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고전을 읽는 것이 그러하듯이, 좋은 공연은 우리를 시공을 초월해 다른 세계로 여행시켜준다. 일주일의 회사 일을 마친 금요일 저녁, 중년의 가장인 나는 고단한 몸을 이끌고 국립국악원으로 향했다. 판소리에 매력에 빠져 판소리와 창극 공연 중심으로 국악 공연 관람을 시작해온 나는 이제 다양한 장르의 국악 공연을 접하고 있다. 국립국악원은 이런 내게 다양한 국악 체험을 하게 해주는 멋진 곳이다. 게다가 직장에서도 가깝다.

금명, 마음에 울리다 국립국악원 금요공감 공연 '금명, 마음에 울리다'

▲ 금명, 마음에 울리다 국립국악원 금요공감 공연 '금명, 마음에 울리다' ⓒ 국립국악원


지난 6월 8일에 본 공연은 거문고 창작 공연이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팸플릿을 보기 전까지는 거문고 창작 공연인 줄도 몰랐다. 예약할 때 곡의 제목-이득윤의 서계금명(西溪琴銘)만 보고 정가나 가곡쯤으로 생각했다. 거문고 금(琴)자가 도처에 있었는데,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는 말은 이럴 때 쓰나보다.

국악공연을 본격적으로 보기 전까지 나는 국악기에 문외한이었다. 국악공연을 자주 들으면서도 편식이 심했다. 만약 국악기를 하나 배우게 된다면 아쟁을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고, 현악기 중에 거문고는 순위가 맨 뒤였다. 아마 판소리와 창을 자주 듣다 보니 귀에 익은 아쟁이 친숙하고 끌렸던 것 같다. 거문고의 소리는 어딘가 낯설었다.

"옛사람들은 거문고를 모든 음악의 우두머리라는 의미의 백악지장(白樂之長)이라고 불렀다. 음색이 깊고 웅혼해 다른 악기들을 능히 거느릴 만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예로부터 거문고는 남성의 악기요, 식자층의 악기였다." -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음악> 중에서

공연을 보고 와서 전인평 교수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음악'이라는 책의 거문고 부분을 읽었다. 백악지장(白樂之長) 이라는 말과 식자층의 악기라는 말이 눈에 띄었다.

공연 팸플릿에도 '거문고는 선비의 악기이자 좋은 벗으로 알려져 왔다'고 쓰여있다. 또한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악기 중에 선비들은 왜 거문고를 벗으로 삼았을까'라고 질문을 던지고 있다. 수양을 중시하였던 조선의 사대부들, 즉 마음가짐이 음악에 나타난다고 생각한 조선의 사대부는 손으로 직접 뜯는 가야금보다 술대라는 도구로 타는 거문고를 더 사랑했다고 한다. 사대부들이 즐겨 듣던 여민락, 영산회상 등 정악의 대표 악기가 거문고인 것도 마음을 아정하게 하는 악기 중 거문고만 한 것도 없었을 것이다.

금명(琴銘)은 거문고에 직접 새기거나 혹은 새기기 위해 지은 운문형식의 글을 말한다. 우리 조상들이 거문고를 두고 한시를 지은 것이리라. 거문고를 켜면서 거문고와 혼연일체가 된 것이다.

"거문고의 줄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줄의 줄을 나는 거라네. 
음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음의 음을 즐기는 것이요,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으로 듣는 것이라네." (서경덕의 무현금명(無絃琴銘)

"쓸쓸하고 적막한 외로운 오동나무, 맑고 시원한 옛 소리여
한번 연주함에 귀를 깨우고, 두 번 연주함에 마음이 맑아지네.
줄 없으면 너무 담백하고 번거로운 곡조도 너무 지나치네.
내 이 거문고 안고 있지만 누가 내 마음 줄까나?" (이이의 금명(琴銘)

이번에 공연한 강유경은 '금명'이라는 주제로 계속 공연을 해오고 있다. 한길로 정진하고 있는 모습이 존경스럽다. 공연한 6곡은 금명이 있는 글 6 작품에 곡을 붙여 연주했다. 거문고 독주도 있었고, 피리, 가야금, 생황 등과의 협업도 있었다. 또한 금명 부분을 정가 형태로 부르기도 했다. 영상으로는 금명의 한시를 서예로 쓰는 것을 촬영하여 마치 선비들이 금명을 쓰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해 곡의 이해에 도움을 주었다. 옛 그림을 보여주면서도 그래픽아트를 동원해 난초 그림이 하늘거린다거나, 매화 등의 꽃이 피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모든 장르를 종합 예술화하는 것이 전통 국악에도 적용된 것이다.

조선의 사대부가 즐겼던 악기 거문고. 정계에 나갔다가 사화로 물러나서 울적한 마음을 다잡거나, 마음을 단정하게 하기 위해, 또는 후진을 양성하기 위한 마음을 노래하는 데 거문고는 사대부와 함께했다. 그리고 그러한 선비의 마음을 표현한 금명(琴銘). 한갓 필부인 내게도 세상의 번잡함과 고단함을 씻기 위해 거문고 음악의 아정(雅正)함이 필요한 시점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