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인들에게 월드컵이란 '꿈의 무대'다. 출전하는 자체만으로 축구인생에 길이 남을 영광이 된다.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에 나가기 위하여 전 세계에서 내노라 하는 선수와 감독들이 열정을 불태운다. 하지만 월드컵이 모두에게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남는 것은 아니다. 영광의 이면에는 그만한 책임과 부담도 따른다. 잘 할 때는 세상의 환호를 모두 품에 안은 듯하지만 못할 때는 어마어마한 비난도 감수해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월드컵에서의 추억이 지우고 싶은 일생일대의 악몽이나 트라우마도 남는 경우도 많다.

한국축구도 어느덧 월드컵 단골손님이 됐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부터 2018 러시아월드컵까지 9회 연속 월드컵 본선진출에 성공하면서 한국축구는 무수한 월드컵의 '영웅'들도 배출했지만 한편으로 '미운 우리새끼'들도 남겼다. 그들 역시 좋든 싫든 한국축구 역사의 한 페이지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1994 미국 월드컵-황선홍의 '똥볼'

'전설의 시작' 황선홍은 한국축구 월드컵 도전사에서 '국민 욕받이'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1994년 미국월드컵에 한국축구대표팀의 주전공격수로 나섰던 황선홍은 조별리그 전경기에서 모두 주전으로 나섰으나 극도로 저조한 골 결정력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축구만이 아니라 스포츠 종목을 통틀어서도 특정 선수에게 이 정도로 국민적 비난이 쏟아진 경우는 유례가 없는 사건이었다.

특히 볼리비아와의 2차전에는 무수한 찬스를 얻어내고도 번번이 마무리에 실패하면서 0-0으로 비기며 첫 승에 실패했다. 가장 많은 슈팅을 날린 황선홍은 당시 그야말로 '역적'으로 전락했다. 당시 황선홍의 슈팅 대부분이 골대를 한참 벗어나 하늘로 치솟으면서 '똥볼'이라는 조롱을 당했다. 한국은 결국 2무 1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면서 볼리비아전은 가장 통한의 승부가 되고 말았다. 황선홍은 독일과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만회골을 넣으며 체면을 세웠으나 기뻐할 여유도 없었고 오히려 스스로를 자책하는 듯한 괴성을 지르기도 했다.

조별리그 최종전인 독일전에서 어설픈 위치선정과 수비실수로 전반에만 세 골을 내주고 교체된 주전 골키퍼 최인영도 있었지만 대회 내내 황선홍의 존재감이 워낙 압도적이었던(?) 탓에 상대적으로 묻혔다. 황선홍은 훗날 월드컵의 후유증으로 한동안 대인기피 증세를 보이기도 했을 만큼 큰 충격을 받았다고 술회한 바 있다. 황선홍은 은퇴를 앞다고 출전한 2002년 한일월드컵 폴란드전에서 선제 결승골을 넣으며 8년 전의 한을 풀고 명예회복에 성공할 수 있었다.

1994 미국월드컵은 2002년 한일월드컵 이전까지 한국이 사상 첫 16강에 가장 근접했던 대회로 평가받는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은 한국이 32년 만에 본선에 처음으로 나선 무대였고,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은 3전 전패로 허무하게 마감하며 누가 더 잘하고 못하고를 따질 상황도 아니었다. 그에 비하여 미국월드컵은 스페인-독일 같은 강호들을 상대로 선전하면서 한국축구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기대도 컸기에, 아쉬운 결과에 대한 실망감이 간판 공격수인 황선홍에게 유독 쏟아진 면도 컸다.

1998 프랑스월드컵-하석주의 '골넣고 퇴장'

'가린샤 클럽'이라는 용어가 있다. 간단히 말해 월드컵에서 골 넣고 퇴장당했던 선수들을 묶어놓은 것이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왼발의 마법사' 하석주가 한국 선수로는 유일하게 가린샤 클럽에 가입하며 천당과 지옥을 오르내렸다. 조별리그 첫 경기 멕시코전에서 하석주는 전반 28분 세트피스 상황에서 상대 수비수 몸에 맞고 굴절되는 행운의 프리킥골로 한국의 '월드컵 사상 첫 선제골'을 기록했다. 당시 조 편성상 한국은 첫 경기 멕시코를 반드시 이겨야 16강 진출을 노려볼 수 있었기에,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골이기도 했다.

하지만 골을 넣고 불과 3분뒤 하석주는 멕시코 라몬 라미레스에 백태클을 걸다가 경고 없이 바로 레드 카드를 받고 퇴장당했다. 이 판정은 한동안 논란이 되었는데 FIFA에서 이 대회부터 선수보호를 위하여 백태클 금지규정을 강화하면서 하석주를 일종의 '본보기'로 삼았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대회 기간동안 하석주보다 더 위험한 백태클을 저지른 경우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경고 없이 바로 퇴장당한 경우는 드물었다는 점에서 형평성 논란은 피할 수 없었다.

하석주의 퇴장 이후 수적열세에 올린 한국은 급격한 체력저하로 후반전에만 3연속 실점하며 1-3 역전패했다. 다음 네덜란드전에서는 0-5로 대참패하며 차범근 감독이 현지에서 경질되어 중도 귀국하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석주의 퇴장이 불러온 엄청난 나비효과였다. 훗날 시간이 흘러 하석주는 은퇴 후에도 종종 "아직도 '그때 왜 그랬어요'하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며 씁쓸한 웃음을 짓기도 했다.

