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7연패를 노리는 우리은행 위비는 신한은행 에스버드가 여자프로농구를 지배하던 시절 네 시즌 연속 최하위를 기록했던 감추고 싶은 '흑역사'가 있었다. 신한은행은 지난 8일 KEB하나은행을 꺾고 시즌 2승째를 챙기기 전까지 7연패의 수렁에 빠졌던 이번 시즌이 창단 후 가장 어두운 시즌이라 할 수 있다. 지난 6시즌 동안 봄 농구 근처에도 가지 못했던 KEB하나은행이나 OK저축은행 읏샷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유독 삼성생명 블루밍스는 어느 팀에나 있었던 '흑역사'와 거리가 멀었다. 프로 출범 당시부터 정은순, 유영주, 이미선, 박정은, 왕수진 등 국가대표 출신들로 선수단이 채워졌던 삼성생명은 2006년까지 총 6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더불어 삼성생명은 프로 출범 후 22번의 시즌(WKBL은 2007년 겨울리그까지 1년에 2번의 리그를 개최했다) 동안 한 번도 5할 승률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었다. 리그에서 한 번도 꼴찌를 하지 않은 유일한 팀이기도 하다.

삼성생명이 이처럼 꾸준한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역시 원활한 세대교체에 있다. 프로 출범 당시 정은순의 팀이었던 삼성생명은 박정은과 변연하, 이미선으로 이어지는 확실한 에이스 계보가 있었다. 물론 이미선의 전성기가 저물고 변연하가 KB스타즈로 이적한 후에는 잠시 과도기도 있었지만 삼성생명은 이번 시즌 적절한 신구의 조화로 3연승을 달리며 3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노장 많은 우리은행과 경험 부족한 하나은행의 고민
 
 불혹을 앞둔 리그 최고령 선수 임영희는 여전히 평균 32분 이상을 소화하고 있다.

불혹을 앞둔 리그 최고령 선수 임영희는 여전히 평균 32분 이상을 소화하고 있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신구조화는 모든 스포츠 구단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화두다. 물론 전성기 구간을 보내는 선수들이 한 팀에 모여 있으면 당장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지만 특정 연령대의 선수들이 지나치게 많이 집중돼 있으면 장기적으로 팀 전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노장 선수들은 경기 후반 체력적인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고 젊은 선수들은 승부처에서 경험부족을 드러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은 프로스포츠 최초의 통합 7연패에 도전하고 있는 여자프로농구의 '절대강자'지만 주력 선수들의 높은 연령은 언제나 위성우 감독의 머리를 아프게 한다. 실제로 우리은행에는 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마흔이 되는 임영희가 있고 포워드 김정은 역시 30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다. 게다가 우리은행은 훈련량이 많기로 유명해 해마다 양지희, 이선화, 이은혜, 홍보람, 박태은 등 적지 않은 선수들이 시즌이 끝난 후 은퇴를 선택했다.

3라운드 최고의 빅매치이자 명승부로 꼽혔던 9일 KB 스타즈전은 우리은행의 불안요소가 고스란히 드러난 경기였다. 우리은행은 2쿼터까지 선수들의 고른 활약으로 KB를 압도하며 38-27로 여유 있게 앞서 나갔다. 하지만 우리은행은 3쿼터부터 급격하게 체력이 떨어지며 KB에 추격을 허용했고 결국 59-60으로 역전패를 당했다. 이날 우리은행은 임영희가 37분29초, 김정은이 37분을 소화했을 정도로 노장들의 체력 관리를 전혀 해주지 못했다.

우리은행이 노장들의 체력 문제가 약점이라면 하나은행은 반대로 지나치게 젊은 선수단이 단점으로 꼽힌다. 하나은행은 첼시 리 사태로 성적이 말소된 2015-2016 시즌을 제외하면 지난 6시즌 연속 봄 농구 진출에 실패할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덕분에 신인 드래프트 상위 순번을 얻어 유망주들을 대거 영입했지만 반대로 팀의 주력 선수들은 하나, 둘 팀을 떠났다.

