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영화 레슬러 메인포스터 영화 레슬러 메인포스터

▲ 영화 레슬러 메인포스터영화 레슬러 메인포스터ⓒ 롯데엔터테인먼트


01.

김대웅 감독의 첫 장편 영화 <레슬러>는 전직 레슬링 국가대표 선수였던 귀보(유해진 역)가 촉망받는 레슬러 아들 성웅(김민재 역)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영화다. 아들의 성공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자신은 찬밥을 먹으면서도 아들에게만큼은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자 하는 아버지의 이야기. 유해진과 김민재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레슬링 동작을 취하고 있는 포스터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스포츠 종목이 소재가 되어 제작된 바 있는 기존의 작품들과는 결이 다른 구석이 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 <국가대표>(2009)와 같은 작품들이 주인공의 성장을 중심에 놓고 종목을 활용하는 것과 달리, 영화 <레슬러>는 성장이 아닌 가족애에 무게가 놓여있기 때문이다.

02.

영화는 크게 두 가지 이야기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귀보와 성웅의 관계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가족 드라마가 하나.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여성 인물인 가영(이성경 역)이 엮이면서 벌어지는 로맨스 코미디가 또 다른 하나. 각각의 스토리를 떼어놓고 보자면 그리 나쁘다고 여겨질 구석은 없다. –그렇다고 만족스럽다는 이야기 역시 아니다.-

기존의 작품에서 자주 차용되던 모습과 매우 흡사하기는 하나 부자 관계의 스토리는 나름대로의 구성을 갖추고 있고, 성웅의 친구인 가영이 성웅이 아닌 그의 아버지인 귀보를 좋아하며 삼각관계가 형성된다는 내용도 굳이 이해하고 싶지는 않지만 독특하기는 하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두 이야기 어느 쪽에도 이 영화의 주요 소재인 레슬링이 확고하게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쯤 되면 이 영화의 타이틀이 굳이 <레슬러>였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이 작품의 원제가 'Love+Sling'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이미 예정되어 있는 결과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영화 레슬러 스틸컷 영화 레슬러 스틸컷

▲ 영화 레슬러 스틸컷영화 레슬러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03.

감독의 의도가 어떤 쪽인지는 모르겠으나, 영화의 초반부에서 작품의 코미디적 성격을 활용하는 모습은 의외로 만족스럽다. 의도적으로 과장된 연출은 유해진이라는 배우가 기존에 해왔던 익살스러운 연기는 물론, 김민재와 이성경의 연기까지 장르에 맞춰 보정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다만, 이는 앞서 언급했던 두 가지 이야기 중 후자인 로맨스의 영역으로만 제한된다. 두 장르의 접근법이 상반되다 보니 어느 한쪽의 장점이 다른 한쪽의 약점이 되는 경우라 볼 수 있는데, 오로지 아들만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담보하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되는 아들의 이야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야기의 전형성에 대한 문제와는 또 다른 지점의 문제다.

04.

그렇다고 해서 감독이 레슬링이라는 소재를 완전히 벗어버린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작품의 중심에는 레슬링이라는 종목의 활용을 통해 대를 이은 가업의 끈끈함과 운동선수의 심리적 성장이 이끌어내는 성공 스토리를 대입하려는 시도들이 그것이다. 특히 영화의 초반부와 후반부에 작위적으로 배치된 경기장 매트 위에서의 시합 장면들은 햄버거 속의 패티를 감싸는 것이 반드시 양쪽의 빵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주지시키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인도 영화 <당갈>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이루지 못해 미련이 남은 자신의 꿈을 자식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떠미는 부모의 모습이라는 점은 유사하지만, 이 작품과 달리 <당갈>의 니테쉬 티와리 감독은 꾸밈없는 이야기로 관계의 이해와 당위성을 찾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레슬러 스틸컷 영화 레슬러 스틸컷

▲ 영화 레슬러 스틸컷영화 레슬러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05.

어느 한쪽의 시선으로 타인을 재단하려는 몇몇 장면들 역시 이 작품의 관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이 작품의 주된 장르가 코미디이기는 하나, 여성의 적극적인 구애에 남성이 거리를 두는 모습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려 한다는 점이나, 맞선 자리에 치마를 입고 나오는 것이 매너라 말하며 웃음을 유발하는 것과 같은 부분들에는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인다.

코미디의 하위 장르 가운데 남녀 간의 성적 접근과 이에 대한 방어적인 태도를 유머러스한 갈등 구조로 그려내는 스크루볼 코미디라는 장르가 있다. 하지만 그 장르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관습을 해체하려는 노력이 중심에 놓여야 한다는 점이다. 가영이 체육관에 처음 들어서던 순간 그녀를 성적 대상으로 활용하며 남자 선수들의 과장된 행동을 보여주던 장면에 대해서도 묻고 싶다. 이 장면이 코미디적으로 해석되어 남기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남성들만 가득한 체육관에 홀로 던져진 여성을 희화화시키고 몸을 훑어 내리는 카메라 무빙은 어떤 의미도 남기지 못할 뿐 아니라 폭력적이기만 하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가영이라는 캐릭터는 충분히 매력적이며 무게감을 가진다.

06.

이 작품에는 현재 한국 영화 산업, 특히 상업 영화가 생각해 보아야 하는 많은 문제들이 혼재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 그랬다고 해서 지금도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장르적 볼륨이 좁다고 해서 잘못된 형태를 답습하는 식으로 수를 늘려야 하는 것 역시 아니다. 코미디 장르가 하나의 분야로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는 이유 역시 그렇다. 영화 <곤지암>이 기근 상태에 놓인 국내 호러 시장에 신선한 흐름을 이끌어낸 것은 물론, 10년이라는 시간을 꾸준하게 사랑받는 마블 유니버스 시리즈의 모습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