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이 파죽지세다. '빌보드 200' 차트 1위에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연거푸 올랐다. 이제까지 아시아를 넘어 꿈의 영미 팝 시장에 진출한 아이돌이 없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단발적이었다. 한류의 신기원을 열었다는 이들의 성공에는 특별한 기대감이 뒤따르고 있다.

이는 예상치 못했던 '월드스타'의 탄생, 즉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튜브 1억 뷰를 돌파한 순간을 떠올린다. 이미 현지화를 겨냥한 다국적 멤버의 아이돌 그룹들이 2000년대 중반 이후 봇물 터지듯 등장해왔다. 그런데도 싸이를 잇는 방탄소년단의 이러한 성공은 청와대 축전에서 볼 수 있듯 '영어가 아닌 언어' 한국어로, 아시아를 넘어 '세계무대를 향해 한 단계 도약'했기에 '국위선양'으로 체감된다.
 
 
 
방탄소년단이 첫 번째 ‘빌보드 200’ 차트 1위를 했을 당시 청와대가 보낸 축전

방탄소년단이 첫 번째 ‘빌보드 200’ 차트 1위를 했을 당시 청와대가 보낸 축전ⓒ 출처 문재인 대통령 페이스북

 
초국적 K-엔터테인먼트의 등장

돌이켜보건대,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성장 동력을 잃은 한국 경제를 되살릴 구원투수로 소위 '굴뚝없는 공장'인 문화콘텐츠 산업이 주목을 받았다. 이후 2000년대 급진전하는 한국 대중문화에서 아이돌 그룹을 주력으로 한 K-pop이 토탈매니지먼트 기획·소속사 체제를 바탕으로 본격화했던 것이다.

그리고 드라마로 촉발된 한류 1.0,  K-pop을 주류로 하는 한류 2.0을 넘어서, 한국문화 전반을 한류 3.0으로 진흥하자는 발상이 정책으로 추진됐다. 이제 K-푸드, K-뷰티, K-패션, K-문학, K-스포츠 등 거의 모든 문화산업이 'K'를 부착하고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러 나서고 있다.

그러나 애초 한류는 한국 문화를 드러내는 콘텐츠 전반에 우연찮은 지지와 호감을 드러낸 이웃 나라의 여성들로부터 시작됐다. 이들이 다른 나라 청춘들에게 대가 없는 열광을 보내고, 팬들끼리 적극적으로 네트워크를 맺으면서, 아시아 국경을 넘나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로 인해 제국/식민지 체제에서 각자 따로, 또 같이 형성됐던 근대성들이 비교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적지 않은 이들이 동양의 할리우드로 불리던 홍콩발 '아시아 누아르'에 매혹되거나, 애니매이션 등 일본 대중문화에 관심을 갖기도 했다.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흐름에서 싸이를 둘러싼 세계적인 열풍도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통해 나름의 방식으로 이국의 콘텐츠를 즐기는 새로운 수용자가 대거 등장했던 시기의 현상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싸이는 이내 '국민가수'로서 전 정부의 출범을 알리는 취임식 축하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몇 년 후, 억 단위 세금으로 '말춤'을 형상화한 거대한 조형물이 세워지기도 했다. 물론 지난 국정농단의 한 축이었던 'K재단'들이 지금은 사라졌다고 하지만, 신자유주의 파고에 맞서 초국적 K-엔터테인먼트가 기간산업으로 필요하다는 인식은 여전하다.

청년, 그리고 여성의 관점에서 K-엔터테인먼트 재점검해야 
 
 방탄소년단

방탄소년단ⓒ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이제는 'BTS'가 더 익숙한 '방탄소년단' 얘기로 돌아가면, 그들이 '빌보드 200' 차트 1위에 오를 때마다 불거진 논란들은 초국적이면서 동시에 'K-엔터테인먼트'여야 하는 모순 그 자체를 보여준다. 일곱 소년의 꿈을 응원한다는 청와대의 축전은 평균연령 55.5세의 역대 최고령을 자랑하는 20대 국회가 최저임금법을 통과시킨 날 공개됐다. 청년실업률이 10%에 육박하는 현실에서 국외로 눈을 돌리자는 제안, 국가를 대표하는 젊은 노동력이라는 상상은 청년 해외일자리알선 K-MOVE 사업에서 여전히 구현 중이다.

그러나 아무리 세계무대에서 활약해도 분단된 한반도에서 국민의 의무는 다해야한다. 한류스타의 병역이란, 해외 팬들이 이해해야 할 한국 문화 중 일부로, 전 국민 앞에서 '금메달' 획득을 인증하는 정도가 아니면 면제불가이다. 요컨대 '지역과 언어, 문화와 제도를 뛰어넘어' 꿈을 펼치라던 정언명령은 종종 초국적(transnational) 조건에서 민족국가의 경계와 정체성을 더 강하게 인식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제 아이돌산업은 무한경쟁 시대에 경쟁력을 갖춘 인재로서 소년·소녀들에게 역사의식을 비롯해 인성까지 겸비한 그야말로 신자유주의 참인간형을 강요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시아 연대를 촉발했던 여성 팬 중심의 한류에서, 오늘날 K-엔터테인먼트 사이의 거리가 어디까지 벌어졌는지 점검해야 하지 않을까. 최근 BTS의 한국 '아미ARMY' 팬들이 보이콧을 불사하며 '여혐'과 '우익'을 전략으로 삼는 일본 프로듀서와의 협업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천명했다. 이는 단순한 민족의식의 발로이기보다,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대중화된 코드로 소비되어선 안 된다는 단호한 거부에 가깝다. 그리고 무엇보다 민주주의의 완성으로서 성평등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최근의 페미니즘 리부트 혹은 대중화 국면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방탄소년단이자 BTS, 그들이 이뤄낸 신기원은 '세계 1위를 정복한 한국인'이라는 자찬에만 있지 않다. 오히려 팬들과 직접 소통하는 방식으로 대형 기획사가 하지 못했던 공동의 성취를 해냈다는 의미가 더 크지 않을까. 한류와 K-엔터테인먼트 사이에서 앞으로 많은 것이 계속 달라지겠지만, '총알'로 대표되는 다수의 편견과 사회적 억압을 온몸으로 막아내겠다는 소년들의 초지(初志)는 일관(一貫)되길 기대한다. 바라건대 그들이 박제된 동상으로 기념되는 게 아니라, 국가와 자본을 넘는 청년들의 목소리들과 더불어, 더 널리 그리고 더 오래 노래할 수 있기를.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류진희님은 성균관대 강사 동아시아학과에서 한국문학을 전공했습니다.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소녀들> 등 공저가 있습니다. 이 글은 월간 <참여사회>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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