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가 입수한 블랙리스트 문건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가 입수한 블랙리스트 문건 ⓒ 문화체육관광부


인디다큐와 인디포럼 등 독립영화제들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요주의 대상이었다, 민감한 작품을 공개한 전주국제영화제의 개최도시인 전주시 역시도 블랙리스트였다. 영화단체의 대표격인 한국영화제작가협회와 한국영화감독조합,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한국독립영화협회 등은 좌파 단체로 지목돼 주시받기도 했다.

지난 20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민관합동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이하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가 기자 브리핑을 통해 발표한 내용을 살펴보면,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한국영화, 특히 독립영화에 대한 탄압과 노골적인 배제가 실제 어느정도였는지 확인된다.

문체부 담당자는 국정원에 보고하고 지시를 받는 수준이었고, 당시 김세훈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은 본연의 역할 대신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해 부정한 심사 결과가 나오게끔 역할을 한 정황이 드러났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발표에 따르면, 블랙리스트는 2008년 8월 27일 만들어진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부터 2017년 7월 27일 서울중앙지법 제30형사부가 블랙리스트 사건 판결문에 첨부한 범죄일람표까지 모두 12건이다. 이명박 정권 때부터 박근혜 정권 때가지 다양한 형태의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명박근혜 정부, 12건 이상 블랙리스트 만들어

이 중 영화와 관련된 사안 중 눈에 띄는 것은 경찰도 블랙리스트 실행 과정에서 국정원, 문체부 관계자들과 함께 리스트 관련 정보를 주고받았다는 정황이 일부 문자메시지를 통해 드러난 부분이다

2015년 7월 1일 오전 9시 25분에 문체부 영상콘텐츠산업과 과장은 국정원 관계자들과 경찰청 정보국 경감에게 다음과 같은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어제 영진위 9인위원회에서 예술영화전용관사업 심의결과 지원 작품 편수를 당초 24편에서 48편으로 수정의결 되었습니다.(일부 위원 문제 지속제기) 사업구조는 변함없으며, 상영관에서 상영할 경우 지원받는 영화의 풀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진 부분에 대해서는 영진위에서 철저히 책임지고 관리할 계획입니다.'

3분 뒤인 9시 28분 국정원 관계자 중 한 사람은 문자메시지로 이렇게 문의한다.

'과장님! 영화단체 지원사업 중 인디다큐, 인디포럼 등 이념성이 강한 부분이 포함되어 있던데 어떻게 대처하실 계획이신지요?'

위 문자 메시지에 언급된 예술영화전용관사업은 연간 11~13억원 규모의 예산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천안함 프로젝트> <다이빙벨> 등 이른바 '문제영화' 상영 통제를 위해 2014년 4월 사업을 보류한 후 재공모를 실시했다, <천안함 프로젝트>를 상영한 대구 동성아트홀은 그해 9월 발표된 지원 대상에서 배제됐고 이후 사업 자체가 단계적으로 폐지됐다.

영진위는 이를 대신해 독립예술영화로 선정한 영화를 상영할 때 극장들을 지원하는 형식의 사업을 신설했다. 그러나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작품의 상영을 막기 위한 표현의 자유 억압조치라는 비판을 받았고, 이번 블랙리스트 위원회의 조사를 통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자백>도 국정원 지시로 심사 배제

 국정원 지시로 <자백>을 배제한 2016년 다양성영화지원사업 예비심사 결과

국정원 지시로 <자백>을 배제한 2016년 다양성영화지원사업 예비심사 결과 ⓒ 영진위


또한 국정원 정보관이 영진위를 통해 최승호 감독(현 MBC 사장)의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과 이영 감독의 성소수자 다큐 <불온한 당신>에 대해 배제 요구를 한 사실도 확인됐다. 국정원 간부는 <자백>, <불온한 당신> 등 문제영화 등에 대해 "그 영화들은 지원에서 배제되었으면 좋겠다"고 요구했고, 영진위 직원은 이를 영진위원장에게 보고해 결국 두 다큐영화는 지원 배제를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진상조사위에 따르면, 이 사건 관계자는 진상조사위 조사에서 "(최승호 감독의) '자백'이 가장 크게 문제가 되었던 것으로 안다"며 "시놉시스에 국정원을 비판하는 내용이 있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진술했다. 또한 "(배제된 사업은) 2015~16년 다양성영화 개봉 지원으로 기억한다. (영화 지원 배제는) 국정원이 요구했다"고 밝혔다.

실제 영화진흥위원회의 예비심사결과표를 보면 최승호 감독의 <자백>은 68.3점을 받아 70점 이상이어야 가능한 본심사 대상이 되지 못해 결국 지원을 받지 못했다. 이영 감독의 <불온한 당신>도 52점을 받아 탈락했다.

국정원의 요구가 당시 영진위원장에게 전달된 후 실행에 옮겨졌다는 것이다. 기준 점수 미달로 탈락한 것은 예전 이명박 정권 시절 이창동 감독의 <시>에 일부 심사위원이 0점을 줘 탈락시킨 것과 유사하다. 지난 정권에서 영진위의 지원 사업 심사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음이 확인되는 부분이다.

<불온한 당신>을 연출한 이영 감독은 "심증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것이 이렇게 밝혀지고 나니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국가정보원에서 직접적으로 영화를 언급하며 지원 배제를 종용하고, 그 요구가 실행되었다는 것은 심각한 정치적 검열이자 표현의 자유 침해 행위"라고 분개했다. 이어 "국가기관이 권력을 남용하여 표현의 자유를 훼손한 적폐를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면서 "앞으로 진행되는 진상조사 과정에서 모든 사실이 낱낱이 밝혀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화의 해방구 자임한 전주시도 블랙리스트

 지난 1월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문화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 규탄 시위를 벌이는 모습

지난 1월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문화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 규탄 시위를 벌이는 모습 ⓒ 성하훈


안산시와 성남시, 전주시 등 지자체들이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실도 확인됐는데, 블랙리스트가 정권에 반대하는 쪽은 광범위하게 배제했음을 드러내주고 있다. 이중  전주시의 경우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자백> 등 민감한 작품을 거침없이 상영한 데 따른 보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승수 시장이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전주국제영화제는 2016년 <자백>을 첫 공개하고 다큐멘터리상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이어 2017년에는 제작비를 지원한 <노무현입니다>와 사드 배치 문제를 비판한 <파란나비효과> 를 상영하는 등 '영화 표현의 해방구'를 자처했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블랙리스트 관련 자료인 '문화예술계 건전화로 문화융성 기반정비' 문건에 포함된 '좌파 문화예술계 주요 현황' 자료도 공개했다. 박근혜 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최초 문건으로 청와대 민정수석실 캐비닛에서 발견돼 '캐비닛 문건'으로 불리는 자료다. 2013년 3월 10일 경 박근혜 정부 출범과 동시에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당시 영화단체의 대표자 이름과 함께 주요 동향이 기록돼 있다.

주요 내용은 ▲문성근 명계남 등 주도 아래 작년 총선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주장하며 연대 활동 강화 ▲<江(강)원래 프로젝트>(4대강), '야만의 언론'(보수언론), <두개의 문>(용산사고) 등 시대고발성 독립영화제작 상영을 지원하며 반정부 활동전개 ▲최근 영화정책 5년 평가 포럼(1.22)을 개최하는 등 소통 부재 제자 강화 등 정부의 영화정책 비판활동을 강화하며 조직 단합 모색 등이다.

블랙리스트 자백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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