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런 판정 번복으로 인하여 한 차례 비판을 받았던 KBO리그가 또 한 번 비판을 들을 상황에 처했다. 이번에는 경기의 진행 여부를 결정하는 것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섣부른 우천 취소 결정으로 인하여 관중들과 팬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상황은 7월 22일 저녁에 발생했다. 혹서기 휴일 경기는 오후 6시에 플레이 볼 선언을 하고 경기를 시작하는데, 6시를 전후로 대구 수성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 집중폭우가 쏟아졌다. 갑작스럽게 비가 쏟아지면서 대형 방수포가 깔렸고, 관중들도 지붕이 덮은 쪽으로 자리를 피했다.

집중폭우는 천둥과 번개까지 동반하며 격렬하게 내렸다. 만일 비가 일정 시간 동안 이 정도의 강도로 계속해서 내렸다면 내야 그라운드는 대형 방수포를 깔았다 쳐도, 외야에서는 배수가 안 되어 정상적으로 진행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4분 만에 결정된 경기 취소, 좀 더 지켜봤다면 어땠을까

KBO리그에서 기상 악화로 인하여 경기를 정상적으로 진행할 수 없을 경우 우선 경기운영위원과 경기 관리인이 경기를 진행할지에 대한 여부를 결정한다. 플레이 볼 선언 시각이 지나간 이후에는 해당 경기의 심판진들이 판단하는 것으로 넘어간다. 예전에는 홈 구장에서 결정권을 갖고 있었으나 자신들의 각종 유불리에 따라 어이 없는 이유로 경기를 취소하거나 강행하기도 했다.

비가 많이 내려 그라운드가 많이 젖을 것이라 판단되는 경우에 한하여 기상 악화로 인한 경기 순연을 결정할 수 있다. 강풍의 경우도 풍속 14m/s 또는 순간풍속 20m/s 이상으로 강풍주의보 이상의 특보가 발령될 경우 순연을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순연에 대한 최초 판단은 경기 지연 시점으로부터 30분 이후에 결정해야 한다.

경기가 30분 이상 지연될 경우 최초 판단을 실시하는데, 이 때는 경기장 현지 상황과 기상청의 일기예보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경기 진행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경기 취소 결정을 할 수 있으며, 경기 재개 또는 시작 결정을 할 수 있다. 또한 경우에 따라 좀 더 지켜보고 결정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날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 배정된 심판진은 플레이 볼 시각 기준으로 4분 밖에 지나지 않은 6시 4분에 경기 취소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경기장에 내리던 비는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말 같이 그쳤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고 결정했으면 다소 늦더라도 경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KBO리그에서는 2016년 4월 3일 당시 잠실 종합운동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의 경기가 섣불리 취소된 적이 있었다. 당시 경기운영위원장인 김재박 위원장은 우천에 따른 방수 조치가 미흡하다는 판단 하에 너무 빠른 취소 결정을 내렸다.

이 경기 역시 조금만 기다렸으면 굳이 잔여 경기로 편성될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KBO리그 사무국에서는 다음 날 김재박 위원장에게 6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부과한 적이 있었지만 이는 솜방망이 징계에 불과했음이 드러났다. 관련 사항에 대한 재교육이 부족했던 것이다.

최대한 기다려보고 경기하는 메이저리그, 3시간도 기다린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웬만하면 예정된 경기를 어떻게 해서라도 진행하려고 최대한 기다린다. 플레이 볼 예정 시각으로부터 3시간 안에 비가 그치지 않는다는 예보나 경기 중단 시점으로부터 2시간 안에 그치지 않는다는 예보가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해서든 경기가 재개될 때까지 기다린다.

박찬호의 마지막 완봉승이었던 2006년 6월 3일(한국 시각) 피츠버그 PNC 파크에서의 경기도 비가 내렸지만 어떻게든 경기를 진행했다. 당시 박찬호는 비가 내리는 상황에서도 6이닝 5피안타 2볼넷 8탈삼진 무실점의 호투를 펼쳤으며, 타석에서는 3타수 3안타를 기록하기도 했다.

