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 최대 성수기로 꼽히는 7월 극장가를 단 세 편의 영화가 휩쓸었다. <스파이더맨: 홈커밍>과 <군함도>, <덩케르크>가 그 주인공으로 이들은 7월 한 달 동안 각각 710만, 450만, 220만 관객을 모았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대표하는 <스파이더맨: 홈커밍>과 CJ엔터테인먼트의 텐트폴 영화(배급사가 한 해 배급하는 영화 가운데 각별히 전력을 다해 배급에 나서는 전략 상 핵심적인 작품으로 텐트기둥에 빗대어 가리킴) <군함도>, 크리스토퍼 놀런의 <덩케르크>가 모두 예고된 흥행작이었다는 점에서 7월 극장가에 이변은 없었다고 하겠다.

입소문을 타며 소소한 흥행을 이어간 <플립> <내 사랑> <지랄발광 17세> 같은 영화도 있었으나 이들을 멀티플렉스 상영관에서 만나기란 도시 하늘에서 별똥별을 보는 것만큼 희소한 일이었다. 관객점유율 97%, 매출점유율 97.5%를 장악한 멀티플렉스들이 오직 세 편의 영화에만 팔을 활짝 벌리고 선 저편에선 나머지 수십편의 개봉작이 적은 상영관을 놓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광경이 펼쳐졌다.

다가오는 타오름달에도 경쟁력 있는 작품들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송강호가 주연한 <택시운전사>를 시작으로 맷 리브스가 성공적으로 부활시킨 <혹성탈출> 속편, 성공한 공포 시리즈 <애나벨> 속편 등이 <군함도>가 휘어잡은 스크린을 놓고 격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규모는 작지만 팬들의 기대감을 한껏 높이고 있는 영화들도 여럿 준비돼 있어 말 그대로 타오르는 한 달이 될 전망이다.

아래 타오름달 기대작 다섯 편을 소개한다.

[하나] <택시운전사>

택시운전사 포스터

▲ 택시운전사 포스터 ⓒ (주)쇼박스


CJ에게 <군함도>가 있다면 쇼박스에겐 <택시운전사>가 있다. 스크린 독과점과 역사왜곡 논란에 휩싸이며 흥행열풍 속에서도 마냥 웃지 못하는 <군함도>를 상대로 <택시운전사>가 한 판 뒤집기를 펼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군함도>와 마찬가지로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인간을 이야기하는 작품으로 알려져 관심을 모은다.

감독은 김기덕 감독 연출부로 영화계에 진입한 장훈이다. <영화는 영화다> <의형제> <고지전>을 연출하며 한국 영화계에 이름을 널리 알린 그가 <택시운전사>를 통해 한국 최고의 흥행감독으로 입지를 다질 기세다. 주연은 자타공인 한국 최고의 배우로 지목되는 송강호와 유해진, 류준열이 맡았다. 여기에 독일배우 토마스 크레취만이 독일기자역을 맡았는데 그는 로만 폴란스키의 2002년작 <피아니스트>에 독일군 장교 빌름 호젠펠트 역으로 출연한 유명 배우다.

영화는 1980년 5월 광주로 향한 사람들 곁에서 광주의 그 날을 바라본다. 이를 통해 영화는 생명의 위험 가운데서도 옳은 길을 외면하지 않은 시민들과 이를 통해 널리 진실을 알린 기자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취재를 위해 낯선 도시로 향하는 기자와 그를 광주로 태워주고 돈을 받으려는 택시기사의 이야기로부터 영화가 광주의 사건과 그 사건 너머 인간의 본질을 탐색하는 작업에 이를 수 있었을까. 궁금한 관객이라면 2일 극장을 찾을 일이다.

[둘] <엘리자의 내일>

엘리자의 내일 포스터

▲ 엘리자의 내일 포스터 ⓒ 영화사 진진


10년 전 <4개월 3주 그리고 2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크리스티안 문쥬의 신작이다. 문쥬는 부쿠레슈티 영화학교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한 루마니아 대표 영화인으로 국제적으로 주목 받는 거의 유일한 루마니아 출신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4개월 3주 그리고 2일> 이후 내놓은 <신의 소녀들>을 통해 다시 한 번 칸영화제의 부름을 받으며 자신의 입지를 재확인했다. 이 작품은 칸영화제에서 각본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엘리자의 내일>은 2017년 한국 개봉이 예정된 유일한 루마니아 영화다. 영화를 통해 다른 사회를 간접적으로 내다보는 귀한 경험을 극장을 찾는 관객들이 나눠가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낙태문제를 다룬 <4개월 3주 그리고 2일>, 교회의 엑소시즘 의식으로 희생된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신의 소녀들>에 이어 감독의 날카로운 비판과 집요한 주제의식이 빛을 발할 것으로 주목된다. 10일 개봉.

