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방송된 tvN 드라마 <라이브>의 한 장면.

6일 방송된 tvN 드라마 <라이브>의 한 장면. ⓒ tvN


tvN 드라마 <라이브>가 종영했다. 6일 방영된 마지막회에서 홍일지구대 대원들은 피해자와 동료를 살려내고도 조직의 횡포에 의해 파면당할 위기에 처한 상수(이광수)를 구해냈다. 그리고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며 막을 내렸다. 일상적이지만, 전혀 평범하지 않은 사건들을 해결해가며 삶을 이야기한 홍일지구대 대원들. 9주간 우리를 웃기고, 울리고, 때로는 고민하게 한 그들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마지막 회 상수를 구한 그들의 힘은 무엇이었을까? 드라마의 여운을 곱씹다 보니 이 한 단어가 떠올랐다. 탄력성(resilience: 회복력, 회복탄력성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바로 이것이 홍일지구대 전체를 감싸고 있던 매력의 정체이자, 이들의 힘이 아니었을까 싶다.

'탄력성'이란


탄력성이란 긍정심리학의 연구 주제 중 하나로 역경을 겪으면서도 쉽게 회복되고 성장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말한다. 심리학자들은 어린 시절 커다란 불행을 겪고도 이를 극복하고 성공에 이른 사람들의 심리특성을 연구했는데 이 과정에서 발견한 것이 바로 탄력성이다. 한마디로 역경에서 빨리 회복하는 능력을 말한다.

홍일지구대원들은 서로 경쟁하기도 하고 종종 감정적으로 싸우기도 하며, 험한 말을 주고받기도 한다. 하지만, 금세 훅 털어버리고 협력해서 범인을 잡는다. 끔찍한 사건에 심리적 충격을 받아도 서로 토닥이며 기다려주면서 회복해간다. 또, 조직의 부당한 횡포에 분노하고 절망하다가도 곧 사명감을 불태운다. 홍일지구대 대원들의 이런 모습은 분명 매우 높은 탄력성의 수준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어떻게 홍일지구대는 탄력성을 갖게 되었을까?

자신을 수용할 줄 아는 인물들

 6일 방송된 tvN 드라마 <라이브>의 한 장면.

6일 방송된 tvN 드라마 <라이브>의 한 장면. ⓒ tvN


먼저, 드라마의 주요 인물들은 스스로의 단점과 상황을 수용하면서 동시에 이를 극복하려 노력하는 특성을 보여줬다. 양촌(배성우)은 드라마 초반 장미(배종옥)의 이혼선언에 "범인한테도 3번 경고하는데 너도 경고는 해야지. 평생 부비고 산 사람에게 이게 뭐야?"라며 분노한다. 하지만 곧 분노를 멈추고 상황을 수용하며 자신을 성찰한다. 아버지(이순재)의 가정폭력을 경험한 자신 안에 아버지와 유사한 폭력적인 면이 있음을 깨닫고 13회에 장미에게 이렇게 말한다. "주영이 건으로 폭력을 쓸 때, 송이 남자친구 일 생겼을 때 나 여전히 감정적이고 폭력적이고 위험한 놈이더라. 이런 나를 니가 보기 힘들었겠구나. 의지할 수 없었겠구나"라고.

이후 양촌은 자신의 깨달음을 실천으로 옮겨 억울하게 중징계를 받은 장미를 돌보고, 아이들에게도 자상한 아빠의 모습을 보인다. 어린 시절 부모의 폭력에 노출될 경우, 많은 사람들은 싫어하면서도 닮아가곤 한다. 양촌이 이혼의 위기를 극복하고 좋은 남편이자 아빠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단점을 성찰하고 수용하는 능력을 이용해 탄력성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6일 방송된 tvN 드라마 <라이브>의 한 장면.

6일 방송된 tvN 드라마 <라이브>의 한 장면. ⓒ tvN


정오(정유미) 역시 탄력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정오는 성폭력 피해자였지만, 자신의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다. 아픈 과거를 부정하지 않고 수용하되, 상처에 발목 잡히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이게 바로 진정한 탄력성이다. 정오의 탄력성은 경찰로서 성폭력피해자들을 만나면서 "이상하게 괜찮다. 하지만 가끔 힘들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스스로의 감정을 정확하게 읽어낼 줄 아는 데서 기인한다. 조직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유학을 신청할 만큼 자기 자신의 욕구에 충실할 수 있는 용기도 정오의 탄력성을 뒷받침하는 요소다.

남자답지만, 가부장적이지 않은 조직문화


홍일지구대 특유의 솔직하고 서로 지지하는 관계는 조직 전체에 탄력성을 불어 넣어주는 원동력이었다. 경찰 조직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남성적인 집단 중 하나일 것이다. 일의 성격상 계급에 따른 상명하복의 원칙이 중요한 조직이다. 홍일지구대에서 보여준 경찰 사회 역시 남성적인 문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말투나 행동, 스트레스를 술로 풀며 파이팅 하는 장면 등은 매우 남자다운 문화였다.

그런데도 홍일지구대는 그렇지 않았다. 홍일지구대의 부사수들은 언제든 할 말을 하고 자기 주장을 편다. 8회 엠티를 가는 장면에서도 부사수들 몇 명은 "왜 우린 쉬는 날 쉬지도 못하냐"고 대놓고 이야기한다. 15회 동료 경찰의 죽음을 목격한 처참한 날, 은퇴를 앞둔 주임(이얼)이 호출을 하는데도 "저희는 급한 사정이 있습니다"라고 당당하게 'No'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최고참 선배는 이유도 묻지 않고 "그럼 니들은 가"라고 쿨하게 보내준다. 여자라고 커피를 타거나, 돌보는 일에만 배정받지도 않는다. 오히려 16회에서는 은퇴를 앞둔 최고참 선배가 후배들의 커피를 타주기도 한다.

