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알리타: 배틀엔젤>의 CG를 총괄한 김기범 감독.

"(할리우드) 예산의 절반일지라도 효율적으로 이용하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적용 가능하다. 소프트웨어 역시 할리우드 스튜디오와 같은 수준은 아닐지라도 비슷하게 개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컴퓨터 그래픽(아래 GG)을 활용한 캐릭터 영화 하면 빠짐없이 거론되는 <아바타>가 개봉한 지도 10년이 지났다. 전후로 수많은 CG 캐릭터가 나왔고, CG는 이제 일반 실사 영화에서도 폭넓게 활용되는 필수 요소가 됐다. 

오는 2월 중 개봉할 <알리타: 배틀 엔젤>(아래 '알리타')은 <아바타> <혹성탈출> 시리즈의 그래픽을 담당한 웨타 디지털의 최신작이다. 큰 눈망울에 신비감 가득한 사이보그 알리타의 탄생 과정을 한국인 CG 감독이 총괄 지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8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모처에서 김기범 CG 감독을 만났다.

김 감독은 이미 해당 분야에서 10년여의 경력을 갖고 있었다. ILM(Industrial Light & Magic)에 근무하며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트랜스포머3> <아이언맨2> 등에 디지털 아티스트 혹은 조명 감독으로 일했다. 특히 외부인원이자 한국인으로선 처음으로 웨타 디지털에 고용돼 <혹성탈출: 종의 전쟁>의 시니어 조명과 <알리타>의 CG 감독을 맡으며 지평을 넓혀왔다.

"알리타 담당만 120명이었다"

일본 작가 키시로 유키토의 만화 <총몽>을 원작으로 한 <알리타>는 최대한 원작 구성에 충실한 모양새였다. 지난 7일 언론에 공개된 일부 내용만 놓고 보면 그렇다. 당시 간담회에서 "혁신적인 기술로 인물을 생생하게 구현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주인공인 알리타는 배우 로사 살라자르가 맡았으며, CG 팀은 배우의 근육과 표정, 홍채의 움직임 등까지 모션캡쳐 기술로 알리타에 옮겨놓는 것을 목표로 했다. 
 
김기범 CG감독은 "알리타 담당만 120명이었다"며 "한 명이 작업한 것처럼 만들어야 했고,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이기도 하다"고 설명을 이었다.

"우선 배우는 한 사람이 연기하는 것이잖나. 일관되게 연기하는 배우의 움직임을 그대로 따오려 했다. 배우가 갖고 있는 표정, 감정을 알리타에 부여했다. 최종 단계에선 CG 캐릭터의 어색함을 없애기 위해 해부학적으로 움직임을 따서 이식했다. 26세기가 영화의 배경인데 뇌와 심장만 있으면 사람으로 볼 수 있는지 전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알리타의 개성을 통해 상대 남성 배우가 사랑에 빠지게 해야 했다. 그 과정 자체가 관건이었지.

원작을 보면 알리타는 화성에서 온 존재다. 시나리오 개발 과정에서 원작에 충실했던 것 같다. 원작도 물론 봤고 애니메이션도 봤는데, 우린 일단 제작진이 요구하는 것에 최대한 응하려 했다. 나중에 작업하고 보니 몇몇 장면은 우리가 원작을 의식하거나 의도하지 않았는데 일치하기도 하더라."

 
 영화 <알리타: 배틀 엔젤>의 한 장면.

영화 <알리타: 배틀 엔젤>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약 2억 달러의 제작비(한화 2200억 원) 내에서 제작진은 CG팀에게 최대한의 자율성을 보장했다. "예산과 타협하지 않았다"며 김기범 CG 감독은 "(제작진 등) 회사에선 싫어할 수 있는 말이지만 최상의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끊임 없이 수정하는 작업을 경험했다"고 전했다.

