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드라마 <별나도 괜찮아> 홍보 이미지

홍보 이미지 미국 드라마 '별나도 괜찮아' ⓒ 넷플릭스


넷플릭스를 이용한 지 1년이 훌쩍 넘었다. 두루 알려진 것처럼 원하는 시간에 보고 싶은 것을 직접 골라 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지만, 이용 시간을 적절히 관리하지 못하면 일상에 지장을 줄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단점도 있다. 개인적으로 큐레이팅 서비스의 유용성은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다. 시스템이 추천하는 콘텐츠를 선택하기보다 새로 등록된 콘텐츠 목록을 확인하고 볼 만한 것을 고르는 쪽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설날 연휴를 맞아 부담 없이 '몰아보기' 할 수 있는 미국 드라마 세 편을 추천해 본다. 두 편은 회당 30분 내외 재생시간을 가진 시트콤이고, 나머지 한 편은 회당 길이가 그 절반 수준인 웹드라마다. 이 작품들은 미국 사회에서 소수자로 인식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각각 자폐 질환이 있는 소년과 그 가족, 쿠바 출신 이민자 가정, 한 젊은 게이 커플 등의 일상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다. 넓게 보면 이들 모두 가족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설날이라는 명절의 의미와 잘 들어맞기도 한다.

총 8회분으로 구성된 <별나도 괜찮아(ATYPICAL)>는 자폐 질환이 있는 고교 졸업반 샘(키어 길크리스 분)이 풋사랑을 경험하게 되는 과정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여기에 자폐 질환이 그와 가족의 삶에 미친 영향, 자폐 질환이 있는 사람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 등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된 크고 작은 사건들이 배치되어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전반적으로 밝고 경쾌하게 진행되는 이 작품의 매력은 자폐 질환이 있는 샘과 그의 일상을 지극히 평범하게 묘사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자폐 질환을 소재로 했던 여타 이야기들과 달리 그는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물론 이는 그가 '고기능' 자폐 스펙트럼 환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샘은 이 드라마에서 단지 사고와 행동이 독특한 사람 정도로 그려진다. 풋사랑을 경험하면서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는 인물이다.

그 과정에서 이 작품은 자폐 질환이 있는 사람들이 공감 능력이 없다고 믿는 일반적인 인식을 보기 좋게 깨주기도 한다. "가끔 난 화가 난 사람을 알아볼 수 없지만 일단 그 사실을 알고 나면 깊이 공감해요", "누가 괴롭히면 다 알아요. 이유를 모를 뿐이죠", "사람들은 날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안 해요" 등 적절하게 등장하는 주인공 샘의 독백이 깊은 여운을 준다.

이민 가정 그린 <원 데이 앳 어 타임>, 게이 커플 다룬 <이스트 사이더스>

 미국 드라마 <원 데이 앳 어 타임>

미국 드라마 '원 데이 앳 어 타임' ⓒ 넷플릭스


<원 데이 앳 어 타임(ONE DAY AT A TIME)>은 쿠바계 미국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몸소 만들어가며 삶을 일구는 한 이민 가정의 일상을 담은 드라마다. 간호사로 일하며 가족을 돌보는 싱글 맘 페넬로페(저스티나 마차도 분)를 중심으로, 쿠바인이라는 긍지가 대단한 그의 어머니, 모범생에다 똑 부러지는 성격인 중학생 딸, 손이 많이 가는 장난꾸러기 '초딩' 아들까지, 이들 네 사람이 한솥밥을 먹고 대소사를 함께하며 울고 웃는 에피소드들로 구성됐다.

쿠바계 미국인이라는 설정 덕분에, 이 드라마에는 춤과 노래를 사랑하는 쿠바인들의 낙천적인 인생관이 강하게 묻어 있다. 흥과 웃음이 넘친다는 뜻이다. 또한 카스트로 정권이 들어서면서 미국으로 망명했던 '보트 피플'의 역사가 곧 이들의 가족 사이이다 보니, 이를 둘러싼 쿠바인들 간의 반목과 아픔이 엿보이기도 한다.

