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은 한 달이 30일도 안 되고 구정 연휴도 끼어 있다. 그래서 사표를 쓰려면 2월 이후에 쓰라는 말도 있다.(있나?) 그렇지만 긴 구정연휴가 모두에게 즐거운 기간은 아니다. 답답한 귀향길 교통체증에 설음식 준비까지. 오히려 "빨리 출근해서 쉬고 싶다"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육체적 피로감보다 정신적 피로감도 쏟아지는 것이 명절이다. "취직은 어떻게?", "결혼은 언제?", "아이는 언제?"라는 형식적 안부도 뒷골 댕기게 만든다.

만일 당신에게 명절 질문공세를 피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또 하나의 문제가 남았다. 긴 연휴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다행히도 동계 올림픽이 한창이지만, 그것도 한두 시간. 게다가 함께 시간을 보내줄 연인도, 친구도 없다면? 눈물을 머금고 미드에 도전해 보자! 미드 초보가 권하는 4종의 미드! 4일은 연휴 동안 매일 하나씩?

[추천작①] 4차 산업혁명이 궁금해? 그럼 블랙미러를 봐

첫 번째 소개할 미드는 '블랙미러'다. 엄밀히 말해 이 드라마는 미국 드라마가 아니라 영국 드라마로 시작했다. 2011년과 2013년 영국 채널4가 제작했던 강력했던 '블랙미러' 시즌 2편(각 시즌마다 3편의 에피소드가 들어 있다)이 성공하자, 2016년 미드의 강자 넷플렉스에서 '블랙미러'를 다시 내놨고, 벌써 시즌4까지 나왔다(각 시즌 별로 6편의 에피소드가 포함되어 있다).

영상은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세련되지고 있지만, 그래도 역시 첫 편의 충격은 강렬하다. SNS에 기초한 여론의 풍토가 어떻게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일어나게 만드는지 실감나게 보여준다.

블랙미러 시즌1 첫편 블랙미러를 본 사람이라면 이 장면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지 잘 알 것이다. 충격의 블랙미러 1편

▲ 블랙미러 시즌1 첫편 블랙미러를 본 사람이라면 이 장면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지 잘 알 것이다. 충격의 블랙미러 1편 ⓒ 영국 Channel4


이 '블랙미러'가 특히 신선한 것은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이 그리는 가까운 미래의 풍경에 '환상특급'이나 '기묘한 이야기'를 섞어 놓았다는 점이다. 허황되지만 4차산업혁명이 만들어 낼 시대에서는 왠지 가능할 것만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매 편마다 각기 다른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순서대로 볼 필요도, 꼭 다 봐야 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한 번 보면 '블랙미러'의 매직에 빠져 헤어 나오기 어렵다. 유사한 느낌의 장편 드라마로는 역시 영국 채널4에서 제작한 감정을 가진 인공지능 로봇 이야기, '휴먼스'(시즌 3이 곧 나온다)가 있다.

* 주의. '터닝메카드W 블랙미러의 부활(2016년)'이나 '블랙미러의 저주: 언프렌드(2017년)'와 헷갈리지 말 것.

[추천작②]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원조: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감빵 가본 사람은 말했다. 거 참 리얼하다고. 얼마 전 종영한 tvN의 <슬기로운 감빵생활> 이야기다. 그런데, 미드에서 감빵생활을 가장 리얼하게 보여 준 건 프리즌 브레이크가 아니다. 바로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Netflix. 2013년 시즌 1시작)이라는 미국 여자 교도소를 그린 이야기다.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그냥 교도소 드라마인 줄 알고 봤다가 만나게 된 웰메이드 젠더 드라마. 가운데 오렌지 색 죄수복을 입고 있는 이가 주인공 채프먼이다.

▲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그냥 교도소 드라마인 줄 알고 봤다가 만나게 된 웰메이드 젠더 드라마. 가운데 오렌지 색 죄수복을 입고 있는 이가 주인공 채프먼이다. ⓒ Netflix


이 드라마는 한 여자가 과거 마약 사건에 휘말려 뉴욕 연방 교도소에 들어가면서 시작한다. 백인이며 상류층인 주인공은 다양한 사연을 가진 다양한 인종이 모여 있는 교도소에서 별의별 사람들을 만나 좌충우돌한다. 밤새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울고 싶은 밤의 연속. 그런데 교도소는 사실 사회와 고립된 특별한 공간이 아니라 사회의 민낯을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축소판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드라마가 가지는 리얼리티다. 이 드라마에는 우리가 TV를 틀면 볼 수 있는 미녀들만 나오는 것도 아니고, 한국식 심의 규정을 준수(?)하지도 않는다. 주인공 채프먼은 상류층 백인이지만 레즈비언이다. 등장인물들의 뚱뚱한 몸매는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죄수 간의 인간관계와 사건 사고, 이를 둘러싼 죄수와 간수, 감옥 밖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이 섬세한 연출로 그려진다.

멋있고 잘생긴 사람들이 왕자, 공주 흉내를 내는 드라마에 지나치게 익숙해져 있다면 재미없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언니들의 웰메이드 젠더 드라마에 빠지고 싶다면 도전할 만하다. 올해 시즌6이 나왔다.

