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영화 <주피터스 문> 메인포스터

영화 <주피터스 문> 메인포스터ⓒ 엣나인필름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헝가리 출생의 코르넬 문드럭초는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감독이다. 학대 받다 버려진 유기견 수백 마리가 부다페스트 시내를 내달리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감독의 전작 <화이트 갓>(2014)은 물론, 자신의 이름을 알린 첫 작품 <천국의 나날들>에서도 동유럽 국가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 한 바 있다. 이번 작품 <주피터스 문>은 난민 캠프를 촬영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동안 난민 관련 이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출발점이었다고 한다. 이번에는 단순히 어느 지역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 조금 더 넓은 시각을 필요로 하는 소재이지만, 역시 그의 선택은 이번에도 사회적 문제였다.

당시만 해도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가끔 일어나는 일 정도로만 생각되던 난민 문제는 이 작품을 제작하는 동안 시리아 내전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국가 간 첨예한 대립을 이루게 할 정도로 민감한 문제가 되었고,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어쩌면 자신이 구상하던 작품의 메시지와 유사한 방향으로 흐르는 사회적 현상이 반가울 법도 하지만, 감독은 이 상황에 대해 우려하는 모습도 보인다.

영화 <주피터스 문>에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난민 문제에 대한 시각이 분명히 그려지고 있지만, 단순히 그것만을 표현하고자 하는 작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분명히 난민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전형적으로 난민 문제만을 다룬 영화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며, 조금 더 넓은 시각에서 현재의 우리가 처해있는 다양한 복합적 상황을 흑백 논리에 의해 가르는 것이 아니라 다층적으로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기를 바라는 듯하다.

02.

 영화 <주피터스 문> 스틸컷

영화 <주피터스 문> 스틸컷ⓒ 엣나인필름


영화는 자신의 직업적 신념과 사명감을 잃어버린 채 부패한 의사로 살아가던 스턴(메랍 니니트쩨 역)이 시리아에서 헝가리로 넘어오게 된 난민 소년 아리안(솜버 예거 역)을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리안은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인해 밀입국 과정에서 하늘을 나는 능력을 얻게 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스턴은 그의 처지를 자신의 돈벌이에 활용하고자 한다. 반면, 국경에서부터 밀입국자들을 쫓던 라슬로(기오르기 세르하미 역)는 자신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끝까지 스턴과 아리안을 쫓는다.

이러한 과정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사건들은 스턴이라는 인물의 내적 변화를 이끌어낸다. 처우가 열악한 난민 수용소에서 검은 돈을 받고 불법적으로 난민을 빼주던 그, 개인의 이익만을 우선시하던 그가 타인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하고, 그들을 위하는 일이 곧 자신을 위하는 길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스턴이라는 인물의 그런 입체적 변화와 그 과정에서 촉매제 역할을 하게 되는 아리안의 존재가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 반대의 측면에서도 짚어볼 부분은 있다. 그런 아리안 역시 스턴에 의해 이상향과도 같았던 헝가리의 실제를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국경을 넘을 때까지만 해도 완벽했을 상상 속 이상과는 다른 지독한 현실에 대해.

03.

이 영화의 타이틀이기도 하며, 영화의 처음에서 설명되고 있는 목성의 위성에 대한 설명은 – 목성의 위성은 67개로 알려져 있다. 1610년에 갈릴레이는 가장 큰 위성 4개를 발견했다. 그 중 얼음 층 밑에 바다가 있다고 추정되는 위성은 새로운 생명체의 발상지가 될 수도 있다. 그 위성의 이름은 '유로파'다. – 현재와 미래의 유럽, 더 나아가 다양한 모습으로 분절되어 있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해 볼 수도 있다. 실제 유럽의 어원이 라틴어이자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에우로파의 이름을 따르고 있다는 것도 이 부분에 힘을 싣는다.

다만, 영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감독 본인은 현재 유럽의 모습에 대해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시선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숱한 어려움 끝에 아버지와 이별한 채로 홀로 밀입국한 아리안의 눈에 비친 헝가리의 모습이 결코 이상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5성급 호텔이라는 이유로 먹고 싶은 프렌치 프라이 하나 주문할 수 없고, 어떤 일을 하려고 해도 뒷돈을 주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타락했다. 병원이라는 장소는 어느 향락가의 모습과 조금도 달라 보이지 않고, 난민이라는 이유만으로 확실한 근거도 없이 테러리스트 취급부터 당하는 상황들이 계속해서 벌어진다. 돈이 많고 지위가 높은 이들의 욕망으로 가득한 추악한 모습은 말할 것도 없다.

