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서울 종로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고 박종필 감독 추모 영화제' 개막식

지난 14일 서울 종로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고 박종필 감독 추모 영화제' 개막식 ⓒ 권진경


"원래 추모행사는 박수를 치지 않는 것이 원칙인데, 오늘은 추모행사 의미도 있지만, 고 박종필 감독의 영화를 함께 보는 영화제인 만큼, 많은 박수가 나올 것 같습니다."

'천만 사회자' 김덕진 천주교 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의 유려한 사회로 시작된 '고 박종필 감독 추모영화제'는 추모행사임과 동시에 여러 차례 뜨거운 박수가 나오는 이례적인 자리였다. 박종필 감독이 남긴 영화들을 함께 보고 박종필 감독을 기억하고자 영화제에 방점을 둔 덕분이다.

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 곁에서 20년 넘게 카메라를 들고 함께했던 고 박종필 감독. 14일, 서울 종로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고 박종필 감독 추모 영화제'에는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고 박종필 감독이 중점을 두고 함께 활동했던 빈민·장애인·세월호·독립영화 관련 인사들이 박종필 감독을 기억하는 따뜻한 추도사를 낭독했다. "너무 일찍 가서 아쉬운 사람."

박종필 감독은 올 봄까지 세월호 인양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세월호를 둘러싼 진실을 찾고자 했다.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2기 위원장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와중에도 상지대 민주화투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길> 프로듀서도 맡았다. 거의 밤을 새다시피 할 정도로 일이 많음에도 늘 제때 현장 활동가들의 요구에 맞게 영상을 제작한 박 감독을 보며 다들 건강한 줄 알았다고 한다.

가장 최근까지 박종필 감독과 많은 시간을 보냈던 '예은이 아빠' 유경근 416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박 감독의 카메라를 두고 "세월호 유가족들의 심정을 가장 잘 대변했다"며 "박종필 감독의 시선이 아니라 세월호 유가족들의 시선과 마음이 그대로 담긴 영상"이라고 평했다. 차별과 저항의 현장에는 언제나 박종필의 카메라가 있었고 그의 카메라에는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감독의 연민, 그들과 함께 분노하고 기뻐하는 감독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지난 14일 서울 종로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고 박종필 감독 추모 영화제'에서 세월호 유가족 대표로 추도사를 하는 유경근 416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지난 14일 서울 종로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고 박종필 감독 추모 영화제'에서 세월호 유가족 대표로 추도사를 하는 유경근 416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 권진경


차별과 저항의 현장에는 언제나 그의 카메라가

박종필 감독의 공식 데뷔작 < IMF 한국, 그 1년의 기록-실직노숙자>(이하 <실직노숙자>)(1998)를 보고 박 감독이 이끄는 다큐영상집단 '다큐인'에 합류했다는 송윤혁 감독이 영화제 상영작을 소개했다. 항상 낮은 곳에서 차별받고 소외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고자 했던 고 박종필 감독의 생애를 한 눈에 돌아볼 수 있는 귀중한 영상들이었다. 박종필 감독의 영화는 개봉을 통해 일반 관객들과 만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투쟁 현장에서만 볼 수 있었던 영상들을 극장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컸다.

개막작으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출범 영상><정태수 열사 10주기 추모 영상><기억하자 심판하자><세월호 500일 기억과 다짐의 날> 등 총 4편의 영상이 연이어 상영됐다. 30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상영이지만, 이 영화들이 주는 감흥의 여파는 상당히 오래갈 듯하다. 각각의 제목에서 짐작 가능하겠지만, 이 영상들은 대부분 현장 활동가들의 (급한) 요구에 의해 고 박종필 감독이 빠른 시간 내에 제작하여 선보인 결과물들이다. 촉박한 일정에 부랴부랴 만들어진 영상이라면 소위 '날림'의 흔적이 보여야할 것 같은데, 마치 오래 공을 들여 만든 작품들처럼 묵직하고 깊이 있는 완성도를 자랑한다.

박종필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인 <장애인이동권투쟁보고서-버스를 타자!>(이하 <버스를 타자>(2002)는 장애인 인권운동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 작품이며, 전주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 각종 국내 영화제를 휩쓴 훌륭한 독립영화로 평가받는다. <버스를 타자> 외에도 <실직 노숙자>, <끝없는 싸움-에바다>(1999), <노들바람>(2003), <거리에서>(2007) 등 독립 영화감독으로서 박종필을 대표하는 작품들이 더러 있지만, 그간 잘 알려지지 않은 투쟁 현장 기록들을 개막작으로 모아 상영한 것은 평생 차별에 저항한 영상 활동가로서 박종필을 조명하기 위함이 컸다.

 지난 14일 서울 종로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고 박종필 감독 추모 영화제' 현장

지난 14일 서울 종로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고 박종필 감독 추모 영화제' 현장 ⓒ 고 박종필 감독 추모 페이지


기억해야 할 이름, 박종필

2007년 9월 5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출범식에서 상영된 영상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출범 영상>에는 <버스를 타자>에 등장했던 장애인 이동권 쟁취 투쟁부터, 장애인 교육권 투쟁, 장애인 수용시설 비리 척결 투쟁 등 2001년부터 2007년까지의 장애인 인권 투쟁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장애인도 비장애인들처럼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달라고 외치며 눈물 흘리는 장애인 학부모들의 모습은 최근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을 둘러싼 장애인 학부모와 지역 주민 간의 격렬한 갈등을 떠올리게 한다. 이어 상영된 <정태수 열사 10주기 추모 영상>은 80년대 말부터 과로사로 2002년 사망할 때까지 장애인 인권운동 중심에서 활동했던 고 정태수 열사를 기리는 영상으로, 2012년 3월 1일 정태수 열사의 10주기에 상영된 바 있다.

<기억하자 심판하자>는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은 유가족들의 심경을 담은 영상이며, <세월호 500일 기억과 다짐의 날>은 세월호 참사 501일째가 되는 날, 세월호를 잊지 말자는 취지에서 전국 각지에서 진행된 유가족-시민공동행동의 기록을 편집한 것으로, 당일 광화문 문화제에서 상영된 바 있다.

이날 개막식에서 상영된 영상 중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출범 축하 영상>과 <세월호 500일 기억과 다짐의 날>은 17일까지 인디스페이스에서 진행되는 고 박종필 감독 추모영화제 기간 동안 만날 수 있다. 이 외에도 박종필 감독의 대표작인 <실직노숙자> <끝없는 싸움-에바다> <노들바람> <거리에서> 및 박종필 감독이 416 연대 미디어위원회로 활동하면서 직접 연출한 <망각과 기억-인양>(2016) <망각과 기억2:돌아봄-잠수사>(2017)가 상영된다. 영화제 기간 동안 전 상영작이 무료로 관람 가능한 만큼, 부디 많은 사람들이 고 박종필 영화제와 함께 하면서, 박종필 감독이 카메라에 담았던 사람들을 다시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고 박종필 감독 추모영화제 박종필 영화제 버스를 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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