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방송된 KBS1 <명견만리>의 한 장면. 첫번째 연사로 나선 방송인 김제동.

지난 3일 방송된 KBS1 <명견만리>의 한 장면. 첫번째 연사로 나선 방송인 김제동.ⓒ KBS


지난 2010년 KBS2TV <김승우의 승승장구> 출연 이후 약 8년만의 친정 복귀라고 했다. 시즌3를 맞아 '공존'이란 주제로 이어가는 KBS1 <명견만리>의 첫 번째 연사는 JTBC <김제동의 톡투유2 - 행복한가요 그대>와 MBC FM4U <굿모닝FM 김제동입니다>를 진행 중인 김제동이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촛불집회를 거치며 광장의 '헌법 전도사'로 거듭났던 김제동. 그는 역시나 평소 명문이요, 문장 자체로 아름답다 주창해 온 그 헌법 문장을 인용해 장벽으로 대변되는 소득 불평등과 계층 간 사다리에 대해 논하고 있었다. 마치 광장에서 알기 쉽게, '시민 우선' 정신에 입각해 헌법을 풀이했던 그 모양새 그대로.

이에 앞서 김제동은 "우리 삶에 대한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그게 모이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전문가가 아닌 평범한 시민의 눈높이에서 우리 사회를 바라보고 싶다"는 출연의 변을 밝히기도 했다.

'렉처멘터리'(강연+다큐멘터리)를 표방한 <명견만리>는 지난 3일 시즌3 첫 방송에서 그러한 김제동의 바람과 공존이란 화두를 국내 어느 프로그램보다 쉽고 적절하게 전할 수 있는 프로그램임을 입증하고 있었다. 연사가 던진 화두와 강연을 풍부한 자료와 수치, 그리고 국내외 사례를 담은 화면과 인터뷰로 엮어 내는 렉처멘터리라는 형식 자체가 공영방송 KBS가 지속해 나가야 할 어떤 방향성을 엿보게 한다 랄까.

궁중족발 건물주가 말하는 한국 자본주의

 지난 3일 방송된 KBS1 <명견만리>의 한 장면.

지난 3일 방송된 KBS1 <명견만리>의 한 장면.ⓒ KBS


'128만원 vs 1,015만원'

대한민국의 최상위 20%와 최하위 20%의 소득격차를 나타내는 수치다. 이를 테면 이런 식. OECD 평균에 못 미치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삶의 만족도 수치를 타국과 비교해 보여준다. 그리고는 임대 아파트나 허름한 월세방에서 비참하게 고독사한 빈자들의 떠나간 자리를 카메라에 담는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일해서 돈을 버는 속도보다 돈이 돈을 버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김제동의 설득력 넘치는 목소리에 이어 피케티 지수가 언급된다. "노동이 돈을 버는 속도보다 돈이 돈을 버는 속도가 빠른 사회"를 향한 우려가 이어진다.

앞서 김제동이 윤동주 시인의 '서시'에 빗대 "월급이 통장에 스치운다"는 애드리브로 청중을 웃기는 사이, 제작진은 새벽 동이 트기 전 남구로를 가득 메운 인력 사무소 풍경을, 중학생 아들의 도움으로 편의점을 운영해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가장의 일상을, 아버지가 남긴 빚을 갚기 위해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는 가장의 눈물 어린 삶을 소개한다.

그렇게 '세습 사회'인 대한민국의 민낯은 "초등학생들의 꿈이 건물주라는 것에 어른들이 책임을 느껴야 한다"는 김제동의 한탄과 맞닿아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작용이 극대화된 '서촌 궁중족발 사태'가 왜 일어났는지를 공영방송 <명견만리>에서 짧게나마 되짚고 궁중족발 사장 중 한 명인 윤경자씨의 목소리를 담는 것은 분명 의미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제가 정한 가격이 정당하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고, 족발 가격은 족발집 사장이 정하는 거고 임대 가격은 임대인(건물주)이 정하는 거죠. 그 가격이 부당하다고 생각하거나 능력이 못 미치면 다른 데 가서 장사하시는 거죠. 그게 자본주의가 돌아가는 방식이고."

건물주 갑질로 결국 폭력을 부른 궁중족발 건물주의 인터뷰다. 이런 의식을 가진 '조물주 위의 건물주'가 넘쳐나는 현실이 1등 '세습 사회' 대한민국을 만들고, 계층 간 장벽의 원인을 제공하는 것 아니겠는가.

공존 그리고 장벽

 지난 3일 방송된 KBS1 <명견만리>의 한 장면.

지난 3일 방송된 KBS1 <명견만리>의 한 장면.ⓒ KBS


김제동은 "돈이 돈을 번 것에 대해서는 세금을 부과하고, 노동이 돈을 번 것에 대해서는 조금 더 그 가치를 인정해주자"고 제안한다. 먼 나라 얘기일 수도 있다. 완전한 해결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명견만리>는 소득 격차를 줄이기 위한 그러한 의도와 제도가 병행되지 않는다면, 한국이 페루 리마처럼 부촌과 빈민촌 사이에 실제 장벽을 쌓는 사회로 나아갈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경고에서, 현생의 지옥에서 죽음으로 탈출을 시도하는 이들의 현재만을 담았다면, 젠트리피케이션의 나쁜 예만을 조명했다면 반쪽 자리에 그쳤을 터.

공존이란 주제답게, <명견만리>는 김제동의 언설과 해외 사례를 종합해 어떤 전망을 내놓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런 식. 종합부동산세가 왜 세금폭탄이 아닌지를 체감하게 만드는 김제동의 토크를 넘어 "소득이 이제 생기기 시작한 정말 사회 초년생들도 집을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싱가포르의 공공 주택 정책을 소개한다.

