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MBC <일밤-신동엽의 신장개업>(이하 <신동엽의 신장개업>)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망해가기 일보 직전의 음식점에 소위 대박 식당 요리 비법 전수와 인테리어 무상 제공을 통해 가게를 새롭게 정비하고, 첫날 매상을 올려주는 콘셉트. 꽤나 인기가 좋아서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 프로그램을 또렷이 기억하는 시청자들이 더러 있다.

<신동엽의 신장개업>을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해 기사회생의 기회를 얻은 음식점들이 지금도 장사를 잘하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쪽박 음식점에 대박 음식점의 비법을 전수받게 도와준 SBS <해결 돈이 보인다>(2003)의 수혜 식당들 역시 근황이 잘 알려지지 않는다.

그로부터 시간이 지난 뒤, SBS에서 새롭게 런칭한 식당 개조프로그램 <백종원의 골목식당>(이하 골목식당>)은 세계적인 셰프 고든 램지가 진두지휘했던 <Kitchen Nightmares(키친 나이트메어)>와 매우 닮아 있다. 고든 램지가 문제가 있는 식당의 제보를 받고 문제점을 진단, 개선해주는 <키친 나이트메어>처럼 <골목식당>은 요식업의 대부로 불리는 백종원이 매출 부진으로 힘들어하는 식당을 찾아가 솔루션을 제시한다. 여기서 <키친 나이트메어>와 차이가 있다면, <골목식당>은 한 곳의 식당 만이 아닌 특정 골목을 선정해 여러 가게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지난 15일 방영한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뚝섬편> 한 장면

지난 15일 방영한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뚝섬편> 한 장면 ⓒ SBS


지난 1월 방영을 시작한 이래 백종원의 조언을 귀담아 듣지않는 몇몇 식당 사장님들 때문에 종종 시청자들의 불만이 있었지만, 지난 6월부터 시작된 <골목식당-뚝섬 편>은 그 어느 때보다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지난 6월 8일 <골목식당-뚝섬 편> 첫 회에 등장한 음식점들은 백종원의 지적대로 '기본'이 안된 식당이었다. 시청자들은 족발 삶는 통에 조리통망이 아닌 양파망을 사용하고, 전날 구워 놓은 고등어를 전자레인지로 데워 손님들에게 내놓는 초보 요식업자들에게 분노했고, 이를 참지 못한 몇몇 시청자들은 청와대 국민청원홈페이지에 음식점에 대한 대대적인 위생점검을 요구하는 청원을 올리기도 했다.

시작부터 삐끄덕 거렸던 <골목식당-뚝섬 편>은 이후 방송에 출연한 사장들의 환골탈태에도 불구, 그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식자재 관리와 조리법에 대해서 백종원의 호된 지적을 받은 뚝섬 골목 사장들은 문제로 지적된 기존 식자재들을 완전히 폐기처분하고 기본을 지키는 조리 방법을 보여주며 백종원을 흐뭇하게 했다.

방송에 등장한 모든 뚝섬 골목 사장들이 백종원의 마음에 쏙 든 것은 아니었다. 기존 메뉴의 문제점을 돌아보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개선해보라는 백종원의 조언을 잘못 해석한 경양식집 사장은 새 메뉴를 개발로 오히려 백종원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고, 밤낮없이 메뉴 개선에 열중한 샐러드집 사장은 노력에도 불구, 혹평을 면치 못했다.

 지난 15일 방영한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뚝섬편> 한 장면

지난 15일 방영한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뚝섬편> 한 장면 ⓒ SBS


백종원은 요식업에 뛰어든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장들에게 많은 걸 기대하지 않는다. 그가 뚝섬 골목 사장들에게 원하는 것은 기본을 지키는 것과 부족한 점을 몸으로 터득하여 배워 익혀나가는 것이다. 지극히 평범하고 뻔한 조언 같지만, 일해나가면서 기본을 지키지 않는 음식점과 사람들이 많기에 기본의 중요성을 수도 없이 강조하는 백종원의 일침은 더욱 뼈저리게 느껴진다.

지금까지 <골목식당>에 출연했던 타 지역 식당들과 다르게 솔루션 가능성 제한을 엄포했던 백종원. 솔루션 대상 가게를 지정할 때 염두에 두었던 것도 음식점으로서 '기본'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었다. 물론, 지난 29일 방영분에서 애초 솔루션에 탈락한 식당들도 한주 더 기회를 줘서 솔루션을 안겨주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이날 방송에서도 백종원이 뚝섬 골목 사장들에게 강조한 것은 기본이었다.

 지난 29일 방영한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뚝섬편> 한 장면

지난 29일 방영한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뚝섬편> 한 장면 ⓒ SBS


그렇다면 음식점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은 무엇일까. 지난 15일 방영분에서 가게 점검차 식당을 연이어 찾은 백종원의 말을 종합하자면, 일정 수준에 도달한 맛, 위생적인 식자재 관리와 조리법, 손님에게 신뢰받는 음식 정도가 되겠다. 하지만 <골목식당-뚝섬 편>에 등장한 음식점들은 첫 방송 이후 체질 개선 이후 뼈와 살을 깎는 수준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음에도, 첫 회에서 보여준 충격적인 장면들 때문에 이들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반응은 여전히 반신반의에 가깝다.

천신만고 끝에 백종원의 솔루션을 받게 된 뚝섬 골목 식당들이 방송 이후에도 오래 생존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해 보인다. 백종원 또한 뚝섬 골목 사장들에게 <골목식당> 출연이 대박으로 이어지지 않음을 강하게 경고한 바 있다. 백종원이 제공하는 솔루션은 성장 가능성이 충분한 식당에게 도움을 주지만, 만능 해법은 되지 못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방송 이후에도 손님들에게 신뢰받는 음식을 만들기 위한 식당 사장들의 꾸준한 노력과 고민이다.

정도를 지키는 꾸준한 노력이 모두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기본을 잃지 않기 위해 정진하는 것. 요식업에 종사하거나 준비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삶의 자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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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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