[추천작③] 총쏘고 범인 잡는 리얼한 게 좋아? 그럼 '나르코스'지

매직컬 리얼리티라는 말이 있다. 현실이라고 믿기에는 너무도 현실 같지 않은, 마술 같은 현실을 말한다. 에스코 파블로바의 일생을 그린 '나르코스'를 보고 있으면 이게 정말 실화를 바탕으로 한 건지 아리송해 진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와 실제 인물과의 싱크로율을 본다면 연출가가 얼마나 고증에 신경썼는지 알 수 있다.

나르코스 미국 마약단속국 요원들이 컬럼비아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를 잡는 이야기. 시즌2까지가 에스코바를 잡는 이야기고 시즌3부터 다른 카르텔로 넘어간다.

▲ 나르코스 미국 마약단속국 요원들이 컬럼비아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를 잡는 이야기. 시즌2까지가 에스코바를 잡는 이야기고 시즌3부터 다른 카르텔로 넘어간다. ⓒ Netflix


주인공 파블로 에스코바는 전설적인 콜롬비아 마약왕이다. 이 드라마는 에스코바가 그 총명한 머리와 과감한 전략으로 어떻게 마약왕에 올랐고, 어떻게 몰락했는지를 그린다. 드라마 곳곳에서 나오는 다큐멘터리 화면이 이 사건들이 창작의 산물이 아니라 실제 사건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민항기를 폭파하고 대법원에 탱크를 몰고 가는 장면을 보면서 '정말 저런 일이 있었어?'를 연발하게 될 것이다. 최근 톰 크루즈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영화 <아메리칸 메이드>에도 에스코바가 등장했다.

이 드라마는 단지 재미보다 미국의 앞마당으로 불리는 남미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실들을 흥미롭게 공부할 수 있다는 덤도 있다. 그런데 미국 드라마가 종종 그렇듯이 우리나라에서는 19금 딱지를 붙일 만한 장면이 종종 나온다. 주로 팔이나 다리를 자르는 잔인한 장면이다. 드라마가 심하다고? 구글에 마약 카르텔만 검색해봐도 드라마보다 몇 배나 잔인한 실제 사진이 쏟아진다.

시즌 2까지는 파블로 에스코바를 다루고, 시즌 3은 또 다른 마약 카르텔인 칼리 카르텔을 다룬다. 역시 재미는 시즌2까지. 늘 그렇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제발 따라하지 말자.

[추천작④] 난 아무 생각 없이 보는 액션물이 좋아 : 디펜더스

뭘 그리 심각하고 심오하냐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선과 악이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고, 히어로가 악당을 막 쳐부수는 스트레스 해소용 드라마를 원한다고? 물론 있지. 각기 다른 드라마의 주인공들을 몇 번이나 우려먹는 할리우드식 사골 드라마 중 하나. 바로 마블의 '디펜더스'(Netflix. 2017년 8부작)다.

디펜더스 끝까지 뽑아 먹는 마블을 사골국물식 드라마. 4편을 엮어 디펜더스를 만들었다. 왼쪽부터 제시카 존스, 아이언피스트, 데어데블, 루크 케이지.

▲ 디펜더스 끝까지 뽑아 먹는 마블을 사골국물식 드라마. 4편을 엮어 디펜더스를 만들었다. 왼쪽부터 제시카 존스, 아이언피스트, 데어데블, 루크 케이지. ⓒ Netflix


어벤져스 시리즈를 보노라면, 미국 사람들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도대체 이 시리즈 하나로 영화를 몇 편이나 만드는 건가? 각각의 스토리마다 서너 편씩, 가끔 다 묶어서 또 서너 편씩... 거기서 끝이 아니다. 드라마로도 만든다. 이런 문어발식 확장의 선두주자가 바로 마블.

디펜더스 시리즈는 마치 어벤저스처럼, 각각의 주인공에 대한 미드 시리즈를 묶어 만든 것이다. 디펜더스에 묶인 드라마는 아이언 피스트, 데어데블, 제시카 존스, 루크 케이지 등 4편이다. 각 드라마의 등장인물은 서로 얽히고설키다가 디펜더스에서 만났다. 어벤저스의 파생상품들이 꽤 괜찮듯, 디펜더스의 각 주인공이 활약하는 개별 드라마도 잘 만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디펜더스를 이끄는(?) 아이언 피스트!

할리우드의 오리엔탈리즘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아이언 피스트'는 재벌아들이 비행기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자신은 신비의 수도원에서 15년간 도를 닦아 '강철 주먹'이 된 후,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의 죽음에 얽힌 음모와 싸운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15년 동안 도를 닦고 동양적 가르침을 늘 강조하는 주인공 대니 랜드는 퍽 하면 흥분하고 짜증을 내서 일을 그르치며 손발이 오그라드는 액션을 한다. 그나마 이 드라마를 살린 건 조연으로 나온 콜린 윙(제시카 헨윅)이다.

어쨌거나 아이언 피스트만 빼면 다른 파생상품, 그러니까 데어데블, 제시카 존스, 루크 케이지 모두 호평을 받았다. 디펜더스를 보고, 마음에 드는 주인공을 골라 원작을 봐도 좋다.

그래도 연휴는 가족과?

그래도 연휴는 가족이나 연인과 보내는 것이 좋다고? 그것도 좋지만 가끔은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아니, 누군가와 함께 보내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혼자 감내해야 하는 시간이 있다. 그런데 막상 혼자 있으면 외로워지는 이 딜레마. 미드가 긴 연휴에 잠시 동안의 친구가 되어 줄 수 있을까? 있다고? 그런데 이 눈물은 왜 흐르는 것일까? ㅠㅠ

미드 블랙미러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나르코스 디펜더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