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Y 캐슬>의 한 장면
의 한 장면JTBC
 
잘 벼린 칼처럼 날카롭다. 살짝만 스쳐도 소스라치게 아플 칼날이 맹렬히 복부를 관통하는 느낌이다. 보는 내내 통증이 신음에 섞여 새어 나온다. 괴롭고 힘들다. 그런데 시선을 뗄 수 없다.

이쯤되면 마력(魔力)이다. 극강의 몰입감이 야속하기만 하다. '다 감수하시겠단 뜻입니까?' 여러 차례 물었던 것 같다. 우리는 이미 대답했다.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기꺼이 JTBC 금토드라마 < SKY 캐슬 >을 보겠노라고 말이다. 

< SKY 캐슬 >은 이제껏 없던 드라마다. 1.727%에서 시작해 22.316%(18회)까지 치솟은 시청률(닐슨코리아 유료가구 플랫폼 기준)은 기적이라 할 만하다. 유래가 없는 일이다. 이른바 톱스타 없이, 유명 작가 없이 이뤄낸 결과라 더욱 놀랍다(이제 < SKY 캐슬 >의 배우들이 톱스타가 됐고, 유현미 작가가 유명 작가가 됐다). 75억 원의 제작비는 tvN <미스터 션샤인>이 쓴 430억 원의 1/6에 불과하다. 기존의 흥행 공식을 다 깨버린 수작(秀作)이다.

그러나 < SKY 캐슬 >을 '이제껏 없던 드라마'라 부를 때, 그 말의 진정한 함의는 '이 드라마만큼 강력한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졌던 작품이 있었던가?'라는 질문에서 찾을 수 있다. < SKY 캐슬 >만큼 사회적으로 뜨거운 논쟁을 불러 일으킨 드라마가 있었던가? (그 논쟁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단순히 '재미'를 넘어 삶 속에서 '고민'하게 만들고, 그 고뇌를 사회 전반으로 넓게 확산시킨 이 드라마의 힘이 경이롭기만 하다. 

드라마가 주는 명징한 교훈 '예서 엄마가 되지 말라' 
 
 <SKY 캐슬>의 한 장면
의 한 장면JTBC

< SKY 캐슬 >의 힘은 보편성이다. '대학 입시'라는 소재는 누구에게나 해당됐다. 이전에 겪었거나, 현재 겪고 있거나, 앞으로 겪어야 할 일이었다. 이 드라마가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있는 '부모'에 초점을 맞춰보자면, '내 자식의 일'이었고, 곧 '내 일'이었다. 드라마는 '성적 만능주의'에 매몰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들춰냈다. 어떻게든 피라마드의 꼭대기에 올라가려는 우리들의 탐욕과 욕망을 고발하고 풍자했다.

< SKY 캐슬 >은 여러가지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명징한 교훈은 '예서 엄마가 되지 말라'는 것이었다. 당신의 욕망과 체면, 헛된 명예욕에 아이들을 희생시키지 말라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더 이상 입시 지옥에 가두지 말고, 아이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었다. 이 부조리한 교육 제도와 불합리한 입시 제도, 괴물을 양산하는 비인간적 교육 시스템을 뒤집어 엎으라는 절절한 외침이었다. 

그런데 예서 엄마, 한서진의 굴곡진 인생에 대한 동정심과 염정아의 탁월한 연기 때문일까. 그 뒤틀린 모성애의 절절함 때문이었을까. 안타깝게도 우려됐던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실제로 김주영(김서형)과 같은 입시 코디네이터에 대한 문의가 많아졌고, "'우리 애도 방학을 이용해서 저가의 컨설팅이라도 받아야겠다'는 학부모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관련 기사 : "저학년 부모 코디상담 늘어" 'SKY캐슬'이 만든 생경한 풍경 http://omn.kr/1gnz4). 

"목동까지 소문이 났어요", "살아있는 염정아씨" 
 
 <둥지탈출3>의 한 장면
<둥지탈출3>의 한 장면tvN

그런가 하면 스스로를 '예서 엄마'라 칭하거나, 그렇게 불리는 걸 즐기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 지난 23일 방송된 tvN <둥지탈출3>에는 조영구-신재은 부부가 출연해 자신의 아들인 12세 정우를 명문대 영재교육원에 합격시킨 비법에 대해 이야기 했다. MC 장영란은 "목동까지 소문이 났어요"라며 호들갑을 떨었고, 박미선은 신재은을 두고 "살아있는 염정아씨"라고 소개했다.  

부부는 자신들의 '영재 아들'과 함께 한 일상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아침 꼭 먹여요. 두뇌 발달에 좋은 음식도 책을 많이 봐요...", "초등학교 때까지 들여야 될 가장 중요한 습관이 눈 뜨자마자 책 한 권을 읽게..."라며 자신만의 교육법을 털어 놓았다.

똑같은 문제집을 두 권 사서 아이가 학교를 가면 먼저 다 풀어보고 공부를 가르친다는 대목은 정말 놀랍기만 했다. 아이의 옆에 딱 달라붙어 공부 의욕을 증진시키는 신재은의 열의는 놀라웠다.

아이와 함께 공부하며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간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이의 교육을 위해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까지 뭐라 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12살에 불과한 아이에게 쏟고 있는 에너지가 본격적인 입시를 향해가면 훨씬 더 커질 건 자명한 일이다. 점차 가속도가 붙어 속도는 빨라질 테고, 어느 순간에는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미 부모의 삶이 온통 자녀의 교육에 올인돼 있는 상황이 아니던가.

살벌한 욕망이, 이 끔찍한 풍경이 소스라치게 놀랍다
 
 <SKY 캐슬>의 한 장면
의 한 장면JTBC

조영구-신재은 부부의 교육 방식이나 개인적 삶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런 예시들이 별다른 고민 없이 방송을 타고 흘러나왔을 때의 부작용은 염려스럽다. 우리는 너무 쉽게 '예서 엄마'를 긍정하고 있는 것 아닐까? 이런 분위기가 수많은 사람들의 욕망을 재점화시키리라는 건 자명하다. 그러나 이 흐름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 다른 '예서 엄마' 보여주기는 노골화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유현미 작가의 문제의식은 교육 제도에 대한 고민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는 양상이다. 'SKY 캐슬'에서 벗어날 방법, 'SKY 캐슬'을 무너뜨릴 방법을 고민할 장이 열리긴커녕 주변을 돌아보면 온통 'SKY 캐슬'뿐이다(물론 입시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살벌한 욕망이, 이 끔찍한 풍경이 소스라치게 놀랍다. 결국 개인의 선택과 결정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지만, 이토록 강경한 태도에 소름이 돋는다. 

한 가정만이라도 살리려고 썼던 드라마가 오히려 수많은 가정을 더 잡아채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 SKY 캐슬 >이 끝내 처참히 붕괴되는 가정들을 보여줬음에도 자녀 교육에 대한 열기를 꺾기는 역부족인 듯하다. '나는 영재 엄마랑 달라'라고 생각했던 예서 엄마처럼 '나는 예서 엄마'랑 다르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엄마들이 양산되고 있다. '예서 엄마' 열풍이 제대로 불붙은 듯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SKY 캐슬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