"제작 과정에서 저 역시 담당한 일이 얼마나 걸릴지를 확인하면서 하는데, 어쩌다 예산을 넘길 것 같은 상황이면 그 선을 지키면서 CG의 질을 유지하는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야 한다. 지침 또한 위에서 내려오지. 이 부분에선 (예산이 넘지 않도록) 주의해달라는 식으로. 그런데 웨타 디지털에선 마무리 단계에서 오류를 찾거나 개선의 여지가 있으면 끊임없이 수정하게 하더라. 다른 스튜디오였으면 그냥 마무리 했을 것이다. 

저도 이런 작업은 처음이었다. (웨타디지털 역사상) 내부 인원을 승진시키지 않고 외부에서 CG 감독을 고용한 것도 처음으로 알고 있다. 이쯤에서 끝내야 하는 상황인데도 작업자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그랬다. 작업 수정은 끝이 없기에 적당한 지점에서 끝내는 것에 훈련된 사람인데, 그게 아니더라. 나름 예전 회사에서 경험한 아이디어를 이번 작업에 적용하려 했다. 회사에서도 그걸 원했고. 사실 양질의 결과물을 내면서도 예산을 지키는 건 모순이긴 한 것 같다(웃음). 그간 혁신적인 작업 방식도 있었고, 수십 명이 헤맨 작업도 있다. 웨타는 그런 대부분의 과정에 익숙하더라."


기술의 발전... "필연적으로 적응하고 알아야"
 
 영화 <알리타: 배틀 엔젤>의 한 장면.

영화 <알리타: 배틀 엔젤>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김기범 CG 감독에게 <알리타>에 적용된 모델링(3D 공간상에 가상의 입체적인 물체를 만들고, 그것을 수정하는 작업)의 양이 어느 정도인지 물었다. 수치화시켜 과거에 비해 어느 정도 작업 방식이 정교해지고 복잡해졌는지를 알기 위함이었다. 

"모델링 자체만 얘기하면 당연히 기존에 작업한 프로젝트보다 진보했다. 쉽게 말해 눈만 봤을 때 골룸(영화 <반지의 제왕> 속 CG 캐릭터)의 눈보다 알리타는 320배 정도 증가했다. 근데 단순히 곱하기가 아닌 기하급수로 늘었다고 보면 된다. 눈과 관련해서 색감이나 모양, 움직임 등의 작업도 해야 하니까. 손가락 끝 지문까지도 표현했다. 쉽게 말해 우리가 가진 기술로 (제작진이) 표현하고 싶은 건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간의 성과와 과정을 기억하면서 동시에 기억해야 할 사실은 이 모든 게 쉽게 얻어진 게 아니라는 것. 인터뷰 중 김 감독은 자신이 느꼈던 암묵적인 부정적 시선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이쪽에선 제가 알기론 아시안 계 CG 감독이 거의 없다, 백인이 대부분이며 한국 사람 중에선 당연히 처음인 걸로 알고 있다"며 그가 말을 이었다.

"제가 웨타디지털에 들어갔을 때 '어떻게 하나 보자' 같은 시선을 느끼긴 했다. 그래서 더 자신감 있게 하려고 했다. 물론 초반엔 힘들었지. 그럴수록 아이디어를 내면서 예전 회사에서 쌓은 경험을 접목시키려 노력했다." 

<아바타> 이후 CG 기술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김기범 CG 감독은 주저 없이 "소프트웨어가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올라가 있다"고 답했다. 

"예산이 클수록 대작이 나온다는 말이 있는데 그 벽이 약간은 허물어지지 않았나 싶다. (할리우드) 예산의 절반일지라도 효율적으로 이용하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적용 가능하다. 소프트웨어 역시 할리우드 스튜디오와 같은 수준은 아닐지라도 비슷하게 개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전 세계에 여러 작은 회사들이 많이 생긴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크게 바뀔 분야가 딥 러닝(무한한 데이터를 이해하고 분류하는 기술로 인공지능 분야와 연관이 깊다) 쪽이라고 생각한다. 기계가 스스로 학습해서 작업자가 필요한 걸 준비해준다든가 하는 식이다. 사실 이미 어느 정도 우리 쪽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분야를 따로 공부하면서 익히고 있다.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면 머지 않아 이쪽 일에서 도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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