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부산국제영화제


01.

버스가 지나가는 장면,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모습, 그 순간 하늘의 풍경. 눈에 보이는 거리의 모습을 작은 목소리로 읊조리는 주인공 미사코(미사키 아야메 역)다. 그녀는 베리어 프리 영상을 해설하는 일을 하고 있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이들을 위해 영상 속 장면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는 일이다. 나카모리(나가세 마사토시 역)와는 모니터링 자리에서 만났다. 모두 예의를 차리느라 미사코의 설명을 칭찬하는 동안, 그는 그녀의 해설이 엉망이었다며 조목조목 따져 말한다. 글쎄, 자신의 해설이 대단히 좋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사람을 앞에 두고 혹평을 하는 그의 모습에 미사코는 원망스러움을 느낀다. 한편, 나카모리는 한때 잘 나가던 사진작가였다. 시력이 나빠지기 시작하고 치료가 어려워지자 아내와 이혼한 뒤 혼자 살고 있다. 고개를 내려 눈을 밑으로 깔아야 겨우 앞이 보일 정도지만 그는 품속에 항상 롤라이 플렉스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

02.

영화 <빛나는>은 칸 영화제 최연소 수상기록을 보유한(그녀는 27세에 <수자쿠>(1997)를 통해 황금 카메라 상을 수상한 바 있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신작으로, 한 때 잘나가던 사진작가였지만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나카모리와 영상 해설 작가 일을 하는 미사코가 만나 상처를 치유하고 갈등을 넘어 소통을 이어가는 내용을 담은 작품이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경우, 국내에서는 최근 개봉했던 <앙 : 단팥 인생 이야기>(2015)로 더욱 잘 알려진 감독인데, 그녀는 자신의 작품들 속에서 어떤 상실에 대한 회복과 치유에 대해 주로 이야기해왔다. 이번 작품에서 역시 시력을 잃어버린 사진작가와 자신의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여성의 모습은 같은 주제 속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활용되고 있다.

ⓒ 부산국제영화제


03.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모니터링을 위해 모인 지원자들과 미사코가 그녀의 해설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조율해 나가며 서로의 입장을 헤아려가는 모습이다. 감독은 이 부분을 통해 '본다'는 것의 행위가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지에 대해 깊게 생각하도록 만들고, 실제로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한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대신 영화에 들어가 보게 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을 느끼게 된다고 말하는 한 시각장애인의 말이 바로 그런 부분들을 상징한다. 이 지점에 대해 가감 없이 비판하는 나카모리와 그의 무례한 태도에 참지 못한 미사코의 대립도 흥미롭다. 남자는 여자에게 이 일을 하기에 표현력이 부족하다고 말하고, 여자는 그런 남자에게 상상력이 부족하다며 서로 각자의 현실을 회피하고 있다며 공격하는 장면이다. 영화의 처음에서 이렇게 서로에게 날을 세우고 이해하지 못하는 두 사람이 일련의 사건을 통해 감정을 공유하는 과정이 이 작품에 담겨있다.

04.

나카모리의 직업을 사진작가로 설정한 것 역시 흥미롭다. 어떤 직업보다 시각이 중요한 직업군이 사진작가인데, 그는 후천적으로 찾아온 시력 저하로 자신의 삶과 명예를 이어갈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 스스로에 대한 안타까움과 절망도 있지만, 외부에서 가해지는 여러 가지 부정적 상황들이 그를 더욱 힘들게 한다.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업계에서 더 높은 곳을 향해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사랑했던 사람의 재혼 소식을 야속하게 날아온 청첩장을 통해 알게 되는 것도, 혼자서는 제대로 걸을 수도 없어 누군가 저질러놓은 토사물 위에 넘어지기도 하는, 과거에는 없던 이 모든 상황이 말이다. 어쩌면 그런 것들이 그를 더욱 강박적인 상황으로 몰아넣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롤라이 플렉스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자신이 집착했던 과거를 청산이라도 하는 듯 카메라를 버리는 장면이 나오지만, 영화의 대부분 장면에서 그 카메라는 그에게 심장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 부산국제영화제


05.

아버지가 죽은 뒤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가출로 미사코는 다시 한번 삶의 소중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아버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의 삶 역시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일에 관해 이야기한들,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반대로 이야기하면 자신이 영상을 해설하면서 때로는 넘치기도 하고 때로는 모자라기도 하다는 지적을 계속 받는 이유와 연결된다.

06.

가와세 나오미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빛을 활용한 연출의 묘미를 제대로 끌어낸다. 아련한 듯하면서도 따뜻함이 담겨있는 그녀의 연출은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와 함께 호흡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모니터링 과정을 통해 완성된 영상이 천천히 흘러나온다. 러닝타임동안 미사코와 시각장애인 관객들이 함께 만든 영상. 함께 고민해 온 내용이 그 영상 속에 제대로 반영된 모습이 감동적이다. 스크린 위의 영화가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어 그 영화 속에서 또 하나의 영화를 만들어낸 기분이랄까? 영화를 보면서 스크린 위에 덧입혀지는 자막이 아니라 그 나라의 말을 원어 그대로 알아듣고 싶어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는데, 왠지 이 작품 <빛나는>은 꼭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드는 작품이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조영준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joyjun7)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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