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에서는 2006년 독일 대회부터 작년 러시아 대회까지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프랑스가 차례로 우승하면서 유럽의 절대 강세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2002년 한일 월드컵까지는 개최국과 우승국의 상관관계가 비교적 뚜렷한 편이었다. 유럽에서 대회를 개최하면 유럽 팀이 우승하고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대회를 개최하면 비유럽(정확히는 남미)에서 우승팀이 배출된 것이다.

실제로 1974년 서독 대회와 1982년 스페인 대회, 1990년 이탈리아 대회, 1998년 프랑스 대회 등 유럽에서 개최한 대회에서는 각각 서독, 이탈리아,서독,프랑스가 우 승을 차지했다. 반면에 1978년 아르헨티나 대회와 1986년 멕시코 대회(이상 아르헨티나), 1994년 미국 대회, 그리고 2002년 한·일 대회(이상 브라질) 등 비유럽에서 개최한 대회에서는 남미국가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올해로 17회째를 맞는 아시안컵 역시 1980년대까지는 개최국과 우승국의 상관관계가 비교적 뚜렷했다. 1990년대부터 일본이 급부상하면서 개최지역의 영향은 어느 정도 무너진 상황이다. 하지만 1996년 이후 23년 만에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리는 2019 아시안컵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는 중동이 강세를 보이고 비중동 국가들이 상대적으로 고전하고 있다.

이란 5-0, 사우디 4-0 승리, 안방이 편안한 중동국가들
 
 북한전에서 골을 넣고 기뻐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선수들

북한전에서 골을 넣고 기뻐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선수들ⓒ EPA/연합뉴스

 
FIFA 랭킹 29위의 이란은 명실상부한 아시아의 최강팀 중 하나다. 아시안컵에서 통산 세 차례나 우승을 차지했고 월드컵에도 최근 3회 연속을 포함해 총 5번이나 출전했다. '아시아의 호랑이'를 자처하는 한국도 이란을 상대로 통산 9승3무13패로 열세에 있다. 하지만 이란은 작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우승후보 스페인, 포르투갈과 한 조에 편성되면서 1승1무1패로 승점 4점을 따내고도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역시 아시아 레벨에서 이란의 존재감은 여전했다. 이란은 지난 8일(이하 한국시각) 예멘과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5골을 퍼부으며 5-0으로 대승을 거뒀다. 물론 예멘이 FIFA 랭킹 135위에 아시안컵에 첫 출전하는 약체였다곤 하지만 이란은 대회 첫 경기의 부담도 없이 예멘을 상대로 자비 없는 골 잔치를 벌였다. 이란은 상대적으로 우승횟수가 적었던 아시안컵에서 1976년 이후 43년 만에 우승을 노리고 있다.

지난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아시아 국가로는 처음으로 월드컵 16강을 달성한 사우디 아라비아는 2006년 독일 대회를 끝으로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자취를 감췄다. 사우디아라비아는 12년 만에 본선에 진출한 작년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개최국 러시아를 포함해 우루과이, 이집트와 한 조에 편성돼 1승2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특히 러시아와의 개막전 0-5 패배로 인해 세계 축구 팬들에게 약체의 이미지가 박혀 버렸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월드컵에서의 아쉬움을 아시안컵을 통해 날려 버리겠다는 각오로 이번 대회에 임하고 있다. 2007년 대회 준우승 이후 두 대회 연속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던 사우디아라비아는 9일 북한과의 첫 경기에서 4골을 쏟아내며 4-0 완승을 거뒀다. 아무리 북한의 전력이 불안정하다 해도 첫 경기에서 보여준 사우디아라비아의 골 결정력은 월드컵에서 보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중동의 '양강' 이란과 사우디 아라비아 외에도 중동의 강세는 대단하다. 2022년 월드컵 개최국 카타르는 첫 경기에서 레바논을 2-0으로 꺾었고 D조의 이라크 역시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스즈키컵 우승팀 베트남에게 3-2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비록 첫 경기에서는 바레인과 1-1로 비기며 승부를 가리지 못했지만 개최국 UAE 역시 토너먼트에 올라온다면 홈 이점을 얻어 비중동 국가들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런 상대가 될 것이다. 

요르단에게 덜미 잡힌 호주, 한국-일본도 첫 경기부터 약체에게 고전
 
 호주전에서 선제골을 넣은 요르단의 아나스 바니 야신의 골 세리머니

호주전에서 선제골을 넣은 요르단의 아나스 바니 야신의 골 세리머니ⓒ EPA/연합뉴스

 
반면에 중동 이외의 지역에 있는 아시아의 강호 한국과 일본, 호주는 조별리그 첫 경기부터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번 대회 초반 최대의 희생양이 된 팀은 '디펜딩 챔피언' 호주'였다. 2006년 독일 월드컵부터 월드컵 4회 연속 출전하고 있는 호주는 2006년 아시아 축구연맹에 가입한 후 3번의 아시안컵에 출전했다. 2007년 대회 8강,2011년 대회 준우승을 차지한 호주는 자국에서 열린 2015년 대회에서 한국을 연장 접전 끝에 2-1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유럽의 피지컬을 가진 아시아의 팀'으로 불리는 호주는 2019년 대회 첫 경기부터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 호주는 6일에 열린 요르단과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전반26분 요르단의 아나스 바니 야신에게 선제골을 허용한 후 만회골을 넣지 못하고 0-1로 패했다. 77.1%의 압도적인 점유율과 19번의 슈팅도 요르단의 골문을 뚫지 못했다. 물론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이 비교적 약체로 꼽히지만 호주가 조별리그에서 패배를 기록할 것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첫 경기에서 승리를 따낸 한국과 일본의 상황도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한국은 7일 필리핀과의 첫 경기에서 필리핀의 밀집수비에 막혀 답답한 경기를 펼치다가 후반21분에 터진 황의조(감바 오사카)의 결승골에 힘입어 가까스로 승리를 거뒀다. 비록 목표했던 승점 3점을 챙겼지만 대량득점을 기대했던 필리핀에게 경고 3장을 받아가며 간신히 승리를 거둔 것은 결코 만족스러운 결과가 아니었다.

아시안컵 최다 우승(4회)에 빛나는 일본은 조별리그 첫 경기부터 펠레스코어(3-2)를 기록하는 명승부(?)를 연출했다. 하지만 그 상대는 조 1위를 다툴 것으로 예상되던 우즈베키스탄이 아닌 FIFA 랭킹 127위의 투르크메니스탄이었다. 일본은 투르크메니스탄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는 등 고전을 끝에 가까스로 승리를 따냈다. 러시아 월드컵 16강에서 '스타군단' 벨기에를 패배 직전까지 몰아 붙였던 팀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졸전이었다.

일찌감치 입국해 시차 및 현지 적응 훈련을 펼쳤다곤 하지만 중동의 환경은 아무래도 한국과 일본, 호주 선수들에게는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물론 대회를 치르다 보면 적응력이 생기겠지만 심판 판정 등에서 텃세가 더 심해질 수도 있다. 중동 축구의 주무기(?)인 침대축구 역시 비중동 국가들에겐 상당히 부담스럽다. 과연 중동의 UAE에서 열리는 2019 아시안컵에서 비중동 국가들은 지역적 불리함을 극복하고 3회 연속 우승을 차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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