특히 이민 가정이라는 특수성에서 오는 문화 충격, 전통 계승과 새로운 풍조를 둘러싼 신구 세대 간의 갈등, 인종 차별 등이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데, 여기에 한 부모 가정이라는 설정까지 더해져서 페넬로페와 그의 가족이 이 문제들을 과연 어떻게 풀어 가는지, 그 과정에서 미국사회가 어떻게 비치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상당하다. 최근 공개된 두 번째 시즌까지 총 26회분의 에피소드가 나와 있다.

<이스트사이더스(EASTSIDERS)>는 게이 커플인 사진작가 칼(킷 윌리엄슨 연기)과 소설가 톰(반 핸시스 연기)의 일과 사랑, 성장 등 이들의 소소한 일상을 담은 청춘 드라마다. 3개 시즌 총 21회분 에피소드가 제작됐다. 두 사람의 사연을 중심으로, 이들이 속해 있는 게이 커뮤니티를 둘러싼 각종 사건과 이슈들이 등장하고, 두 주인공이 그 커뮤니티 밖에 있는 가족 및 친구들과 교류하고 유대를 강화하는 이야기까지 아우른다.

두 주인공의 연애사가 이야기의 뼈대를 이루는 한 축이다 보니, 이들과 주변 인물들이 연인을 두고 바람을 피우거나 사소한 일로 다투거나 만남과 결별을 반복하며 관계를 이어가는 등 전형적인 연애담들이 등장한다. 그 과정에서 사랑과 연애에 관한 다양한 관점들과 고민들이 드러나는데, 여기에 게이 커뮤니티만의 차별적인 특성이 존재하는지 여부는 직접 보고 판단하는 것이 좋겠다.

편견 짚으며 사회 돌아보는 작품, 한국에서도 더 많이 볼 수 있기를

 미국 드라마 <이스트사이더스> 홍보 이미지

홍보 이미지 미국 드라마 '이스트사이더스' ⓒ Go Team Entertainment


이 드라마의 미덕은 내부자의 시선으로, 게이라는 정체성에서 비롯된 고민뿐만 아니라 이성애자인 동세대 청년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두 주인공의 고민들을 현실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세 번째 시즌 다섯 번째 에피소드를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이 시대 청년들의 존재론적인 불안을 고통스러운 시각으로 포착하고 있다. 당장의 생활고, 꿈과 현실의 괴리, 불확실한 미래 등에 대한 두 주인공의 고민과 두려움이 먹먹하게 배어있는 마지막 시퀀스가 백미다.

이상 세 작품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사회에서 소수자로 인식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이런 소재를 다룬 여타 이야기들과 달리, 안이한 감상주의나 온정주의가 없다. 일방적으로 이들을 투사나 희생자, 약자로 묘사하지도 않는다. 이 작품들이 철저히 내부자의 시선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 이야기들은 주인공들이 갖고 있는 소수자로서의 특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청자들이 이들에게서 차이점보다 공통점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든다. 이들을 이상하고 중뿔난 존재들이 아니라 '나'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사람들로 인식하게 된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특정한 존재를 향한 편견은 많은 사회문제를 만든다. 한국사회에도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이런 편견들이 다수 존재한다. 이를 깨는 데는, 최대한 많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 이상으로 좋은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해하는 만큼 편견의 크기는 작아지기 마련이다.

넷플릭스에는 상대적으로 이런 이야기들이 많다. 상업성이나 보편성이 떨어진다는 등의 이유로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것들 말이다. 유감스럽게도 그 중에 한국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것 또한 현실이다. 한국사회에서도 이 글을 통해 소개한 세 작품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 이야기를 참신한 시각으로 만든, 큰 부담 없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즐거운 설날 연휴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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