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후의 품격>.

<황후의 품격>. ⓒ SBS

  
장나라 주연의 SBS 수목 드라마 <황후의 품격>은 대한제국이 1910년에 망하지 않고 현재까지 존속한다는 가정을 전제로 하는 드라마다. 1897년 대한제국 선포 이래로 121년째 대한제국이 유지되고 있다는 상상 하에 스토리를 전개한다.
 
'그때 이랬다면, 저랬다면?'라고 가정해봐도, 흘러간 역사를 바꿀 길은 없다. 하지만, 역사의 가정을 해보다 보면, 그때 그 순간에 역사변화를 추동한 원동력들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역사를 바라보는 안목이 늘게 된다.

'대한제국이 안 망했다면?'라는 가정을 세우다 보면, '어떤 일이 벌어졌어야 대한제국이 안 망할 수 있을까?'를 탐구하게 돼서,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에 대한 통찰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황후의 품격>은 그런 사고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4회분이 방영된 현재까지, 이 드라마에서는 대한제국이 어떤 조건에서 안 망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아무 단서도 제공하지 않았다. 그냥, 대한제국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는 가정을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대한제국이 망하지 않을 수 있었을 가능성을 추적하다 보면, 이것이 20세기 세계사 특히 공산주의 혁명의 성패에도 영향을 줄 만한 일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래서 '만약에 대한제국이 안 망했다면?'라는 가정은 흥미로운 추리 작업이 될 것이다.

대한제국은 전쟁으로 망한 나라가 아니다. 외교적 역학구도가 불리하게 형성된 결과로 망한 나라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제국이 안 망했다면 그 뒤 어떻게 됐을까?'를 상상하려면, 대한제국을 멸망시킨 외교적 역학구도를 뒤집어 생각하는 일로부터 추리가 시작돼야 한다. 그런 역학구도가 생기지 않았다면 그 뒤 어떻게 됐을까를 추리하는 방식이다.
 
1880년대에 고종 임금은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외교정책을 뒤엎고 문호개방 정책을 본격화했다. 세계열강을 조선에 끌어들인 뒤 이들을 상호 경쟁시켜 힘을 빼는 방법으로 조선의 독립을 유지하겠다는 게 고종의 의도였다. 처음부터 비현실적인 전략이기는 했지만, 고종은 이 전략에 따라 청나라와의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한편, 미국·영국·독일·러시아 등과 순차적으로 국교를 체결했다.
 
이런 가운데, 조선 무대에서 두각을 보인 세 나라는 일본·청나라·러시아다. 이들은 고종의 의도를 벗어나, 조선을 자기 수중에 둘 목적으로 치열한 경쟁을 전개했다. 이 경쟁은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으로 결판났다. 두 전쟁에서 일본이 모두 승리함에 따라, 청나라와 러시아는 조선 무대에서 자연스레 탈락했다. 대한제국은 일본이 승승장구하는 이런 분위기에 눌려 1905년 외교권을 빼앗기고 1910년 국권마저 빼앗겼다.
 
대한제국이 멸망한 국제적 요인은 일본의 청일전쟁·러일전쟁 연승이었다. 일본은 청일전쟁 승리로 막대한 배상금을 받아낸 뒤, 여세를 몰아 러일전쟁을 일으켰다. 그리고 러일전쟁 승리의 여세를 몰아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했다(을사늑약·을사보호조약). 그렇기 때문에 두 전쟁이 발발하지 않았다면, 일본이 대한제국을 삼키는 일도 발생하기 힘들었다.
 
전쟁이 발발했더라도 러시아나 청나라가 최종 승자가 됐다면, 이 경우에도 대한제국이 멸망할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당시 러시아는 극동아시아에 식민지를 둘 여력이 없었다. 또 러시아와 더불어 세계 최강을 형성하는 영국이 러시아의 조선 진출을 극도로 견제했다. 러시아가 동아시아와 태평양 쪽으로 남진하는 것을 경계했던 것이다.
 
1885년에 영국군이 거문도를 점령한 것은, 전년도인 1884년에 조선과 러시아가 국교를 체결한 데 대한 견제 조치였다.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 만한 여력도 없었을 뿐 아니라 영국이 전력적으로 견제했기 때문에, 러시아가 러일전쟁에 승리했다 해도 그 여세를 몰아 조선을 삼키기는 쉽지 않았다.
 
