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7살 이전까지 영화관이라는 곳에 스스로 가본 적이 없었다. 믿기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이렇게 된 까닭은, 우선 평소 영화를 거의 보지 않는 부모님의 영향 탓을 꼽을 수 있다. 나는 어릴 적이나 지금이나 부모님이 집안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시청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그 이유는 여전히 미궁에 빠져있다. 다만 어머니는 본인 스스로 "나는 생진('생전' 또는 '여태'의 사투리) 영화나 드라마 같은 건 안 본다"라고 말씀하신다. 왜 그러시는지 여부는 직접 물어본 일이 없다. 그냥 그게 어머니의 취향이라니 어쩌겠는가.

아무튼 이런 탓에 나는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영화관을 간 기억이 없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나를 영화관에 데리고 간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러니 나로선 영화관은, 물리적으로는 가까운 곳이지만 정서적으로는 거리가 먼 곳일 뿐이었다.

지금 이 글을 쓰며 기억을 더듬어보니 초등학교 5학년, 6학년 무렵에 학교 견학 차원에서 학생문화센터 내 영화관에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인간 복제에 관한 영화였던 것 같은데 영화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하간 이건 학교 차원에서 영화관에 간 것이니 내 스스로 갔던 건 아닌 셈이다. 이런 사정은 성년이 되고 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시절 연애를 해본 일이 없으니 영화관을 갈 만한 상황조차 발생하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다. 다만, 몇 달 전 다큐멘터리 영화 <그날, 바다>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으면서 아쉽게도 개인 기록(?)은 깨졌다.

평소 영화나 드라마와는 담을 쌓고 지내는 대신, 지상파 방송의 각종 다큐멘터리나 여행 관련 프로그램은 즐겨 시청하는 편이다. 이런 개인 취향은 알게 모르게 내 독서 성향까지 규정하는 것 같다. 그래서 시나 소설 같은 문학작품은 거의 읽지 않는 반면, 역사나 사회과학 서적에 좀 더 친숙하다. 그런 탓에 가끔 소설이나 시를 읽을 때면 대체 이 내용이 무슨 의미인지 못 알아먹을 때가 있다. 또 그렇기 때문에 비교적 전달 내용의 의미가 뚜렷한 다큐멘터리를 더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런 내가 정작 군 입대 후 영화관에 가게 되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동원'되었다. 이제 그 사정을 풀어보려 한다.

박근혜 정권의 '영화 정치'에 동원된 나
 
 영화 <연평해전>의 한 장면.

영화 <연평해전>의 한 장면.ⓒ (주)NEW


지금부터 3년 전 나는 의경으로 군 입대를 했다. 논산훈련소에서 4주 간 기초 군사 훈련을 받은 후 그해 7월 나는 모 지역의 한 경찰서에 자대배치를 받았다. 그런데 자대배치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갑자기 부대에서 단체로 영화 관람을 간다고 했다. 공문이 내려왔다. 이에 내가 속한 부대의 경우 대원들을 2개 조로 나누어 이틀에 걸쳐 지정된 영화관을 다녀오도록 했다. 알고 보니 내가 속한 부대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 전체 의경들이 그렇게 동원되고 있었다. 그래서 해당 영화관에는 검정 기동복 차림의 의경들이 삼삼오오씩 모여 득실대고 있었다. 이후 내가 제대할 때까지 이런 식의 영화 관람은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보게 된 영화는 바로 <연평해전>이었다. 지금까지 2차례에 걸쳐 벌어졌던 연평해전 중, 영화는 2002년 월드컵 당시에 일어났던 2차 연평해전을 다룬다. 여기서 한 가지 밝혀둘 점은, 영화를 본 지 3년이 지난 탓에 구체적인 줄거리와 장면은 뚜렷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당시 내가 영화를 몰입해서 본 것도 아니었다. 당시 정권 차원에서 '동원' 되어 보는 영화라는 생각에 스스로 집중해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 <연평해전>의 한 장면

영화 <연평해전>의 한 장면ⓒ (주)NEW


다만 지금도 기억 속에 흐릿하게나마 남아 떠오르는 한 장면은, 영화 후반부의 한 장면이다. 그러니까 전투 과정에서 전사한 장병의 장례식장에 설치된 TV에서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한일월드컵 폐막식 및 한일정상회담 참석차 일본을 방문한다는 뉴스가 흘러나오는 장면이다. 마치 당시 김대중 정권이 연평해전 전사자들을 푸대접한 것처럼 비치도록 한 대목이었다(이와 관련해선, 당시 김대중평화센터에서 직접 보도 자료를 내 반박한 바 있다).

