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인천 감독과 박지영 대표 <데스트랩>의 감독과 제작자

▲ 오인천 감독과 박지영 대표<데스트랩>의 감독과 제작자ⓒ 이학후

 
오인천 감독은 충무로의 이단아다. 그는 충무로 시스템에서 <소녀괴담>과 <잡아야 산다>를 연출한 후 자본과 독립된 방식에 눈길을 돌려 저예산 장르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첫 결실인 <야경: 죽음의 택시>와 <월하>는 동시 개봉으로 화제를 일으켰다.

그리고 1년이 흐른 뒤, <데스트랩>으로 돌아왔다. 2년 만에 영화 세 편을 개봉시킨 무시무시한 감독과 제작자. 마치 류승완 감독과 강혜정 대표 부부를 연상시키는, 또 다른 '외유내강' 부부인 오인천 감독과 박지영 영화맞춤제작소 대표를 만나 <데스트랩>에 대한 여러 대화를 나누었다.

- <데스트랩>의 아이디어는 어떻게 떠올렸나?
오인천 감독(아래 오) : "자본과 독립된 시스템일수록 예산 제한이 강해 아이디어의 중요성이 커진다. 예전부터 DMZ(비무장지대)에 관심이 많았다. 'DMZ라는 한정된 공간'과 '위기에 몰린 인물이 스스로 사건을 해결한다'는 두 가지 발상을 합치며 시나리오의 첫 장이 써졌다. 여기에 '<폰 부스>와 <허트 로커>가 만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란 상상력을 입히고, <글로리아>나 <예스마담>이 보여준 강한 여성을 더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데스트랩>의 원형을 갖추게 되었다."

- <월하>와 <야경: 죽음의 택시>에 이어 <데스트랩>의 각본도 오인천 감독과 박지영 대표가 함께 작업했다.
박지영 대표(아래 박) : "오인천 감독은 스토리텔링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인물과 공간이 떠오르면 일단 밀어붙여 하나의 형태로 완성한다. 처음 작업한 초고는 거칠기 짝이 없고 논리적인 비약이 심하다. 그걸 놓고 둘이서 같이 다듬으며 세련된 이야기로 만들어간다."

- <데스트랩>은 <폰 부스>나 <쏘우>로 대표되는 제한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영화들의 영향 아래 있다. <데스트랩>만의 독창성을 꼽는다면?
오 : "첫째, 플래시백(과거의 회상을 나타내는 장면)을 제한한다. <폰 부스>나 <쏘우>는 플래시백을 적극 활용한다. 반면에 <데스트랩>은 초반에 지뢰를 밟게 되는 장면 외엔 플래시백을 쓰지 않는다. 둘째, 목소리 외에 화면에 나오는 등장인물은 세 명뿐이다. 셋째, 여성 형사가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지만, 고정 관념으로 가득한 여성으로 묘사하길 거부한다."

박 : "형사를 성별로 바라보길 원하지 않았다. 전문적인 직업인으로 그리고자 했다. 많은 영화에서 섬세함 같은 면을 여성의 특징으로 내세우곤 하는 데 전혀 공감할 수 없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런 생각으로 일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여성 형사가 아닌, 한 명의 형사로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담고 싶었다."

- 지뢰를 밟았다는 설정이라 구도나 진행이 자칫 단순해질 수 있다. 촬영하면서 고려한 부분이 있다면?
오 : "'카메라를 지나치게 흔든다'는 비판은 처음부터 예상했다. <데스트랩>이 핸드헬드를 선택한 이유가 있다. 하나는 인물이 느끼는 심리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서 그랬다. 지뢰가 주는 공포감을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끌어내려고 했다. 또한, 관객의 집중력을 유지하는 수단이다. <데스트랩>은 여러 공간이 나오는 영화가 아니다. 등장인물도 단지 세 명에 불과하다. 플래시백을 쓰지도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정적인 촬영 방식을 사용하면 관객은 30분 이상 버티기 힘들다."

박 : "줄곧 핸드헬드로 진행되던 영화는 세 인물이 한자리에 모이는 장면에서 그들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앞선 카메라의 움직임과 달라진다. 서로의 대치 상황, 누가 누군지 알 수 없는 혼란스러움을 보여주려고 했다. 해외 영화제에서 이 장면에 많이들 주목했다."

- 제목을 <데스트랩>으로 붙인 이유는?
오 : "처음엔 <지뢰>로 지었지만, 너무 직관적인 것 같아 다른 제목들을 떠올렸다. 영화에 나오는 '루즈벨트 게임', '죽음의 늪' 같은 제목도 후보군에 있었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박지영 대표님이 지뢰라는 죽음의 덫에 갇혔다는 느낌을 전하는 '데스트랩'을 내놓았다."

박 : "1978년 미국의 극작가 아이라 레빈이 발표한 <데스트랩>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영화의 내용과 어울리기도 하고, 아이라 레빈의 작품에 오마주를 하는 의미도 갖는다. 영제를 <The DMZ>로 정한 건 공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형사가 지뢰를 밟는 장면과 야구 용어인 '케네디 스코어'와 '루즈벨트 게임'을 라디오를 통해 들려주는 장면을 교차로 보여준다."

오 : "영화에서 DMZ는 야구장처럼 하나의 경기장으로 기능한다. 인물들이 엎치락뒤치락하며 상황은 계속 뒤바뀐다. 탈옥수가 말하는 것은 진짜일 수도, 또는 가짜일 수도 있다. 게임의 무대임을 강조하기 위해 도입부에 '케네디 스코어'와 '루즈벨트 게임'을 넣었다." 