실제로 입단 후 10년 넘게 하나은행을 이끌었던 김정은이 작년 FA자격을 얻어 우리은행으로 떠났고 지난 봄에는 '살림꾼' 염윤아(KB)마저 이적을 선택했다. 아직 1987년생 백지은과 새로 영입한 고아라(1988년생)가 있지만 김단비(92년생), 강이슬, 김이슬(이상 94년생), 신지현(95년생), 김지영(98년생) 등 주력 선수들이 대부분 90년대 태생이다. 하나은행이 중반까지 좋은 흐름을 이어가다가도 유독 승부처에서 무너지는 경기가 많은 이유다.

베테랑 3인방부터 유망주 듀오까지,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삼성생명
 
 지난 시즌 평균 출전 시간 7분이 채 되지 않았던 윤예빈은 이번 시즌 20분이 넘는 출전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시즌 평균 출전 시간 7분이 채 되지 않았던 윤예빈은 이번 시즌 20분이 넘는 출전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삼성생명 세대교체의 중심은 역시 박하나였다. 숙명여고 시절부터 삼천포여고의 박혜진(우리은행)과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던 박하나는 하나은행에서 2013-2014 시즌까지 활약하다가 2014년 FA자격을 얻어 삼성생명으로 이적했다. 박하나는 삼성생명 이적 후 은퇴가 가까워 온 이미선의 뒤를 이어 자연스럽게 삼성생명의 토종 에이스 자리를 물려 받았다.

2016-2017 시즌에는 혼혈 선수 김한별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2009-2010 시즌부터 5시즌 동안 활약했다가 무릎 부상으로 팀을 떠났던 김한별은 한 시즌을 쉬고 다시 삼성생명에 복귀해 2016-2017 시즌 봄 농구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김한별은 이번 시즌에도 12.55득점9.55리바운드3.64어시스트1.73스틸을 기록하고 있다. 김한별은 현재 삼성생명의 최고령(1986년생) 선수지만 활동량과 허슬플레이 만큼은 단연 으뜸이다.

신세계 쿨캣과 우리은행을 거쳐 2013년부터 삼성생명에서 뛰고 있는 배혜윤은 이종애와 김계령의 은퇴 후 허전해진 삼성생명의 골밑을 든든히 지키고 있다. 몸싸움에 능하고 림보호능력이 뛰어난 전통적인 빅맨 유형은 아니지만 영리한 플레이와 정확한 중거리슛으로 자신만의 생존방식을 터득했다. 배혜윤은 지난 시즌의 부진을 씻고 이번 시즌 10.55득점5.82리바운드3.55어시스트2.18스틸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삼성생명 입장에서 가장 반가운 것은 팀의 '젊은 피'라고 할 수 있는 4년 차 윤예빈과 3년 차 이주연의 가파른 성장이다. 2015년과 201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각각 1순위와 2순위 지명을 받고 삼성생명에 입단한 윤예빈과 이주연은 이번 시즌 12.18득점4리바운드3.09어시스트를 합작하며 주전 한 자리를 두고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다. 여기에 베테랑 최희진이 지난 10일 OK저축은행전을 통해 복귀전을 가지며 선수층이 더욱 두꺼워졌다.

삼성생명은 프로 경력이 풍부한 김한별과 최희진, 배혜윤에 한창 전성기 구간을 보내고 있는 박하나, 그리고 성장 가능성이 매우 큰 윤예빈, 이주연, 양인영을 고루 보유하고 있다. 외국인 선수에 대한 비중이 크지 않은 삼성생명이 중위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는 비결이다. 임근배 감독이 40분의 시간 동안 이 선수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만 있다면 삼성생명의 전력은 앞으로 더욱 좋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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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 2018-2019 WKBL 삼성생명 블루밍스 박하나 김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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