나는 결국 이 장면이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그때도 지금도 갖고 있다. 그로부터 한 달 뒤쯤 외박을 받아 집에 돌아온 나는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마침내 한국에서 영화정치가 시작되었다. 나 같은 의경들까지 동원해 보게 한 '연평해전'이 그 사례다.(2015. 8. 13)"

불과 3년 전, 영화 관람 동원으로 애국심을 고취하던 시대
 
 영화 <연평해전> 포스터.

영화 <연평해전> 포스터.ⓒ NEW


1·2차 연평해전은 분명 우리가 기억해야 할 현대사 속 사건임에 틀림없다.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 또는 이웃 또는 남편이 목숨을 잃는 비극을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아픔을 어떻게 이루 헤아려 말할 수 있을까. 또한 이 사태는 남북 분단과 대립이 언제나 우리네 이웃 누군가의 희생을 불러올 수 있는 위험요인임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이 비극적인 사태를, 진상 및 책임소재 규명, 재발방지, 추모사업의 차원을 벗어나 특정 정파의 정치적 욕망을 위해 활용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아니, 이는 도리어 희생 장병들을 모욕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훗날 밝혀졌다시피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로 문화계 전반을 조종하며 헤게모니를 장악하려 했다. 특히 이들은 "대중이 쉽게 접하고 무의식중에 좌파 메시지에 동조하게 만드는 좋은 수단인 영화"에 주목했고, 그 결과 "건전 문화세력에 대한 전폭적 자금 지원 및 좌파 자금줄 차단"(이명박 정부의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 문건 중에서)을 모색했다. 이를 위한 방법이 이른바 '모태펀드'였다.

<연평해전>은 모태펀드로부터 지원받아 제작된 영화였다. 그들의 관점에서 <연평해전>은 '건전 애국영화'였고, '우파영화'였으며 군 복무 중인 의경들까지 동원시켜 보게 해야 하는 영화였던 것이다. 즉, 영화를 통해 시민들의 의식을 지배하겠다는 발상이 이런 식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노골적인 검열이 사라졌을 뿐, 실상 과거 유신시대와 다름없는 간특한 지배전략이었다.
 
 영화 <연평해전>의 한 장면.

영화 <연평해전>의 한 장면.ⓒ NEW


생각해보면, 애국심을 영화로 고취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터무니없다. 애국심을 고취하는 영화 한 편을 강제로 감상시킨다고 해서, 없던 애국심이 무럭무럭 자라날까.

진정 사회 구성원들의 애국심을 고취하려면, 사회 구성원들이 자부심과 자긍심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도록 법과 제도, 정책을 운용하면 될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자기 사회를 정의롭고 평등하고 공정하다고 느낀다면, 자기 사회를 향한 애정과 애착 역시 저절로 자라날 것이다. 정치 공작과 부정부패, 비리, 억압, 불평등으로 얼룩진 정권과 사회를 누가 아끼고 사랑하고 싶겠는가.

나는 이 땅에서 우리세대가, 정권이 시민들의 의식을 지배하려던 시대의 마지막 세대가 되기를 희망한다. 영화 관람은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라 선택할 대상일 뿐이다.
덧붙이는 글 '극장에서 생긴 일' 공모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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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에 충실하되, 반역적인 글쓰기. 불여세합(不與世合)을 두려워하지 않기. 내 삶 속에 있는 우리 시대 이야기. 독서인으로서 읽고 쓰고 생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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