2010 남아공월드컵- 이동국의 '물회오리슛'

남아공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의 신화를 이뤄낸 허정무호는 토너먼트에서 우루과이를 만났다. 골키퍼 정성룡의 수비실책으로 루이스 수아레스에서 선제골을 내주고 끌려가던 한국은 후반 이동국을 투입하며 공격을 강화했다. 이동국에게는 1998년 프랑스월드컵 이후 12년 만에 돌아온 명예회복의 기회였다.

이청용의 동점골과 다시 수아레스의 추가골로 1-2로 뒤져 있던 경기 막판 이동국에게 결정적인 기회가 찾아왔다. 박지성의 예리한 침투패스에 이어 이동국이 수비 뒷공간을 절묘하게 파고들며 골키퍼와 일대일 찬스를 맞이했으나 애석하게도 너무 긴장한 탓인지 빗맞은 슈팅은 골키퍼를 맞고 빗물 젖은 그라운드 위를 힘없이 데굴데굴 굴러갔고 수비수가 골문 바로 앞에서 공을 클리어링하며 한국의 마지막 득점찬스는 무산되고 말았다. 한국은 그대로 16강에서 탈락했고 이동국에게도 이 장면이 월드컵에서의 마지막 순간이 됐다. 한일월드컵을 통해 유종의 미라도 거뒀던 황선홍에 비하여, 이동국은 지금도 월드컵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비운의 선수'로 남게 됐다.

남아공에서 월드컵의 추억을 찜찜하게 마무리한 또 다른 선수는 김남일이 있다. 한일월드컵의 진공청소기로 명성을 떨쳤던 김남일은 2010년에는 주전에서 밀려 교체멤버로만 출전했는데 조별리그 최종전 나이지리아전에서 2-1로 앞선 후반 수비를 굳히기 위하여 투입되었다가 '대형사고'를 쳤다. 문전 근처에서 볼을 먼저 잡아내고도 빨리 걷어내지 않고 머뭇거리다가 등 뒤에서 쇄도한 나이지리아 선수에게 공을 빼앗기고 급한 마음에 '백태클'을 걸어버린 것.

한국은 김남일의 실수로 페널티킥을 내줬고 경기 종반까지 마음을 졸여야 했다. 간신히 무승부로 경기가 끝나며 한국은 16강 진출에는 성공했지만 김남일은 나이지리아전이 월드컵에서 마지막 출전경기가 되었다. 경기 후 성난 일부 팬들의 극심한 비난으로 아내와 가족들까지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2014 브라질월드컵-박주영의 '따봉'

홍명보 감독이 이끈 2014년 브라질월드컵 대표팀은 '박주영으로 시작되어 박주영 때문에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때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공격수로 꼽혔던 박주영은 2011년 아스널 입단 이후 장기간 주전경쟁에서 밀리며 경기감각이 극도로 떨어진 상황이었고 '병역문제'를 둘러싼 부적절한 처신까지 겹쳐 여론에서도 이미지가 바닥까지 추락한 상태였다.

하지만 홍명보 감독은 '한국에 박주영을 대체할만한 공격수가 없다'고 주장하며 특혜 논란까지 감수하고 월드컵에 발탁했다. 박주영은 조별리그 러시아전과 알제리전에 잇달아 원톱으로 선발출전했으나 우려한 대로 공격포인트는커녕 슈팅도 제대로 시도하지 못하는 처참한 경기력을 선보이며 '월드컵에서 최악의 모습을 보인 공격수 중 한명'으로 남게 됐다. 오히려 교체멤버로 투입된 이근호와 김신욱 같이 저평가받던 K리거들이 득점과 제공권 장악 등에서 기여한 것과 대조를 이뤘다.

박주영이 브라질월드컵에 남긴 유일한 하이라이트 장면은 러시아전에서 이청용의 절묘한 스루패스를 놓친 뒤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순간뿐이었다. 당시 축구팬들은 박주영의 월드컵 활약상을 정리하며 "오늘도 0골, 1따봉을 기록했다"라며 풍자할 정도였다. 벨기에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는 결국 선발명단에서 제외되었다. 하지만 경기 후 선수들이 월드컵 탈락으로 눈물 흘리며 안타까워하고 있는 와중에 웃으며 그라운드를 배회하는 모습이 사진으로 포착돼 또 팬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박주영은 이후 아스널에서 방출통보를 받았고 대표팀에서도 오점으로 남으며 사실상 '흑역사'로 남게 됐다.

그밖의 피해자들

축구해설가 신문선은 2006 독일월드컵 스위스전이 낳은 숨은 피해자다. 신문선은 스위스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두 번째 실점을 허용할 당시 심판의 오프시이드 판정에 의문을 제기하던 타방송의 축구해설가들과 달리 유일하게 "오프사이드가 아니다. 심판의 판정이 옳았다"고 소신발언을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아 해설직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월드컵마다 선수 이상으로 욕을 먹는 것은 바로 감독이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을 이끌었던 차범근 감독은 아시아 예선때만하더라도 국민적 영웅이었으나 정작 본선에서 멕시코-네덜란드전 참패로 현지에서 경질되어 최종전을 치르지 못하고 중도 귀국하는 수모를 당했다. 이후 축구계 내부문제를 폭로했다가 협회로부터 수년간 자격정지를 당하는 등 축구인생에 가장 많은 아픔도 겪었다.

축구대표팀 역대 최장수 사령탑이었던 허정무 감독은 가장 저평가받은 지도자이기도 하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국내 지도자로는 최초로 원정 16강의 신화를 일궈냈지만 허 감독은 '박지성 덕분에 이겼다', '그 호화멤버로 고작(?) 16강밖에 못 갔다'는 부당한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재임 당시에는 '허접무'라는 조롱을 당하기도 했지만 이후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물려받은 감독들의 난맥상을 통하여 허정무호 시절이 한국축구의 마지막 황금기로 재조명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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