전 토지의 90%가 국유지라는 싱가포르. 국민의 80%가 집값의 10%만 가지고 있어도, 하위 계층의 경우 그 10%마저도 대출 개념으로 빌릴 수 있는(나머지는 25년에 걸쳐 갚을 수 있는) 정부 분양 HDB 아파트야말로 토지 공공성과 공공 주택 개념을 국가의 사활을 걸로 시행했던 싱가포르의 국가 철학을 그대로 보여주는 '좋은 예'일 것이다.

허나 한국은 어떠한가. 그 주택이, 토지가 소득 격차를 점점 넓히는 주범이지 않는가. 부를 증식하는 수단이 된지 오래인 한국의 부동산과 싱가포르의 HDB 주택 사이의 간극이야말로 한국과 싱가포르의 삶의 질을 가르는 척도가 아니겠는가.

노블리스 오블리주

 지난 3일 방송된 KBS1 <명견만리>의 한 장면. 첫번째 연사로 나선 방송인 김제동.

지난 3일 방송된 KBS1 <명견만리>의 한 장면. 첫번째 연사로 나선 방송인 김제동.ⓒ KBS


이어 <명견만리>는 핀란드 헬싱키와 미국으로 날아갔다. 높은 세금이 다양하고 질 높은 복지의 근간이 되는 핀란드의 세금 정책은 소득 수준에 따라 세금을 차등해 걷고 그 세금을 국민 복지로 환원하는 구조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본보기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비록 부자일수록 높은 세금을 내는 핀란드의 어느 백만장자가 교통 딱지 때문에 10만 유로의 벌금을 흔쾌히 냈다는 일화는 한국인들이 화면을 통해 보고도 믿을 수 없는 딴 나라 얘기로 들릴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래와 같이 버는 만큼 세금을 내고, 공정하게 걷고 분배하는 세금 정책의 유용성을 좀 더 배우고 익혀야 한다. <명견만리>가 제시한 아래와 같은 고견이 유의미한 이유다.

"불평등은 사회적 관계에 굉장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많은 연구들을 보면 이런 경우 믿음이 없어지고 불평등이 심해질수록 지위 경쟁이 일어나며 이기적인 행동 방식이 만연하고 이타적인 분위기가 사라집니다." ('이퀄리티 트러스트' 리처드 윌킨슨 이사)

"저는 6천만 달러 정도를 벌고 17%를 세금으로 냅니다. 그런데 제 비서는 저만큼 열심히 일하고 동시에 가정도 꾸리고 있는데 세율은 저보다 2배가 높습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투자가 워렌 버핏)

아직 걱정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방송에서 '미래 참여단'이란 이름의 청중들이 김제동에게 질문한 대로 그러한 정책들이 개개인의 재산을 뺏거나 하는 건 아니지, 종합부동산세나 토지 공개념과 같은 정책들이 환수를 포함하는 것 아닌지 등. 그렇게 걷은 세금이 제대로 쓰일지 하는 우려들은 상위 10%의 부자와 보수 언론이 만들어낸 어떤 공포심이다.

그렇게 우리는 더 많은 해외의 좋고 나쁜 사례를 경험해야 한다. 그것이 방송을 통한, 언론을 통한 간접경험일지라도. 그래야 페루의 실제 장벽을 우리도 세워야 할지, 아니면 보이지 않는 장벽일지라도 부셔야 할지를 국민 개개인이 결정할 수 있다. 싱가포르와 핀란드의 공공 주택과 세금 정책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사례를 소개하는 <명견만리>의 형식이 필요한 까닭도 다르지 않다.

 지난 3일 방송된 KBS1 <명견만리>의 한 장면.

지난 3일 방송된 KBS1 <명견만리>의 한 장면.ⓒ KBS


한편 <명견만리> 시즌3의 첫 방송이 전파를 탔던 8월 첫째 주, 김제동의 KBS 시사프로그램 출연 소식이 논란이 됐다. 시사교양 PD들이 제작을 준비 중인 KBS1 심야 시사프로그램의 진행자로 김제동이 거론 중인 가운데, 기존 KBS1 <뉴스라인> 시간대와 새 프로그램의 편성 시간이 겹치면서 보도국이 반발과 우려를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의 꽃'이라 불리는 편성은 전적으로 방송국의 권한일 것이다. 김제동을 비롯한 보도국 외부인의 시사프로그램 출연에 대한 우려도 최근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공영방송이나 지상파가 공공성과 균형감을 지속하는 한편 급격히 변화하는 시청자들의 입맛에 따른 어떤 파격을 시도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런 점에서, <명견만리>시즌 3 첫 방송에서 보여준 김제동의 능력은 '렉처멘터리'라는 형식과 어우러져 좋은 시너지 효과를 냈다. 시즌3까지 이어져 온 프로그램의 기본 형식에 섭외를 비롯한 제작진의 변화 의지가 긍정적인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고 볼 수 있다. 급격한 플랫폼 경쟁과 변화로 인해 공영방송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지금 시기에 그 존재감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랄까.

김제동의 출연이 검토 중이라는 새로운 KBS1의 시사프로그램 역시 이러한 <명견만리>의 시너지 효과를 그대로 가져오길 바라마지 않는다. 파격보다 점진 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모색하는데 있어 좋은 인물만큼 또 친근하고 손쉬운 시도도 없지 않은가.

한편 <명견만리> 시즌3의 다음 출연자는 '공존의 적, 갑질'이란 화두를 들고 나온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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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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