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스페셜 > '6월 항쟁 특집-어머니와 사진사'의 한 장면

< MBC 스페셜 > '6월 항쟁 특집-어머니와 사진사'의 한 장면ⓒ MBC


1년을 미뤄 방영된 MBC 스페셜 <6월 항쟁 특집-어머니와 사진사>를 보면서 두 사람을 생각했다(당초 이 방송은 지난해 6.10항쟁 30주년을 기념해 제작됐으나, MBC 경영진에 의해 제작이 중단돼 방영되지 못했다-기자 말). 한때는 역사를 먼저 걸어가는 선배였고 동지였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산이었던 두 사람이다.

그 중 한 사람은 1991년, 맞아 죽고 토끼몰이를 당하다 죽고, 스스로의 몸에 시너를 붓고 몸에 불을 붙이면서까지 학생운동을 했던 이들을 향해 '죽음의 굿판을 걷어라'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최근 세월호 유가족의 광화문 천막을 두고 "세월호처럼 죽음의 굿판을 벌이고 있는 자들은 물러가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학 85학번이었던 나는 김지하의 <오적>을 읽으며 분노했고 5·3 인천항쟁의 배후로 지목된 김문수의 석방을 위해 싸웠다. 30여년이 지난 지금, 그 둘과 나의 이 넓디 넓은 간극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이한열·우상호·우현 그리고 경북 안동의 1987

 < MBC 스페셜 > '6월 항쟁 특집-어머니와 사진사'의 한 장면

< MBC 스페셜 > '6월 항쟁 특집-어머니와 사진사'의 한 장면ⓒ MBC


'6월 항쟁 특집-어머니와 사진사'는 미국인 사진작가 킴 뉴턴(Kim Newton)의 사진 한 장에 얽힌 이야기로 시작한다. 1987년 6월 10일 최루탄을 맞아 사경을 헤매다 29일 만에 죽음을 맞이한 이한열 열사의 추모 사진으로 연세대 정문 앞에서 찍혔다.

당시, SY-44 발사기에 장전되어 45도 각도로 날아오는 직격 최루탄은 무서운 무기였다. 통조림 깡통보다 더 큰 짙은 국방색 최루탄이 '뻥'소리를 타고 날아올 때면 먼저 공중을 쳐다보고 뛸 방향을 가늠해야 했다. 언제 뒷머리를 가격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한열 열사는 그렇게 직격 최루탄을 맞고 쓰러졌다. 당시에는 '발사기로 시위대를 조준하여 쏜다'는 증언도 숱하게 나왔다. 그럴 때마다 경찰은 '발사기 구조상 직각 발사는 불가능하다'는 변명을 반복했다.

이한열 열사의 영정을 들었던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우상호는 현재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중진 국회의원이 되었다. 삭발한 머리로 태극기를 들고 경찰을 등지고 섰던 총학생회 사회부장 우현은 배우가 됐다. 그는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다룬 영화 <1987>에서 조금은 어리숙한 치안본부장 강민창 역할을 맡았다.

두 사람 모두 참으로 엄혹한 시절을 살았고, 또 오랜 세월 동안 '386'이라는 언론의 프레임으로 정치 공간에서 '공공의적'으로 손가락질 받아온 세대다. 그리고 독재정권의 대척점에 섰다는 이유로 수많은 친구들을 '영원한 젊은 청년'으로 남겨놓은 아픈 세대이기도 하다. 이한열 열사는 여전히 스물두 살인데, 우상호와 우현은 쉰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됐다.

그때 나 또한 경북 안동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건국대 애학투련 사건, 5·3인천항쟁. 박종철 열사의 죽음과 전두환 정권의 4·13 호헌 선언, 호헌철폐 투쟁과 이한열 열사의 죽음, 6·10 민주화 운동과 기만적인 6·29선언까지... 때로는 나도 이한열, 우상호, 우현과 같은 공간에서 싸웠을 것이다.

그 때는 누구나 그랬다. 1986년, 1987년에는 거의 매일 정권을 규탄하는 가두시위가 이어졌다. 가톨릭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이 경찰을 막아섰고, 농촌과 연계된 안동의 특성상 농민들의 조직력도 높은 편이었다. 학생들은 경찰들과 숨바꼭질을 해가며 유인물을 뿌렸는데, 시민들의 호응도 서울이나 광주에 못지않았다.

87년 6월, 전국이 달아올랐고 안동도 예외는 아니었다

애국학생 이한열 열사 및 민주영령 추도 1987년 7월 9일 안동문화회관에서 안동역으로 행진중인 사진이다.

