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 16개 지역MBC는 서울MBC와 함께 무너졌습니다. 지역 현장에서 취재한 세월호 참사, 사드 배치 등은 제대로 방송되지 못했고, 서울MBC 편집자들의 구미에 맞는 뉴스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김재철, 안광한, 김장겸 사장이 내려 보낸 낙하산 사장의 놀이터가 되기도 했습니다.

지역MBC 잔혹사를 소개합니다. 김장겸 사장이 해임되고 최승호 신임 사장이 부임했지만,  지역MBC에는 아직 김장겸 사장이 내려 보낸 낙하산 사장들이 남아있습니다. MBC가 완전하게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려면, 지역MBC도 살아나야 합니다. '지역MBC 잔혹사'는 안동MBC 강병규 PD가 연재합니다.

지난 1월 15일, 서울 MBC에서 월급만 축내던 무보직 이사 최기화씨가 이사직에서 해임됐다. 그는 김장겸 체제 MBC에서 기획본부장이었으며, 노동조합이 발행한 민실위 보고서를 찢어버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보도국장 시절 자신을 취재하기 위해 전화한 기자에게 폭언과 욕설도 서슴지 않았던 인물이다. 마지막 남은 김장겸 체제 이사 최기화씨의 해임으로 서울MBC는 본격적으로 정상화의 길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지난 1월 19일, 부산·안동·포항·경남MBC 임시 이사회에서 결정될 예정이었던 임원 해임 안건은 그 최기화씨에 의해 부결되었다.

불과 1주일 전, 최기화씨와 함께 지역MBC 비상임 이사직을 유지해오던 백종문 전 MBC 부사장은 임원 해임을 위한 이사회 소집에 응하겠다는 답변을 해왔고, 현직 대표이사들 또한 같은 취지로 해당 지역MBC의 이사회 소집에 동의했다. 덕분에 정족수를 채워 이사회가 열렸지만, 이날 이사회에 참석한 것은 백종문 비상임이사가 아닌 최기화씨였다.

 김장겸 사장 체제에서 임명됐던 최기화 전 기획본부장.

김장겸 사장 체제에서 임명됐던 최기화 전 기획본부장. ⓒ 언론노조 MBC본부


이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지역MBC 이사회의 구조 때문이다. 이사회는 보통 4명의 이사로 구성되는데, 관례적으로 본사 부사장과 기획본부장이 두 자리를 맡고, 남은 두 자리는 지역 대표이사와 상무이사가 맡는다. 이는 서울에서 부사장과 기획본부장이 바뀌더라도 즉각 교체되는 것이 아니다.

임원 교체는 주주총회에서 2/3 이상의 승인을 거쳐야 하는데, 임시주총은 이사회 의결이 있거나 주주 100%가 동의해야 열릴 수 있다. 때문에 소주주 동의를 구하지 못한 부산(72.27%)·안동(98.96%)·포항(95.86%)·경남(90.10%)MBC와 서울MBC 지분이 53.05%에 불과한 제주MBC에서는 전임 사장 체제에서 임명된 최기화 전 기획본부장과 백종문 전 부사장의 비상임 이사직이 유지되고 있다.

문제는 사장 해임을 위해서는 이들 비상임 이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임원 해임을 위해서는 참석 이사 과반의 찬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사회에 참석한 최기화 전 기획본부장과 해임 당사자인 지역 대표이사들은 반대표를 던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사장 해임에 협조하겠다던 상무이사들도 눈치를 보느라 기권에 그쳤다. 재적 네 명에 참가 세 명, 그중 반대 둘, 기권 하나. 결국 사장 해임 안건은 부결되고 만 것이다.

이사회에서 사장 해임안이 통과되면 오는 2월 6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사장 해임 절차를 마무리할 예정이었지만, 지금으로선 정기 주주총회가 열릴 날만을 기다려야 한다. 부산MBC는 2월 21일, 안동·포항MBC는 오는 3월 2일, 경남MBC는 3월 7일 정기 주총이 열릴 예정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서울MBC 지분이 2/3를 넘기 때문에 주총이 열리기만 하면 대주주의 권한으로 이사 해임 안건을 상정하고 통과시킬 수 있다. 하지만 하루가 시급한 상황에, 이들 지역MBC 구성원들의 속은 타들어 가고 있다.

