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차가운 바다에서 죽은 아이들을 봤을 때, 그래서 촛불을 들고 추운 겨울 거리로 나섰을 때, 세상 사람들은 다짐했을 것이다. '다시는 아이들이 억울하게 죽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세상은 달라지고 있다지만 여전히 아이를 잃은 부모들의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지난해 이대 목동병원 신생아실에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4명의 아이들 때문에 잠시 세상은 떠들썩했다. 이후 의료진 7명이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되었다. 그로부터 131일, 병원에서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은 여전히 4년 전 바다에서 아이를 잃은 부모들과 같은 말을 한다. 아이들의 죽음이 억울하다고, 세상은 이 아이들의 죽음에 무책임하다고.

 25일 방송된 KBS <추적 60분> '이대 목동 병원 사건의 진실'편 중 한 장면

25일 방송된 KBS <추적 60분> '이대 목동 병원 사건의 진실'편 중 한 장면 ⓒ KBS


"제가 태어나서 죽은 사람을 처음 봤는데 그게 저희 아들이었어요. 살기 위해 들어간 병원에서 죽어서 나온 게 말이 되냐고요." - 고 조하빈 부모

당시 거의 동시에 죽음을 맞이한 4명의 신생아들.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이들의 사망 원인을 '시트로박터 프룬디균 감염에 의한 패혈증'으로 결론 내렸다.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팀은 지질 영양제 1개를 7개로 나누어 담는 과정에서 균에 오염되었다고 판단했다. 이어 지난 3월 30일 주치의와 수간호사가 구속되었다. 변질이 쉬운 지질 영양제를 나누어 주사하는 관행을 묵인하고, 제대로 된 감염 교육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때문이었다.

'분주' 관행을 낳은 건 열악한 의료 현실? 과연 그럴까

이대 목동병원은 지난 2010년 국제 의료기관 평가인증(JCI) 병원이 됐다. 국제의료기관 인증지침서에 따라 '환아 1명당 1병씩'으로 기준도 변경했다. 그런데 현실에선 한 병의 주사제를 여러 환아들에게 나누어 주사하는 이른바 '분주'가 관행적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한다.

방송에서 이대 목동병원 주치의의 변호사는 "일부 용량 사용하고 일률적으로 폐기처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1994년 보건복지부 행정해석을 예로 들며 "분주는 25년간 진행되어 왔다"고 말했다. 이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는 <추적60분> 측에 서면 인터뷰로 "해당 행정해석은 지질영양제 심사지침과는 별개의 사안"이라고 반박한다.

"선한 의도가 가중된 의료인에 대해서 나쁜 결과만 가지고 의사들을 중범죄자·살인자 취급을 하게 된다면, 우리 의사들은 중환자 치료에서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 당선인

 25일 방송된 KBS <추적 60분> '이대 목동 병원 사건의 진실'편 중 한 장면

25일 방송된 KBS <추적 60분> '이대 목동 병원 사건의 진실'편 중 한 장면 ⓒ KBS


이 관행에 의거한 의료 행위에 관해 검·경은 '구속'이라는 강수를 두었다. 의사협회 소속 의사들은 광화문에서 집회하는 등 거세게 반발했다. 이들은 목동병원 사태의 원인을 다르게 해석한다. 현행 건강 의료 보험 제도가 가진 구조적인 문제, 즉 낮은 의료 수가와 시스템이 목동병원 사태와 같은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또한 '분주' 과정에서 주사기 등 다른 곳에서도 세균 감염의 가능성이 있기에, 주사제만을 놓고 세균 감염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심지어 극단적으로 '부담스러운 미숙아를 치료하지 않겠다'는 몽니까지 등장한다.

목동 신생아 사망이 과연 낮은 의료수가로 인한 열악한 의료 시스템, 관행이 빚어낸 문제일까? 유족들은 항변한다. 아이들의 죽음은 그저 관행의 결과가 아니라고. <추적 60분>은 진실에 다가가고자 방대한 의무 기록과 이전에 공개된 적이 없다는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서를 조사한다. 

 25일 방송된 KBS <추적 60분> '이대 목동 병원 사건의 진실'편 중 한 장면

25일 방송된 KBS <추적 60분> '이대 목동 병원 사건의 진실'편 중 한 장면 ⓒ KBS


충격적으로 드러난 사실들

다큐가 진실을 알아가기 위한 과정은 험난했다. 다큐에 등장한 의료계 인사들은 다큐팀이 조사하는 사건의 내용에 대해 한결 같이 입을 다물었다. 발언을 위해 등장한 사람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의사들의 증언을 참조할 수 없었던 제작진이 어렵사리 얻은 도움은 의사가 아니라, 의사 출신으로 의료계 소송을 전담하는 변호사였다.

