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가 2012년 이후 5년 만에 포스트 시즌 진출을 확정했다. 21일 대구에서 열린 경기에서 삼성이 LG를 8-4로 물리치면서 롯데는 이날 경기가 없었음에도 자동으로 가을야구 티켓을 거머쥐었다.

롯데는 5경기를 남겨놓은 현재 75승 2무 62패(승률 0.547)를 기록 중이다. 5위 SK와는 3.5경기차이다. 5강경쟁팀 중 4경기를 남겨놓은 6위 넥센, 9경기가 남은 7위 LG가 잔여경기를 전승하고 롯데가 전패한다고 해도 승차를 뒤집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최소한 5위를 확보했다.

가을야구는 롯데의 오랜 숙원이었다. 프로야구 최고의 인기팀중 하나로 꼽히던 롯데지만  1992년 창단 2번째이자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무려 24년간 더 이상 정상과 인연을 맺지못하여 KBO 역대 최장기간 무관이라는 불명예 기록을 안고 있었다. 지난 2013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5-7-8-8위에 머물며 아예 가을야구조차 나가지 못하는 암흑기를 겪었다. 잦은 감독교체와 CCTV 파문 등 각종 구설수가 겹치며 엄청난 비판 여론에 시달리기도 했다.

롯데는 2017시즌 전반기를 5할승률에도 못 미친 7위(41승1무44패)로 마치며 '올해도 역시'하는 한숨을 자아냈다. 최근 몇 년간 후반기에 더 부진했던 행보를 감안하면 반등은 쉽지 않아보였다. 하지만 부산의 여름은 뜨거웠다. 롯데는 후반기 34승 1무 18패(승률 .654)로 두산에 이어 전체 팀승률 2위를 기록하며 일약 돌풍의 중심에 섰다. 특히 8월 이후만 놓고 보면 28승 14패 승률. 667로 전체 1위다. 8월 한 달간은 무려 19승 8패(.704)라는 구단 사상 월간 최다승 신기록을 갈아치우기도 했다.

전반기와 후반기의 롯데는 같은 팀이라는게 믿을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전반기만 해도 롯데의 전력은 곳곳에 구멍 투성이였다. 선발진에서는 영건 박세웅을 제외하고는 꾸준한 투수가 전무했다. 타선에서는 6년만에 KBO 무대로 복귀한 이대호가 분전했지만 중심타선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와 거북이 수준의 기동력으로 팀 병살타 1위에 오르는 등 응집력이 떨어졌다.

2년차를 맞이한 조원우 감독의 리더십에도 물음표가 달렸다. 확실한 팀 색깔이 없다는 비판에서부터 선수관리와 작전구사 능력이 끊임없이 도마에 올랐다. 지난 6월 16일 고척 넥센전에서는 최준석과 이대호의 수비 포지션을 잘못 기재하는 희대의 실수로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후반기들어 선발진이 안정되면서 반격의 동력을 찾기 시작했다. 전반기 무리했던 박세웅이 '아홉수'에 시달리며 한동안 주춤했지만, 레일리가 2군 조정 기간을 거쳐 후반기에 에이스로 귀환했다. 레일리는 후반기에만 6승, 평균자책점에 2.88에 9회의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며 어느덧 박세웅과 팀내 최다승(12승)투수에 등극했다. 여기에 베테랑 송승준(11승)은 시즌을 불펜에서 시작했으나 구멍난 선발진의 빈 자리를 메꾸며 역시 후반기에만 6승을 추가하는 등 선발투수로서 성공적으로 재기했다. 에디튼의 교체선수로 후반기에 합류한 '돌아온 린동원' 린드블럼은 비록 3승에 그쳤지만 후반기 6번의 QS로 롯데 선발진에 안정감을 더해줬다.

이로써 롯데 선발진은 후반기에 레일리-린드블럼-박세웅-송승준-김원중으로 이어지는 5인 로테이션을 완성했다. 여기에 뒷문을 책임진 손승락이 35세이브로 사실상 구원왕 등극을 예약하며 롯데 역사상 구단 최다 세이브 기록까지 갈아치웠다. 후반기 각팀들이 불펜 대란으로 고생하는 와중에서도 롯데는 비교적 안정적인 뒷문을 유지할 수 있었다.

타선에서는 이대호와 손아섭의 활약이 돋보였다. 이대호는 150억의 사나이라는 이름값이 무색하지 않게 팀내 홈런-타점 1위를 차지하며 꾸준한 모습을 보여줬다. 한국나이 36세로 적지 않은 나이에 상대투수들의 집중견제속에서도 타율 .329, 30홈런(5위), 107타점(8위)으로 '정상급 4번타자'의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3-30-100 클럽'(타율-홈런-타점)을 채웠다.

손아섭도 20-20(홈런-도루)을 달성하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타율 .338 21홈런 76타점 25도루를 기록중인 손아섭은 특유의 호타준족으로 중심타선의 기동력 부족이라는 약점을 보완해주면서 작전야구의 선택지를 넓혀줬다.

'조연급' 선수들의 숨은 공헌도도 빼놓을 수 없다. 공격형 포수의 대명사였던 강민호는 올시즌 10개구단 포수중 가장 많은 987.2이닝간 마스크를 쓰며 투수리드 등 수비적인 헌신이 더 돋보였다. 장타력에서도 22홈런을 터뜨리며 여전히 녹슬지 않은 한방을 과시했다. 하위타선의 앤디 번즈와 문규현, 불펜 필승조 박진형, 대주자 요원 나경민 등도 자신들의 장점을 살려 적재적소마다 소금같은 활약을 펼치며 팀의 상승세에 기여했다.

5년만의 가을야구 진출이라는 절반의 성공을 이뤄냈지만, 롯데는 아직 3위 역전에 대한 가능성도 남겨두고 있다. 롯데는 3위 NC를 불과 반게임차이로 추격하고 있다. 3위는 준PO에 직행하지만 4위는 5위팀과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러야 한다. 여기에 롯데와 NC는 PK권(부산-경남)을 대표하는 신흥 라이벌로서의 자존심 대결도 걸려있다. 지난 시즌에는 롯데가 1승 15패로 절대 열세를 기록했지만 올시즌에는 9승 7패로 롯데가 2013시즌 이후 4년만의 우위를 점하며 설욕에 성공했다.

롯데는 올시즌 이대호의 영입과 함께 팬들앞에서 약속했던 공약들이 대부분 현실로 이루어졌다. '가을야구 진출'과 'NC전 명예회복'은 이미 달성했고, 2012년 이후 5년만의 100만 관중 돌파를 바라보며 '팬들이 다시 사직구장을 찾게 하겠다.'는 목표도 이뤄냈다. 이제 남은 목표는 가을야구에서의 명예회복 뿐이다.

롯데는 지난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창단 이래 최초로 4년연속 가을야구 무대를 밟았지만 상대적으로 포스트시즌에서는 정규시즌만큼의 실력 발휘를 보여주지 못했다. 롯데는 우승을 차지했던 84년과 92년에도 정규시즌에서는 3위에 그쳤지만 포스트시즌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정상에 올랐던 전력이 있다. 분위기를 타면 어디까지 올라갈지 예측불허의 면모를 보인다는 게 롯데 야구의 특징이기도 했다. 올해의 롯데가 가을야구 출석, 그 이상의 꿈을 꾸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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