여기에 본사 지분이 53.05%에 불과한 제주MBC는 2대 주주인 남창기업이 협조하지 않고 있다. 현재 제주MBC 구성원들은 여전히 제작 거부를 이어가는 중이고, 본사 역시 소주주 설득 작업을 진행 중이지만 순탄치 않다. 파업도 끝나고 사장도 바뀌었지만, MBC 지배 구조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MB의 MBC 장악, 'MB 낙하산' 김재철의 지역MBC 장악

MB정권 방송장악의 포문을 열었던 김재철 전 MBC 사장. 그는 지역에도 수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대표적인 사례로 무용가 J씨에 대한 특혜성 지원 의혹을 들 수 있다. 김재철 전 사장은 울산MBC와 청주MBC 사장 재임 당시 울산 썸머페스티벌, 청주MBC 창사 기념 '경인년 새해맞이 효 잔치' 등에 J씨를 출연시키라는 압력을 행사했다. (참고자료 : 제대로 뉴스데스크 호외 - '수상한 무용가 밀어주기' (2014.4.17) https://youtu.be/VxB3JeTKfGM)

 김재철 전 MBC 사장은 무용인 J씨가 출연한 뮤지컬 <이육사>를 전폭 지원했다.  김 전 사장은 J씨 지원에 동참한 지역MBC 임원에게 포상하기도 했다.

김재철 전 MBC 사장은 무용인 J씨가 출연한 뮤지컬 <이육사>를 전폭 지원했다. 김 전 사장은 J씨 지원에 동참한 지역MBC 직원에게 포상하기도 했다. ⓒ 언론노조 MBC본부


지역을 거쳐 서울MBC 사장으로 부임한 2010년 2월 이후에도 무용가 J씨에 대한 특혜 지원은 끊이지 않았다. MBC 창사 51주년 특집 뮤지컬 <이육사>는 삼성, 포스코 등 대기업과 지방자치단체가 총 12억을 협찬했고 안동MBC가 주관이 되어 올려졌던 공연이다. J씨가 대표로 있는 기획사에서 9억 원의 제작비를 가져갔고, 예술 총감독, 안무, 주연 등을 독차지했던 무용가 J씨 개인에게만 무려 4천만 원이나 지급되었다.

2012년 파업 당시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가 발행한 총파업특보 제71호에 따르면 김재철 전 사장이 2005년 울산문화방송 사장 취임 이후부터 2012년 3월까지 약 7년 동안 MBC(지역MBC 포함)가 주최 또는 후원한 공연 가운데 J씨가 출연하거나 기획한 공연이 확인된 것만 모두 27건이었으며, 확인된 지급 금액만 16건, 총 20억 2천만 원에 이른다. 확인되지 않은 11건의 지급 금액까지 포함하면 금액 규모는 훨씬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MBC 관련 공연에 J씨가 출연하거나 J씨가 MBC로부터 대형 공연을 수주한 배경에는 한결같이 김재철 전 사장의 개입과 지시, 입김이 있었다. 지역MBC 사장들은 자신의 목숨 줄을 쥐고 있는 자의 지시를 거역하기 어려웠고, 직원들에게는 '김재철의 명령'을 성실히 수행하라는 또 다른 부당 업무지시를 내렸다. 지역MBC 일부 보직자들은 그런 지시에 항의는커녕 맹종을 택하기도 했다.

복종에 대한 대가는 매우 컸다. 김재철 전 사장은 MBC 창사 50주년을 기념해 김태호 PD, 김영희 PD, 최일구 기자, 오상진 아나운서 등을 포상한 'MBC를 빛낸 51인' 명단에 J씨 부당 지원에 앞장섰던 안동MBC 부장과, 진주·창원 MBC 통폐합에 앞장섰던 인사를 포함시켰다.

