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 감독이 발표한 러시아 월드컵에 1차 엔트리 28인에 포함된 선수 중에는 의외의 '깜짝 발탁'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이청용(크리스탈 팰리스)과 이승우(베로나)가 대표적인 경우다. 특히 이들의 발탁이 더욱 화제가 된 이유는 다른 동료 선수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올시즌 소속팀에서 부족한 출전시간과 저조한 활약에도 월드컵 승선의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다.

두 선수의 발탁을 둘러싼 논란은 국가대표팀 선발에 있어서 '명분과 실리' 사이의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비록 명문화된 규칙은 아니지만 '소속팀에서 꾸준히 활약하며 최상의 경기력을 유지한 선수를 뽑는다'는 것은 당연한 전제로 여겨진다. 상식적으로 평소 훈련에서 잘했던 선수가 실전에서도 잘 할 가능성이 높은 것과 같은 이치다. 만일 두 선수가 현재 국내파 소속이었고 똑같은 상황에서도 과연 대표팀에 발탁되었을까 했을 때, '유럽파와 이름값'에 대한 특혜 논란의 여지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상황에 따라 예외는 있을 수 있다. 선수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은 단순히 최근의 경기력만이 전부가 아니라 그간의 경험이나 앞으로의 잠재력, 팀에서의 위상, 감독의 전술적 판단 등 여러 가지 이유가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태용 감독이 논란을 감수하며 이들을 발탁한 것도 결국 그만큼 다른 선수들과 차별화된 장점이 있다는 신뢰로 해석된다.

현실적으로 이들이 최종엔트리까지 승선할 가능성이 최근 들어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 현재 대표팀은 공격자원이 부족해진 상황이다. 손흥민(토트넘), 황희찬(잘츠부르크), 김신욱(전북), 이재성(전북) 정도가 월드컵 안정권으로 꼽히는 멤버들이다. 대표팀은 에이스 손흥민에 대한 득점 의존도가 높고 2선 자원이 빈약하다는 문제점이 있다.

권창훈(디종)과 염기훈(수원), 이근호(강원)까지 주축 공격자원들이 대거 부상으로 낙마했다. 예비명단까지 둘러봐도 대체 공격자원은 지동원(다름슈타트)와 석현준(트루아) 정도다. 이제는 이승우와 이청용보다 더 낫다고 할 만한 자원이 그리 많지 않은 상황이다.

이승우와 이청용의 최종 엔트리 입성, 가능성 커졌다

 23일 오후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조별리그 A조 대한민국과 아르헨티나의 경기. 전반전 한국 이승우가 선제골을 넣고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지난 2017년 5월 23일 오후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조별리그 A조 대한민국과 아르헨티나의 경기. 전반전 한국 이승우가 선제골을 넣고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승우의 발탁은 비록 모험적인 성격은 있지만 그래도 해볼 만한 시도라는 평가가 많다. 이승우는 연령대별 대표팀에서 여러 차례 빛나는 재능을 증명했다. 비록 FC바르셀로나에서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하여 기대치에 비하여 성장이 정체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어린 나이고, 어차피 '언젠가는 A대표팀에 뽑힐 선수'라는 인식이 강했다.

이승우는 1년 전 이맘때과 비교하면 그래도 성인무대에 데뷔하여 많은 경험을 쌓았다. 물론 세리에A의 강등권 팀에서조차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활약도 그리 뛰어났다고는 볼수 없다. 그간 대표팀에 한번도 뽑히지 않다가 하필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주축 선수들의 부상으로 첫 발탁의 기회가 돌아왔다는 점에서 운도 매우 좋았다.

A대표팀에서 이승우는 주전이 아니라 '조커'로서 기용될 가능성이 높다. 염기훈과 이근호가 모두 낙마한 상황에서 현재 대표팀은 장신 공격수 김신욱을 제외하면 후반에 낼 수 있을만한 공격 카드가 많지 않다. 2002년의 이천수나 차두리처럼 경기 후반에 투입되어 스피드와 개인능력으로 분위기를 바꾸는 활력소 역할을 기대할 만하다. 이승우의 장기인 개인기술이 월드컵에서 세계적인 강팀을 상대로도 과연 통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어쨌든 유럽 상위리그에서 꾸준히 1군으로 활약한 이승우의 잠재력은 한국축구에서 어떻게든 활용해볼만한 가치는 있다.