▲ 애국학생 이한열 열사 및 민주영령 추도1987년 7월 9일 안동문화회관에서 안동역으로 행진중인 사진이다.ⓒ (사)경북기록문화연구원


그러고 보니 다큐에서 미국인 사진작가 킴 뉴턴(Kim Newton)이 찍었다는 사진과 같은 날에 찍은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사진에는 1987년 7월 9일, 이한열 열사의 죽음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모여 안동시내로 가두시위를 나서는 대학생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근조 고 애국학생 이한열열사 추도'라는 현수막을 들고 선 선후배와 동료들이 안동 문화회관 앞에서 대열을 짓고 안동역 앞을 지나 시내로 진입하기 직전에 찍은 사진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들은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진압을 시작했고 골목으로 이리저리 뛴 기억이 새롭다. 6·10 민주화 운동은 1987년 6월 10일 하루의 투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명동성당이나 연세대만의 투쟁도 아니었다. 전국이 달아올랐고 안동도 예외는 아니었다. 안동 목성동성당은 6월 항쟁기간 투쟁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류강하 신부님이나 아동작가 권정생 선생님 같은 어른들은 성당에서 학생들과 어깨를 걸기도 했다.

다큐는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의 일상을 조명한다. 자식이 죽고 5년 만에 남편마저 화병으로 떠나보낸 어머니는 언제나 집회 현장에 있었고 학생들 대열 앞에 서서 싸웠다.

학생들이 두들겨 맞거나 잡혀 갈 때면 '한열이를 죽인 놈들이 또 누굴 죽이려고 하냐'면서 경찰을 막아선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 어머니가 이제는 여든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다. "자식이 죽어 (나는) 다시 태어났다, 전국민족민주 유가족협의회(유가협) 회원들이 살고 있는 '한울삶'이 없었으면 벌써 죽었다"라는 배은심 여사의 인터뷰가 가슴을 무겁게 누른다.

요양병원에 입원중인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 어르신의 모습 또한 가슴 아팠다. 배은심 여사와 빠짐 없이 집회에 나오고 유가협을 지키시던 분이셨기에 세월이 덧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지난 3월 20일 문무일 검찰총장이 병원을 찾아 과거사에 대해 공식 사과를 했다는데 이를 두고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두 분 모두 자식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참으로 억척스럽게 살아 오셨다. 국가는 이 분들에게 절대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민주주의를 딛고 사는 우리 역시 다르지 않다.

다큐에서 미국인 사진작가 킴 뉴턴(Kim Newton)은 30년이 지나 광화문에 다시 선다. 광화문에 일렁이는 촛불의 행렬을 경이롭게 카메라에 담는다. 최루탄이 폭우처럼 퍼붓던 거리를 방독면도 없이 뛰어들었던 젊은 기자는 이제 노숙한 대학교수가 되어 촛불을 든 젊은이에게 자신이 87년 6월 항쟁의 증인이었음을 암시한다. 또 태극기를 흔드는 보수집회에서 마주한 사람에게는 "당신들이 이렇게 평화롭게 시위할 수 있는 것도 87년 6월 항쟁의 덕분"이라는 농담도 잊지 않는다.

군사독재 끝낸 6월 항쟁, 적폐정권 끝낸 촛불

 < MBC 스페셜 > '6월 항쟁 특집-어머니와 사진사'의 한 장면

< MBC 스페셜 > '6월 항쟁 특집-어머니와 사진사'의 한 장면ⓒ MBC


1987년 6월 항쟁은 군사독재를 끝냈다.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고 법을 바꾸어 냈다. 국민은 스스로가 국가의 주인임을 자각하였다. 하지만 87년 6월 항쟁의 정신이 지금까지 오롯이 계승되어 왔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군사 정권이 물러간 자리에 민간 독재 정권이 들어섰고 적폐는 응축되었다.

국민들이 주인으로서 책무를 잊고 사는 동안 군사정권에서 파생된 정치권력은 또 다시 국정을 농단했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터져 나온 것이 87년 6월 항쟁과 비견되는 2017년 촛불 집회다. 1987년 6월 항쟁은 군사독재를 끝냈고 2017년 촛불 집회은 적폐 정권의 종말을 가져 왔다.

올해로 6월 항쟁 31주년이 됐다. 이제 신동엽 시인의 시처럼 87년 6월 항쟁도 알맹이만 남기고 껍데기는 버릴 때가 됐다. 선거 때만 되면 적지 않은 정치인들이 과거 민주화운동 경력들을 훈장처럼 늘어놓는다. 그러나 6월 항쟁의 정신과 반대로 살아가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다. 알맹이가 아니라 버려야 할 껍데기들이다.

바꿔야 할 건 또 있다. 이제는 낡은 옷이 되어버린 헌법이 2017년 촛불 시대에 걸맞은 옷인가 고민해야 한다. 대통령 발의 헌법 개정이 좌초되기는 했지만 87년 헌법은 평화와 공동번영이란 새 옷을 입은 한반도를 담기엔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다.

새 질서가 요구되는 시대다. 2017년 촛불의 일렁임이 전쟁 위기를 막아내고 남북관계를 호전시켜 평화와 공존으로 가는 길을 만드는 나비효과를 가져왔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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