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골키퍼 최민수가 장갑을 벗고 자신이 지키던 골문 기둥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알 호이시(사우디 아라비아) 주심의 종료 휘슬이 울린 직후이기 때문에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았다. 이에 동료들은 물론 상대 팀 후반전 교체 선수 크리스티안 테오하루스까지 다가와 위로해주었다. 결과를 떠나 어린 선수들의 따뜻한 마음이 잔잔하게 퍼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위로가 최민수의 실수를 지워버릴 수는 없었다. 이른바 '다 잡은 승리'를 종료 직전에 자기 실수로 놓쳐버렸기 때문이다. 축구장에서 시시각각으로 벌어지는 상황에 정확하게 대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만 나이로 19세 이하 대회에 뛰고 있는 비교적 어린 선수이기 때문에 충분히 실수할 수 있지만 이 경기의 최종 승점이 미치는 영향력을 감안하면 그 실수 순간이 쉽게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부분은 그 실수 이전에 더 완벽한 승리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있었는데 하나도 살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정정용 감독이 이끌고 있는 19세 이하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이 우리 시각으로 19일 오후 9시 인도네시아 브카시에 있는 패트리어트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8 AFC(아시아축구연맹) U-19 챔피언십 C조 호주와의 첫 경기에서 종료 직전에 뼈아픈 동점골을 내주며 1-1로 비겼다.

축구장의 교훈들
 
 2018년 10월 19일, 정정용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U-19 대표팀이 호주와의 첫 경기에서 1-1로 비기며 아쉬운 무승부를 거뒀다.

2018년 10월 19일, 정정용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U-19 대표팀이 호주와의 첫 경기에서 1-1로 비기며 아쉬운 무승부를 거뒀다. ⓒ 대한축구협회


2019년 폴란드에서 열리는 FIFA(국제축구연맹) 20세 이하 월드컵 진출 티켓(4장)이 걸려있는 예선 성격의 대회다. 어린 축구 선수들에게는 세계적인 수준에 자기 실력을 본격적으로 내밀어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대회라고 할 수 있다. 오래 전부터 이 대회들을 통해 반짝반짝 빛나는 스타 플레이어들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대회 첫 경기를 뛰는 한국은 언제나 우승 경쟁을 펼쳐야 하는 강팀 호주와 만났다. 전반전에 몇 차례 수비 실수가 눈에 띄었지만 호주의 공격이 예상보다 날카롭지 않아 큰 문제는 없었다.

세 명의 수비수 중 주로 왼쪽에서 플레이하는 이재익의 정확한 태클이 12분 만에 스태마텔로포울로스에게 먼저 골을 내줄 수도 있었던 위기를 막아낸 것이 대표적인 장면이었다.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한국 벤치에서는 센터백 김현우를 빼고 이지솔을 들여보내며 호주의 역습에 대비하는 요령을 숙지시켜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 

뒷문이 든든하니 공격도 뜻하는 대로 잘 풀려나갔다. 52번에 멋진 첫 골을 전세진이 터뜨린 것이다. 오른쪽 측면에서 임재혁이 훌륭한 첫 터치 실력을 자랑하며 호주 수비수 무르두쿠타스와 월터 스콧 둘을 한꺼번에 따돌리며 완벽한 크로스를 넘겨주었고 골 냄새를 제대로 맡은 전세진이 상대 수비수 뒤에 숨어있다가 앞으로 빠져나가면서 오른발로 그물을 흔들었다.

이에 호주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총 공세를 펼쳤다. 그들이 라인을 끌어올리니 거기서부터는 한국의 역습 기회가 더 많이 찾아왔다. 가로채기 숫자에서 호주의 8개보다 5개가 많은 13개의 가로채기로 추가골 기회를 분명하게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회를 살리지 못한 축구장의 교훈은 뼈아팠다. 달아날 수 있을 때 달아나서 승점 3점을 확보하지 못하면 승점 2점이 어디론가 휙 날아가버리거나 아예 통째로 3점 모두 상대 팀에게 헌납하는 꼴도 당할 수 있는 것이 축구다.

누구의 실수가 아니라 모두에게 던져진 교훈

멋진 어시스트를 기록한 임재혁 대신 발 빠른 드리블러 엄원상이 61분에 들어갔다. 호주는 엄원상의 실체를 모르고 있다가 연거푸 세 차례나 아찔한 실점 위기를 겪어야 했다. 

엄원상은 바꿔 들어온 지 5분 만에 골대를 강타하는 위협적인 오른발 대각선 슛을 날렸다. 슛 타이밍이 반 박자만 빨랐다면 충분히 골문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골을 성공시킬 수도 있었던 각도였다. 

그런데 이 때까지는 한국의 승점 3점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 뒤에도 엄원상은 69분에 전세진의 멋진 스루 패스를 받아 오른발 슛으로 또 한 번 골을 노렸다. 하지만 호주 골키퍼 제임스 델리아노프가 누구보다 침착하게 각도를 잡고 온몸으로 막아낸 것이다. 

엄원상은 이것도 모자라 74분에도 빠른 드리블 실력을 자랑하며 오른쪽 끝줄 가까이까지 공을 몰고 들어와서 방향을 살짝 바꿔놓고 회심의 왼발 슛을 날렸다. 하지만 이것도 델리아노프 골키퍼에게 막혔다. 