지역MBC의 대주주는 서울MBC? 언론사에 적용된 기업 논리 

 지역MBC 사옥들

지역MBC 사옥들 ⓒ 전국언론노조


MBC 지배구조의 문제는 곳곳에서 드러났다. 공영방송인 MBC에서 일반 기업에서나 쓰는 '대주주'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과 지역MBC 모두 상법상 주식회사였지만, 네트워크체제의 태생부터 공영방송이었기 때문에 서울과 지역도 일반 기업에서의 수직적 관계가 적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김재철 전 사장이 내려 보낸 지역MBC 사장들은 '대주주의 권리'를 강조하며 본사에 복종했다. 경영 행위 모든 부분에서 '서울'의 뜻을 가장 우선적인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지역 출신 사장들도 마찬가지였다.

2012년 9월에는 본인의 해임을 위한 주총 소집을 거부하던 대구MBC 사장의 일시 공백 사태를 빌미로 '대주주' 서울MBC는 지역사의 정관까지 개정해버렸다. '유사시 지역MBC의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관을 변경한다'는 명목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지역MBC에 대한 완벽한 종속화'가 목적이었다. 이러한 상황에도 지역MBC 사장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임시 주총에서 정관 변경을 의결했다. 스스로의 권한을, 그 흔한 반대 의견 한마디 없이 포기하고 만 것이다. 대주주의 강력한 압박이 빚어온 결과였다.

2014년 3월에는 갑자기 지역MBC에 상무이사를 선임하기까지 한다. 당시 방송통신위원회는 지상파 재허가 심사 조건에 'MBC 본사의 지역MBC 이사 겸직 강화에 따른 독자적인 경영 저해'란 표현을 쓰며, 지역MBC의 독립경영 보장을 요구했다. 이전까지는 본사 겸직 임원 2인(본사 부사장과 기획본부장)과, 지역 대표이사로 구성돼 있는 지역이 많았는데, 지역에서 선임한 이사를 이사회에 포함시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본사는 지역MBC 통제가 약해질 것을 우려했는지 갑자기 '상무이사'를 추가해 4인 이사 체제를 만들었다. 지역MBC에 대한 통제 수단을 잃지 않으면서도 방통위의 재허가 조건을 충족시키는 방법으로 상무제를 부활시키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현재 지역MBC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통로는 대표이사가 아니라 이사회이다. 채용, 보유자금 사용, 인사, 조직개편 하물며 정기적인 임금 지급까지 지역MBC의 일상적인 업무 하나하나가 이사회를 거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총 4명의 이사 중 대표 이사를 제외한 2명의 비상임 이사는 본사 임원이 겸직하고 있기 때문에, 상무이사의 신설은 누가 봐도 허울뿐인 행위였다. 하지만 서울MBC는 대주주의 권한으로 이를 관철시켰다. 광주‧전남권과 대구‧경북권에는 이례적으로 공동 상무를 임명해 인사위원장과 광역화 추진 업무만 수행하도록 해놓고, 연간 3억이 넘는 비용 지출을 강요하고 있다.

김재철이 구축해 놓은 '서울MBC는 지역MBC의 대주주'라는 공고한 인식은 MBC뿐만 아니라 규제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까지 물들여 버렸다. 지난해 11월 대전 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제2차 지역방송발전지원계획 수립을 위한 공청회'에서 방통위는 '지역방송 지배구조 개선 유도'라는 신규 항목을 포함시켰다고 야심차게 발표했다.

하지만 방통위가 작성한 자료에는 '대주주와 지역방송 경영진과의 관계를 규정한 사항은 없음'이나 '지역MBC 사장을 대주주인 MBC 임원들로 임명함으로써, 지역방송사의 독립적인 경영을 저해한다는 우려가 제기된 바 있음'이라며 '서울MBC는 지역의 대주주'라고 버젓이 명기했다. 규제 기관 담당 공무원들의 인식 속에,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 시절에 만들어진 '민영화 프레임'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지역방송 현업자들의 강력한 문제제기로 본안이 발표될 때는 '대주주'라는 표현이 삭제되긴 했다. 하지만 규제기관 내에도 공영이 아닌 '민영의 논리'가 적용되어버리는 심각한 문제점을 야기했다. 뿐만 아니라 공직자들이 이에 대해 어떠한 문제의식도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욱 안타까울 뿐이다.

