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쇼트트랙 간판이자 국가대표인 심석희 선수가 17살 때부터 4년간 조재범 코치에게 성폭행 당했다고 폭로했다. 이어 지난 14일엔 신우용 전 유도 선수도 자신이 당한 성폭행 피해를 폭로하며 성범죄 문제가 스포츠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심 선수의 폭로로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스포츠계 성폭력 문제는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다. 이미 11년 전 스포츠계 성폭력 문제를 지적한 사람이 있다. 바로 정재용 KBS 스포츠국 기자다.

정 기자는 2008년 '스포츠와 성폭력에 대한 인권보고서'라는 타이틀로 관련 내용을 심층보도해 주목을 받았다. 11년이 지난 지금 조재범 전 코치 성폭행 의혹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해 정 기자를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만났다.

다음은 정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2008년 보도 후에도 같은 상황 반복... 시스템 자체가 '스포츠 캐슬'"  

- 조재범 전 코치 성폭행 의혹으로 논란이 일고 있어요. 기자님은 2008년 KBS 시사 프로그램에서 '스포츠와 성폭력에 대한 인권보고서'를 보도한 바 있어서 이 사건이 남다르게 다가왔을 것 같은데요.
"이 문제를 보도한 게 2008년입니다. 이건 단기적 해법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닌 시스템 문제기 때문에, 대한민국 스포츠계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보도를 KBS 통해 지난 10여 년간 꾸준히 해왔습니다. 그랬는데도 결국 이번 사건이 보여주는 건 대한민국 스포츠 시스템은 바뀌지 않았고... 10년 전 프로그램을 지금 틀어도 아무 문제 없을 만큼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거죠.

KBS라면 대한민국에서 영향력 있는 미디어인데 노력을 해도 쉽게 안 바뀐다는 생각에 처음엔 참담했고요. 조금 지나고 나니 그렇다고 포기할 일은 아닌 거 같고요. 지난 2008년에는 스포츠 시스템을 개혁할 수 있는 동력이 생겼었지만 실패했죠. 그러나 심석희 선수 용기로 대한민국 스포츠가 한 번 더 새롭게 변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만난 거 같아요. 심 선수가 낸 용기를 헛되게 흘려 보내지 않고 반드시 이번에는 대한민국 스포츠계가 변화할 수 있도록 언론의 입장에서 보다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재용 KBS 스포츠국 기자

정재용 KBS 스포츠국 기자ⓒ 이영광

 
- 스포츠계는 성폭력 문제도 있지만, 폭력 문제도 있지 않나요?
"스포츠계의 성폭력과 폭력은 굉장히 밀접한 관계가 있고 연관되어 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 스포츠계 시스템은 올림픽 금메달을 따기 위해 1970년대에 만들어진 시스템이에요. 올림픽 금메달을 따기 위해 학생들이 공부 안 하고 운동기계로 만들어지고요. 동시에 이겨야만 대학에 갈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기 때문이죠.

요즘 한창 인기 있는 드라마 < SKY 캐슬 >이라고 있잖아요. 거기 모든 가족들이 자녀의 대학진학에 도움된다면 잘못된 걸 알면서도 끌려가잖아요. 저는 이걸 '스포츠 캐슬'이라고 생각해요. 스포츠는 승리를 못하면 대학에 못 가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이기기 위해 오히려 공부를 안 하도록 만드는 거죠. 왜냐면 대학 입시에 운동선수로 진학하는데 학교 공부 성적은 전혀 반영되지 않는 체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 외국은 어떤가요? 외국도 공부 안 하나요?
"불가능하죠. 미국 같은 경우 학교 수업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 똑같아요. 4.0 학점 만점에서 2.0을 받지 못하면 운동선수로 참가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지 않고 운동기계를 키우는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아요. 미국과 우리나라의 학교 체육 시스템이 다른 근본적 이유가 바로 거기 있고요."

- 스포츠계의 성폭력은 엘리트 스포츠의 또 다른 폐해라는 지적도 있는데 동의하세요?
"현재 대한민국 엘리트 스포츠가 나쁜 건 절대 아닙니다. 그리고 금메달이 실제 중요한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 엘리트 스포츠가 가진 문제점은 금메달의 가치를 인권의 가치보다 우선시하는 거예요. 그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통념과 너무 거리가 있죠.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 따고 월드컵에 나가서 잘하고 국민을 기쁘게 하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지만, 어떤 경우에도 그게 인권보다 중요한 가치는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현재 대한민국 엘리트 스포츠에서는 승리만이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걸 위해서는 당장 학생들이 폭력에 노출되고 그 폭력이 악화되어 성폭력으로 이어지는 심각한 상황까지 가더라도 근본적으로 스포츠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안 바뀐 거죠. 말로는 공개적으로 인권개선 하고 공부시켜야 하고 폭력 추방하겠다고 하지만, 인권개선 하고 폭력 추방하여 금메달 못 따면 누가 책임질 거냐는 마인드가 지배합니다."

