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일 배우

신성일 배우 ⓒ 부산영화제

 
'배우의 신화, 영원한 스타'

지난 4일 새벽 별세한 고 신성일(1937-2018)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이보다 더 간결하고 핵심적인 명문이 있을까. 지난해 열린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한국영화회고전 주인공으로 선정된 신성일을 위해 발간된 기념 책자의 제목이기도 한 이 글귀처럼 신성일은 그를 논하지 않고는 한국영화사 전체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휘했던 스타 중의 스타였다. 

1960년, 당대 최고 감독 중 한 명인 고 신상옥에게 발탁되어 영화계에 발을 디딘 신성일은 고 유현목 감독의 <아낌없이 주련다>(1962)로 주목받은 이후, 1964년 명실상부 신성일의 대표작 <맨발의 청춘>(고 김기덕, 1964)로 대한민국 최고 스타 배우 반열에 올라선다. 이후 1967년 한 해에만 그가 주연을 맡은 51편의 영화가 극장에 걸릴 정도로 기네스북에 올라갈 만한 진기록을 세웠던 신성일은 지금까지 513편(혹은 541편)의 영화에 출연한 다작의 배우이기도 하다. 

신성일이 왕성하게 활동할 당시에는 지금처럼 동시녹음 시스템이 아닌 후시녹음 영화제작시스템이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신성일을 찾는 이들이 많았고, 그 없이는 한국영화가 돌아가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신성일의 엄청난 스타성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지면상 500편이 넘는 신성일의 모든 출연작을 일일이 거론할 수는 없겠지만, 이 중에서 배우 신성일의 인생작으로 거론되는 대표작을 몇 편을 시대별로 묶어 그 화려하고도 다채로운 연기 인생을 돌아보고자 한다. 

<로맨스 빠빠>(1960), <아낌없이 주련다>(1962), <맨발의 청춘>(1964) - 1960년대 최고의 청춘 스타 

 
 고 신성일의 대표작 <맨발의 청춘>(1964) 한 장면

고 신성일의 대표작 <맨발의 청춘>(1964) 한 장면 ⓒ 한국영상자료원

  
 고 신성일의 대표작 <로맨스 빠빠>(1960) 한 장면

고 신성일의 대표작 <로맨스 빠빠>(1960) 한 장면 ⓒ 한국영상자료원

 
1957년 신상옥 감독이 운영하는 영화 프로덕션 신필름 전속 배우로 발탁된 신성일은 신 감독이 제작 및 연출을 겸한 <로맨스 빠빠>에서 고 김승호의 막내아들로 출연, 당대 톱 스타 배우였던 김승호, 김진규, 최은희, 주증녀, 엄앵란, 도금봉, 남궁원에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과시했다. 

데뷔와 동시에 한국 최고 감독이 만든 영화에 최고의 배우들과 함께 했으니, 신인으로서는 엄청난 특혜를 누린 것. 하지만 신성일이 배우로서 본격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유현목 감독이 연출한 <아낌없이 주련다> 부터였다. 동명의 라디오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에서 홀로 사는 연상의 술집 주인(이민자 분)을 사랑하는 청년을 연기한 신성일은 모성애를 자극하는 연하남의 이미지로 스타덤에 오른다.
 
그러나 신성일 하면 지고지순한 반항아 캐릭턱 돋보인 <맨발의 청춘>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영화에 함께 출연한 배우 엄앵란과 실제 부부의 연을 맺기까지 했는데 이 작품 이후 신성일은 '한국의 제임스 딘'으로 불릴 정도였다. 그가 이 작품으로 구축한 거칠고 고독한 청춘의 표상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작용했다. <맨발의 청춘>을 기점으로 수많은 청춘 영화에 모습을 드러낸 신성일은 젊고 잘생기고 매력적인 미청년을 갈망하던 당시 한국영화 산업에 최적화된 스타였다. 

하지만 신성일은 스타가 아닌 배우가 되고 싶어 했고, 그를 위해 기획된 전형적인 청춘물을 벗어나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초우>(1966), <안개>(1967), <장군의 수염>(1968), <휴일>(1968) - 근대화에 지친 모더니즘의 얼굴 

 
 고 신성일의 대표작 <안개>(1967)의 한 장면

고 신성일의 대표작 <안개>(1967)의 한 장면 ⓒ 한국영상자료원

  
독일 표현주의 영화를 오마주한 유현목 감독의 실험영화 <춘몽>(1965)에 출연한 신성일의 도전은 그야말로 센세이션이었다. <맨발의 청춘>이 엄청난 대성공을 거둔 직후라 <맨발의 청춘>과 비슷한 청춘 영화에 출연해도 돈을 쓸어 담을 수 있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신성일은 불친절한 서사와 난해한 미쟝센과 표현방식이 두드러진 영화에 기꺼이 주연을 맡았고, 이는 신성일 연기 인생에 있어 전환점을 이루게 된다. 