MBC 네트워크는 '6월 항쟁'의 산물 

 2012년 9월 10일, 언론노조 MBC본부의 '지역MBC 말살책동 김재철 사장 규탄 기자회견' 당시 모습.

2012년 9월 10일, 언론노조 MBC본부의 '지역MBC 말살책동 김재철 사장 규탄 기자회견' 당시 모습. ⓒ 언론노조 MBC본부


MBC 네트워크는 1987년 거대하게 소용돌이쳤던 6월 민주화 항쟁의 산물로 탄생했다. 1980년 군부 독재정권의 이른바 '언론 통폐합 조치'로 서울MBC의 주식은 KBS로 이관됐고, 동시에 지역MBC 주식도 서울MBC가 최소 51% 이상 소유하도록 했다. 각 지역방송 소유자들이 반강제로 자신의 주식을 '기부채납'하는 형식이었다. 지역MBC는 서울MBC에서 출자해 설립한 회사가 아닌 것이다.

1987년 KBS는 소유하고 있던 MBC 지분 70%를 공익 재단인 방송문화진흥회를 설립해 이관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지역MBC의 소유구조를 두고 사회적인 논의와 MBC 내부의 토론이 진행된다. 당시 결론은 통폐합 이전 사주들에게 지역MBC를 돌려주는 것은 공영방송 네트워크로서 MBC 위상 정립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방송문화진흥회 또한 정치적 중립 등이 우려되었기 때문에 각 지역MBC의 주식은 방문진으로 이관하지 않고 서울MBC에 남겨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이로써 현재와 같은 '방송문화진흥회 → 서울MBC → 지역MBC'로 이어지는 MBC계열사 체제가 이루어진 것이다.

당시 KBS처럼 전국을 하나의 법인으로 단일화하는 방안도 고려됐지만, 이는 각 지역MBC가 갖는 지역방송으로서의 역사와 독자성, 자율성을 지켜갈 수 없는 방안이라 판단되어 선택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지금의 MBC계열사 체제는 MBC 네트워크의 공영성을 구현하면서도 지역성과 다양성을 지킬 수 있는 최선의 방안으로 선택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도 지역MBC에 대한 서울MBC의 대주주로서의 권한은 매우 제한적이어야 한다. 지역MBC의 공익성과 공적인 조직운영을 살피는 '선의의 관리자'로서의 역할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

지난해 9월 <한겨레>에 의해 공개되었던 국가정보원의 방송장악 문건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은 궁극적으로 민영화로의 소유구조 개편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공영방송인 지역MBC를 단순히 주식회사로서의 성격으로만 규정해 통폐합을 추진하고 결국 민영화로 가려는 추악한 의도였다. 이처럼 지난 정권은 방송의 완벽한 장악을 목표로 소유구조 개편을 추진하였지만 3기 민주정부에서는 보다 올바른 방향으로의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지상파 방송사의 이사회 구성과 사장선임제도에 매몰되어 버린 지배구조 개선의 문제는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공영방송이 공적인 역할을 다할 수 있게, 지역방송이 지역에 좀 더 천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서 지역의 유구한 역사와 다양한 문화가 이어질 수 있도록 지역방송의 지배구조부터 바뀌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서울에 눈치 보지 않는 자율적인 결정과 독립적인 경영을 하면서 소외된 지역을 살피고 지역의 여론을 대변할 수 있도록 바른 역할을 지역MBC는 반드시 해내야 할 것이다. 그 길에 지역MBC의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크나큰 과제가 놓여있다.

* 강병규 PD는 1996년 안동MBC 프로듀서로 입사해 2005년~2007년까지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조직국장과 지역방송협의회 사무국장으로 일했습니다. 2011년~2012년은 MBC본부 안동지부장과 지역방송협의회 정책실장으로 활동하면서 김재철 퇴진을 위한 총파업 당시 정직 3개월 징계를 받았습니다.


지역MBC 잔혹사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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