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편으로 인생이 바뀐 배우들이 있다.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자기 것으로 만든 배우들의 결정적 영화를 살펴보면서 작품과 배우의 궁합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 기자 말

* 주의!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철길 위에서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는 설경구의 모습은 한국 영화사에서 가장 강렬한 장면 중 하나일 것이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기에 철길 위에 선 것일까. 달려오는 기차를 향해 절규하는 낯선 배우의 연기는 단숨에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CGV 아트하우스


90년대 한국 영화의 모든 시나리오가 한석규를 거쳐 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만큼 한국영화계에서 한석규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그가 출연한 영화들은 흥행과 작품성을 모두 인정받았고, 그의 출연은 작품의 신뢰도를 높여주었다. <텔 미 썸딩>으로 20세기를 마무리 한 그가 몇 년간의 공백을 가지는 동안 남자 배우 춘추전국시대가 열리게 되는데 이때 떠오른 배우 중 하나가 바로 설경구다.

설경구의 등장

데뷔작 <초록 물고기>로 이미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중요한 감독이 된 이창동 감독의 두 번째 영화 <박하사탕>은 한 평범한 남자의 인생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담고 있다. 20년 전 가리봉동 공단 야학에서 함께 공부하던 동료들의 야유회 장소에 나타난 주인공 영호(설경구)는 슬픔과 악에 받쳐 철길 위에 오른다. 영화의 시간은 1999년 현재에서 역순으로 진행되면서 조각난 인생의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나가며 기찻길을 따라 지난 20년,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CGV 아트하우스


1999년. 가정과 돈, 모든 것을 잃은 40대 남자 김영호)는 어느 날 자신을 찾아온 낯선 남자를 따라 죽음을 앞둔 자신의 첫사랑 윤순임(문소리)을 만나러 가지만, 순임은 혼수상태에 빠져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망가져 버린 자신의 인생과 병든 첫사랑의 모습에 영호는 다시 한 번 절망한다. 그는 순임이 자신에게 남긴 카메라를 단돈 4만원에 팔아버리는데 한때 자신의 꿈과 희망을 담고 있는 카메라는 세월과 함께 허무하게 사라진다.

그의 인생은 한국 현대사의 중요 사건, IMF와 민주화 운동에 따라 변화의 지점을 맞이하고 영화는 그 지점들을 비춘다. 1994년. IMF외환 위기가 대한민국을 덮치기 전, 영호는 경찰을 그만두고 가구 사업을 하고 있다. 중산층의 일원으로 자리 잡고 평범한 삶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아내(김여진)는 운전 교습 선생과 바람이 났고, 자신은 경리 아가씨와 외도를 하고 있다. 곪을 대로 곪은 상처가 터지기 일보 직전의 상태에서 영호는 고름을 짜내고 약을 바르는 것이 아니라 회복 불가한 상태에 이르기까지 상처를 방치한다.

1987년. 군부 독재에 맞서 시위를 벌이는 대학생들을 잡아들이고 고문을 가하는 형사 영호의 폭력에는 자비도 죄의식도 없다. 출장차 군산에 갔다가 이름도 모르는 여자와 하룻밤을 함께하면서 첫사랑 순임의 이름을 부르며 울음을 터뜨리는데, 첫사랑 순임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순수의 상징으로 그 안에 자리 잡고 있다.

1984년. 영호는 군대를 제대하고 형사가 된 자신을 찾아온 순임에게 마음에도 없는 상처를 주고 돌려보낸다. 그녀를 자신의 인생에서 내보낸 그는 망가지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순임이 '착해 보이는 손'이라 말한 자신의 손으로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의 몸을 더듬고, 민주화 운동으로 들어온 어린 학생의 목을 비틀며 고문한다. 지난날 순수했던 자신을 지우는 과정은 그가 살아가기 위해서 택한 삶의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CGV 아트하우스


1980년. 계엄령이 떨어지고 군대는 초비상 상태가 된다. 긴급 출동 명령이 떨어진 영호의 부대. 어수룩한 군인 영호는 출동 준비를 하면서 순임이 보내준 박하사탕을 쏟아버리고 하얀 사탕은 군화에 부서진다. 어두운 밤, 잔뜩 긴장한 상태로 광주에 도착한 영호. 군인들은 시민들을 상대로 총을 겨누고 누군가의 총에 부상을 입은 영호는 주저앉아 어린아이처럼 울먹인다. 명령을 받들 뿐, 무슨 상황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영호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하다. 어둠속에서 총성이 울려 퍼지고 총을 들고 있어도 겁에 질린 모습의 그는 군인이기 전에 아직 어린 청년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실수로 발사 된 그의 총에 여고생이 죽자 영호는 여고생을 끌어안고 서럽게 운다. (여기서 설경구의 눈물 연기는 <초록물고기> 속 공중전화박스 장면에서 형에게 전화를 하며 울먹이는 한석규의 연기를 떠올리게 하는데, 이 둘의 눈물에서 연약한 인간의 영혼이 부서지는 아픔이 전달된다.)

1979년. 가리봉동 공단 야학에 다니는 노동자들의 소풍. 1999년의 야유회 장소와 같은 곳에서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긴 영호와 순임은 서로를 향한 호감을 확인하고, 영호의 눈에는 행복에 젖은 눈물이 글썽인다. 예쁜 것들을 사진에 담고 싶다 했던, 좋아하는 여자에게 박하사탕을 받고 수줍게 웃던, 모든 것이 가능할 것 같은 행복한 순간을 그대로 느낄 줄 알았던 순수하고 섬세했던 청년의 미래를 두 시간동안 목격한 관객은 영호의 찬란한 스무살이 가슴 아프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CGV 아트하우스


설경구 아니면 불가능했을 김영호

꿈 많고 순수했던 청년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살인자가 되고 이것은 극복할 수 없는 트라우마를 그에게 남긴다. 그의 내부 깊숙이 자리한 상처는 그도 모르는 사이에 곪아가고 염증은 세월의 두께만큼 커져간다. 영화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가치판단을 내리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사회의 영향 아래 놓일 수밖에 없는 미약한 인간의 모습을 김영호라는 인물을 통해서 보여준다.

스무살에서 마흔까지. 20년 동안 조금씩 무너지는 한 남자의 인생을 설득력 있게 연기한 설경구는 이 영화 한 편으로 '1999년 한국 영화가 발견한 최고의 수확'이라는 극찬과 함께 충무로를 대표하는 배우가 된다. 1차 오디션에서 떨어졌지만 우연히 그의 오디션 테이프를 본 감독의 부인이 "김영호 저기 있네"라고 말하면서 다시 기회를 얻었다는 캐스팅 일화는 유명하다. <박하사탕>이라는 영화를 만난 것은 분명 그에게 엄청난 기회이자 행운이었고, 그는 자신의 역량을 백퍼센트 발휘하면서 이후로 배우로서 승승장구한다. <공공의 적>으로 강철중이라는 캐릭터를 만나고 <실미도>로 흥행배우로서의 정점을 찍고, <역도산>으로 변화무쌍한 배우의 모습을 보이면서 가장 중요한 배우 중 하나가 되었다. 2000년 대 만큼의 영향력은 아니지만 그처럼 멜로, 코미디, 액션, 스릴러 등 모든 장르가 가능한 배우는 흔치않다.

그는 이제 쉰을 넘겼다. 배우로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나이에 들어선 그가 앞으로 어떤 영화를 찍든지 <박하사탕>에서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는 그의 모습은 설경구라는 배우를 기억하는 첫 번째 장면이자 가장 중요한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강지원 시민기자의 브런치 계정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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