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드컵 챔피언이자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의 독일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27일(한국시간)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2018 국제축구연맹(FIFA)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F조 최종전에서 대한민국이 독일을 2-0으로 제압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1승 2패에 그친 독일은 스웨덴과 멕시코는 물론 대한민국에도 골득실에서 밀린 F조 최하위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디펜딩 챔피언 독일, 80년 만에 16강 진출 실패

한국이 만든 '카잔의 기적' 27일(현지시간)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 한국과 독일의 경기. 김영권의 슛이 골로 인정되자 손흥민, 김영권, 장현수 등이 환호하고 있다.

▲ 한국이 만든 '카잔의 기적' 27일(현지시간)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 한국과 독일의 경기. 김영권의 슛이 골로 인정되자 손흥민, 김영권, 장현수 등이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러시아월드컵 개막 이래 가장 놀라운 이변이었다. '영원한 우승후보' 독일이 월드컵 조별리그 통과에 실패한 것은 193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처음이다. 독일은 지난 80년간 단 한 번도 16강에 진출하지 못한 적이 없다. 16강은 기본이고 우승컵만 4차례 차지해 브라질(5회)에 이어 역대 최다 우승 2위에 올라 있다. 특히 요아힘 뢰브 현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2006년 이후로는 지난 2014 브라질월드컵 우승을 비롯하여 각종 메이저대회에서 최소한 4강 이상의 성적을 꾸준히 올렸다. "축구는 22명의 선수들이 90분 동안 공을 쫓다가 결국 독일이 승리하는 스포츠"라고 정의했던 게리 리네커의 어록은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다.

하지만 천하의 독일도 '월드컵 우승국 징크스'를 피하지는 못했다. 역대 월드컵 우승국들은 다음 대회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는 경우가 많았다. 월드컵 사상 2회 연속 우승에 성공한 팀은 이탈리아(1934년, 1938년), 브라질(1958년, 1962년) 딱 두 차례 밖에 없는 데다 모두 벌써 반세기전의 추억이다.

최근 20여 년 간 우승팀들의 수난사는 더 두드러진다. 1998년 자국에서 열린 대회에서 우승한 프랑스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조별리그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초라하게 탈락했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린 이탈리아도 4년 뒤 2010 남아공 대회에서 2무 1패에 그치며 일찌감치 짐을 쌌다. 심지어 2010년 우승국 스페인은 2014 브라질 대회에서는 네덜란드-칠레에 연패하며 일찌감치 2경기만에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되는 굴욕을 당했다.

그래도 독일은 다를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예상했다. 월드컵 개막 전까지 설마 독일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할 거라고 예상한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큰 대회에서 더 강해진다는 독일의 전통은 이미 역사가 증명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자 독일도 결코 천하무적은 아니었다.

사실 독일도 불안한 조짐은 어느 정도 있었다. 요아힘 뢰브 감독은 맨체스터 시티의 EPL 우승주역인 르로이 사네를 필두로, 산드로 바그너, 라르스 슈틴틀, 마리오 괴체, 엠레 찬 등 다수의 스타 선수들을 이번 월드컵 명단에서 제외했다. 물론 발탁된 선수들의 면면 역시 화려하기는 했지만 우승을 차지했던 4년 전에 비하면 전력이 크게 약화된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필림 람,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미로슬라프 클로제 등 팀이 어려울 때 리더십을 발휘할 만한 선수들의 빈 자리도 커 보였다.

토마스 뮬러, 토니 크로스, 메수트 외질, 마누엘 노이어, 사미 케디라 등 건재한 우승 멤버들도 다수 있었지만 기량이 예전 같지 않다는 우려도 있었다. 실제로 독일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데는 주축 멤버들 중 다수가 컨디션 난조를 보인 탓이라는 의견도 많았다.

슈틸리케 감독의 발언들, 독일의 탈락이 더 즐거운 이유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카타르 원정을 앞두고 소집된 축구국가대표팀의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지난 29일 오전 경기도 파주 NFC에서 열린 팀훈련 도중 기자회견에서 U-20 대표팀의 이승우와 관련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카타르 원정을 앞두고 소집된 축구국가대표팀의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지난 29일 오전 경기도 파주 NFC에서 열린 팀훈련 도중 기자회견에서 U-20 대표팀의 이승우와 관련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독일은 이번 대회 내내 부실한 체력과 골 결정력의 한계를 드러냈다. 매 경기 상대에게 선제골을 먼저 내주고 끌려가는 경기를 펼치면서도 포지션 불균형과 공격 자원 부족으로 전술 운영에 큰 변화를 주지 못하는 경직성을 드러냈다. 과거에 성공을 거둔 팀, 혹은 한 명의 감독이 너무 오랜 시간 지휘봉을 잡은 팀에서 발생하기 쉬운 매너리즘의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 장면이다.

독일의 탈락이 더욱 극적인 것은 바로 최종전에서 대한민국에게 덜미를 잡혔다는 것이다. FIFA 랭킹 1위의 독일이 57위 한국에게 패해 월드컵에서 탈락할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이 얼마나 될까. 사실상 한국 팬들도 경기 전까지는 승리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한국은 독일을 상대를 승리를 거둔 것은 본프레레 감독 시절 2004년 국내에서 열린 평가전(3-1) 이후 무려 14년 만이다. 또 월드컵 본선에서의 맞대결로 국한하면 역사적인 첫 승리다. 2경기 모두 한국이 독일 최정예 멤버를 진검승부로 꺾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많은 한국 팬들은 독일전 승리를 보며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이름을 떠올릴 지도 모르겠다. 독일 출신의 슈틸리케 감독은 2014년부터 2년 9개월간 대한민국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그러나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에서의 부진으로 경질 당했다. 한국은 이후 신태용 감독 체제로 팀을 추슬러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슈틸리케는 이후 중국 프로리그로 진출해 지도자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슈틸리케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여러 번 한국 축구를 비판하고 나섰다. 슈틸리케는 "한국이 아직도 2002년의 추억에 빠져있다"고 평가하는가 하면, 대한축구협회에겐 "항상 언론과 대중의 의견 사이에서 용감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한국의 월드컵 성적 역시 "3전 전패를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때문에 한국 팬들 사이에서 슈틸리케에 대한 여론은 좋지 않은 편이다.

슈틸리케의 예상은 보기 좋게 뒤집어졌다. 대한민국 대표팀은 1승을 거둔 것도 모자라, 우승팀 독일을 집에 돌려보내며 통쾌한 설욕에 성공했다. 비록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한국 축구 팬들에게 독일전이 승리 그 이상의 위안이 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가 아닐까.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축구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