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의 가사들이 간직한 심리학적 의미를 찾아갑니다. 감정을 공유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의미까지 생각하는 '공감'을 통해 음악을 보다 풍요롭게 느껴보세요. - 기자 말

왠지 사랑을 시작해야만 할 것 같은 계절이다. 곳곳에 벚꽃이 피고 새로운 생명의 기운이 온 세상에 가득 차는 봄은 사랑을 시작하기에 매우 좋은 계절이다. 때문에 봄에 발표되는 노래들 중엔 사랑의 시작과 관련된 노래들이 많다.

올 봄 발표된 많은 노래들 역시 '사랑의 시작'을 담고 있다. 그런데 그 중 유독 다르게 들리는 노래가 있다. 바로 2014년 히트곡 '썸 '(작사 정기고 민연재 제피 에스나 릴보이/작곡 김도훈 제피 에스나)을 정기고와 함께 불렀던 소유가 지난 3월 발표한 신곡 'My Blossom'(작사·작곡 박우상)이다.

4년 전 소유는 분명, '썸'에서 사랑을 시작하지 못해 애태우고 있었다. 그런데 올 봄엔 완전히 다른 태도로 사랑을 꽃피우겠다며 'blossom'을 노래한다. 왜 사람들은 사랑을 시작하기 전 '썸'을 타는 걸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썸'을 넘어 'blossom'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썸 타는' 이유

 지난 2014년을 강타했던 소유&정기고 '썸' 앨범 커버 이미지.

지난 2014년을 강타했던 소유&정기고 '썸' 앨범 커버 이미지. ⓒ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사랑을 시작하면 마음이 설레고 기쁨으로 가득할까? 적어도 '썸 타는' 기간 동안에는 아니다. 소유와 정기고가 함께 불렀던 노래 '썸'에 의하면 이 기간 동안엔 '가끔씩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나'고 '텅 빈 방 혼자 멍하니 뒤척이는' 시간을 보낸다. 때로는 '잠이 들 때까지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들고' 연락이 없는 그녀 혹은 그를 기다리며 애를 태우기도 한다. 왜 분명 누군가가 좋아졌는데 설레고 즐겁기 보다는 짜증도 나고, 멍도 때리고, 쓸데없이 휴대폰을 보며 시간만 보내는 걸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두렵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두렵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심리학적으로 보면, 연애는 다른 사람을 자신의 자아 안으로 받아들이고, 동시에 자신을 내어주는 일이다. 이는 자신이 그동안 견고하게 쌓아온 자아의 변화를 예고하는 엄청난 일인 것이다.

우리가 자라면서 구축해 온 자아에는 어린 시절 충족되지 못했던 욕구들을 스스로 충족시키기 위해서 혹은 사회적 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쌓아온 자기 나름의 다양한 방어기제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이런 내가 구축해온 방어기제들을 해제하고 그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때문에 누군가에게 호감을 가졌을 때 사람들은 좋으면서도 동시에 경계를 하게 된다. 혹시 이 사람에게 내 마음을 열었다가 어린 시절 해결하지 못했던 상처들을 다시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아닌지 두려운 것이다. 마음을 열어 보이고 싶으면서도, 아직은 닫아걸고 싶은 모순된 마음이 함께 있으니 짜증이 나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랑을 시작할 때 느끼는 두려움에는 '상처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외에 '애정욕구를 거절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유명한 욕구 5단계 이론에서 '애정 욕구'를 생존욕구와 안전욕구 다음으로 충족되어야 할 매우 기본적인 욕구로 보았다. 이에 따르면 사람은 생존할 수 있을 만큼의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고 신체적 안전만 확보되면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갖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것, 즉 나의 사랑하는 마음을 거부당하는 것은 자신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 매우 두려운 일이 된다.

