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다큐 시선> '행복의 온도' 편의 한 장면.

EBS <다큐 시선> '행복의 온도' 편의 한 장면. ⓒ EBS


2018년을 상징할 단어들이 여러 개 있겠지만 그 중에서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소확행' 아닐까?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주목받는 배경에는 더는 성장이나 발전 중심의 논리가 통용되지 않는 대한민국 사회가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대기업 중심의 일자리 정책에 치중했지만 여전히 취업자 중 대기업에 다니는 비율은 3%에 불과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영역 파괴로 양극화만 가속시켰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래서일까? 지난 7월 23일 발표한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단순 노무직에 종사하는 청년 층의 비율이 7.7%(25만3000명)에 달했다. 집계를 시작한 2004년 이후 최고치다.

이른바 '프리터(free+arbeiter)족과 니트(Not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족이 증가 추세임을 반증하는 수치다. 이와 같은 새로운 직업적 선택에 맞물려 등장한 신조어가 '소확행'이다. 최근 EBS <다큐 시선>은 신조어 '소확행'에 걸맞게 삶의 새로운 모색을 시도하는 젊은이들을 만났다.

농촌의 '개미 부인'으로 살아가기... 지금 행복하다

 EBS <다큐 시선> '행복의 온도' 편의 한 장면.

EBS <다큐 시선> '행복의 온도' 편의 한 장면. ⓒ EBS


강원도 화천군 오음리 병풍산이 둘러 쳐진 길을 바쁘게 자전거로 달려가는 여성이 있다. 송임수씨네 막내딸 송주희(30)씨다. 열심히 서둘러도 평생 농사꾼이었던 부모님 앞에서는 '베짱이'가 되고 마는 그는 이제 5년 차 농사꾼이다. 하지만 병풍산을 마주하고 늦을까 조바심을 내며 달려가는 시간도 그녀에게는 행복한 순간이다.

도시에서 그녀도 남들과 다르지 않았다. 끝이 보이지 않던 공무원 시험 도전 10년 차, 자존감은 바닥을 내리쳤다. 예전의 자신감이라고는 찾을 수 없던 자신을 발견하고 그녀는 귀향했다. 그리고 5년 이젠 그녀를 '개미 부인'이라 부르는 베짱이 남편도 있다. 송주희씨가 단조로운 농사 일을 하며 활력을 찾고자 춘천으로 기타를 배우러 갔다가 그곳 학원에서 만난 인디 가수 김윤철(31)씨. 그는 낮에는 아내와 함께 애플 수박을 키우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밤 시간을 이용해 음악을 만드는 자신을 '파머 송 라이터'라 부른다.

평생 아버지와 함께 농사를 지은 어머니는 한여름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한다. 땀을 식혀주는 한 줄기 바람에 "우리 엄마가 나 힘들까봐 보내주는 바람"이라고 시원해 하는 분이다. 이제 어머니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는 두 부부. 하루하루 달라지는 작물로 인해, '노력한 만큼'의 의미를 깨닫는 삶. 두 부부는 여전히 인디 가수로, 그리고 동네 노인들의 한글 강사로, 웃음 강사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들은 '바로 지금 여기서' 행복하다.

지난 2000년 일본의 시오미 나오키씨는 다니던 통신 회사를 그만두고 21세기의 새로운 생활 양식으로 '반농반x 연구소'를 만들고, 책 <반농반x>를 펴냈다. 지역에 내려가 반은 농사를 짓고, 반은 하고 싶은 일은 하는 삶. 그가 주장하는 '반농'은 기본적인 먹거리를 자급자족하겠다는 뜻이다. 소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물론, 지역을 근거로 사람들과 밀접해지기 때문에 자신의 역할이 대도시 경쟁 시스템에 비해 한결 부각되기 쉬웠다.

어릴 적 동네꼬마였던 송주희씨는 이제 마을 회관에서 동네 어르신들을 모아놓고 선생님이 된다. 여전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만드는 김윤철씨는 2018년의 트렌드 '소확행'을 넘어 시오미 나오키가 주장하는 것처럼 21세기의 새로운 대안적 생활 방식을 실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21세기형 생활 방식이 도시로 오면 '텃밭 공동체'의 형태가 된다.

도심의 초보 농부

 EBS <다큐 시선> '행복의 온도' 편의 한 장면.

