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이 사건 피해자입니다. 이 사건에 관심을 갖고 기자회견에 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이번 기자회견이 사건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는 기회가 되기를, 나아가 영화계의 관행 등으로 포장된 각종 폭력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4일 오전 11시 변호사회관 조영래홀에서 여성영화인모임 등을 비롯해 여러 영화·여성 관련 시민단체들이 주최한 '남배우A 성폭력 사건' 항소심 유죄판결 환영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현장에 피해자는 오지 않고 대신 피해자가 보낸 긴 편지가 대독됐다.

24일 오전 11시 변호사회관 조영래홀에서 여성영화인모임 등을 비롯해 여러 영화·여성 관련 시민단체들이 주최한 '남배우A 성폭력 사건' 항소심 유죄판결 환영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현장에 피해자는 오지 않고 대신 피해자가 보낸 긴 편지가 대독됐다. ⓒ 유지영


'남배우A 성폭력 사건 항소심 유죄판결 환영 기자회견'에서 피해자의 편지가 대독됐다. '남배우A 성폭력 사건'은 지난 2014년 4월 영화 촬영 중 사전 합의 없이 남자 배우가 여자 배우의 옷을 강제로 찢고 추행한 사건이다. 이 사건에 대해 지난 13일 2심 법원은 1심의 '무죄' 판결을 뒤집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40시간 성폭력 치료 강의 이수를 선고한 바 있다.

24일 오전 11시 여성영화인모임 외 여러 단체들이 공동주최한 '남배우A 성폭력 사건 항소심 유죄판결 환영 기자회견'은 2심 법원의 결정에 환영하고 피해 여성의 말을 전하는 자리였다. 또 이날 기자회견 자리에서 여러 관련 단체들은 연대 발언을 하며 피해 여성에 연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주최 측은 '남배우A 2심 유죄판결 환영한다' '그건 연기가 아니라 성폭력입니다' '피해자가 있는 영화 현장은 예술이 아니다'라는 메시지가 적힌 피켓을 들고 기자회견문을 낭독했다.

피해 여성 "연기를 빙자한 추행이었다"

"영화 촬영 현장에서 피고인으로부터 폭행과 추행을 당했습니다. 연기 경력 20년 이상인 피고인은 상대 배우인 제 동의나 합의 없이 폭력을 휘두르고 속옷을 찢었으며 상하체에 추행을 지속했습니다. 도대체 연기에 있어서 합의란 무엇인가? 나는 상대 배우의 신체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연기가 예견될 경우 사전에 상대 배우와 충분히 논의하고 동의를 얻는 것이 합의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피고인은 나와 합의하지 않은 행위를 했고 그것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는 '연기를 빙자한 추행'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중략)

외부 평가에 민감한 배우라는 직업의 특성상, 성폭력 사건으로 소송이 진행 중임이 알려질 경우 피해자임에도 매장당할 위험이 높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신고했습니다."

피해 여성은 현장에 나오지 않았지만 그의 말은 이 사건에 함께 연대하는 단체들을 통해 전해졌다. 해당 사건 변론을 맡은 조인섭 변호사는 이날 피해자가 편지를 통해 전달한 '합의'의 의미를 보다 분명히 했다. 조 변호사는 "연기 내용에 관해 피해자와 사전에 공유하거나 피해자로부터 승낙을 받지 않은 이상 그것을 단지 정당한 연기였다고만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 "'연기에 충실한 것일 뿐'이라는 말로는 면죄부가 주어지지 않는다. 영화 촬영장의 성범죄에 대한 기준을 어느 정도 세워줬다"고 이번 판결의 의의를 설명했다.

 24일 오전 11시 변호사회관 조영래홀에서 여성영화인모임 등을 비롯해 여러 영화·여성 관련 시민단체들이 주최한 '남배우A 성폭력 사건' 항소심 유죄판결 환영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현장에 피해자는 오지 않고 대신 피해자가 보낸 긴 편지가 대독됐다.

영화인들이 피켓을 들고 '남배우A 성폭력 사건' 항소심 유죄판결 환영 기자회견 현장에 서있다. ⓒ 유지영


안병호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에 따르면 실제 촬영은 좁은 공간에서 이뤄졌고 벽면 거울에 반사돼 모습이 비치기 때문에 스태프들이 빠진 상태에서 일부만 남았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장에서 스태프들이 어떤 행위가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는 것.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 운영위원은 "예술이라는 미명 아래 현실의 범죄가 '연기니까, 영화니까'라며 면죄부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언론의 문제

 24일 오전 11시 변호사회관 조영래홀에서 여성영화인모임 등을 비롯해 여러 영화·여성 관련 시민단체들이 주최한 '남배우A 성폭력 사건' 항소심 유죄판결 환영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현장에 피해자는 오지 않고 대신 피해자가 보낸 긴 편지가 대독됐다.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 운영위원이 '남배우A 성폭력 사건' 항소심 유죄판결 환영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유지영


이날 현장에서는 남자 배우의 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쓰기'한 언론에 대한 문제도 함께 제기됐다. 한국여성민우회 여성연예인인권지원센터의 윤정주 소장은 "이 자리에서 문제 해결의 중요한 키를 담당하고 있는 언론에 대해서 몇 가지 당부의 말씀을 드리려 한다"며 "가해자는 2심 재판 결과 이후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드러내놓고 억울하다는 인터뷰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고 언론은 간단한 사실 관계도 확인하지 않고 이를 그대로 받아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윤 소장은 "가해자의 거짓된 입장만을 대변하는 보도는 멈춰달라"고 주문하고 "이런 일들을 영화 현장에서 어떻게 근절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는 언론 본연의 역할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다솔 찍는페미 공동대표는 언론에 "영화계 내 성폭력 문제는 제도와 영화계 노동 환경이 바뀌어야 해결될 수 있다. 피해자가 어떤 방식으로 피해를 당했는지 보다 제도와 환경 개선 문제에 집중해주시기를 바란다"고 주문했다.

한편, 해당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 이날 '남배우A 성폭력 사건' 항소심 유죄판결 환영 기자회견 이후 입장을 밝히겠다고 공언해 주목된다. 남성 배우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감독이 연기 지시를 했다고 진술했으며 감독은 "조씨의 말은 사실과 다른 부분이 너무 많다"고 반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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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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