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대치동 같이 조금 다른 환경이 아니라면 아이들은 대개 뛰어다닌다. 걷는 법이 없다. 사실 걷는 아이는 형용모순이다. 아이의 그런 뜀박질은 사랑과 닮았다. 사랑이 시작되면, 혹은 사랑에 빠지면, 감정은 아이처럼 질주한다. 뛰고 싶어서가 아니라 뛰지 않을 수가 없어서이다.

생리적인 근거로도 사랑은 젊음의 특권이다. 심장은 불가해하고 통제불능의, 그리고 간혹 임계치를 넘어설 것 같은 펌프질을 견뎌낼 만큼 강해야 한다. 그런 심장을 가슴 속에 지녀야 "사랑 좀 하겠네"란 평을 듣지 않을까. 물론 예외가 없지는 않다. 신라 향가 '헌화가'에 나오는 노옹(老翁)은 젊고 절세미인인 수로부인에게 "절벽의 꽃을 따다주겠다"며 연심을 드러낸다. 젊지 않은 이들이 모두 그와 같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굳이 사랑하려거든 심장에 무리가 가지 않게 사랑해야 하나. 옹색하다.

그냥 해본 얘기이고, 사랑이란 게 함정에 빠지는 것과 흡사해서 일단 빠지게 되면 심장기능 같이 사소한 문제에 눈을 돌릴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까짓 심장이 터지면 어떤가. "죽어도 좋아"가 사랑이다. 다만 현실에선 이런 사랑이 드물다. 이런 사랑이 드문 이유는 밤을 새서 얘기할 수 있을 만큼 많다. 반면 영화에선 이런 사랑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순도 낮은 현상을 걸러낸 현실의 고갱이. 그것을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보여주는 게 영화이기 때문이다.

드물게 보는 현실의 그런 사랑과 달리, 사랑을 소재로 한 영화는 관객의 심장을 심하게 압박하지 않는다. 사랑과 달리 사랑영화는 심장이 파열될 걱정 없이 누구나 봐도 된다는 미덕을 지닌다.

심장 위주로 파악하면 공포와 사랑은 비슷하다. 당연히 셀 수 없이 많은 차이가 존재하지만, 둘 다 심장을 겨냥한다는 데에 주목하면 차이가 별 게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이제 영화 <실종 : 비밀의 소녀>(원제 Haunted)를 얘기해 보자. 배급사가 분류한 이 영화의 장르는 "심멎스릴러"이다.

공포와 사랑

영화 <실종 : 비밀의 소녀> 네가 어디 있든지 반드시 찾아낼 거야

▲ 영화 <실종 : 비밀의 소녀>네가 어디 있든지 반드시 찾아낼 거야ⓒ 브릿지웍스엔터테인먼트


공포와 사랑은 분명 별개의 현상이고 때로 대척점에 위치한다. 영화에서도 대체로 그럴 것이다. 그러나 전혀 별개인 현상이 한 곳에서 만나기도 한다. 현실에서도 그렇고 영화에서도 그렇다.

영화 <실종 : 비밀의 소녀>는 스릴러다. 관객에게 얼마나 많은 공포를 얼마나 체계적으로, 동시에 예측을 불허하게 제공하느냐가 중요하다. 체계적이란 말과 예측불허란 말은 상호의존적이다. 공포의 체계가 존재해야 예측불허가 성립하고, 모두 예측이 불허하다면 체계 같은 게 성립하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영화에서는 현실과 다른 '스릴러 문법'이란 게 존재하여, 문법을 대체로 잘 지키면서 소수의 예외를 만들었을 때에 관객으로부터 더 큰 호응을 받는다.

이 영화는 문법에 충실하다. 또 공포의 시원을 영상이 아니라 관객의 마음에 두었기에 차분하다. 호들갑스럽지 않고 나름 품격 있는 공포를 관객에게 선사했다는 측면에서 성공적인 스릴러로 평가받을 수 있다. 동시에 문법에 충실한 모범생 같은 스릴러로만 받아들이게 되면 상투적이라고 식상해할 수도 있겠다. 대체로 영화를 많이 본 사람들이 후자의 판단을 내리게 되지 싶다.

개인적으론 장르 특성을 어떻게 구현했느냐 하는 것보다 텍스트 자체에 몰입했다. 영화 <실종 : 비밀의 소녀>의 텍스트가 공포와 사랑의 하이브리드물이란 생각이 들어서이다. 실존의 관점에서 모든 사랑의 시작과 끝은 자기애이다. 같은 관점에서 모든 공포의 시작과 끝 또한 자기혐오이다. 영화 <실종 : 비밀의 소녀>는 장르로는 스릴러 형식을 취했지만 텍스트로는 자아 대면이란 실존의 비밀스런 주제를 추구한다.

영화 포스터에 섬뜩하게 표기된 "네가 어디 있든지 반드시 찾아낼 거야"라는 문구의 주체와 대상은 사실 동일인이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요약하면, 자신이 자신을 소외했다가, 대상화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대상화한 자신에 맞서 자신을 찾아낸다는 내용이다.

영화 <실종 : 비밀의 소녀> 데이지

▲ 영화 <실종 : 비밀의 소녀>데이지ⓒ 브릿지웍스엔터테인먼트


영화의 주인공은 아름답고 지적이며 섹시하고 세련된 이미지의, 한 마디로 완벽한 여인 캐서린(시노브 마코디 룬드)이다. 남편 마커스(켄 베세가르트)와 저녁식사하던 중 캐서린은 아버지의 부음을 접하고, 아버지가 물려준 고향마을의 외딴 집을 처분하기 위해 고향을 찾는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캐서린은 마을 사람들과 대화하며 조금씩 기억을 되찾는다. 특히 불쑥 등장한 데이지라는 신비스런 소녀를 만나면서 망각된 과거를 현재에서 마주대하게 된다.