- 권민 형사를 맡은 주민하 배우, 탈옥수로 분한 김준섭 배우, 일본인 스파이로 나오는 히로타 마사미 배우를 캐스팅한 과정이 궁금하다.
오 : "주민하 배우는 <소녀괴담>과 <야경: 죽음의 택시>에서 작업한 경험이 있다. 연기도 잘하거니와 집중력이 무척 뛰어나다. 파운드 푸티지 장르에서 요구하는 순발력도 겸비했다. 장점이 많은 배우임을 알고 있었기에 <야경: 죽음의 택시>의 촬영이 끝날 무렵에 차기작으로 준비 중이던 <데스트랩>의 출연을 제안했다. 김준섭 배우는 <잡아야 산다>와 <월하>로 인연을 맺었다. 흉악한 탈옥수란 무거움과 블랙 코미디의 가벼움을 모두 줄 수 있는 배우가 필요했는데 정확히 들어맞았다. <월하>에 나온 히로타 마사미 배우는 일본인 스파이 배역이니 당연히 요청했다."

- DMZ라는 배경 때문인지 현실을 환기하는 측면이 있다.
: "<데스트랩>을 정치 스릴러로 제작한 건 아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현실을 은유하는 건 맞다. 해외영화제를 가면 <데스트랩>을 본 외국의 평자나 관객이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이 DMZ의 상징성이나 영화 속에 남북 관계나 일본의 정세를 넣었는지 아닌지였다. <데스트랩>을 정치적인 해석으로 읽어도 상관은 없다. 상황 자체를 즐기며 장르적인 재미를 찾아도 괜찮다. 영화는 선보인 다음부턴 오롯이 관객의 몫이니까."

- <데스트랩>은 해외에서 반응이 좋다.
오 : "애리조나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액션상'을 수상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액션 온 필름 영화제에선 '올해의 액션영화상' 후보에 올랐다. 미시간에서 열리는 드릴러! 칠러! 영화제는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해주었다. 애리조나 국제영화제의 클리우디아 제스퍼슨 수석프로그래머가 <데스트랩>을 '여성의 용기에 대한 탁월한 장르 영화'라고 평가한 게 기억에 남는다."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데스트랩>을 먼저 본 국내 관객 중 일부는 핸드헬드 촬영 등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오 : "데뷔작 <소녀괴담> 때부터 느낀 게 하나 있다. 반응이 없는 현실이 제일 슬프단 거다. 관심을 둔다는 사실만으로 감사를 드린다. 감독도 사람인지라 혹독한 평가를 접하면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그러나 창작자가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라고 본다.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오해를 하면 아쉬움이 크다. 의도한 바에 대해선 어떤 평가도 달게 받겠다. <데스트랩>의 촬영이나 설정에 대해 후회는 없다."

- 박지영 대표가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한 기사를 보았다.
박 : "<데스트랩>으로 상을 받은 건 아니다. 장편 영화를 제작하다가 중간에 짬이 나면 오인천 감독과 함께 스마트폰으로 단편 영화를 만들어 유튜브에 올린다. 그중에서 폴라로이드 사진을 자신을 찍었는데 뒷모습이 찍히는 기이한 상황을 다룬 단편 <폴라로이드>로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서 개최한 제4회 스마트폰 플릭 페스트 영화제에서 '우먼 인 필름 앤 텔레비전 상(WIFT)'을 받았다. 한국 영화계에 여성 제작자가 별로 없다는 점, 더군다나 장르 영화를 만드는 여성은 더욱 희귀한 현실을 보고 격려를 해준 모양이다."

- 앞으로 준비 중인 차기작들을 소개한다면?
박 : "<데스트랩>이 12월 6일에 개봉한다. 2019년 1월엔 DMZ라는 공간을 다룬 또 다른 작품인 <폴리스 스토리>를 공개할 예정이다. DMZ 3부작 중 마지막에 해당하는 <비무장 살인지대>는 현재 편집을 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동경국제영화제 필름 마켓에서 일부 영상을 선보였는데 해외 바이어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받았다. 

일본의 유명 소설가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들을 패러디한 1인칭 시점의 미스터리 영화 <고쿠라 미스테리>는 후반 작업 중에 있다. 여성판 <나이트 크롤러>를 표방하는, 페이크 다큐와 극영화의 형식을 뒤섞은 <밤의 마녀>는 후반 작업 마무리에 접어들었다. 미스터리 스릴러 웹드라마인 <13일의 금요일>은 11월에 촬영이 끝났고 내년 상반기 중에 선보일 계획이다. <야경: 죽음의 택시>와 <13일의 금요일>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야행살인택시괴담>도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 오인천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속도가 실로 놀랍다. 창작의 비결은 무엇인가?
오 : "언제나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다. 그걸 현실적인 여건 속에서 어떻게 소화하는지가 내게 주어진 숙제다. 거대 자본에 기대는 충무로 시스템이 아닌, 영화맞춤제작소라는 독립된 형태로 저예산 장르 영화를 만들며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덕분에 조금은 제작 노하우를 얻었다고 자평한다. 그런 것을 발판으로 삼아 비난을 받고 재미가 없다는 평가를 받아도 용기를 내어 계속 전진하는 현재진행형 감독이 되려고 한다. 나는 한국의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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