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포스트>의 한 장면.

영화 <더 포스트>의 포스터. ⓒ CGV아트하우스


'의회는... 언론 또는 출판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평화로운 집회의 자유 및 정부에 대한 탄원의 권리를 막는 어떠한 법도 제정해서는 안 된다.'

미국 수정헌법 1조에 담긴 이 법령은 곧 이 나라의 건국이념을 상징하는 조항이다. 권력을 견제하며 동시에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권리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 대부분이 보장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 <더 포스트>는 가장 기본적인 이 원칙에 뿌리를 둔 드라마다.

세계 패권 싸움의 중심에 있던 미국은 과연 정의와 평화의 수호자였을까. 소련과의 경쟁, 베트남 전쟁 등의 과정에서 불거진 수많은 잘못과 오류를 우리 역시 잘 알고 있다. 매카시즘으로 대표되는 광적인 반공주의가 지배했던 때였다. 각종 연구 자료도 이런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데 도움이 됐겠지만, 가장 기본적이면서 즉각적인 파장은 언론보도를 통해 이뤄졌다. 해당 영화가 바로 이 지점을 다뤘다.

타협하거나 바꿀 수 없는 것들

역사를 바꾼 여러 특종이 있었지만 <더 포스트>는 '펜타곤 페이퍼 특종', 즉 트루먼,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 등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어떻게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개입을 지시했고, 어떻게 국민을 기만해왔는지 보도한 <워싱턴 포스트>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줄거리만 봐서는 관객들에게 익숙한 치열한 기자들의 무용담으로 보이지만, 영화는 범위를 넓혀 해당 언론사의 사주 캐서린 그레이엄(메릴 스트립)의 행적까지 다룬다.

이야기는 크게 두 축이다. 경쟁지이자 당시 미국을 대표하는 메이저 언론으로 꼽히던 <뉴욕 타임스>의 최초 보도에 자극받은 <워싱턴 포스트> 기자들의 고군분투, 그리고 경영난과 자신을 견제하는 이사진 틈에서 결단을 내린 사주의 심리묘사다. 기자들을 진두지휘 하며 취재를 지시하고 사주와 때로 대립각을 세우는 편집장 벤 브레들리 역은 톰 행크스가 맡았고, 아버지와 남편에 이어 가업을 이어받은 사주 캐서린 그레이엄 역은 메릴 스트립이 연기했다.

 영화 <더 포스트>의 한 장면.

영화 <더 포스트>의 한 장면. ⓒ CGV아트하우스


종합지, 각종 지역 잡지에 비해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회사를 놓고 벤과 캐서린은 좋은 기사로 수익성을 담보하고 독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원칙엔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벤은 기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면 되지만 경영자로서 캐서린은 회사의 주식을 상장시켜 투자자들을 끌어 모으고, 사교계에 발들임으로서 여러 유명 인사를 만나야 하는 위치라는 사실. 

영화의 초중반은 <뉴욕타임스>에 특종을 뺏기고 각성하는 벤과 편집국 내 기자들의 모습과 경영자로 활약하는 캐서린의 모습이 병렬적으로 채워져 있다. 전자는 기자들이 주인공이었던 여러 영화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익숙한 문법으로 풀었는데 캐서린의 이야기를 다루는 점에선 <더 포스트>의 접근이 흥미롭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일선에 빗겨가기 일쑤였던 당시 분위기를 조금씩 상기시키는 것. 영화는 "여성이 연설하는 건 개가 뒷다리로 걷는 것과 같다"고 말한 영국 문호 사무엘 존슨의 말을 빌리거나, 노골적으로 캐서린의 발언을 잘라먹는 이사진들을 묘사하며 그가 느꼈을 법한 심리적 충격을 후반부까지 쌓아간다. 덕분에 극중 캐서린은 종종 대중 앞에 연설하거나 중요한 결정을 두고 극도로 신경이 예민해진다.

두 마리 토끼

'언론은 권력이 아닌 독자들에게 귀 기울여야 한다'는 정언명제와 여성 경영인의 삶을 조망하려는 <더 포스트>의 시도가 과연 먹힐까. 

기밀문서 폭로 보도가 국익에 심각한 해악을 끼친다며 헌정 사상 처음으로 보도 금지 소송을 건 닉슨 정부의 실정을 언급하면서 영화는 점진적으로 진실에 접근해 가는 기자들과 정부의 압력과 이사진의 압력, 나아가 기자들의 희망 사이에 갈등하는 경영자의 심리까지 아우른다.

구성이 허술했다면 캐릭터 간 균형이 흔들리기 십상이었을 터. 배우들의 화려하지 않지만 묵직한 연기도 한몫했지만 애초에 각본 자체의 완성도가 매우 높았다고 추론할 수 있다. 알려진 대로 <보스톤 글로브> 기자들의 특종을 그린 영화 <스포트라이트> 각본으로 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받은 조쉬 싱어가 이번 작품에 참여했다.

 영화 <더 포스트>의 한 장면.

영화 <더 포스트>의 한 장면. ⓒ CGV아트하우스


다시 말하면 영화는 특종과 경영 성공이라는 결과가 아닌 이들의 신념, 그 신념 사이에서 벌어지는 각종 갈등에 집중했다. 1등 신문이 아닌 지방 중소 매체로 치부되던 <워싱턴 포스트> 이야기만으로도 극적일 것인데, 보이지 않지만 높고도 단단했던 당시 남성 중심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낸 캐서린의 이야기가 중심에 세워져 영화가 더욱 깊어졌다. 

영화 후반부가 그래서 더 뭉클하게 다가온다. 정부의 보도 금지 요청에 대한 대법원 판결 직후 취재기자들이 몰려들던 <뉴욕 타임스> 경영진과 편집장을 잡아주던 카메라가 조용히 인파들 틈으로 사라지는 캐서린으로 옮겨가는 장면이 있다. 요란하게 터지는 플래시, 심경을 묻는 기자들 무리 구석엔 캐서린을 향해 따뜻한 눈빛으로, 응원의 눈빛으로 지지 의사를 표하는 많은 여성들이 서 있었다. 이들의 대사는 전혀 없었지만 편견을 이겨낸 사람과 그 아픔을 공감하며, 자신의 역할을 해내겠다는 무언의 다짐 등이 그 장면에 녹아 있었다.

자칫 그럴싸한 작은 웰메이드 영화에 그칠 수도 있었다. 물론 이 선택도 의미가 크다. 하지만 스티븐 스필버그가 메가폰을 잡으면서 영화는 일종의 상업적 스케일까지 확보했다. 철저한 고증을 거친 <워싱턴 포스트> <뉴욕 타임스> 사무실과 각종 거리 풍경, 배경 음악이 적절하게 녹아 있다.

한 줄 평 : 재미와 의미를 갖추면서 여성주의에 대한 진정성도 놓지 않았다
평점 : ★★★★★(5/5)

영화 <더 포스트> 관련 정보
연출 :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 메릴 스트립, 톰 행크스
각본 : 리즈 한나, 조쉬 싱어
수입 : CJ엔터테인먼트
배급 : CGV아트하우스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 116분
개봉 : 2018년 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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