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철과 권창훈, 김민우가 없다. 염기훈도 이제 노장 대열에 합류했다. 그럼에도 수원이 자랑하는 무기인 '왼쪽' 펀치는 여전히 매섭다.

K리그의 왼발 혹은 왼쪽 공격을 얘기할 때 수원 삼성을 제외하고 논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K리그 역대 최고의 왼발 잡이들은 대부분 수원을 거치면서 경력에 꽃을 피웠다. 1990년대 후반을 뒤흔들었던 왼발 그 자체 '앙팡테리블' 고종수 현 대전 시티즌 감독을 필두로 K리그 역사상 손꼽히는 용병 수비수 마토도 왼발이 뛰어났던 선수로 기억된다.

수원의 왼쪽 공격을 하나의 공식으로 만든 이는 2010년부터 푸른 유니폼을 입기 시작한 염기훈이다. 전북 현대와 울산 현대를 거치면서 K리그가 자랑하는 왼쪽 측면 공격수로 성장한 염기훈은 수원에 입성해 왼발 하나로 수많은 영광을 만들었다.

수원 데뷔 시즌부터 리그 10도움을 단번에 달성한 염기훈은 매 시즌 왼쪽 공격의 한 축을 담당했다. 염기훈이 왼쪽 측면에서 올리는 크로스는 여지없이 패널티 박스에 도사리고 있는 공격수에게 정확히 배달됐다. 프리킥 상황에서 거리와 위치를 가리지 않고 골문을 위협하는 그의 왼발은 상대팀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국가대표팀 감독 신태용이 보유하고 있던 통산 최다 도움(68도움)을 가뿐히 넘은 염기훈은 올 시즌 K리그 최초 100 도움이라는 신기록을 작성했다.

염기훈 '수비 비켜' 7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H조 3차전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상하이 선화의 경기. 수원 염기훈이 드리블을 하고 있다.

▲ 염기훈 '수비 비켜'지난 3월 7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H조 3차전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상하이 선화의 경기. 수원 염기훈이 드리블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 염기훈이란 K리그 최고의 왼쪽 날개를 가진 수원은 2013년 성남 일화(지금의 성남 FC)에서 뛰던 왼쪽 측면 수비수 홍철을 영입하면서 왼쪽 펀치의 무게감을 더했다. 염기훈의 군 복무로 인해 2014년부터 가동되기 시작한 염기훈-홍철 라인은 K리그를 휩쓸었다. 스피드는 다소 느리지만 공 소유에 탁월한 염기훈이 전방에서 공을 지켜주고, 그 사이 홍철이 빠른 속도로 왼쪽 측면을 붕괴했다.

수원의 왼쪽 펀치는 신예 권창훈의 등장으로 완성체가 됐다. 2013년 수원에서 데뷔한 권창훈은 빠르게 팀의 핵심 자원으로 성장했다. 왼발잡이 공격형 미드필더 권창훈은 염기훈-홍철 라인이 측면에 고립되지 않도록 적절히 지원하며 수원의 왼쪽 공격에 힘을 배가시켰다.

시너지 효과는 대단했다. 2015 시즌 염기훈은 리그에서만 8골 17도움을 기록하며 리그 MVP 후보에 올랐고, 권창훈은 리그 10호골을 달성하며 대한민국이 주목하는 미드필더가 됐다. 홍철은 2년 연속 K리그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렸다.

염기훈이 중심이 된 '왼발 트리오'는 2015 시즌 수원의 리그 준우승을 이끌며 두 시즌 연속 준우승이란 나름의 기록을 세웠다. 2016 시즌에는 팀이 강등권까지 내몰린 어려운 상황에서 잔류와 더불어 FC 서울을 꺾고 FA컵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계속되는 수원의 왼쪽 공격

2016 시즌 FA컵 우승을 끝으로 수원의 '왼발 트리오'는 해체됐다. 홍철이 군 입대를 했고 권창훈은 도전을 위해 프랑스 리그의 디종 FCO로 이적했다. 트리오의 핵심 염기훈이 존재하긴 했지만 갈수록 떨어지는 체력과 민첩성은 막을 방도가 없었다. 수원의 매서웠던 왼쪽 펀치가 이대로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였다. 일본 J리그의 사간 도스에서 영입된 김민우가 수원 왼쪽 날개의 명맥을 확실히 이어갔다. 국가대표팀에서 간혹 얼굴을 비추고 선수 생활 내내 일본에서 활동한 김민우의 능력에 많은 팬들이 의심을 보냈지만 김민우는 데뷔 경기부터 폭발하며 평가를 뒤집었다.

2017 시즌 개막전 FC 서울과 경기에 선발 출장한 김민우는 선제 득점을 터뜨리며 화려한 등장을 알렸다. 지난 시즌 염기훈이 과거보다 측면보다는 전방 공격수로 기용되는 시간이 길어 김민우 홀로 왼쪽 측면에 배치되는 경기가 많았다. 부담이 되는 상황에서도 공수 양면에서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치면서 수원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지난해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줬던 김민우가 상주 상무로 떠났지만 올 시즌 수원의 왼쪽 공격은 여전하다. 일단 염기훈이 왼쪽 측면 공격수로 복귀해 무게감이 회복됐다. 무엇보다도 겨울 이적 시장을 통해 팀에 합류한 이기제와 박형진의 존재감이 크다.

지난 시즌 울산에서 완전히 밀려난 이기제는 수원 이적 후 부활했다. 강점으로 꼽혔던 왕성한 움직임과 공격력으로 올 시즌 수원의 주전 윙백으로 자리매김했다. 세트피스 상황에서 날카로운 킥 능력도 갖췄다. 불안요소로 지적되었던 수비력 측면에서는 끈질긴 수비로 호평을 받고 있다.

이기제의 대체자 혹은 쓰리백의 일원으로 출격하는 박형진의 활약도 출중하다. 왼쪽 측면 어느 위치에든 배치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 능력을 기반으로 정교한 왼발이 공격에 힘을 불어넣고 있다. 발이 빠르지는 않지만 183cm의 신장은 측면 제공권 싸움에서 유리하게 작동하고 있다.

지난 주 울산과 2018 AFC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에서 염기훈이 부상으로 이탈한 점은 수원에게 뼈아프다. 불행 중 다행으로 시즌 초반 부상으로 신음하던 또 다른 왼쪽의 축 메튜 저먼이 최근 복귀했다. 메튜의 성공적인 복귀로 수원의 왼쪽 펀치는 올 시즌에도 묵직함을 이어나갈 전망이다.

수원의 왼쪽 그라운드는 특별하다. 빅버드(수원 월드컵 경기장 애칭)의 왼쪽 피치를 밟은 선수는 언제나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줬다. 심지어 수원의 왼쪽 날개의 일원이 되면 국가대표팀과 가까워지는 겹경사도 누린다. 홍철과 김민우 모두 수원 입성 이후에 한국 대표팀에 자리잡기 시작했고, 메튜도 수원에서의 활약을 토대로 호주 국가대표팀에 최초로 발탁됐다. 세 선수 전부 한 달 뒤 열리는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 본선 참가가 유력하다.

리그 2위와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 수원이 여름 휴식기를 앞두고 거둔 성적이다. 두텁지 않은 선수층임에도 4월부터 이어진 살인일정을 멋지게 돌파했다. 올 시즌 초반 돌풍 아닌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수원에는 언제나 '왼쪽 펀치'가 있었다. 수원의 왼쪽 공격은 여전히 날카롭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