코르넬 문드럭초 감독은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들은 외부의 존재를 배제해야 자신들이 오랫동안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에서 배웠습니다. 순간적인 안전이 보장될 수는 있어도 그것이 장기적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나아가 외부의 존재를 적대시하고 제거하는 것은 그 사회의 계층 구조를 만드는 것이고, 이는 평등이라는 가치를 잃어버리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현재 난민과 관련해 드러나고 있는 다양한 문제와 별개로, 다수의 유럽 국가들의 취하고 있는 방어적인 태도와 영화 속 이방인을 대하는 이들의 행동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04.

 영화 <주피터스 문> 스틸컷

영화 <주피터스 문> 스틸컷ⓒ 엣나인필름


이 작품이 전반적으로 난민 문제의 포퓰리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나, 처음에 언급한 대로 다양한 지점에서 해석 가능하도록 장치되어 있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스턴과 아리안의 관계를 타락한 성도와 이를 정화하기 위해 나타난 신적 존재의 관계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잠시 헤어져 있던 두 사람이 건물 옥상에서 다시 만나는 장면은 이 부분을 가장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부분인데, 그의 얼굴을 올려다 보는 스턴의 눈에 비친 아리안의 모습은 실제로 신적 존재와 가장 가까운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주요 장면마다 등장하는 아리안의 부양 장면이 이 방향에 대한 해석에 힘을 싣고 있으며, 마지막 장면에서 아리안을 살려 보낸 뒤에 스턴이 보이는 희열에 찬 모습은 마치 신의 환생을 직접 목도한 이의 그것과도 유사하게 느껴진다.

다만, 스턴의 반대편에 위치해 있는 라슬로의 행동을 함께 고려할 때는 신의 존재를 믿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경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는데, 이는 목성 내의 위성 가운데 하나인 '유로파'의 속성과도 연결된다. 유로파가 알려진 것은 얼음 층 밑에 바다가 있다고 추정되기 때문이며, 이 위성 내에 새로운 생명체가 있을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곧 신의 존재를 믿을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경계의 지점을 직접 부딪히며 변화해 나가는 스턴의 모습은 정답은 아닐지언정, 하나의 해답을 내놓기에 이른다. 그리고 어쩌면, 이는 코르넬 문드럭초 감독 스스로의 변화가 투영되어 있는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그 역시 어떤 경험을 계기로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

05.

영화 외적으로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번의 공중 부양 장면과 숨을 죽이게 만드는 카체이싱 장면에도 불구하고 감독이 기본적으로 거의 모든 장면을 CG 없이 카메라로 직접 촬영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대부분의 장면을 핸드헬드에 의지하면서도 원 테이크로 끊지 않고 연결해 촬영한 것은 역시 이 작품의 핵심이 '가공되지 않음'에 있다는 것을 감독 스스로가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신화적인 관점에서 보든, 사회적인 관점에서 보든, 대상이 되는 이들의 삶은 결국 '날 것 그대로' 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작품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 그리고 일관된 표현 방식. 이는 감독의 전작인 <화이트 갓>에서 250여 마리의 강아지를 현장에서 실제로 뛰어다니게 하며 촬영했던 경험과 맞닿아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심지어 자신의 작품 속에서 유기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촬영 기간 내내 동물 처우에 대한 지침을 준수하는 것은 물론, 촬영이 끝난 뒤에 작품에 참여시킨 모든 강아지를 직접 책임지고 입양시킨 바 있었다.

06.

 영화 <주피터스 문> 스틸컷.

영화 <주피터스 문> 스틸컷.ⓒ 엣나인필름


이번 작품이 감독의 처음에 의도했던 부분들을 모두 잘 전달하고 있다거나, 중의적 표현의 시도들을 어떤 충돌도 없이 매끄럽게 잘 살려내고 있다고 말하기는 조금 어려울 것 같다. 아쉬운 부분들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연이은 두 편의 작품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사회적 문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모습은 어떤 기대를 하게 함과 동시에 그가 동유럽 출신의 감독이라는 것 또한 희소성이라는 측면에서 다양성을 추구하게 해 줄 것이라 바라게 만든다. 그의 다음 행보를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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