 6일 방송된 tvN 드라마 <라이브>의 한 장면.

6일 방송된 tvN 드라마 <라이브>의 한 장면. ⓒ tvN


"나라면 고소 안 해. 하지만 나라고 다 맞는 건 아니야." 16회 경모(장현성)의 대사는 홍일지구대 선배들의 마음가짐을 보여준다. 이런 열린 마음을 가진 홍일지구대 선배들은 권위로 후배들을 짓누르지 않으며 가부장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양촌의 요구에 의해서긴 하지만, 상수가 양촌을 "오양촌씨"라고 부를 수 있었던 건, 조직의 위계와는 별개로 홍일지구대 내의 인간관계가 수평적이고 지지적인 태도를 바탕으로 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래서 홍일지구대 대원들은 "파트너가 있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그게 너무 든든했어요.(16회, 혜리)"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평등한 관계는 계속되는 조직의 횡포와 억울함에도 불구하고 홍일지구대 대원들이 사명감을 회복할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었다.

지금 여기서 찾아가는 일의 의미: 사명감

양촌은 처음 드라마에 등장했을 때부터 '사명감'을 강조했다. 이 사명감은 홍일지구대 대원들에게 일에 목적과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을 했다. 끔찍한 사건을 접하고 힘들어하면서도 정오는 "우리가 범인을 잡고, 힘든 여자들을 도왔다"(8회)라고 말하며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긍정적인 면을 찾는다. 상수는 자신의 스마트폰에 사명감 목록을 만들어 놓고 자신이 해결한 사건으로 도움을 받은 사람들의 모습을 저장한다. 상수의 스마트폰에 저장된 "고맙다"라는 말들은 힘들 때마다 상수의 마음을 다잡아 준다.

16회에 정오는 버려진 아기를 구하면서 "별다른 사명감은 없지만, 우리가 이 아이를 만난 이상 제발 아이가 살았으면"이라고 고백한다. 아마도 정오는 사명감을 어떤 거창한 것으로 이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대사는 역설적으로 사명감, 즉 일의 목적이나 의미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데서 찾을 수 있음을 알려준다. 17회 아기를 살려내고 기뻐하는 홍일지구대 대원들의 모습은 비록 "노고를 알아주는 것이 초라한 우리일 뿐(16회, 정오)" 일지라도 스스로 의미와 목적을 찾아냈을 때 느끼는 행복감을 전해준다. 이런 의미발견과 행복감은 매번 "때려 칠까" 고민하면서도 다시금 경찰 일을 하게 하는 탄력성의 원천이 되어 주었다.

자기를 성찰하고 수용할 줄 아는 개인, 솔직하고 평등하게 소통하는 관계, 그리고 지금 여기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능력은 홍일지구대에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탄력성을 제공했다. 이 힘은 동료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진심으로 함께 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주었다. 마지막 회 상수를 구해 내고 부당한 조직에 경종을 울릴 수 있었던 것은 그 동안 쌓아온 홍일지구대의 탄력성이 그 가치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아무도 안 알아주는' 이들의 힘

 6일 방송된 tvN 드라마 <라이브>의 한 장면.

6일 방송된 tvN 드라마 <라이브>의 한 장면. ⓒ tvN


"엄마 청소하는 거 아무도 안 알아줘도 세상에 필요한 일이야. 경찰 일도 남들이 안 알아줘도 세상에 필요한 일이야." 18회 상수어머니(염혜란)는 힘들어하는 상수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홍일지구대 대원들은 결국 부당한 조직을 변화시켰으며, 경찰의 노고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냈다. 이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양심(17회, 양촌)"을 지키며 묵묵히 살아가는 개인들이 연대하면 조금씩이라도 세상을 움직일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아마 홍일지구대 대원들은 알 것이다. 그들이 매일 범인을 잡아도 내일 또 나쁜 일이 터지듯,  조직은 언제든 다시 권력을 탐하는 모습으로 되돌아 올 것임을.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 이들은 반복되는 상황에도 절망하지 않고 탄력성을 발휘해 일어설 것이다. 양촌과 명호처럼 "이렇게 범인을 잡아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고 한숨을 쉬기도 하지만, "근데 더 중요한 게 있어. 내가 범인을 잡았다는 거. 그래서 또 다른 5차, 6차, 7차 피해자를 만들지 않고 구했다는 거"라는 상수의 대사(13회)처럼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일에 의미와 희망을 두면서 말이다.

 6일 방송된 tvN 드라마 <라이브>의 한 장면.

6일 방송된 tvN 드라마 <라이브>의 한 장면. ⓒ tvN


'라이브'에서 그려지듯 삶은 유한하면서도 지속된다. 누군가가 죽어갈 때 새 생명은 태어나고, 누군가가 은퇴를 할 때 누군가는 신입 경찰이 된다. 또한, 세상과 조직은 순수한 사명감에서 나온 행동을 그대로 인정해주지 않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일지구대 대원들은 삶은 살아볼 가치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이런 작은 일상들이 모여서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그러니 당장은 한숨이 나오더라도, 주어진 삶의 조건을 거부하지 말고 일상에 의미를 부여해보자. 홍일지구대 대원들처럼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작은 것들에 감사하며 탄력성을 발휘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 이것야말로 진정으로 '살아있는(live)' 것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라이브 탄력성 수평적관계 일상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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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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