우려되는 것은 이청용이다. 신태용 감독은 역시 '경험'이라는 측면을 가장 고려하여 이청용을 발탁한 것으로 보인다. 이청용은 한국 국가대표로서 두 번이나 월드컵 본선무대를 경험한 베테랑이다. 국가대표 주장인 기성용과 동갑내기 절친으로서 대표팀 분위기를 이끌어줄수 있는 리더십도 기대할만한 존재다. 비록 2011년 다리 골절 부상 이후 예전만큼의 번뜩이는 활약은 보여주지 못하게 되었지만 축구센스와 기술적인 면모에서는 한국축구 역대급 미드필더로 손색이 없다.

돌파하는 이청용 지난 10월 7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VEB 아레나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대한민국 대 러시아의 경기. 이청용이 돌파하고 있다.

▲ 돌파하는 이청용 지난 2017년 10월 7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VEB 아레나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대한민국 대 러시아의 경기. 이청용이 돌파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신태용 감독이 이청용을 월드컵에 데려가더라도 주전으로 중용할 수 있을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당초 이청용은 권창훈을 뒷받침하는 2선 백업자원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어차피 월드컵에서 23명의 엔트리를 모두 활용하는 경우는 드물고 보통 부상자를 제외하면 교체멤버까지 15~17명의 선수들로 대회를 치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두 선수가 월드컵에 간다면 어떤 모습 보일까

한국축구도 역대 월드컵 본선에 나섰으나 1분도 출전기회를 못 잡은 선수들이 수두룩하다. 2002년의 윤정환과 김병지, 2010년의 안정환과 이운재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비록 경기에 뛰지는 못했지만 팀 내 고참급으로서 분위기를 이끄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냈다.

하지만 이들은 적어도 대표팀에서는 그리 중용되지 못했을망정 '자격 논란'이 거론될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는 게 이청용과 큰 차이가 있다. 윤정환, 김병지, 안정환, 이운재 등은 모두 월드컵 직전까지 적어도 소속팀에서는 부동 주전으로 꾸준히 많은 경기에 나서며 활약하고 있었다. 이에 비하여 이청용은 단지 올해만이 아니라 팰리스에 입단한 2015년 이후 한번도 풀타임 주전으로 활약하지 못했고 간간이 출전할 때마다 인상적인 경기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권창훈이 빠지고 대표팀의 주전 오른쪽 미드필더가 무주공산이 되면서 상황이 미묘해졌다. 이청용의 현재 컨디션을 장담하기 어려운 데다, 전술적인 면에서 권창훈과는 스타일이 전혀 다르다. 권창훈이 빠지더라도 이청용이 주전으로 다시 올라설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낮다.

신태용 감독은 아예 플랜A로 구상했던 4-4-2 전술을 포기하고 새로운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는 복안을 언급한 바 있다. 사실상 스리백을 중심으로 한 3-5-2나 3-4-3 등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윙백이 측면날개의 역할을 수행하는 스리백의 특성을 감안할 때 이청용의 활용도는 애매해진다. 신 감독은 지난해 유럽원정에서 이청용을 스리백의 윙백으로 기용하는 실험을 시도한 바 있으나 이청용은 수비력에서 문제를 드러내며 합격점을 받지 못했다.

이승우와 이청용이 과연 최종엔트리까지 생존할 수 있을지는 대표팀 소집이후 두 차례의 마지막 평가전을 통하여 어떤 활약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하지만 결국은 월드컵에 가더라도 본선무대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가 더 중요하다. 선수선발은 감독의 고유권한이지만 결과에 대한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 부상자 발생이라는 변수와 별개로 신태용 감독은 자신이 전술적으로 선호하는 선수들을 선택했다. 그것이 과감한 결단이었는지 무리한 자충수가 될지는 월드컵에서의 결과로 증명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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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이승우 이청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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