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사에서 올해 최고의 영화 5편을 선정했다. (관련기사: 딸 잃은 어머니의 광고, 아직도 못봤다면 후회할 겁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올해 최악의 영화 5편을 선정해 보고자 한다. 최악의 영화라고 주제는 선정했지만 기대에 비해 아쉬웠던 작품이라 보는 편이 더 좋을 것이다. 평가 기준은 개인적인 주관이며 극장에서 상영되지 않은 작품들은 제외했다.
  
 영화 <더 넌> 스틸 컷.

영화 <더 넌> 스틸 컷.ⓒ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더 넌> 수녀귀신 '발락'은 반가웠으나 무섭지가 않네

<더 넌>은 루마니아 수녀원에서 발생한 의문의 자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바티칸에서 파견된 버크 신부(데미안 비쉬어 분)와 아이린 수녀(타이사 파미가 분)가 겪는 공포를 다룬다.

앞서 <컨저링> 시리즈를 통해 큰 사랑을 받았던 수녀귀신 '발락'의 이야기를 이어간다는 점에서 공포영화 팬들은 <더 넌>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더 넌>은 귀신들이 등장하는 '컨저링 유니버스'를 선보이는 제임스 완 사단에게 인형 귀신 <애나벨>, 하우스 호러 <인시디어스>에 이어 세계관을 확장시켜 줄 중요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기존 <컨저링> 시리즈가 지니는 약점이 도드라졌다. 피를 튀기는 슬래셔나 살인이나 범죄를 다룬 스플래터에 비해 컨저링 시리즈가 택한 오컬트 장르는 시각적인 공포나 조여 오는 긴장감이 약하다. <컨저링>은 이런 약점을 탄탄한 드라마와 스릴으로 극복한 반면 <더 넌>은 드라마적인 구성도, 다각도로 접근하는 스릴도 부족했다.

버크 신부가 무덤에 갇히는 장면이나 아이린 신부가 수녀들과 기도를 드릴 때 악령이 습격을 가하는 장면은 인상적이지만 무섭지 않았다. 심리적인 긴장감이 부족하다면, 장면으로 효과를 주어야 되는데 수녀 귀신 발락의 등장은 조연(?)으로 출연했던 <컨저링> 때보다 약하게 느껴졌다.
 
드라마적인 완성도를 위해서는 버크와 아이린이 수녀원을 향했을 때 그들과 갈등하며 서사를 만들어 갈 캐릭터를 설정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두 주인공의 '공포 체험'에 그치면서, 짜임새 있는 영화가 아닌 시시한 유령의 집이 되어버렸다. '애나벨'과 함께 컨저링 유니버스의 든든한 한쪽 팔이 되어줄 줄 알았던 수녀 귀신 발락의 미미한 존재감이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영화 <상류사회> 스틸 컷.

영화 <상류사회> 스틸 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상류사회> 부패한 상류층 얘기, 노출밖에 할 얘기가 없었을까
 
상류층의 부패함과 '갑질'은 아주 오랫동안 한국영화계가 사랑하는 소재였다. 이 소재의 변주는 매번 흥미로운 결과를 낳았고 흥행을 보장하는 소재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변주가 없는 비슷한 이야기의 반복은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상류사회>는 제목부터 빤히 드러나는, 부패한 상류층의 이야기를 차별화 할 수 있는 '무기'가 있어야 했다.

변혁 감독은 그 무기로 '노출'을 택했다. <상류사회>는 개봉 전부터 베드신과 노출신을 중심으로 홍보했다. 박해일과 수애라는 두 유명배우를 주연으로 내세웠음에도 말이다. 개봉 후 관객들은 그 이유를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노출과 정사 장면을 제외하면 내세울 만한 부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은 상류층으로 향하고자 하는 인물들의 욕망에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제학 교수 태준(박해일 분)은 정계 진출을, 미술관 부관장 수연(수애 분)은 미술관 관장 자리를 꿈꾼다. 그러나 두 사람은 진짜 상류층에 한 발짝 다가갔을 때 쉽게 실망하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 한다. 상류층을 향한 열망을 그렸다기엔 다소 허무한 결말이다. 감독은 서사의 빈자리를 노출과 정사 신으로 채웠다.
 
화제가 되었던 미술관 주인 한용석(윤제문 분)과 미나미(하마사키 마오 분)의 기나긴 정사 장면에서는 '에로티시즘'도 '상류층의 추악한 이면'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떠한 감정적인 카타르시스 없는 이 장면이 영화의 주요 홍보로 이용됐다는 점은 그만큼 보여줄 게 부족했다는 소리가 아닐까. 변혁 감독은 <주홍글씨>에 이어 다시 한 번 자극적이기만 한 영화를 만들어냈다.
  
 영화 <여곡성> 스틸 컷.

영화 <여곡성> 스틸 컷.ⓒ (주)스마일이엔티

 
<여곡성> 장르영화 리메이크의 한계 뚜렷했던 영화

<여곡성>(1986)은 <월하의 공동묘지> <전설의 고향>과 함께 한국 3대 고전 공포영화로 손꼽히는 명작이다. 집안에 들인 악귀 때문에 대를 잇지 못하는 '신씨 부인'(서영희 분)이 옥분(손나은 분)이라는 가난한 집안 출신을 가짜 며느리로 들여 악귀를 속이려 한다는 내용을 다뤘다. 이 작품은 당시에는 충격적인 시각효과와 독특한 장면들을 통해 공포를 유발해냈다.
 