이처럼 한국은 엄원상이 만든 세 차례의 추가골 기회를 하나도 살리지 못했다. 78분에는 전세진의 패스를 받은 미드필더 박태준이 기습적인 오른발 감아차기로 호주 골문 오른쪽 톱 코너를 노렸지만 역시 골키퍼 델리아노프가 뛰어난 탄력을 자랑하며 날아올라 그 공을 쳐냈다.

그리고는 이대로 경기를 끝내는 줄 알았다. 하지만 경기 종료 시점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 그라운드에 쓰러지는 한국 선수들이 속출했다. 이에 주심이 모든 부상 상황을 중단시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우리 선수들이 간과했다. 거기서 믿기 힘든 골키퍼의 결정적인 실수가 이어졌다.

89분에 한국 골키퍼 최민수가 공을 잡고 있다가 왼쪽 옆줄 가까운 방향으로 짧게 찼다. 거기에는 우리 선수가 있었던 것도 아니며 그 공이 분명하게 라인 밖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강도를 조절한 것도 아니었다. 바로 그 공을 받은 선수는 호주의 후반전 교체 선수 래미 나자린이었다. 

아마도 최민수는 비교적 멀리 있던 동료 선수가 다친 것으로 판단하고 공을 밖으로 일부러 내보내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곳은 냉엄한 그라운드 그 자체였다. 굴러온 떡을 받아든 래미 나자린은 달라붙는 한국 수비수 한 명을 보기 좋게 따돌리고 왼발 감아차기를 정확하게 꽂아넣었다. 자기 오른쪽으로 날아올라 팔을 뻗은 최민수 골키퍼는 공의 궤적을 따라잡지 못했다.

후반전 추가 시간 4분도 다 지나가고 종료 휘슬이 울렸다. 바로 그 유효 슛 하나로 승점 1점을 따낸 호주 선수들은 마치 이긴 것처럼 기뻐했고 다 잡은 승리를 코앞에서 놓친 한국 선수들 중 일부는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독일 바이에른 뮌헨에서 세계적인 레벨에 올라설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보고 있는 정우영과 스페인 발렌시아 CF에서 역시 실력을 점점 더 인정받고 있는 이강인이 이 대회에 함께 뛰지 못한다는 것을 핑계로 삼을 수 없다. 

18일 막 올린 이 대회에서 20세 이하 월드컵 본선 무대를 꿈꾸고 있는 팀은 예상보다 많다. A조에서 개최국 인도네시아와 아랍에미리트가 이미 승점 3점씩을 챙겼고 우리와 같은 날 경기 일정이 시작된 B조 일본도 북한을 5-2로 크게 이겼다. D조에는 사우디 아라비아, 중국, 말레이시아가 치열하게 순위 다툼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이 틈바구니에서 최소한 4강 이상의 성적을 거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1차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 첫 경기를 통해 깨달은 교훈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단순한 실수 하나 때문에 승점 2점을 날린 것이 아니라 2-0 점수판 그 이상을 유지하며 승점 3점을 완벽하게 따내지 못한 원인을 찾아야 한다. 그러니 역습을 통한 추가골 확률 높이기 방법을 찾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엄원상의 빠른 드리블만 멀리서 쳐다보며 감탄할 것 아니라 조영욱이나 전세진이 또 다른 공간으로 찾아들어가서 선택지를 하나 더 만들어내는 조직력을 갖추는 일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 선수들은 22일(월) 오후 9시 같은 장소 패트리어트 스타디움에서 요르단과 만나 조 1위 가능성을 검증받게 된다. 요르단은 첫 경기에서 베트남을 2-1로 이기고 먼저 유리한 자리로 뛰어가고 있다.

2018 AFC U-19 챔피언십 C조 결과
(19일 오후 9시, 패트리어트 스타디움-인도네시아 브카시)

★ 한국 1-1 호주 [득점 : 전세진(52분,도움-임재혁) / 래미 나자린(89분)]

◎ 한국 선수들
FW : 전세진, 조영욱(90+1분↔고재현), 임재혁(61분↔엄원상)
MF : 최준, 정호진, 박태준, 김재성
DF : 이재익, 김현우(46분↔이지솔), 황태현
GK : 최민수

◇ 경기 주요 기록 비교
점유율 : 한국 42.7%, 호주 57.3%
유효 슛 : 한국 5개, 호주 1개
슛 : 한국 15개(박스 안 8개), 호주 7개(박스 안 5개)
코너킥 : 한국 4개, 호주 2개
가로채기 : 한국 13개, 호주 8개
오프사이드 : 한국 4개, 호주 0개
패스 : 한국 305개, 호주 416개
롱 패스 : 한국 61개, 호주 53개
패스 성공률 : 한국 69.2%, 호주 76.9%
크로스 : 한국 20개, 호주 17개
크로스 성공률 : 한국 40%, 호주 29.4%
파울 : 한국 24개, 호주 17개
태클 : 한국 24개, 호주 18개
태클 성공률 : 한국 66.7%, 호주 72.2%
경고 : 한국 2장(23분 김재성, 58분 정호진). 호주 1장(30분 콘 오우조우니디스)

◇ C조 현재 순위
1 요르단 3점 1승 2득점 1실점 +1
2 한국 1점 1무 1득점 1실점 0
2 호주 1점 1무 1득점 1실점 0
4 베트남 0점 1패 1득점 2실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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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U-19챔피언십 U-20월드컵 정정용 전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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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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