때문에 '썸' 속 화자는 '매일 아침 너의 문자에 눈을 뜨고 하루 끝에는 니 목소리에 잠들고 파. 주말에 많은 사람 속에서 모란 듯이 널 끌어안고 싶어'라고 자신의 마음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표현하는 것은 미룬다. 대신 '여전히 친구인척 또 연인인척 행동하는 모습을 전부다 돌이켜 생각할수록 너의 진심이 궁금해지는 걸'이라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추측하느라 애를 태운다. 또 '너 솔직하게 좀 굴어 봐' '피곤하게 힘 빼지 말고 어서 말해줘'라고 자신보다 상대방이 먼저 마음을 표현해주기를 재촉한다. 먼저 말했다가 거절당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사랑을 꽃피우기

그런데 이렇게 애태우면서 '썸'을 타던 소유의 노래가 올 봄엔 완전히 달라졌다. 신곡 '마이 블라썸'의 화자는 '어떤 마음인지 항상 헷갈리는 네가 오늘은 왠지 할 말이 가득해 보여'라고 말한다. 분명 이번에도 사랑을 시작하는 중이다. '무슨 고민이 그리 많은지 괜히 더 궁금해져. (또 난) 티 나게 너의 눈치를 봐'라고 노래하는 걸 보니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는 것도 여전하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상대방의 마음을 추측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면서 상대방이 먼저 마음을 표현하기를 기다리는 대신 당당하게 그를 불러낸다. '이 거리로 나와. 집 앞이야 나와. 하루를 책임질게. 대신 저녁 사기'라고, '너 아직은 나와 어색하겠지만 벚꽃이 흩날리는 날 함께하면 좋겠어'라고 먼저 마음을 열어 보인다. 그러자 '썸'에서 사랑을 시작할 때 짜증이 나던 그 마음은 사라지고 '빌딩에 가려진 좁은 회색의 하늘도 핑크빛 물든 바다처럼 예뻐'보이는 행복한 마음상태가 된다. '아직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남아있지만' 스트레스를 받는 대신 '너와의 시간'을 보내면서 재충전하기를 원한다.

나아가 '나도 모르게 네 손을 꼭 잡아버렸네. 말이 없는 우리 둘'이라며 마음이 이끄는 대로 자연스럽게 행동한다. 아마도 '말이 없는 우리 둘'에겐 조금 어색한 순간이었겠지만, 이후엔 서로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벚꽃이 흩날리는 거리를 손잡고 걸었을 것이다. 4년 전 '썸'만 타던 소유의 노래 속 화자는 'My Blossom'에서 완전히 달라져 사랑을 시작하게 됐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썸'에서 '블라썸'으로 나아가는 방법

 소유 신곡 'My Blossom'의 앨범 커버 이미지.

소유 신곡 'My Blossom'의 앨범 커버 이미지. ⓒ 스페이스오디티


'썸'에서 진정한 사랑의 시작으로 나아가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나 자신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다.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 자라면서 겪어온 환경들이 지금의 나를 어떻게 형성했는지에 대해 차근차근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사랑을 시작하는 데 애태웠던 이유는 자라면서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 혹은 거절당할까봐 두려워서라고 스스로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동시에 이런 상처들이 내게 있지만, 지금은 더 이상 무력한 아이가 아니라는 걸, 어린 시절 내게 큰 영향을 미쳤던 사람들로부터 나는 이제 스스로를 보호하고 거리를 둘 수 있는 성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다음으론 내 마음에 들어온 상대방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다. 지금 내가 호감을 갖고 있는 그 사람은 지난 시절 내게 상처를 주었던 어른들과는 분명 다른 사람이다. 또한 성인이 되어 만난 지나간 사랑의 대상과도 다른 사람임을 명심해야 한다. 성인기에 비슷한 사랑의 패턴을 반복하는 것은 나의 충족되지 못한 욕구와 기대, 어릴 적 상처를 보상받고 싶은 마음을 상대방에게 투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 충분히 성찰한 후 자신의 상처와 두려움을 알아차리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면 나의 충족되지 못한 욕구를 상대방에게 투사하지 않을 수 있다.