전직 의사였던 변호사는 의료 기록과 역학 조사서를 보고 당시의 상황이 관행만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짚는다. 그리고 변호사의 의심에 유족들의 증언이 더해진다. 신생아에게서 심박수 증가 등의 이상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건 사망에 이르기 5시간 전이라고 한다. 당시 유족은 아이의 이상에 대해 의료진에 문의했지만, 신생아실에서 돌아온 답은 '면회 시간이 끝났다'는 것이었다. 이에 관해 의사 출신의 변호사는 '신생아의 상태가 이미 코드 블루의 위급 상황이었으며, 의료진이 조금 더 신속하게 대처했더라면 아이들의 목숨을 살릴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예측을 내놓는다.

"로타 바이러스가 어떻게 보면 경고였을 수도 있죠. 감염관리에 엄청나게 문제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징표잖아요. 그런데 그 기회를 또 무시한 거예요." - 사망한 신생아 부모

그렇다면 이상 증상이 나타난 때로부터 약 5시간 동안 신생아실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과연 아이들은 적절한 의료적 조치를 받았을까? 이에 대해 다큐는 의문을 제기한다. 다큐에 따르면 당시 신생아실 전담 의료진은 10여 명이 넘었지만 무단으로 자리를 이탈한 의료진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불과 다섯 명 정도의 의사, 그것도 전공의 1년차와 3년차의 의사들이 몇십 명의 신생아들을 돌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부모들은 만약 첫 면회 당시 '의료진의 말에 따라 병실을 나오지 않고 윽박 질러서라도 의료진을 닦달했더라면 아이들의 목숨을 살리지 않았을까' 하고 뒤늦은 후회의 눈물을 흘린다.

아이들의 죽음 부른 요인들,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25일 방송된 KBS <추적 60분> '이대 목동 병원 사건의 진실'편 중 한 장면

25일 방송된 KBS <추적 60분> '이대 목동 병원 사건의 진실'편 중 한 장면 ⓒ KBS


다큐가 보여주는 정보에 의하면, 문제는 오히려 당시의 이상 증상을 보인 상황 이전에 있었다. 직접적으로 아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건 지질 영양제의 분주라는 관행이었지만, 정작 주목해야 할 건 미숙아들에게 지질 영양제를 주입해야 하는 상황 자체라고 다큐는 지적한다.

대부분 경미한 증상에 그치지만 면역력이 떨어지는 신생아나, 미숙아들에게 치명적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 로타 바이러스. 당시 신생아들 아기들 16명 중 13명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었다는 것이다. 로타 바이러스로 인해 장염에 걸린 아이들이 설사로 인해 영양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공급되는 것이 지질 영양제이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을 두고, 일각에서는 '퍼펙트 사건'이라 한다고 한다. 즉, 더러운 가운, 치킨 등을 신생아실에서 시켜먹는 감염에 무지한 환경, 의료수가를 핑계로 하나의 주사제를 나누어 공급하는 '분주'의 관행, 그리고 지질 영양제와 같은 변질되기 쉬운 주사제를 상온에 오랜 시간 방치해 두는 불철저한 의료 행위, 현장에서 이탈한 의료진, 코드 블루 상황에 대한 적절하지 못한 대처', 이 모든 것들이 아귀처럼 맞물려 4명의 신생아들에게 죽음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원인을 초래한 당사자로 지목된 의료진이나 병원 누구도 이 사건에 대해 법적으로나 도덕적인 책임을 지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 다큐에서 의료진은 책임을 지는 대신 변호사를 통해 법적 책임을 피해갈 생각만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의료계 인사들은 특권적 사고 방식에 사로잡혀 있거나 관행을 핑계로 댈 뿐이다. 아이들이 4명이나 죽었지만 정작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심지어 '미숙아에겐 흔히 생길 수 있는 이벤트'라는 말로 변명까지 한다. 이에 부모들은 말한다.

"의사들이 정말 최선을 다했지만 죽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러면 의사들한테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죠. '최선을 다해주셨군요. 감사합니다'라고.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의료 사고가 일어났을 때 유가족들은 그 원인에 대해서 찾아갈 수 있는 통로 자체가 없다는 거예요." - 사망한 신생아 부모

여전히 특권은 기세 등등하고, 책임은 멀다. 지각있는 의료계 인사들은 안타까워 한다. '관행'이라는 편의를 제쳐두고, 우리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이대 목동 병원 사태의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또다시 이와 같은 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25일 방송된 KBS <추적 60분> '이대 목동 병원 사건의 진실'편 중 한 장면

25일 방송된 KBS <추적 60분> '이대 목동 병원 사건의 진실'편 중 한 장면 ⓒ KBS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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