯한 대원들은 모두 소멸을 경험했다. 리나는 자신의 불륜으로 가정이 소멸되었다고 여기며 팀장인 벤트리스는 암에 걸려 스스로가 소멸될 입장에 처한다. 그리고 쉬머라는 공간은 시체와 돌연변이, 기이한 형태의 생명체들을 등장시키며 소멸과 변형, 복제의 반복을 이야기한다.
 
이 과정은 리나의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중점으로 형성된다. 인간의 죄책감 역시 끝없이 복제되고 소멸되며 동시에 변형을 이룬다. 중심 감정을 기점으로 감독은 기괴한 생명체들과 현상을 반복적으로 등장시키며 끝이 보이지 않는 세계관을 보여준다. 이런 세계관은 미스터리와 스릴러, 액션 등 다양한 장르적 요소를 담아내며 보는 맛을 더한다. 완벽한 개연성을 따지기 보다는 눈과 마음으로 느끼는 맛이 신선한 작품이다.
  
 <익스팅션: 종의 구원자> 포스터

<익스팅션: 종의 구원자> 포스터ⓒ 넷플릭스

  
[액션] <익스팅션: 종의 구원자>
 
스펜서 코엔이 쓴 <익스팅션: 종의 구원자>의 시나리오는 250명이 넘는 영화 제작사 경영진들이 선정한 '2013년 할리우드에서 아직 제작되지 않은 최고의 각본 블랙리스트'에 포함됐다. 이 사실은 그해 12월 미국 <버라이어티>지를 통해 알려졌다. 이후 몇 번의 영화화 논의도 있었지만 최종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이 영화는 만약 극장 개봉에 성공했다면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보여줬다고 높이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을 준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피터라는 남자가 주기적으로 악몽을 꾸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의 꿈에서 지구는 누군가의 침략을 당하고 그 침략 속에서 가족은 죽음을 맞이한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개꿈으로 여기지만 피터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그리고 그 불안은 현실이 된다. 외계생명체가 지구를 습격하고 그 습격 속에서 피터와 친구 레이는 가족들을 구하기 위해 분투한다. 이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생명체와 맞서 싸우는 장면은 긴장감과 동시에 쾌감과 감동을 준다.
 
특히 곤돌라를 타고 건물에서 탈출을 감행하는 장면이나 외계인과 피터의 사투는 스릴감과 타격감을 더하며 액션 장르로의 쾌감을 보여준다. 특히 이 작품이 인상적인 이유는 색다른 반전으로 '침략의 역사'를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미국 사회의 인종문제는 침략의 역사에서 비롯되었다. 인디언을 침략해 땅을 빼앗고 아프리카를 침략해 노예를 데려온 미국은 침략으로 쓰여진 역사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그들의 역사를 보여주는 충격적인 반전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묘미라 할 수 있다.
  
 <제럴드의 게임> 스틸컷

<제럴드의 게임> 스틸컷ⓒ 넷플릭스

 
[공포/스릴러] <제럴드의 게임>
 
스티븐 킹은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 최고의 작가라 할 수 있을 만큼 수많은 명작들을 써냈다. 그리고 이 작품들은 영화로 만들어져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쇼생크 탈출>, <그린마일> 같은 가슴을 뛰게 만드는 드라마부터 <샤이닝>, <그것> 등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공포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영화화되었다. <제럴드의 게임>은 스티븐 킹의 공포 소설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플랫폼 최고의 공포/스릴러 영화라 할 수 있다.
 
중년의 부부 제럴드와 제시는 섹스게임을 위해 별장으로 떠난다. 제럴드는 제시의 두 손을 수갑으로 침대에 묶고 섹스를 시작하려고 한다. 그 순간, 제럴드는 뇌경색을 일으키고 침대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만다. 그리고 제시가 먹을 것을 주려했던 들개가 나타나 제럴드의 몸을 씹어 먹는다. 수갑 때문에 움직일 수 없는 제시는 꼼짝 없이 침대에 갇힌 신세가 되고 만다. 그런 제시 앞에 제럴드와 제시의 환영이 나타난다. 제시는 이 두 환영을 통해 자신의 과거로 향한다.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하던 과거로.
 
<제럴드의 게임>이 '명품' 공포/스릴러 영화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영화가 주는 스릴감이 심리적인 측면에 있기 때문이다. 작품 속 제시에게 수갑은 두 가지 의미로 다가온다. 아버지의 수갑은 자신을 묶어두었던 억압과 구속의 의미지만 제럴드의 수갑은 해방으로 다가온다. 그녀의 삶은 해방과 억압의 연속이었고 이는 트라우마로 각인된다. 한 여성이 불의의 사고로 자신의 트라우마와 직면하는 순간을 다룬 이 작품은 저택에 홀로 묶인 여성이라는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설정과 과거와 현재의 트라우마의 충돌이라는 심리전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로마> 스틸컷

<로마> 스틸컷ⓒ 판씨네마(주)

  
[드라마] <로마>
 
<로마>는 제91회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무려 10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칠드런 오브 맨>, <그래비티> 등 SF를 통해 인류애를 이야기하는 영화를 만들어 온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로 이런 성과를 낼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로마>는 영화적인 기법에 있어 경지에 올랐다 평가받지만 관객들이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스토리의 깊이 역시 상당한 작품이다.
 
감독은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다루지만 주인공은 자신이 아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그의 집에서 일하던 젊은 가정부 클레오다. 클레오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1970년대 격동의 멕시코시티가 배경이다. 혁명의 바람이 불던 당시 클레오의 남자친구는 그녀를 임신시키고 외면한다. 그녀가 일하던 행복이 넘치던 중산층 가정은 남편이 아내 소피아를 버리면서 흔들리게 된다. 남성이 중심이 된 혁명이라는 바람 속에서 두 여성은 추운 계절을 보내게 된다. 이들에게 가장 무서운 건 '버림받았다'는 사실이다.
 
남성이 중심이 된 가부장 사회에서 남성의 부재는 가족의 붕괴를 의미한다. 남자친구에게 버림받은 클레오는 홀로 남았다는 생각에 두려움에 떤다. 하지만 굳건한 안주인 소피아는 그녀의 자식들도, 그리고 가정부 클레오도 홀로 버려두지 않는다. <로마>는 하나의 장면을 통해 높은 단계의 인류애를 이야기한다. 클레오는 물에 빠진 소피아의 아이를 구한다. 그녀에게 그 과정은 유산한 자신의 아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양수 속에서 죽어갔던 아기의 모습이 오버랩된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아기를 유산하면서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는 공포에 시달렸다.
 
그녀는 그 공포를 호소하며 오열한다. 그리고 소피아를 비롯한 가족들은 모두 그녀를 안아주며 눈물을 흘린다. 이 순간 가족은 연대를 이루며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준다. 인간다운 성질인 휴머니티의 본질이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 전 인류를 향한 인류애에 있음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로마>는 넷플릭스의 플랫폼이 감독들에게 자신의 세계관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힘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영화라 할 수 있다. 극장에서 상영되지 않는 영화라는 비아냥에도 불구 <로마>는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등을 수상하며 올 아카데미 영화제 강력한 작품상 후보로 손꼽히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키노라이츠, 루나글로벌스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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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겸 영화 칼럼니스트 김준모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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