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밭고추는왜 옥상밭고추는왜_현태

ⓒ 서울시극단


'현태'는 그 누구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 취업난에 시달리고 기성세대의 한심한 눈총을 받는, 그러나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어 하는 청년 세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현태가 괴물로 변해가는 모습이나 고추를 먹고 눈물을 흘리는 등의 장면은 상징적으로 더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연극 <옥상 밭 고추는 왜>는 우리네 모습을 담았다. 농약을 치지 않고 진딧물 하나하나 손으로 잡으며 정성스럽게 키운 광자의 고추를, 현자는 몇십 개를 아무렇지 않게 딴다. 빌라 신축 논의에 눈엣가시였던 광자의 고추를 빼앗는 것도 모자라, 현자는 입에 담지 못할 욕설로 광자를 쓰러지게 만든다. 이를 알게 된 현태는 현자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결국에는 '누구를 위한 사과인지 알 수 없는' 사과를 받게 된다.

그 과정을 통해 현태는 무엇을 지키고 싶었던 것일까. 현태는 너무나도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이기에 다가가기 어렵지 않았지만 또 그만큼 어려운 인물이다. 그런 현태를 '현실 인물'로 관객들과 만나게 한 배우 이창훈을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났다.

옥상 밭 고추는 왜  옥상 밭 고추는 왜

ⓒ 서울시극단


<옥상 밭 고추는 왜>는 우리네 일상을 담은 연극

"애정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좀 복잡한 감정이 올라왔다. 대극장 무대도 서지만 개인적으로 소극장에서 관객들 만나서 소통하는 것이 더 익숙했다. 때문에 큰 무대에서 톤이나 움직임 등 나를 잡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첫 무대에 앞서 지난 13일 프레스콜에서 이창훈은 작품에 대한 진한 애정을 나타냈다. 떨림, 설렘을 넘어선 벅찬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옥상 밭 고추는 왜>를 향한 그의 남다른 감정은, 결국 이창훈 그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대본 봤을 때는 그렇게 어렵지 않아 보였다(웃음). 쭉쭉 읽히고, 무대에 오르면서 생각도 변하고 복잡한 것이 왔다 갔다 하더라. 실수도, 착오도 많았고, 무대에 함께 서는 인원도 많은데 나 때문에 행여나 연습이 지체되거나 하면 안 되니까. 내가 중심이 돼야 했고. 어려웠던 두 달 정도의 시간을 거쳐서 긴장한 상태에서 무대에 올랐다."

<옥상 밭 고추는 왜>는 일상 얘기다. 불특정대상을 향해 아무렇지 않게, 너무나도 쉽게 내뱉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누구를 향한 삿대질이 결국 자신을 향해 돌아오기도 한다. 무대가 아닌 곳에서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지만, 또 그만큼 그 감정을 쉽게 놓칠 수도 있다. 

"전달이 됐을지 모르겠는데, 관객들이 무조건 '싫다'라기 보다, 개인적으로는 연민을 갖고 '저 사람이 왜 그렇게 애를 쓸까'라고 생각하길. 극에서 보면 현태는 (현태 母의 말처럼)화를 세상에다 푸는 것일 수도 있고, 자격지심 대상을 잡아서 집착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단순히 그렇게만 보이면,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애매하다. 그래서 고민이 되고, 어떻게 풀어낼까 고민했다."

현자는 어찌 보면, 기성세대를 대변할 수도 있는 인물. "이 나라 만든 게 누군데" "누구 덕에 IMF를 견뎠는데" "별 것도 아닌 것들이 진짜로 노력한 사람에게 기대려고 하잖아" 등의 대사는 이를 나타낸다. 게다가 광자를 쓰러뜨리게 한 장본인이지만 "그깟 고추 때문에?"라면서 사과를 하지 않는다. 

"연습 초반에는 현자라는 인물이 밉상이었다. 극이 그런 얘기지 않나. 이율배반적이고. 원래 제목도 사회적인 뭐라고 딱 메시지를 규정하기 쉽지 않은 거 같다. 현태가 지인과 통화할 때, 현태 때문에 한 스태프가 잘리게 된다는 말을 듣지만 현태는 '그래서?'라고 응수한다. 어떻게 보면 이율배반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극 속 인물들이 모두 자기가 바라보는 시선을 나타낸다. 모두가 갇혀있다. 자신의 세상에 말이다. 현자는 자신의 욕망에 가장 솔직하고 진실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욕망을 정확히 알고."

