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인기리에 상영 중인 영화 <너의 결혼식>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람을 보고 이 사람이구나 하는 순간이 3초래." 도미닉 쿡 감독의 영화 <체실 비치에서> 속 커플 역시 첫눈에 스파크가 튄다. 대학 동창들과 만든 콰르텟(4중창)에서 꿈을 키우는 바이올린 연주자 플로렌스(시얼샤 로넌 분)와 로큰롤을 사랑하는 역사학도 에드워드(빌리 하울 분)는 1962년, 한 핵무기 반대 모임에서 처음으로 마주친다. 본능적인 이끌림으로 시작된 이들의 우연은 곧 필연이 된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나누며 사랑을 키우던 두 사람은 이윽고 결혼식을 올린다. 그리고 맞이한 신혼여행의 첫날. 부부는 파경에 이른다.
 
 <체실 비치에서> 포스터

<체실 비치에서> 포스터ⓒ 그린나래미디어(주)


"가장 행복했던 날, 우리는 헤어졌다."

영화의 핵심은 두 사람의 이별이다. 서로 다른 가정환경을 이해하고, 각자의 취향과 관심사를 인정하면서 안정적으로 사랑을 키워온 이들이 한 순간에 등을 돌린 까닭. 관객의 관심은 극 후반에 이르러 밝혀지는 그 이유에 쏠린다. 사실 조짐은 영화의 시작부터 포착된다. 첫 경험을 앞둔 에드워드와 플로렌스 사이에는 단순한 긴장감 이상의 불편함이 존재했다.

이는 정적 속에 식기가 날카롭게 부딪치고, 두 발을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 등으로 표현된다. 체실 비치를 걸을 때는 플로렌스에게 익숙한 클래식에 관한 대화를 나누지만, 호텔 방에 들어와서는 에드워드가 좋아하는 로큰롤, 척 베리를 말하는 것 또한 그렇다. 영화는 둘 사이에 좁히지 못하는 틈이 있음을 계속해서 암시한다.
 
 <체실 비치에서> 스틸컷

<체실 비치에서>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주)


이처럼 영화는 직접적이지 않다. 많은 대사로써 상황을 설명하는 대신, 은유와 상징을 앞세운다. 특히 음악의 사용이 결정적이다. 척 베리의 '베토벤은 제외하고'(Roll Over Beethoven)가 행복한 두 사람 사이에 흘러나오며 곧 있을 시련을 시사하고, 비극적인 결별 후에는 로이 호킨스의 '설렘은 사라졌네'(The Thrill is Gone)가 극장에 울려 퍼진다.

시간이 흐른 뒤 더욱 로큰롤에 탐닉하고 있는 에드워드의 모습은 티 렉스의 '20세기 소년'(20th Century Boy)이 보조하고, 2000년대에 들어 쓸쓸한 노년의 그를 조명할 때는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나 홀로 일어나'(Wake Up Alone)가 흐른다. 영화는 무의미하게 쓰인 곡이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탁월한 선곡 감각을 보인다. 원작자 이언 매큐언과 음악 감독 댄 존스의 솜씨다.

기존 곡과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의 조화도 훌륭하다. 하이든의 현악 사중주를 비롯, 바흐와 베토벤, 슈베르트와 모차르트 등에 이르는 클래식 라인업은 관객을 이야기로 빨아들인다. 적소에 쓰인 음악은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영화에서 매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무엇보다도 극 중 중요한 실마리를 직접 전달하는 라흐마니노프의 '교향적 무곡 1악장'(Symphonic Dances, Op. 45: 1. Non Allegro)이 압도적이다.

두 대의 피아노가 곡을 연주하는 가운데, 페이지 터너를 하던 플로렌스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곧 갈등의 단서와 연결되며 하이라이트를 장식한다. 댄 존스가 작곡하고 바이올리니스트 에스더 유가 연주한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은 극의 유려한 진행을 돕는다. 장황한 설명 없이도 설렘과 떨림, 긴장과 충돌, 파국과 슬픔으로 이어지는 감정의 흐름을 밀도 높게 전달하는 건 음악이다.

더없이 섬세한 작품이다. 영리한 음악 활용, 아름다운 화면 구성, 치밀한 짜임새가 돋보인다. 시얼샤 로넌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다. 뚜렷한 기승전결, 다이내믹한 전개와는 거리가 멀지만, 다양한 음악을 바탕으로 정교하게 짜인 서사가 결코 지루하지 않다. 이별이라는 변곡점을 지나며 차츰 이야기의 속도를 높이더니, 결말에 이르러 응축된 감정을 나직이 터트리는 연출도 효과적이다. 호들갑 떨지 않고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울림을 끌어냈다.
 
 김윤아 1집 <Shadow Of Your Smile>

김윤아 1집 ⓒ 케이앤씨뮤직퍼블리싱컴퍼니


"우리 사이엔 낮은 담이 있어 내가 하는 말이 당신에게 가 닿지 않아요.
내가 말하려 했던 것들을 당신이 들었더라면
당신이 말할 수 없던 것들을 내가 알았더라면

우리 사이엔 낮은 담이 있어 부서진 내 마음도 당신에겐 보이지 않아요.
나의 깊은 상처를 당신이 보았더라면
당신 어깨에 앉은 긴 한숨을 내가 보았더라면

우리 사이엔 낮은 담이 있어 서로의 진실을 안을 수가 없어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마음의 상처
서로 사랑하고 있다 해도 이젠 소용없어요."

- 김윤아, '담'(2001)

사랑으로 극복할 수 없는 벽에 부딪힌 젊은 남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각자의 길을 갔다. 두 사람이 헤어져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의 이야기가 끝나고 자우림의 김윤아가 지난 2001년에 발표한 노래 '담'이 떠올랐다. 노래의 가사처럼, 둘 사이엔 낮은 담이 있어 서로의 진실을 안을 수가 없었다. 서로 말하려 했던 것들을 듣지 못했고, 말할 수 없던 것들을 알지 못했다. 마음의 상처는 이미 돌이킬 수가 없어, 서로 사랑하고 있다 해도 소용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에 그들은 돌아선 것이다. 

사랑의 시작은 지루한 천 마디 말이 아닌 찰나의 불꽃일지 모른다. 그러나 사랑을 이어가는 데 필요한 건 찰나의 불꽃 아닌 진심 어린 말 한 마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정민재 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minjaejun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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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웹진 이즘(IZM ) 필자 | http://brunch.co.kr/@minjaejung | 음악 듣고 글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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