사랑은 '힘 겨루기'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사랑이 '힘겨루기'가 아님을 명심하는 것이다. 흔히 사랑을 하면 상대방에게 다 내어주고 양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많은 연애의 패턴들을 보면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것'이라는 논리가 성립한다. '썸'타는 시기에 먼저 고백하는 것은 나의 자존심을 깎아 내리는 '지는 것'이 된다.

'썸'타는 시기를 넘어 본격적인 연애를 시작한 후에도 상대방에게 서운한 느낌이 들거나, 기념일 등을 챙기는데 민감해지는 것은 '내가 더 많이 사랑받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힘겨루기'가 아니다. 상대방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나를 내어주는 과정을 통해 자아를 확장하고 나와 상대방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성장해가는 것이다.

물론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상처받을 가능성이 조금 더 높긴 하다. 먼저 고백하고 거절을 당하거나 상대방이 하는 작은 말들에 마음을 다칠 확률이 높아지니 말이다. 하지만 명심할 것은 성장하는 쪽은 '상처받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상처를 주는 쪽은 아프지 않기 때문에 무엇이 잘못됐는지 생각해보지 않는다. 하지만 상처를 받은 쪽은 아프기 때문에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상처받은 쪽의 마음은 성장하게 되고, 이는 앞으로 보다 진정한 사랑을 가능하게 한다. 결국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성장하는 것이다.

지금 '썸'을 타고 있는가? 아직도 상대방의 연락을 기다리고 신경전을 벌이며 나른한 봄날 설렘과 짜증, 우울 사이를 오고가며 시간을 소비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차분히 나를 돌아보고 상대방의 고유성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리고 사랑은 힘겨루기가 아님을 마음에 새겨보자. 과거의 상처들을 이해하고, 과거와 현재를 구분할 줄 알며, 사랑하는 사람이 더 성장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실천한다면, 상대방의 반응이 어떤 것이든 성장하는 나를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과정들이 한 번에, 몇 시간의 성찰로 이뤄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고민을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진정한 사랑과 성장에 한 걸음 가까워질 수 있다. 생명으로 가득한 봄. 사랑하는 이와 손을 잡고 벚꽃 길을 걷거나 혹은 성장하는 기쁨을 누릴 것인지, 상처받을까봐 두려워 망설이며 신경전을 벌이다 벚꽃이 모두 져버린 후 후회만 할 것인지는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다만 기억할 것은 4년 전 '썸' 보다 지금 'My Blossom'의 화자가 훨씬 더 편안하고 행복해 보인다는 점이다.

소유&정기고 '썸'
가끔씩 나도 모르게 짜증이나
너를 향한 맘은 변하지 않았는데
혹시 내가 이상한 걸까
혼자 힘들게 지내고 있었어
텅 빈 방 혼자 멍하니 뒤척이다
티비에는 어제 본 것 같은 드라마
잠이 들 때까지 한번도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들고
(중략)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
니꺼인 듯 니꺼 아닌
니꺼 같은 나
순진한 척 웃지만 말고
그만 좀 해
너 솔직하게 좀 굴어봐
니 맘 속에 날 놔두고
한 눈 팔지 마 너야말로
다 알면서 딴청 피우지 마
피곤하게 힘 빼지 말고
어서 말해줘 사랑한단 말이야

소유 'My Blossom'
빌딩에 가려진
좁은 회색의 하늘도
핑크빛 물든
바다처럼 예뻐 보여

아직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남아있지만 (오 난)
너와의 시간이 필요해

달콤한 기분이고 싶을 때
제일 먼저 네가 떠오르네

이 거리로 나와
집 앞이야 나와
하루를 책임질게
대신 저녁 사기

너 아직은 나와
어색하겠지만
벚꽃이 흩날리는 날
함께하면 좋겠어

왜 그러는데
자꾸 웃기만 해
근데 웃는 게 참 예쁘다
나도 모르게
네 손을 꼭 잡아버렸네
말이 없는 우리 둘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송주연 시민기자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참고 도서] 김혜남 저 <나는 외롭다고 아무나 만나지 않는다> 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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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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