한낱 고추 때문에 사단이 난다. 현자는 사과하지 않고, 광자는 떠나고. 그 고추 때문에 고추탈을 쓰고 사과 요구를 벌이고, 누군가는 눈물을 흘린다. 소중한 것을 잃는다. 누군가는 그 매운 맛에 눈물을 흘린다.

"분장해주시는 분이 과거에도 함께 작업했던 분인데 작품을 보고 물어보더라. 마지막 장면에서 현태가 옥상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 대해. 동교가 하니(현자의 강아지)를 풀어줬다는 사실을 모르고, 내가 집착한 것만 또 다른 광자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나는 또 다른 현자가 된 것이다.

인간성, 자존감 찾으려고 하는 과정에서 실패하고 무너지고, 이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과연 전해질까. 관객들에 따라, 현태 혹은 현자에게 이입될 수도 있다. 동교의 생활과 지친 삶에 대해 이입이 될 수도 있다. 현태의 눈물은 동교의 눈물 같기도, 현자의 눈물 같기도 하다. 그 눈물이 각자의 눈물을 합친 것이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현태가 방향성 잃고 우는 구나'가 아니라. 또 '삶은 이래야 한다! 이 세상은 이렇게 바라본다!'라는 메시지보다도, 중요한 무언가를 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라고 스스로에게 물음표를 던질 수 있는."

제대로 지질해져야 관객이 몰입할 수 있다

옥상 밭 고추는 왜  옥상 밭 고추는 왜_ 무대

ⓒ 서울시극단


이창훈의 말처럼 <옥상 밭 고추는 왜>를 보고 관객은 현태, 현자 혹은 동교에 자신을 이입할 수 있다. 그것은 관객들의 삶이나 지나간 과거, 경험을 통해 각기 달리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도드라지게, 현실적으로 그려진, 그러면서도 상징적인 인물 현태의 뼈대는 이창훈의 현실감 넘치는 연기 덕분이다. 앞서 연극 <갈매기> <춘천 거기> <형제의 밤><흑흑흑 희희희> <비 BAE> <데블 인사이드> 등 다수 작품을 통해 봐왔던 것처럼. 현태처럼 지질할 수 있는 인물까지 공감을 자아낼 수 있게 말이다.

"그 사람의 진실과 극이 흘러가는 과정에서 제대로 지질해져야 '사람 그대로를' 보게 되는 것 같다. 연기를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보게 되는, 감정이 훅 들어오는 감정. 예를 들어 라면을 뺏어 먹는 것이 지질한 행동이라고 했을 때 정말 열정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고(웃음). 껌 하나, 라면 한 젓가락에도 진심을 쏟는 것이다(웃음). 거대한 대상 앞에서 무력하고 작은 것에 집착하고 열중하는 거 같다. 나? 기본적으로 예민한 것 같긴 한데 진지하고 장난도 치고 그런다. 이런 장난을 쳐도 내가 갖고 있는 '중심축'이 있어, 흔들리지 않겠다는 생각이다(웃음)."

이창훈이 언급한 배우로서의 중심축은 과연 무엇일까.

"어릴 때 작업하던 것과, 과정을 밟아가는 지금을 봤을 때 연기하면서 수행하는 입장이다. 점점 경험을 쌓으면서 내가 해석하는 것과 바라보는 시선으로 고민을 하는 것. 내 얘기를 하게 되고,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되면 바라는 인물을 그리는 것과 욕망하는 것과 맞닿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다가가고, 배우로서, 사람으로서 재미를 찾아가는 것. 연기하면서도, 연기를 하면서 느끼는 일상의 삶에서도 자신감이 생기고 '내 얘기를 어떻게 하는 구나!' 배우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받아들이는지, 나를 이해하게 되는.  

나를 이해한다는 것이 욕망을 이해하는 것 아닐까. 자신이 원치 않는 것을 사회적인 입장 때문에 수행할 상황에서도, 싫은 일을 하더라고 나는 싫다는 감정을 인식하고, 그 이유를 찾게 되는 합리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현자의 사과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현태에게 '산다'라는 가장 기본적이지만, 기본적일 수 없는 '의미'가 다가간다. 자신의 존재를 알아가는 과정처럼 놓치면 삶이 무의미해질 수 밖에 없는 '산다'라는, '살아있다'라는 그 감정. 이창훈에게 '산다'라는 감정은 무엇일까.

"단순히 밥 먹고 배설하고 그런 것은 아니지 않나. 몇 년 전부터 그런 점에 대해 팟캐스트도 듣고 강연도 보고, 책도 읽는데, 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에 대해, 일상에서 어떻게 느끼고 생각할까...나로서 할 수 있는 것, 존재하는 것, 그런 것, 그런 삶이 내가 원하고 어울리는 삶이라는 생각이다.

