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안 풀린다. 박지성의 은퇴 이후 한국 축구의 중심 역할을 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이청용 말이다.

K리그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이하 EPL)로 직행해 성공을 거둔 최초의 선수. EPL 데뷔 시즌(2009·2010), 5골 8도움을 기록하며 명실상부한 볼턴 원더러스의 에이스로 자리 잡았고, 구단이 선정한 '올해의 선수상'을 비롯해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상', '올해의 최고 신입 선수상', '올해의 톱3' 등을 차지했던 특별한 재능.

그 당시 이청용은 만으로 22세였다. 거칠 것이 없었고, 박지성을 뛰어넘는 한국 축구의 전설로 기억될 것이 확실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당당히 주전 자리를 차지했고, 2골과 함께 사상 첫 원정 16강에 앞장서지 않았나. 그래서 더욱, 이청용의 현재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정녕 이청용은 톰 밀러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지난 2011년, 한국 축구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킨 인물이 있었다. 잉글랜드 5부 리그에서 활약하던 톰 밀러였다. 이청용을 향했던 그의 살인적인 태클 덕분에, 유럽 무대를 휘어잡는 스타급 선수보다 훨씬 유명해졌다.

'만약'으로 시작하는 문구가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그때 이청용이 쓰러지지 않았다면, 2017년의 모습은 어땠을까. 축구팬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법한 상상이다. 건강한 이청용이 에이스의 모습을 유지했다면, 볼턴은 EPL에 더 오래 머물 수 있지 않았을까. 이청용은 볼턴을 떠나 빅클럽으로 이적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이청용에게 부활의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청용은 톰 밀러의 태클로 인해 리그 막바지(2경기 남은 시점)에야 복귀했지만, 이후 경기를 나서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길었던 재활 과정을 믿고 기다려준 팀에 대한 보답으로 EPL이 아닌 챔피언십에서 2시즌 반을 보내야 했지만 말이다.

뛰는 무대가 아쉽기는 했지만, 이청용은 과거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2013·2014시즌에는 45경기를 뛰었고, 9개(3골·6도움)의 공격 포인트도 작성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도 이청용의 드리블과 패싱력은 돋보였다. 특히, 김치우의 극적인 프리킥 골로 무승부(1-1)를 기록한 레바논 원정에서는 이청용 혼자서 공격을 도맡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러나 이청용은 정상급 선수들이 누비는 무대가 아닌 곳에서 2시즌 반을 보내며, 성장에는 실패한 모습이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이 이를 증명한다. 4년 전과 마찬가지로 에이스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의 몸 상태는 이전과 달랐다. 드리블은 상대 수비수에게 쉽게 읽혔고, 패스는 우리 진영을 향하는 것이 훨씬 많았다.

경기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이청용의 모습은 굉장히 낯설었다. 무엇보다 4년 전과 비교해 성장이 멈춰버린, 오히려 퇴보한 것 같은 모습이 아쉬웠다. 20대 중반, 선수로서 전성기를 구가해야 할 시기였기에 더 안타까웠다.

결국 2015년 2월, 이청용은 챔피언십을 떠나 EPL 복귀를 선언했다. 그가 새로이 둥지를 튼 곳은 2012·2013시즌 챔피언십에서 맞대결을 벌였던 크리스탈 팰리스였다. '뛸 수 있는 팀'을 이적의 가장 큰 조건으로 내걸었던 터라, EPL 승격 두 번째 시즌을 맞이한 크리스탈 팰리스는 나쁘지 않은 선택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이 선택은 최선이 되지 못했다. 출발부터 꼬였다. 이청용은 2015 호주 아시안컵 첫 경기(vs 오만)에서 당한 부상으로 인해 새로운 소속팀 적응이 늦어졌다. 시즌 막바지에서야 그라운드로 복귀했지만, 그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2014·2015시즌의 절반을 함께한 크리스탈 팰리스에서의 첫 성적표는 3경기 출전(총 91분)이었다.

이후에도 이청용은 크리스탈 팰리스에 적응하지 못했다. 2015·2016시즌, 13경기(선발 4)에 나서 1골에 그쳤다. 측면과 중앙을 오가며 어떻게든 팀에 적응해보려 했지만, 윌프레드 자하와 제이슨 펀천 등과 주전 경쟁에서 완전히 밀렸다.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부상 소식도 아쉬움을 더했다.

반등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굵은 땀방울을 아끼지 않았던 2016·2017시즌, 이청용은 개막전에 선발로 나서는 등 기대를 모으기도 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15경기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선발은 4차례뿐이었다. 리그보다 비중이 떨어지는 컵대회가 아니면 기회를 잡기 어려웠고, 지난 1월 이후에는 경기 출전이 단 한 차례뿐이었다. 그것도 선발이 아닌, 0-5로 패한 경기(vs 맨체스터 시티)에 교체 출전이었다.

어느덧 이청용은 29세가 됐다. 한국 나이로는 30줄에 들어섰다. 그런데도 크리스탈 팰리스에 계속 머문다면, 이청용의 앞날은 밝지가 않다. 희망 고문이나 다름없는 마지막 기회도 부상이 가로채 가지 않았나. 부상이 아니었더라도 크리스탈 팰리스에는 이청용의 자리가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이적이 답이다. 이청용이 크리스탈 팰리스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0%에 가깝다. 하지만 유럽 내 이적도 만만치가 않다. 이청용이 20대 초반을 제외하면, 유럽 무대에서 남긴 족적이 없기 때문이다. 세월이 총알처럼 흐르며, 은퇴를 고민하기 시작해야 하는 나이가 됐다는 점도 부담이다.

결국, 이청용이 마지막 불꽃을 태워볼 수 있는 무대는 K리그뿐이다. 유럽 생활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K리그 복귀를 선택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결단이 필요하다. K리그라면, 꾸준한 경기 출전과 함께 과거의 기량을 되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화려했던 모습으로 국가대표팀 복귀도 가능하다.  

이청용의 축구 인생을 돌이켜보면, 톰 밀러의 살인적인 태클 못지않게 선택이 아쉬웠다. 이제라도 이청용의 선택이, 자신은 물론 한국 축구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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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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