- 국민 인식은 어떻다고 보시나요?
"사실 우리 사회 인식도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빠른 속도로 성평등이라든지 노동이라든지 다양한 문제에서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스포츠계는 마치 '실미도'처럼 기존 사회와 뚝 떨어져서 70~80년대 마인드로 여전히 살고 있는 거예요. 특히 대한체육회 마인드가 변하지 않는다는 게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 그 당시 취재는 어떻게 하시게 된 건가요?
"사실 저 자신이 중학교 때 축구 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구타도 굉장히 많이 당했고요. 학교 스포츠의 현실을 잘 알고 체험도 했죠. 제가 스포츠 기자가 되면서 이런 문제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 당시 <시사기획 쌈>이라는 프로에서 스포츠 변혁 프로젝트라고 해서 약 2년에 걸쳐 스포츠의 구조적 문제를 겨냥한 6개 정도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습니다. 스포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기획한 거예요. 폭력 문제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취재를 하다 보니 현실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듣게 된 거죠."

- 어떤 이야기인가요?
"모 여학교 농구부 감독이라는 사람이 농구부 선수 대부분을 학교 안에서 유린했다는 거예요. 듣고도 믿을 수가 없어서 처음엔 거짓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확인이라도 해보려고 취재에 들어갔는데 그게 사실로 밝혀져서 충격이 컸습니다. 그래서 이건 폭력의 문제로 다룰 게 아니고 성폭력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목을 '스포츠와 성폭력에 대한 인권보고서'라고 잡아, 우리 사회 전체가 이에 대해 구조 문제를 들여다보고, 다른 사람 문제가 아니라 내 자식도 이렇게 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돼야 한다고 봤습니다. 그 뒤 본격적인 취재를 시작한 거죠."

- 그럼 그 당시 취재한 분야는 어디였어요?
"거의 전 종목에 걸쳐서 취재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케이스가 많아서 도저히 취재할 수 없는 지경까지 됐고요. 저희가 취재 들어간 곳은 대부분 사실이었던 것으로 취재 결과가 드러났습니다. 다만 피해자들이 받을 상처가 너무 크기 때문에 저희가 그 당시 가해자들의 실명을 공개하지 못했습니다.

공소시효는 대부분 지났고 피해자 상당수가 이미 결혼했거나 자식이 있거나 피해를 숨기고 고통 속에 살아가시는 분들이었어요. 그분들 스스로가 이걸 꺼내기엔 너무나 상처가 크고 두려워 해서 저희도 실명 공개를 하지 않았어요. 방송할 때 음성도 대역으로 녹음한 게 많아요. 본인들이 취재에 응했어도 신분 노출 때문에 대역 배우를 쓰기도 하고요. 그렇게까지 해서 신분 노출을 최대한 막으려고 했던 겁니다.

그 당시 폭력으로 시작해 성폭력으로 갔고, 그렇게 하면서 대한민국 스포츠계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기 위해 노력했고요. 그 당시에도 교육부와 문체부, 심지어 국회, 국가인권위에서 아예 스포츠계 성폭력 대책팀을 꾸려서 1년 이상 활동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전 방위적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니 그동안 우리 사회는 뭘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 10년 전에 문제 제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는 이유는 뭐라고 보세요?
"아주 쉽게 이야기하면 '패러다임 시프트'라고 하죠, 사고 체계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해요. 시스템 자체를 선진화시켜 엘리트 스포츠와 생활체육이 어우러지는 스포츠 선진국으로 가야 하는데, 대한 체육회는 아직도 오직 엘리트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 거죠. 그리고 대한민국 사회는 그동안 스포츠계의 이런 현실을 눈감아 왔죠. 그렇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전 국민이 스포츠를 즐기는 스포츠 선진국으로 전환해야죠. 그러지 않고서는 이 문제가 바뀌지 않아요."

"코치·감독을 여자로 교체? 보여주기식 정책으로는 안 바뀐다"
 
선수 훈련 지켜보는 조재범 코치 지난 2018년 1월 10일 오후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 빙상장에서 쇼트트랙 조재범 코치가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훈련중인 선수들을 지켜보고 있다. 조재범 전 코치는 심석희 선수 등 쇼트트랙 선수들을 폭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0월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되었다.