EBS <다큐 시선> '행복의 온도' 편의 한 장면. ⓒ EBS


고양시 덕양구의 텃밭 공동체. 그곳에서 더운 여름 볕을 마다하지 않고 모여드는 사람들이 있다. 도시 농부 이상린씨(51), 기자 이아름씨(32), 자신이 키운 먹거리로 한 요리를 하겠다는 '팜투 테이블'의 요리사 로이든 킴과 푸른 눈의 그의 아내 에밀리까지. SNS를 통해 의기투합한 이들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이 농장에 모여 고정적인 노동을 하고, 수확물을 함께 나눈다.

그 중 이아름씨는 아직은 서툴다. 그래서 늘 다른 구성원들에게 신세를 지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더는 위축되지 않는다. 이 공동체에서는 서툰 그녀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직장 생활 10년 차, 경쟁 논리로 돌아가는 직장 생활은 하면 할수록 그녀에게 고립감을 주었다. 직장을 그만두던가 아니면 도시에서 살아가기 위해 다른 모색이 필요하던가 선택해야만 하던 그때, 이아름씨는 '텃밭 공동체'를 만났다.

자신과 이웃이 키운 작물을 가져와서 만든 한 끼니의 식사. 그저 가지나 호박이고 갖가지 풀들이지만,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수확물의 맛을 이제 그녀는 음미할 수 있다. 텃밭 공동체 일을 하며 직장을 그만두는 대신 새로운 일도 찾았다. '도심에서 먹거리가 해결된다면 좀 더 여유롭지 않을까'란 생각으로 시작된 공동체의 참여가 이제 그녀에게 먹거리의 해결 이상, 그와 관련된 직업으로의 이직까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더는 '직장에서의 고독'에 시달리던 이아름은 없고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행복하고 여유로운 도시 농부가 있다.

힘들어도 지치지 않으면 그게 행복

 EBS <다큐 시선> '행복의 온도' 편의 한 장면.

EBS <다큐 시선> '행복의 온도' 편의 한 장면. ⓒ EBS


행복 지수 전 세계 57위, 선택 지수 139위인 한국.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뭘까? 한국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 대신, '인생의 한 방'을 위해 자신을 던져왔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떠한가. 사회적 장벽에 봉착한 젊은이들은 이제 '확실한 한 방' 대신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라는 '확실한 처방'을 스스로 찾아냈다. 그 중에 36세의 여행 드로잉 작가 김현길씨도 있다.

모두가 바쁘게 걸어가는 도심, 그 가운데 배낭을 메고 여유롭게 걷는 이가 있다. 마을 버스를 타고 서울에서는 이제 몇 남지 않은 옛 도심 북정 마을을 찾은 그는 화첩을 꺼내고 샤프로 밑선을 그리고 수채화로 채색을 하느라 한 나절을 보낸다. 재개발 되지 않은 낡은 도심, 하지만 그의 화첩 속 도심은 푸른 하늘빛과 그 아래 오래된 집들이 '자세히 보아야만 드러나는 작고 하찮은 것들의 위안'이라는 김현길씨의 표현 딱 그대로 스며 나온다.

블로그의 취미로 시작하여, 자신의 이름을 내건 책을 출간하고, 이제 드라마의 삽화 작가가 된 그는 처음부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중학교 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남들처럼 살기를 원하던 부모님의 뜻대로 소프트웨어를 전공했고 전자 회사를 4년이나 다녔다. 하지만 더는 그 삶을 계속할 수 없을 때 그는 용기를 냈다.

사람들이 걷지 않은 제주의 길을 걸으며,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하는 막막함'에 대한 위로를 얻었다. 알려지지 않은 제주 동네 풍경을 자신의 그림으로 담아내며,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아름다운 작은 것들의 가치를 그려가고자 다짐을 했다. 그는 "힘들어서 하면 안 되는 게 아니라 힘들어도 지치지 않을 때 사람은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행복의 온도를 결정하는 건 내 자신"이라고.

사회적 발전과 개인적 성장의 삶이 봉쇄된 사회, 그 속에서 등장한 신조어 '소확행'은 '한방을 위해 살아온' 한국인의 삶의 방식에 대한 반응이자, 대안이며, 문화적 감수성이 뛰어난 젊은 세대의 선택이라 전문가들은 정의내린다. '프리터'와 '니트' 족이 더는 남의 나라 상황이 아닌 현실에서 '소유 가치' 대신 '이용 가치'의 확인, '규모의 이익'에서 '작은 것'으로의 발견이라는 새로운 '행복론'의 등장을 <다큐 시선> '행복의 온도' 편은 증명해 보인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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