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트롱 아일랜드> 포스터.

영화 <스트롱 아일랜드> 포스터. ⓒ Yanceville Films


1992년 4월 7일, 19세 백인 마크 라일리가 쏜 총에 맞아 24세 흑인 윌리엄 포드가 살해당했다. 윌리엄은 무장하지 않은 상태였다. 마크는 정당방위를 주장했다. 일반 시민 23명으로 구성된 대배심원단은 마크의 손을 들어줬고 기소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 대배심에서 있었던 일들은 헌법 조항에 따라 기밀에 부쳐졌다. 윌리엄의 가족은 윌리엄이 시민으로서의 누려야 할 권리와 법의 정의로운 심판을 인종차별이 앗아갔다고 외친다.

보통 범죄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는 각종 증거와 법의학적 견해 등을 내세우며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백인이 쏜 총에 흑인이 희생당한 사건을 다루는 영화 <스트롱 아일랜드> 역시 일련의 범죄 다큐멘터리처럼 사건을 재검토하는 노선을 취한다. 그러나 영화는 증거를 이야기하기 보단 사건 전후로 흐르는 두 가지 감정, 시스템을 향한 분노와 가족의 슬픔에 시선을 맞춘다.

총을 쏜 건 백인인데, 왜 피해자의 행적만 조사했을까

<스트롱 아일랜드>에서 사건의 핵심을 알려줄 만한 사람들, 이를테면 대배심원이나 담당 형사, 검사 등은 인터뷰를 거절한다. 사건 일체를 발설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윌리엄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힐 방법은 없다. 대신에 영화는 새로운 각도에서 범죄 보고서를 쓴다. 바로 인종차별이다.

윌리엄의 가족과 친구들은 사건이 일어난 직후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다고 입을 모은다. 윌리엄과 마크는 자동차 접촉 사고 이후 수리 문제로 몇 차례 다툼을 벌였다. 수사를 진행하던 경찰은 가해자에겐 관심조차 주지 않고 도리어 윌리엄의 행적에 주목한다.

경찰은 윌리엄이 마크와 만났을 때 진공청소기를 던지고 차 문을 걷어찬 점을 끄집어내며 범죄기록조차 없었던 그를 괴물로 몰아간다. 당시 대배심에 증인으로 출석한 윌리엄의 어머니는 전원 백인으로 구성된 23명의 대배심원에 대해 이렇게 기억한다.

"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게 다 느껴졌다. '흑인 여자가 또 자식 교육을 망쳐놓고 남에게 덮어씌우려고 여기 왔구나.'"

<스트롱 아일랜드>는 윌리엄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뿌리 깊은 인종 차별의 역사를 조명한다. 윌리엄의 할아버지는 호흡곤란으로 병원에 실려 갔으나 백인 대기실이 아닌, 유색인 대기실에서 대기하다가 결국 사망했다. 윌리엄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흑인 차별 정책 일색인 남부에서 탈출하여 미국 뉴욕주 남동부에 있는 롱아일랜드로 이주한다.

이곳에서도 인종 분리 정책은 존재했다. 백인이 권력을 장악한 현실에서 흑인은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아버지가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여 롱아일랜드 교외로 이주하였으나 이곳은 '스트롱 아일랜드(롱아일랜드의 별명)'가 아니었다. 인종 차별로 얼룩진 역사를 돌아보는 과정에서 분노는 어느덧 질문으로 바뀐다. 만약 흑인이 백인에게 총을 겨누었다면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객관적이진 않아도 공감하게 되는 이유

 영화 <스트롱 아일랜드>의 한 장면.

영화 <스트롱 아일랜드>의 한 장면. ⓒ Yanceville Films


연출을 맡은 얀스 포드는 윌리엄의 친동생이다. 그녀는 "저는 화가 난 게 아닙니다. 다만, 다른 누군가 제 오빠 윌리엄이 누구였는지 왈가왈부하는 건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녀는 가족과 친구를 통해 오빠가 꾸었던 장래희망을 들려주고 선행을 밝힌다. 오빠는 괴물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스트롱 아일랜드>는 한쪽의 의견만을 반영하였기에 객관성이 결여돼 보인다. 철저히 주관적인 입장에서 사건을 돌아본다. 가족이 입은 상처, 죄책감 등이 녹아 있어서 개인적인 에세이에 가깝다. 개인의 심리를 표출하기 위하여 영화는 몇 가지 연출 기법을 활용한다.

영화는 얀스 포드를 화면에 담는 장면에서 극단적인 클로즈업을 썼다. 배경과 피부색엔 공히 '검정'이 강조되었다. 색 자체에 감도는 무거움, 두려움, 슬픔, 암흑, 공포, 죽음, 분노, 좌절은 사건의 의문과 인종 차별의 부당함을 증폭시키는 효과를 일으킨다.

영화의 끝자락엔 카메라가 세상을 거꾸로 바라보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유색인종이 겪었던 푸대접을 은유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어둑어둑한 하늘은 밝아졌지만, 여전히 새벽이 오지 않았다는 점은 현실의 시계가 어디쯤 왔는지를 상징하는 대목이다.

지난 5일(현지 시각) 열린 2018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트럼프 시대의 근심을 드러냈다. 작품상 후보에 오른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겟 아웃><쓰리 빌보드><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다양한 방법으로 차별을 묘사했다. 영화 <덩케르크>는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영화 <다키스트 아워>는 지도자의 덕목을, 영화 <더 포스트>는 언론의 기능을 다뤘다.

<스트롱 아일랜드>는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 후보에 올랐던 작품이다. 영화는 미국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비춘다. 윌리엄 가족의 슬픔은 곧 사회의 비극이다. 혹자는 정당한 재판을 통해 이뤄진 결과가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또는 공허한 외침이 아니냐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해답은 무엇이냐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어렵사리 자신의 아픔을 고백하고 사회를 향해 용감한 질문을 던지는 <스트롱 아일랜드> 같은 영화가 우리 사회에 더 많이 필요하다.

목소리는 그 자체로 가치 있고, 이들이 하나씩 쌓여 거대한 움직임으로 변한다.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만약 흑인이 백인에게 총을 겨누었다면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우리는 해답을 이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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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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