[셋] <혹성탈출: 종의 전쟁>

혹성탈출: 종의 전쟁 포스터

▲ 혹성탈출: 종의 전쟁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프랭클린 J. 샤프너의 역작 <혹성탈출>이 만들어지고 벌써 마흔 아홉 차례의 겨울이 지났다. 그동안 본편 시리즈만 모두 5편이 제작됐고 2001년에는 야심찬 팀 버튼에 의해 새로운 <혹성탈출>이 만들어졌지만 무엇도 원작이 이룩한 성취에 범접하지 못했다. 이어쓰기는 부담스럽고 다시쓰기도 만만치 않은 이 시리즈 곁에서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만 갔다. 2011년 루퍼트 와이엇의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이 나오기까지는.

루퍼트 와이엇과 20세기 폭스는 <혹성탈출>의 속편도 리메이크도 아닌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이들의 관심은 처음 유인원이 행성을 장악하기까지의 이야기였고 이를 배경으로 몇 편의 시리즈를 기획했다. <배트맨 비긴즈>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같은 영화에서 보여진 프리퀄이 이들의 목표였다. 21세기 <혹성탈출>의 시작이었다.

<혹성탈출> 1편인 <진화의 시작>은 프리퀄 시리즈를 이끌어갈 캐릭터 시저의 탄생을 그렸다. 2014년에 나온 2편 <반격의 서막>은 시저가 다른 유인원들을 이끌어 세운 유인원 문명이 치명적인 전염병으로부터 살아남은 인류 생존자들과 충돌하는 과정을 다뤘다. 다시 3년 만에 만들어진 3편 <종의 전쟁>은 인류 생존자와 유인원 사이에 벌어진 전면적인 싸움을 배경으로 한다. 과연 누가 승리할 것인가.

2편 <반격의 서막>부터 메가폰을 잡은 맷 리브스가 연출했다. 유인원이 어떻게 인간을 지배하게 됐을까. 알고 싶은 관객은 15일 극장으로 가자.

[넷] <공범자들>

공범자들 포스터

▲ 공범자들 포스터 ⓒ (주)엣나인필름


무너진 공영방송이라 표현해도 좋을까. 적어도 지난 9년 동안 KBS와 MBC가 공정한 언론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테니까. 무너지는 방송을 붙잡고자 분투한 이들이 없지 않았겠으나 그들은 무력했고 바깥의 사람들은 무관심했다. 그래서일까. 언론은 너무나 쉽게 자격없는 이들 손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최승호 감독의 <공범자들>은 정연주 사장이 KBS에서 물러난 지난 2008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KBS와 MBC, YTN 등이 무너지는 과정을 다뤘다. 그 속에서 방송을 지키고자 분투한 이들의 목소리도 고스란히 담겼다. 지난해 내놓은 <자백>이 국정원에 의해 자행된 간첩조작사건과 이를 주도한 이들의 오늘을 그렸다면 <공범자들>은 한국 방송의 공정성을 무너뜨린 이들의 어제와 오늘을 다뤘다. <자백>의 카메라가 김기춘과 대면했던 것처럼 <공범자들>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17일 개봉하는 <공범자들>은 한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봐야 하는 영화라고 단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우리는 어떻게 공영방송을 잃어버리게 됐을까. 우리는 그 과정에 책임이 없는 것일까. 지난 정권을 무너뜨리고 새 세상을 불러온 촛불혁명의 열기에도 여전히 어둡기만 한 공영방송의 오늘을 직시하고 이들 방송을 다시 시민의 품으로 가져오기 위해 시민의 힘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구성원 다수의 반대에도 여전히 버티고 있는 KBS 고대영 사장·이인호 이사장, MBC 김장겸 사장·고영주 이사장의 사퇴를 하루 빨리 볼 수 있기를.

[다섯] <노래로 쏘아 올린 기적>

노래로 쏘아 올린 기적 포스터

▲ 노래로 쏘아 올린 기적 포스터 ⓒ (주)미로스페이스


2013년 중동 오디션 프로그램 '아랍 아이돌'에 출연해 팔레스타인 난민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우승을 거머쥔 무함마드 아사프의 실화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천국을 향하여> <오마르> 같은 작품으로 이스라엘에 의해 고립되고 핍박받는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꾸준히 영화화해 온 하니 아부 아사드의 <노래로 쏘아 올린 기적>이 바로 그 영화다.

하니 아부 아사드는 1981년 네덜란드로 이주한 이래 팔레스타인에 대한 영화를 꾸준히 찍고 있는 몇 안 되는 국제적인 팔레스타인 영화인이다. 그러므로 한국 관객이 이 영화를 보는 건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딱딱한 국제뉴스가 아닌 예술적 창작물로 접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될 것이다.

때로는 뉴스보다 한 편의 영화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이다. 이 영화를 보고 당신이 꺼내 들 게 오직 손수건 뿐은 아니길 바란다. 17일 개봉.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택시운전사 공범자들 엘리자의 내일 김성호의 씨네만세 기대작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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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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