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안녕 히어로> 스틸컷

영화 <안녕 히어로> 스틸컷 ⓒ 시네마달


댓글엔 "저러면 한국에 누가 공장 만드냐", "얼어뿌랴" 같은 비난과 조소가 가득하다. 스크롤을 내려 보지만 호의적인 댓글은 보이질 않는다. 2015년 12월,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쌍용차 평택공장에 있는 70m 굴뚝에 올라가 겨울의 칼바람을 맞으며 농성에 돌입했으나 세간의 반응은 싸늘하다. 댓글을 보는 김정운씨 표정에서 착잡함이 묻어나온다.

함께 응원을 보내겠다는 댓글은 없었다. 연대의 빈자리에 '나도 힘들어 죽겠는데, 너도 힘들면 어떠하리'가 비집고 들어왔다. 고통을 나눌 생각은 없었다. '난 내 고통을 오롯이 안았으니 너도 고통을 당해라'가 득세했다. 그게 아니면 노동자들에게 질서를 어지럽히는 죄역대인으로 덧칠하기 바빴다. 노동자, 개별자의 삶은 철저하게 배제됐다.

7일 개봉한 영화 <안녕 히어로>는 지난 2009년 쌍용차 대량 해고 사태를 그린다. 영화는 현실의 사건을 그린 여타 영화·다큐처럼 시간과 시간을 잇지만 영화의 중심은 배제와 고립을 겪었던 개별인, 노동자의 삶이다. 그 시간을 잇는 건 설명을 하는 성우가 아니라 해고 노동자 김정운씨 가족이다. 영화는 대량 해고가 빚어졌던 그 이후 김정운씨 가족의 삶, 그 자체다.

아들이 바라본 세상

 영화 <안녕 히어로> 스틸컷

영화 <안녕 히어로> 스틸컷 ⓒ 시네마달


영화는 특히 김정운씨의 아들, 김현우군의 성장기와 쌍용차 사태를 양립해놓는다. 김현우군의 말을 빌려 아버지 김정운씨를 바라보고, 그가 속했던 학교와 집단을 돌아보며 사회에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것은 해고 노동자의 시각뿐 아니라 10대의 시각,  그 또래가 당면한 상황과 문제까지도 가늠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인상을 깊게 남긴다.

김정운씨가 해고된 2009년, 아들 김현우군은 아홉 살이었다. 김정운씨는 파업 혐의로 구속됐고 김 군은 "엄마 혼자 돈을 벌어서 많이 힘들다"란 말을 들으며 자랐다. 김정운씨는 1년을 복역하고 출소했지만 김 군은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서 아버지 직업란에 뭘 적어야 할지 골치를 썩었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또래와 친구의 반응을 생각하면 걱정이 줄지 않는다.

"1번 후보, 석사 나왔네. 박근혜랑 잘 지내잖아"

2014년 평택을 재보궐선거. 친구가 노동자 글귀가 써진 기호 5번 김득중 포스터를 보고 '노동자'를 말하더니 이내 웃는다. 시선은 1번으로 돌아간다. 1번은 권력자를 잘 알 것 같다는 것과 스펙이 좋다는 걸로 중학생 또래들의 눈길을 잡았다. 그들에겐 땀을 연상하는 노동이란 단어보다 학식과 세련됨을 내세우는 스펙에 더 눈길이 갔을 것이다. 그럴수록 김현우군은 노동을 내세울 수 없다.

노동을 바라보는 시선

 영화 <안녕 히어로> 스틸 사진

영화 <안녕 히어로> 스틸 사진 ⓒ 시네마달


또래들의 이 같은 인식은 노동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 전반과 사실상 궤를 같이한다. 밥벌이를 위해선 노동이 필수불가결하지만 모순적이게도 노동을 생소하게, 노동자를 저열하게 바라보는 인식은 여전하다. 그도 그럴 게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며 혹사당하는 노동자가 지금도 도처에 있으며, 노동에 대한 관념은 희망이 아니라 피하고 싶은 것, 그리고 언제 쫓겨 날지 모르는 불안과 어둠으로 대변되어가고 있는 탓일 것이다.

김정운씨는 이런 세상의 움직임을 조금이라도 막아보려고 연신 자판을 두들겨 노동의 현실을 알리려 하지만,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보고 "대체 얼마나 더 글을 써야 하느냐"며 의문을 내보인다. 여론의 판도를 잡는 언론의 노동 프레임에 김씨의 글은 사회에 안착하지 못한 채 종잇장처럼 떠돌다 사라진다.

쌍용차 파업이 장기화되자 여론은 해고 노동자들에게 공장 운영에 방해를 놓는 훼방꾼이라며 화살을 무자비로 날렸다. 해고되면 입에 풀칠하기 어려운 사회 구조는 바라보지 않고 해고에 단호히 맞서려는 노동자를 향해선 비판의 칼날이 사정없이 가해졌다. 해고 노동자가 극렬하게 회사에 맞설 수밖에 없었던 맥락은 소거돼버린 채로 말이다.

아직 130명이 있다

노동자의 삶이 무시되고 축소되는 상황은 반복을 거듭하고 있다. 주류 언론이 경제의 성패에 노동유연화를 거론하면서 해고가 자유로워지면 기업들도 비정규직 차별을 줄일 것이란 논리를 펴는 게 대표적 예다. 해고가 되면 살길이 막막해지는 현실은 도외시한 채 유연화만 얘기하는 건 어불성설일 텐데 말이다.

김정운씨의 삶은 한국 사회에서 해고가 얼마나 잔인한 건지를 보여주는 실례일 것이다. 김씨는 7년간 투쟁을 한 끝에서야 회사로 복귀할 수 있었다. 영화가 그린 109분은 김씨가 복귀에 한걸음씩 다가갔던 일대기이자 우리 시야에서 배제됐던 개별인의 삶에 대한 조명일 테다. 복귀에 당도했다고 끝난 게 아니다. 영화에서 옮기는 마지막 발걸음은 그렇게 한가하지가 않다.

정리 해고 당시, 살아남은 자와 살아남지 못한 자 사이의 갈등, 두 달 반의 옥쇄 파업, 이어진 공권력의 진압, 한겨울 고공 농성, 파업 65개월 만에 열린 사측과의 교섭까지. 굽이굽이 고통의 여정을 지나면서 쌍용차 노동자와 가족, 28명의 소중한 목숨이 세상을 등졌다. 지난 5월에는 해고자 아내 한 명이 또 세상을 달리했다. 아직 130명의 해고자가 복직을 기다리고 있다.

영화 안녕 히어로 쌍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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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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