비 때문에 늦게 시작된 경기는 약하게 내리는 가운데 진행됐고, 6회가 끝나고 나서 비가 강해지며 경기가 다시 중단됐다. 이 때도 당장 콜드 게임을 선언하지 않고 어느 정도 기다리다가 강우 콜드를 선언하면서 박찬호의 완봉승이 인정됐다.

물론 KBO리그에서도 기다린 경우는 여러 차례 있었다. 2016년 5월 3일 인천 SK 행복드림구장에서 열렸던 한화 이글스와 SK 와이번스의 경기는 무려 두 번이나 중단됐다. 경기 2시간 30분 전에 비가 그치면서 일단 경기는 시작했고, 2회초 중간에 잠시 비가 내려 17분이 중단됐다.

17분 만에 재개된 경기는 투수가 단 2개만 공을 던진 뒤 다시 중단됐다. 이후 오후 7시 52분까지 기다린 끝에 경기가 재개됐고, 이후 경기는 더 이상의 중단 없이 9회까지 마무리했다. 원래 두 번째 경기 중단 상황이 나오면 노 게임 선언을 할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 30분 안에 비가 그쳤다.

지나치게 잦은 우천 순연, 시즌 장기화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여름철에 비가 집중되는 대한민국의 기후 특성상 KBO리그는 일단 9월 중순까지 팀당 144경기를 편성한다. 그리고 우천 등 기상 악화로 인하여 순연된 경기는 9월 중순부터 10월 초까지 비워 놓은 일정에 편성하게 된다.

물론 리그가 길어지면 야구를 오래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도 하다. 순연된 경기를 다시 편성하여 팀당 144경기를 치르겠다는 의지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길어지면 연교차가 심한 대한민국 기후 때문에 한국 시리즈를 치를 때 쯤이 되면 날씨가 급격히 추워져 경기력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특히 시즌 전후로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이나 아시안 게임, 프리미어 12 등 각종 국제 대회가 열리는 해에는 대표팀에 차출되는 선수들의 체력적 부담이 더욱 늘어난다. WBC는 스프링 캠프를 치르는 3월에 열리기 때문에 몸을 일찍 만들어야 한다.

아시안 게임은 대한민국에서 열렸던 경우(1986 서울, 2002 부산, 2014 인천)를 제외하고는 보통 11월이나 12월에 열린다. 2020 도쿄 올림픽부터 야구 예선으로 지정될 대회 프리미어 12 역시 11월 말에서 12월 초 사이에 열린다. 시즌 전에 열리든 시즌 후에 열리든 국제 대회가 열리는 해에는 리그 일정을 잔여 경기로 무작정 늘릴 수도 없는 일이다.

올해 2017년 시즌 역시 스프링 캠프 시기에 WBC가 열렸다. 물론 1라운드 A조 경기가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렸고, 대한민국이 1라운드에서 광탈하는 바람에 3경기만 치르고 끝났지만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 있어서 대표팀 선수들은 분명 평상시와 다른 루틴으로 시즌을 준비하기 때문에 영향을 받는다.

또한 각 연고지의 날씨와 경기장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팀에 따라 순연 횟수가 달라 잔여 경기 시즌이 각 팀에 미치는 영향이 천차만별이다. 실제로 돔 구장을 홈으로 쓰는 넥센 히어로즈는 2016년 잔여 경기가 모두 원정 경기로 편성되는 진기록을 만들기도 했다.

SK는 지난해 넥센보다도 잔여 경기가 적었다. 그러나 SK의 경우 잔여 경기가 너무 적어서 막판 중위권 경쟁에서 오히려 반등의 기회가 너무 없었다. 이 때문에 SK는 자력으로 순위를 사수하지 못하고 포스트 시즌 경쟁에서 탈락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야구 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는 관중들의 대다수는 해당 경기장 연고 지역에 사는 지역 주민들이다. 그러나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보기 위해 비싼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하루 이상의 시간까지 내면서 경기장을 찾는 열성 팬들도 많다.

서로의 연고지가 가장 먼 SK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우 서로의 경기장 기준으로 무려 413km(고속도로 최적화 기준)를 이동해야 할 정도다. 이러한 열성을 갖고 경기장을 찾는 팬들을 위해서 경기에 대한 순연 여부는 섣부른 결정을 내리기 전에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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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우천순연결정기준 섣부른우천순연 4분만에결정된우천순연 잔여경기차이에따른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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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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