작품 활동을 하다가, 집에서 쉬는 시간을 갖는다. 하지만 '그' 시간만을 누군가가 봤을 때는 '한심한 눈빛'을 발산할 수도 있다. 예전에는 그런 것들이 신경 쓰였다. 하지만 요즘에는 소파에 누워 TV를 보는 등 내 행복, 가치 있는 순간을 만끽하려고 한다." 

현태는 현자를 향해 광자에게 '사과'를 하라고 요구한다. 누구에게는 한낱 고추일 수 있지만, 광자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존재이기에. 어쩌면 삶의 이유일 수도 있는 고추임을 알기에. 이창훈에게 이러한 '고추'같은 존재는 무엇일까. 그 존재 역시 무대를 향한 감정과 이어졌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서, 재료에 대한 것에 관심이 많다. 공연 없이 쉬는 날에는 대형 마트로 떠난다. '무슨 요리를 만들까' 고민하면서, 이것저것 고르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게 좋다! 남들은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시간이 내게 큰 행복이고 안정감을 준다. 작을 수 있지만 내게 큰 의미다. 요리에는 순서가 있지 않나. 재료의 향을 내기 위한 과정이 있고, 연극이나 무대 등의 관계도 비슷한 것 같다." 

<옥상 밭 고추는 왜>는 결국 행복에 대해 묻는 작품

옥상 밭 고추는 왜  옥상 밭 고추는 왜

ⓒ 서울시극단


요리를 하는 것처럼, 작품 활동을 하면서 이창훈에게 즐겁고 남달랐던 시기가 있었다. 그 기억은 이창훈이 무대에 서는 '재미'와 '의미'를 더해줬다고.

"배우로서, 연기를 학습적으로 배워본 적이 없다. 무작정 시작했고, 바로 시작할 수 없었다. 세상에 대해 뒤틀려있는 현태의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연기의 재미다. 나만의 작업은 무의미하지 않나. 공통된 것, 그 울타리 안에서 '내가 연기를 하면서 이 시간을 재밌게 보낼 수 있을까?'라는 점을 염두하고 분석했다. 작품의 맥락 안에서.

4, 5년 전만 해도 즐길 수가 없었다. 모르니까... 악보를 알아야 피아노를 칠 때 재미를 느끼는 것처럼. 어느 날, 연습을 열심히 하고 무대에 나갔는데 무대가 그림으로 그려졌다. 대사 글자가 열매를 따먹는 느낌이었다. 대사로 연기하는 게 아니라, 열매는 먹는 그 느낌. 너무 즐거웠다. 그때 감정을 잊을 수 없다. 내가 즐거워야, 작품을 보는 관객들, 함께 하는 사람들이 즐겁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옥상 밭 고추는 왜>는 결국 '행복'이라는 감정에 대해 되묻는다.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떠한 길을 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놓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인지할 것은 어떤 것인지 재고하게 만든다. 이창훈이 생각하는 행복은 무엇일까.

"행복하자! 작품에 대해서, 어떤 방향으로 가려면 우리가 어디쯤 있는지 봐야할 거 같다. 졸업반이면 어느 방향으로 전선을 뛰어들지 현실 인식을 하고, 정서적으로 외부적으로는 내가 갈 때 일치하느냐 아니냐도 확인하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 <옥상 밭 고추는 왜>는 정답을 내리는 게 아니고 스스로가 어디쯤 왔는지 보고, 사회적 단면에 대해 바라보는, 뭔가 윤리와 도덕 등의 기본적인 것들이 우리 삶 어디쯤에 있을까, 생각할 수 있길 말이다. 

배우로서, 사람으로서 나는 점점 더 행복해지고 있다. 극 중 그런 대사가 있다. '돈을 조금씩 벌게 돼서. 차를 타게 돼서 단순히 사지육신이 건강해서 행복한 게 아니라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데 나다워진다는 느낌을 받으니 행복해'라는 것. 조금씩 행복감 같은 것을 느끼는 기분이 어쭙잖게 들어오는 거 같다. 작업을 하는데 스트레스를 받아 힘들다! 라는 감정은 '작품을 하는 것에 행복한 줄 알아!'라는 것처럼, 다른 차원의 행복이다. 어떻게 보면 행복한 것에 대해 감당할 공포와 두려움, 스트레스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행복을 잡을 수 없는 것 아닌가. 그 과정 안에 있음은 분명하다. 고로 나는 행복하다."

옥상밭 고추는 왜 이창훈 김광보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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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전문 프리랜서 기자입니다. 연극, 뮤지컬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 전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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