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주먹왕 랄프> 포스터.

영화 <주먹왕 랄프> 포스터.ⓒ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작품성과 인기는 이제 남부럽지 않은 수준이다. 그러나 10년 전만 해도 전혀 그렇지 못했다. 과거 '픽사' '드림웍스' 등에 밀려 침체기를 겪었던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볼트>(2008)를 시작으로 부활을 꿈꾸기 시작했다. 2006년 디즈니와 합병한 픽사 스튜디오는 <월-E> <업> <토이 스토리3>로 이어진 연속 흥행으로 최고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2012년 디즈니는 '픽사' 스타일에 가까운 <주먹왕 랄프>를 내보여 눈길을 모았다. 이 작품은 같은 해에 픽사가 내놓은 '디즈니' 스타일의 <메리다와 마법의 숲>과 비교 당하기도 했다. 흥행에서는 <메리다와 마법의 숲>이 소소하게 앞섰지만 비평 면에선 <주먹왕 랄프>의 압승이었다.

이후 디즈니 애니는 <겨울왕국> <빅 히어로> <주토피아> <모아나>로 이어지는 최고 전성기를 보낸다. 물론 픽사 스튜디오는 이전과 비교해 부침을 겪었지만 <인사이드 아웃> <코코>와 같은 명작을 내놓기도 했다. 

착한놈이 되고 싶은, 나쁜놈 주먹왕 랄프
 
 영화 <주먹왕 랄프>의 한 장면. 나쁜놈 역할을 30년째 하고 있는 '주먹왕 랄프'는 착한놈이 되고 싶다.

영화 <주먹왕 랄프>의 한 장면. 나쁜놈 역할을 30년째 하고 있는 '주먹왕 랄프'는 착한놈이 되고 싶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영화 <주먹왕 랄프>는 추억의 오락실 게임 캐릭터들의 이야기다. 1980년대 초부터 30년간 자리를 지켜온 오락실 게임 '다 고쳐 펠릭스'의 악당 캐릭터 주먹왕 랄프는 펜트하우스 빌딩을 부수는 역할이다. 그는 매일 빌딩을 부수지만 펠릭스는 매일 빌딩을 고친다. 게임이 끝나면 랄프는 옥상에서 지상으로 추락하고 펠릭스는 메달을 받는다. 

오락실 불이 꺼지고 게임 캐릭터들이 퇴근할 때 랄프는 누구에게도 인사 받지 못하고 홀로 쓸쓸히 빌딩 옆 쓰레기장으로 간다. 벽돌과 쓰레기가 한 가득 쌓인 쓰레기장이 그의 집이다. 그는 더 이상 나쁜 놈으로 살기 싫고 착한 영웅이고 싶다. 그것이 행복이라고 믿는다. 

어느덧 30주년을 맞은 '다 고쳐 펠릭스'의 캐릭터들은 기념 파티를 연다. 게임 내 캐릭터들은 물론 다른 게임의 캐릭터들도 모두 초대를 받았지만 랄프는 파티에 초대 받지 못했다. 함께 축하하고 축하받고 싶은 랄프는, 그러나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옥신각신 끝에 파티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는 어떻게든 펠릭스처럼 메달을 따서 진정한 일원으로 빌딩에서 함께 생활하겠다고 다짐한다. 

처음으로 당도한 게임 '히어로즈 듀티'에서 랄프는 손쉽게 메달을 얻지만 실수로 사이버그와 함께 다른 게임 '슈가 러쉬'로 건너가게 된다. 한편 악당이 사라져 깜짝 놀란 펠릭스와 바이러스 사이버그를 찾아 박멸하려고 하는 '히어로즈 듀티'의 칼훈 병장은 함께 랄프를 뒤쫓는다. 

오락실을 불러온, 신선한 아이디어 상품
 
 영화 <주먹왕 랄프>의 한 장면. 이 영화는, 오락실을 환상적으로 불러온 신선한 아이디어 상품이다.

영화 <주먹왕 랄프>의 한 장면. 이 영화는, 오락실을 환상적으로 불러온 신선한 아이디어 상품이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주먹왕 랄프>는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깊게 박혔다고 하기엔 조금 부족한 흥행과 비평 성적을 냈다. 그러나 디즈니 애니 최초로 속편을 내놓았을 만큼 인정 받은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영화는 오락실 문이 닫히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는, 앞서 <토이 스토리> <박물관은 살아 있다> 등을 통해 성공한 아이디어를 이용한다. 더불어 외양은 오락을 소재로 한 아동용 애니메이션 같지만, 어른들이 잘 아는 오락과 캐릭터들이 나오기 때문에 어른용 애니메이션 같기도 하다.

앞서 '픽사' 스타일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라고 했던 만큼 영화는 어른에게도 생각할 거리와 확실한 메시지를 던진다. 다름과 틀림에 대해서, '나쁜'놈에 대해서, 연대에 대해서, 자아에 대해서. 이후 나온 디즈니 애니메이션들은 이 영화의 후예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이 영화의 메시지는 하나 같이 주요 캐릭터와 긴밀히 이어진다. 그렇기에 전체적 전개와 그 짜임새에 있어서도 군더더기가 없다. 장면 장면을 보며 '그렇지, 그렇구나' 하고 생각하며 멈추는 게 아니라, 장면 장면에서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이다.

나쁜 게 아니고, 틀린 게 아니다
 
 영화 <주먹왕 랄프>의 한 장면. 랄프는 나쁜 게 아니고, 바넬로피는 틀린 게 아니다.

영화 <주먹왕 랄프>의 한 장면. 랄프는 나쁜 게 아니고, 바넬로피는 틀린 게 아니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랄프는 나쁜놈 역할을 할 뿐 나쁜 건 아니다. 랄프 스스로는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영화 초반부 일명 '나쁜놈 모임'에서 '스트리트 파이터'의 대표적 악당 캐릭터 장기예프가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그건 랄프뿐만 아니라 '다 고쳐 펠릭스'를 포함한 모든 오락들이 마찬가지다.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면 되는 것이다. 

랄프의 나쁜놈과 더불어, '슈가 러쉬'의 바넬로피도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녀는 레이싱에 참여하고 싶지만 다른 레이싱 멤버들은 "바넬로피가 '오류'로 만들어진 존재이니 참여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는 '슈가 러시'의 존폐가 걸려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바넬로피로선 자신이 다른 것인지, 틀린 것인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랄프와 바넬로피는 서로 적대감에서 시작하지만 비주류로서의 동질감을 느끼는 존재로 발전하고 연대로의 길을 간다. 그들은 따로 또 같이 진정한 자아를 찾고, 진정한 자신의 역할을 이해하고, 우리 모두의 행복을 바라는 쪽으로 성장한다. 

소소한 유머와 잔 재미와 오래된 추억으로 무장한 <주먹왕 랄프>는 다양한 의미와 생각거리들로 이목을 끈다. 또한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와 환상적인 오락 속 세계로 환호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주먹왕 랄프>가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애니메이션 영화라고 추천하고 싶은 이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