<춘몽>뿐만 아니라 신성일은 동시대 서구 모더니즘 영화에 영향을 받아 제작된 한국식 모더니즘 영화에 아낌없는 관심과 지지를 보낸 배우이기도 하다. 필름이 유실되어 당시 영화를 보았던 이들의 증언과 현재 남아 있는 시나리오, 스틸 사진, 리메이크 영화들로 짐작할 수밖에 없지만, 고 이만희 혹은 신성일의 최고의 영화로 평가받는 영화 <만추>(1966)다. 그리고 유럽 모더니즘 영화의 어법을 한국적으로 실험하는 데 성공한 영화로 평가받는 김수용 감독의 <안개>(1967), 근대화 주체로서 편입에 실패한 남성의 무기력한 모습을 통해 당시 박정희 정권의 억압적인 시대상을 은유적으로 보여준 <장군의 수염>, <휴일> 등. 

위 작품에서 명실공히 신성일은 독재정권의 암울하고 권태로운 자화상을 특유의 고독하고 우울한 표정으로 승화시킨 한국 모더니즘의 얼굴이었다. 이외에도 신분 상승 욕구에 사로잡혀 여자(문희)를 바람맞히는 전형적인 나쁜 남자로 열연한 정진우 감독의 <초우>(1966) 또한 이 시기 신성일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별들의 고향>(1974), <겨울여자>(1977) - 무기력하고 미숙한 나쁜 남자 

 
 고 신성일의 대표작 <별들의 고향>(1974) 한 장면

고 신성일의 대표작 <별들의 고향>(1974) 한 장면 ⓒ 한국영상자료원

 
박정희 유신독재체제가 본격화된 이후, 표현의 자유가 전혀 보장되지 않았던 1970년대는 한국 영화계나 배우 신성일 모두 암흑기로 거론된다. 물론 1970년대에도 독보적인 스타였던 신성일은 백여 편이 넘는 영화의 주연을 맡으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지만,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1960년대 이룩한 화려한 필모그래피에 미치지 못한다.
 
어느덧 중년으로 접어든 1970년대 신성일의 대표작은 <별들의 고향>과 <겨울 여자>다. 신성일이 1960년대 후반 대표작에서 보여 줬던 우울하고 무기력한 남성상에서 한층 더 퇴보된 남성 캐릭터가 즐비한 <별들의 고향>, <겨울 여자>에서 그는 어른으로서 성장이 멈춘 것 같은 미숙한 존재였다. <별들의 고향>에서 남자들에게 연이어 성적인 착취를 당하는 경아(안인숙 편)를 유일하게 이해하는 것 같지만, 그 또한 그녀를 괴롭힌 다른 남자들과 다를 바 없었다.

극 중 신성일의 악역 연기 변신을 두고 김시무 영화평론가는 "잘생기고 강단이 있는 기존 정형화된 남성 캐릭터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안티히어로적인 면모를 보여줬다"고 평한 바 있다. 

그리고 <길소뜸>(1985) 
 
 고 신성일의 대표작 <길소뜸>(1985) 한 장면

고 신성일의 대표작 <길소뜸>(1985) 한 장면 ⓒ 한국영상자료원

 
50대 신성일의 대표작이다. 한국 전쟁으로 헤어진 두 남녀(신성일, 김지미)의 애틋한 재회와 어긋난 사랑을 다룬 임권택 감독의 <길소뜸>에서 신성일은 극 중 김지미와 이별 후 새로운 가정을 이루었음에도 김지미를 잊지 못해 방황하는 중년 남성을 연기하며,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남성상의 계보를 이어간다. 

그동안 유명 성우들이 더빙을 도맡은 후시 녹음 제작 시스템으로 인해 관객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줄 기회가 거의 없었던 신성일이 온전히 자신의 목소리로 완숙한 연기를 보여준 걸작으로도 꼽힌다. 

 
고 강신성일, 영화계 큰 별 별세 폐암 투병 중이던 강신성일 한국영화배우협회 명예 이사장이 4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81세. 고인의 장례식은 영화인장으로 엄수된다. 영결식은 6일 오전 10시에 진행하며 서울추모공원으로 고인을 옮겨 화장한다. 장지는 경북 영천의 선영이다.  고 강신성일 배우는 1960년 신상옥 감독의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뒤 <아낌없이 주련다>, <맨발의 청춘>, <별들의 고향>, <초우>, <하숙생>, <만추>, <겨울여자> 등을 통해 한국영화를 상징하는 배우였으며 1964년 11월 당대 최고 인기배우였던 엄앵란과 결혼하며 스타 부부의 탄생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 고 강신성일, 영화계 큰 별 별세 폐암 투병 중이던 강신성일 한국영화배우협회 명예 이사장이 4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81세. 고인의 장례식은 영화인장으로 엄수된다. 영결식은 6일 오전 10시에 진행하며 서울추모공원으로 고인을 옮겨 화장한다. 장지는 경북 영천의 선영이다. 고 강신성일 배우는 1960년 신상옥 감독의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뒤 <아낌없이 주련다>, <맨발의 청춘>, <별들의 고향>, <초우>, <하숙생>, <만추>, <겨울여자> 등을 통해 한국영화를 상징하는 배우였으며 1964년 11월 당대 최고 인기배우였던 엄앵란과 결혼하며 스타 부부의 탄생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 사진공동취재단

 
신성일 영화 맨발의 청춘 별들의 고향 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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