▲ 선수 훈련 지켜보는 조재범 코치지난 2018년 1월 10일 오후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 빙상장에서 쇼트트랙 조재범 코치가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훈련중인 선수들을 지켜보고 있다. 조재범 전 코치는 심석희 선수 등 쇼트트랙 선수들을 폭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0월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되었다.ⓒ 권우성

 
- 지난 14일 신유용 전 유도 선수가 자신의 성폭행 피해를 주장했는데.
"구조적으로 똑같아요. 어릴 때부터 운동을 시작했고, 지도자를 가족처럼 믿었고, 폭력에 시달렸고, 합숙하다가 성폭력으로 이어지고, 덮이고 진실은 안 밝혀지고... 이 구조는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심석희 선수-신유용 선수, 쇼트트랙-유도, 조재범-유도 코치 등 이름과 종목만 바꾸면 구조적으로 같은 문제예요. 2008년 '스포츠와 성폭력에 대한 인권보고서'를 보면 거기 나온 피해자들도 거의 똑같은 패턴을 반복했어요. 어처구니 없는 거죠."

- 코치나 감독을 여성으로 교체하면 문제가 해결될까요?
"그건 지엽적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남녀 문제로 보지 않습니다. 성폭력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권력의 불균형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하고요. 물론 (코치나 감독을) 여성으로 바꾸면 (사건이) 줄어들 수는 있겠죠. 그러나 근본적으로 권위주의 시대 스포츠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이상 근본적으로 달라질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 이후 이런 폭로가 계속될 것으로 보세요?
"제가 취재해본 경험으로는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건 전적으로 피해자 본인 스스로 용기와 결단 이외 누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저희도 취재한 케이스가 없어서 안 다루는 게 아닙니다.

심석희 선수의 비극적인 사건이 심 선수의 용기로 알려졌는데, 분노는 유지하되 침착하게 이 사건의 본질은 무엇이고 어떤 구조에서 이뤄졌는지, 근본적으로 치유하기 위해서는 어떤 대책이 필요한지를 진지하게 바라봐야 할 걸로 봅니다. 당장 보여주기식의 '복붙'(복사+붙여넣기) 대책들로는 안 바뀝니다."
  
- 어떻게 전망하세요?
"저는 예측하지 않을 거고, 의지를 가지고 변화시켜 나가야죠. 10년 후엔 대한민국 학교 시스템이 세계적인 시스템으로 바뀌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대가 섞인 전망이죠. 사실 변화가 없는 게 아닙니다. 학교체육진흥법이 만들어졌고요. 또 대학 스포츠 협의회가 만들어져서 공부와 운동을 병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고요. 초중고 학교 체육 진흥회가 만들어지면서 교육이란 관점에서 학교 체육을 제대로 이어가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어요. 시스템도 상당히 만들어져 있고요.

다만 대한체육회와 문체부, 그리고 교육부, 나아가서 대한민국 정부가 새로운 시스템을 체육의 문제나 스포츠 문제로 바라보면 이번 학교 체육 개혁은 실패할 거예요. 그러나 이걸 교육의 문제, 복지의 문제, 대한민국 사회 미래 지속 가능한 문제로 확대 시켜서 바라보고 인권 문제로 바라본다면 분명한 해법이 나올 겁니다.

지금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은 전체 학생의 1%밖에 안 되는 엘리트 운동선수들도 운동기계로 만드는 피해자로 전락시키고 있어요. 정작 99% 되는 일반 학생은 운동을 포기하고 공부 기계로 만들었죠. 대한민국 미래를 짊어질 학생들을 다 피해자로 만드는 시스템이에요. 이런 학교 시스템의 혜택을 모든 아이가 누리고, 대학 입시에도 반영된다면 좋겠어요. 더 나아가 직업 선택에도 도움이 되고 생활 체육으로도 이어져서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선진국형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만이 근본적 해법이 될 겁니다.

그리고 10년 뒤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이라 예측하기보단, 제가 지금 말씀드린 대로 만들어 가야죠. 더 이상 뭐가 옳고 그른지의 문제가 아니라, 길은 보이고 가야 하는 방향도 나왔고 최소한의 시스템도 만들어졌어요. 이제는 그것에 매진할 때라고 봅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주세요.
"전 기자고 인터뷰를 하러 다녀야 하는데, 인터뷰 대상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 슬프고... 참담한 인터뷰는 이제 그만 하면 좋겠어요. 앞으로는 좋은 일로 만나 좋은 얘기하면 좋겠는데 아직도 이런 얘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고지가 저기 있고 8부 능선을 넘어 왔다고 생각하거든요. 심석희 선수가 용기 내준 계기를 흘려보내지 말고 스포츠 개혁을 위한 에너지를 잘 승화시켜 나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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