청나라가 청일전쟁에서 승리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청나라가 승리했다면, 조선 무대에서 일본이 당연히 탈락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청나라가 조선 무대에서 최종 승자로 남는 것은 아니었다. 러시아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당시 청나라 국력으로는 세계 최강 러시아를 이길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청나라가 청일전쟁의 승자가 됐다면, 청나라와 러시아가 조선 무대에서 경쟁하는 양상이 오랫동안 유지됐을 것이다. 청러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은 낮았기 때문에, 그런 균형 상태가 꽤 길게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청일전쟁·러일전쟁이 아예 발발하지 않았거나 일본이 어느 전쟁에서도 승리하지 못했다면, 대한제국의 멸망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렇기 때문에, 대한제국이 2018년까지 유지된다는 <황후의 품격>의 가정은, 두 전쟁이 발발하지 않았거나 일본이 모두 승리하지 못했을 것을 전제로 한다.
 
청나라와 러시아는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한 뒤 쇠퇴했다. 청나라는 1912년 망했고, 러시아는 1917년 망했다. 일본과의 전쟁에 패하지 않았다면, 두 나라는 당연히 좀더 오래 존속됐을 것이다.
 
그렇게 됐다면, 레닌이 1917년에 혁명을 일으켜 러시아제국을 무너트리고 소비에트연방을 세우는 일에도 당연히 차질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레닌이란 인물이 역사에 등장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한민족과 중국 한족의 공산당 활동에도 지장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김일성과 모택동(마오쩌둥)의 인생에도 큰 변화가 생겼을 수 있다. 영웅이 시대를 만들기보다는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 측면이 훨씬 강하므로, 20세기를 풍미했던 공산권 영웅들의 면면에도 변화가 생기지 않을 수 없게 됐을 것이다.
 
청나라는 청일전쟁 패배에 이어 1910년 대한제국 멸망으로 또 한번 타격을 입었다. 전통적 동맹국이 무너지면서 청나라의 안보가 더 위태해졌고, 이에 따라 청나라는 1912년에 한족들의 도전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렇기 때문에 청일전쟁과 대한제국 멸망이 없었다면, 청나라의 수명은 당연히 연장될 수밖에 없었다.
 
청나라가 오래 살아남아 <황후의 품격> 속의 대한제국처럼 2018년까지도 유지되고 있다면, 중국을 여행하는 한국인들은 지금의 중국어뿐 아니라 만주어도 어느 정도는 익혀야 할 것이다. 청나라 때 일반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 언어는 중국어지만, 청나라의 제1언어는 지배층의 언어인 만주어였다. 공문서도 만주어로 기록된 다음에 중국어로 번역되는 일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을 상대하는 외교관이나 기업인들은 중국어와 함께 만주어도 함께 익혀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고 있을 것이다.
 
또 청나라가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다면, 중국 정치상황이 꽤 불안정해졌을 것이다. 1860년대 이후 중국에서는 피지배층이자 다수민족인 한족의 입지가 높아졌다. 이들이 정치나 행정은 물론이고 산업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이런 역량이 모아져 1912년에 한족이 신해혁명을 일으켜 만주족 황실을 무너트렸던 것이다.
 
만약 청나라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면, 청나라는 한족 반정부 세력의 도전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을 것이다. 티베트나 신장위구르 소수민족 때문에 겪는 곤란보다 훨씬 더 큰 곤란에 노출됐을 것이다. 티베트나 신장위구르처럼 서쪽에 있는 소수민족도 아니고 중국 전역에 가장 많이 분포한 한족이 반정부 활동을 벌인다면, 중국을 여행하는 일이 지금의 중동을 여행하는 일만큼이나 위험한 일이 됐을지도 모른다. 
 
 <황후의 품격> 속의 대한제국 황제 이혁(신성록 분).

<황후의 품격> 속의 대한제국 황제 이혁(신성록 분). ⓒ SBS

  
대한제국도 1910년에 망하지 않고 청나라도 1912년에 망하지 않았다고 가정할 경우, 이로부터 도출될 수 있는 흥미로운 결론은 이 외에도 한둘이 아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일본에 관한 것이다.
 
조선과 청나라가 건재했을 경우, 20세기 초반에 있었던 일본의 대륙 침략, 아시아 침략은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 됐을 것이다. 일본은 대마도를 편입한 데 이어 오키나와·타이완을 흡수하고 이 여세를 몰아 청나라와 러시아를 격파한 뒤 조선을 강점했다. 그런 다음, 중국과 아시아 각지로 침략 범위를 넓혔다. 조선과 청나라가 국권을 지켰다면, 일본이 중국 및 아시아 각지로 팽창하는 일도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됐다면 일본의 전쟁 범죄도 당연히 일어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위안부 강제동원이나 강제징용·강제징집 같은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수 있다. 또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기 힘들었을 것이므로, 일본이 원자폭탄 두 방을 맞고 맥아더에게 항복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일본은 그저 그런 보통 국가로 남아 있게 됐을 것이다.

일본이 그런 나라가 돼 있다면, 군사 대국화를 꿈꾸는 아베 신조 같은 극우파는 정치권에서 역할을 찾기 어려워, 세상 한쪽 구석에서 불평불만을 늘어놓다가 인생을 마쳤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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