이 영화는 캐서린과 데이지 간의 대립구도를 취한다. 과거를 파헤치면서 캐서린은 자신에게 데이지 나이의 이모 마리에가 있었으며, 마리에가 의문의 실종사고를 당했다는 얘기를 듣는다. '비밀의 소녀'는 처음에 데이지로 설정됐다가 이어 마리에로 바뀌고, 캐서린의 의식 안에서 데이지와 마리에를 동일시하게 되며 세 번째로는 데이지/마리에가 된다.

캐서린이 데이지와 마리에를 혼동하는 대목에 이르면 관객은 이제 서서히 현실과 환상이 혼재하였음을 깨닫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데이지가 누구인지를 밝히고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면서 영화는 대미에 이른다. 영화 원제가 (귀신 같은 종류의) 무엇에 씌이다란 뜻의 "haunted"라는 걸 기억하면 사실 혼재를 더 빨리 알아차릴 수도 있었지 싶다.

공포의 장소이자 비밀을 풀 장소, 또한 실종된 '비밀의 소녀'를 만날 장소는 "haunted"한 지하실이다. 캐서린은 지하실을 두려워하고 회피하다가 마침내 지하실에서 난도질당한 어머니의 초상화와 데이지를 너무 닮은 아이의 초상화를 발견하곤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모든 기억을 되찾는다.

기억의 봉인이 풀리면서 영화 속에서 비밀의 소녀의 최종적인 정체가 밝혀진다. 스릴러물에서 있기 마련인 회심의 반전을 보여주며 해결과 화해, 그리고 또 다른 암시를 남기며 영화는 끝난다. 반전과 암시의 수준이 높았는지는 각자가 판단할 몫이다.

사실 이 영화는 스릴러스럽지 않은 스릴러다. 본질적으로는, 캐서린의 내면 풍경과 바깥 풍경을 구분 없이, 실사 화면으로 처리하며 관객에게 섬뜩한 방식으로 혼란을 초래했을 뿐이다. 여기에 부수적으로 스릴러 기법을 곳곳에 잘 버무려 "숨멎스릴러"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텍스트 자체로는 "영상화한 의식의 흐름"의 기술(記述)처럼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텍스트가 정교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기억의 봉인은 영화 소설 등 예술작품에서 흔히 쓰는 설정이다. 이 영화에서는 공포와 사랑이 극적으로 대면하면서 결국 공포 너머의 사랑을 구원하는 데 성공한다. 그 사랑은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겉만 번지르르한 채 실상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면 자신을 사랑하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할 것이고, 그렇다면 남을 사랑할 수도 없게 된다. 마침내 공포 혹은 자기혐오를 넘어서려는 용기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고 이 용기는 어디론가 간절한 손을 내밀게 하는 지독한 외로움과 고통에서 추동된다. 사랑은 철학적으로 월경(越境)의 공포일 수밖에 없다.

또한 향가 '헌화가'에 빗대면 사랑은 헌화(獻花)일 수밖에 없는데, 바칠 꽃을 따는 일은 공포가 되며,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이라는 구원을 향해 공포를 넘어선다고 할 수 있다. 

"붉은 바위 끝에(제4구 꽃으로 연결), 
(부인께서) 암소 잡은 (나의) 손을 놓게 하시고
나를 부끄러워하시지 않으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겠습니다."(향가 <헌화가>)

영화의 막바지, 회상 속에서 캐서린의 어머니가 죽는 방식에서 전설의 무용가 이사도라 덩컨을 떠올렸는데, 여인의 목을 휘감은 스카프엔 공포와 사랑이 내재적으로 공존한다는, 헌화가의 노옹에 빙의한 상념이 스쳤다. 

아름다운 노르웨이 풍광

영화 <실종 : 비밀의 소녀> 캐서린

▲ 영화 <실종 : 비밀의 소녀>캐서린ⓒ 브릿지웍스엔터테인먼트


<실종 : 비밀의 소녀>가 노르웨이 영화이다 보니, 이 나라의 아름다운 겨울 풍경이 시종일관 화면을 채워 스릴러물임에도 자꾸 경치에 빠져들었다. 영화를 찍은 필립 오가르드는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작 <사라짐의 순서 : 지옥 행 제설차> 등을 촬영한 세계적인 촬영감독이다. 그는 노르웨이계 프랑스인으로 1985년부터 30여 편 이상의 작품을 촬영했고, 현재 노르웨이 영화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영화인으로 꼽힌다. 필립 오가르드는 아만다상, 비평가 협회상, 카메라이미지 국제영화제 등에서 여러 차례 촬영상을 수상했다. 대표작으로는 <제로 켈빈> <애버딘> <페더젠 동지> <북쪽> <약간은 신사> 등이 있다.

칼 크리스티안 라베 감독은 "필립 오가르드가 촬영을 책임져준 덕분에 당초 생각한 대로 어두운 내부와 바깥의 겨울 풍경을 오가며 생생한 우주를 선보일 수 있었다. 화면 속의 깨끗한 자연처럼 캐서린의 집도 생명을 얻게 되고, 관객들의 두려움은 결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4월 26일 개봉했다.

덧붙이는 글 안치용 시민기자는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겸 한국CSR연구소 소장이자 영화평론가입니다.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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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평론하고, 래디컬 정치를 사유한다. 활자에도 익숙해 틈나는 대로 책을 읽고 이런저런 글을 쓴다.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문학과 인문학 고전을 함께 읽고 대화한다. 사회적으로는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 의제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청소년/대학생들과 자주 접촉하는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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