약 30여 년 만에 리메이크로 만들어진 <여곡성>은 장르영화가 지니는 리메이크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첫 번째는 당시 충격을 주었던 명장면이다. 신씨 부인의 남편 이경진(최홍일 분)이 밥상에서 먹던 국수가 지렁이로 변하는 장면은 당시 기준에서는 공포를 느낄 만큼 강렬했으나 오늘날에는 그 강도가 약하다. 그럼에도 영화는 이 장면을 그대로 재현하면서 아무런 느낌도 주지 못한다. 장르물은 시대의 흐름을 많이 탄다. 특히 액션이나 공포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특수효과는 물론 장르적인 문법도 크게 변화를 겪는다.
 
두 번째는 작품 속 여성 캐릭터가 오늘날의 트렌드와 맞지 않았다는 점이다. 공포 영화의 리메이크 또는 속편이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원작에 갇힌 채 변화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옥분은 원작에 비해 다소 능동적인 인물로 변화했지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옥분은 조선시대 며느리라는 캐릭터의 한계에 갇혀 사건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지 못한다. 주연 배우 손나은의 연기력 논란은 작품 자체가 보여준 아쉬움에 비할 때 아주 작은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영화 <배드 사마리안> 스틸 컷.

영화 <배드 사마리안> 스틸 컷.ⓒ (주)영화사 빅

 
<배드 사마리안> 소재는 좋았지만, 스릴이 아쉬웠다

<배드 사마리안>은 '현대판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발렛파킹을 하는 션(로버트 시한 분)은 차 내비게이션을 이용해 손님의 집을 터는 빈집털이범이다. 어느 날 그는 VIP 손님 케일(데이비드 테넌트 분)의 차 열쇠를 받게 되고 몰래 그 집으로 향한다. 케일의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절도행각을 벌이던 그는 숨겨진 방에 쇠사슬로 감금된 여인을 발견한다. 도망갈 것인가, 아니면 여인을 구할 것인가. 션의 고민은 이 영화를 이끄는 재미요소라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여러 지점에서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효율적으로 변형시켰다. '착한 사마리아인'은 당시 유대인들에 의해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던 사마리아인이 위험에 처한 유대인을 구해줬다는 <신약성서>의 이야기를 가리킨다. <배드 사마리안>의 션 역시 극중에서 차별 받는 빈민층이지만 감금당한 여인을 구하기 위해 분투한다. 

소재는 좋았지만 <배드 사마리안>은 '스릴러'라는 장르적인 문법과 쾌감에 있어서는 부족했다. 스릴러 영화는 중심이 되는 사건 하나를 바탕으로 다양한 에피소드와 장면을 파생시켜 스릴을 유발한다. 얼마나 빠르고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따라 관객이 느끼는 속도감이 달라진다. 헌데 이 영화는 사건들의 연결이 허술하고 늘어져, 관객이 속도감과 스릴을 느끼기 어려웠다. 션을 압박하는 케일의 작전은 어설펐는데 이 어설픈 작전들은 놀랍게도 속속 적중한다. 소재에 대한 신중한 접근과 달리 이를 풀어낸 구성이 아쉽다.

소재와 발상을 생각한다면, <배드 사마리안>은 '올해 최악의 영화' 리스트로 뽑힌 게 다소 억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구성과 스토리 텔링이 영화의 장점을 모두 상쇄시킨 점이 아쉽다.
  
 영화 <물괴> 스틸 컷.

영화 <물괴> 스틸 컷.ⓒ 롯데엔터테인먼트 ,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물괴> 지나치게 안전한 선택들... 기대 저버렸다
 
<물괴>는 사극과 크리처물의 조합으로 큰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다. 조선 중종 22년, 거대한 물괴가 나타나 백성들을 공격하고 옛 내금위장 윤겸(김명민 분)은 왕의 명을 받아 수색대와 함께 물괴를 쫓는다. 신선한 그림이 나오기 쉬운 소재를 택했음에도 전형적인 길을 따라가는 이 영화는 아주 나쁜 버릇을 지니고 있다. 바로 수습을 모두 물괴에게 맡긴다는 점이다.
 
<카운트다운>과 <성난 변호사>를 통해 가능성을 보여준 허종호 감독은 <물괴>에서는 지나치게 안정적인 코드들을 가져온다. 김인권을 이용한 웃음과 이경영이 선보이는 악역, 왕실을 위협하는 신하들의 권력과 그들의 부정부패, 이에 고통 받는 백성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헌데 이 연결고리가 매끄럽지 못하다. 익숙한 것들을 익숙하게 엮으려고 했음에도 그 줄기가 튼튼하지 않다 보니 이음새가 허술했다.
 
대표적인 장면이 영의정 심운(이경영 분)의 부하 진용(박성웅 분)에 의해 수색대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고 윤겸과 그 부하 성한(김인권 분)이 붙잡히는 장면이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감독은 물괴를 등장시켜, 상황을 편하게 이끌어간다. 한 번 물괴를 위기상황에서 활용했다면 이는 묘수겠지만 반복적인 활용은 잔꾀처럼 느껴진다. 크리쳐물의 괴수는 공포와 긴장감을 불어넣어야 함에도 잘못된 활용으로 이를 살리지 못한다.
 
<물괴>의 안정적인 선택들은 역설적으로 영화를 불안하게 이끌어 간다. 조선판 크리처물이라는 설정에 어울리지 않는 한국영화의 전형적인 관습들(권선징악, 정치적 음모, 조연 캐릭터의 유머, 신파)은 색다름이 필요한 영화의 동력을 저해하며 나아가야 될 방향을 찾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보여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키노라이츠, 루나글로벌스타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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