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다: 허술한 데가 없이 매우 야무지고 실속이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들어가 보면 '오지다'는 낱말을 쉽게 접한다. 수년 전인가 <마파도>란 영화가 개봉됐었는데, 광고카피에도 이 말이 쓰였다.

"오지게 빡센 섬."

그런데 이 낱말의 뜻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쓴 흔적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저 '야무지다'는, 혹은 '꼼꼼하다'는 말과 같은 의미로 쓴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 '오지다'는 낱말을 끄집어낸 건 올해 초 결성된 듀오 '예배팀 CPR(Church Praise Revolution)'이 지난 9일 유튜브에 공개한 '오진 예수'라는 CCM 곡 때문이다.

순식간에 화제가 된 CCM 한 곡

 '예배팀 CPR'이 지난 9일 유튜브에 공개한 '오진 예수'라는 CCM 곡이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Hwa Ik Lee)

'예배팀 CPR'이 지난 9일 유튜브에 공개한 '오진 예수'라는 CCM 곡이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Hwa Ik Lee) ⓒ 예배팀 CPR


교회를 다니는 이들이라면, CCM이라는 말을 금방 이해하지만, 그렇지 않은 독자를 위해 풀이를 해야겠다. CCM은 '현대교회음악(Christian Contemporary Music)'의 약자로, 기독교 신앙을 직간접적으로 담은 현대 대중음악의 한 장르로 이해하면 쉽다. 대개 많은 교회에서는 예배 전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CCM을 부르곤 한다.

무엇보다 이 곡은 제목이 도발적이다. '오진 예수'라니, 처음엔 '오직 예수'인 줄 알았다. 그러나 '오진 예수'가 맞다. 곧이곧대로 풀이하면 예수가 오지다는 의미인데, 그럼 예수께서 야무지거나 꼼꼼하다는 말인가? 다시 '오지다'란 낱말을 살펴봐야겠다. 용례를 헤아려보니 '오지다'는 낱말은 부정적으로 쓰일 때가 많았다. 아닌 게 아니라 유튜브에 올라온 반응을 살펴보니까 '오진'이란 낱말에 거부감이 꽤 깊었다. 가장 인상적인 댓글 둘만 아래 옮겨본다.

"다음 세대와 공존한다는 시도는 좋았으나, 이 노래가 크리스천이나 믿지 않는 사람들의 입에 찬양으로 불릴지 아니면 놀림거리나 오락으로 불릴지는 생각을 해보셔야할 듯 합니다. 찬양의 목적이 하나님 예수님을 높이고 경배하는 것인데. 이 노래로 인해서 '예수님 오지구요….' 하는 말로 불릴 때 과연 그 말을 뱉는 사람들이 의미를 가지고 할런지, 오히려 귀한 이름을 오락거리나 유행어처럼 가치 없는 말로 막 쓰여 질까 걱정스럽습니다."

"다음 세대와의 공존이라는 명분을 아무리 좋게 봐도 이건 실패입니다. 사람에 대한 이해와 종교적 깊이 어느 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네요."

일단 댓글 논란을 뒤로하고 원곡을 들어봤다. 대개 CCM은 찬송가를 방불케 할 정도로 장중하게 시작한다. 대다수 교회에서 CCM이 찬송가를 대신해 불리기에 일견 당연하기도 하다. 반면 이 곡의 오프닝은 꽤 도발적이다. 오프닝만 들으면 발칙한(?) 무언가가 따라올 것 같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다.

무언가 보여줄 것만 같았던 오프닝은 30초에 그친다. 오프닝에 이어 익숙한 기타연주가 나오고 역시 익숙한 가락으로 '예수님은 누구신가'란 노랫말이 흐른다. 곡 중간에 랩이 이어지는데, 노랫말은 '온 세상의 구주', '죄인들의 친구', '멸망자의 구원' 등 익숙한 신앙고백으로 이뤄져 있다.

눈에 띄는 대목은 후렴이다. '예수는 오지신 분(오지구요), 예수는 진리신 분(진리구요)' '그의 능력친 만렙, 한계가 없으신 클라스' 'ㅇㅈ, ㅇㅈ ㅇ ㅇㅈ'이라는 후렴이 이어진다. 잠깐 여기서 '만렙', 'ㅇㅈ'이란 낱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봐야겠다.

검색엔진을 이용해 찾아보니 'ㅇㅈ'는 '인정'의 초성으로 주로 인터넷에서 무언가를 인정할 때 사용한단다. '만렙'은 온라인 게임에서 최고의 레벨을 뜻하는 말로 일상에서 '보컬 만렙' '댄스 만렙' 등 어떤 일을 최고로 잘한다는 의미로 쓰인단다. 이렇게 신세대 언어가 CCM에 사용되는 건 사실 처음일 것이다. 그런데, 곡에 신세대 언어가 포함된 것 외엔 특이점이 없다. 단조롭게 반복되는 리듬은 오히려 진부하기까지 하다.

예배팀CPR의 이화익 프로듀서는 11일 오전,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곡을 쓰게 된 취지를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난 원래 일반음악 PD로 활동해왔다. 교회를 다니면서 청소년 예배를 인도했는데, 찬양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지 아이들은 집중을 잘 안하더라. 물론 열심히 다니는 몇몇 아이들은 찬양을 잘 따라 불렀지만…. 그러다 2년 전 '내 마음에 가득채운'이란 CCM 곡을 자이언T의 '꺼내먹어요'란 곡에 붙여 불러봤는데 잘 따라 불렀다. 그때부터 아이들의 문화를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사운드나 장르 보다 언어로 자신들을 표현한다는 걸 발견했다. 그래서 친하게 지내는 청소년들을 불러 상의해서 곡을 쓰게 됐다."

교회 음악에서 록이나 랩의 장르가 들어온 지는 사실 꽤 오래됐다. CCM은 대개 음악적 장르보다 곡의 노랫말에 스민 신앙고백이 더 중시된다. 물론 보수적 성향이 강한 대다수 목회자는 강한 비트의 음악이 찬양곡으로 불리는 걸 불경스럽게 여기지만 말이다. 이런 경향을 고려해 볼 때, 예수더러 '오지신 분'이니 '만렙'이니 하는 식의 가사는 불경스러운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사실 이런 요소만 빼면 '오진 예수'는 CCM의 큰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곡의 구성은 대규모 집회에서 '떼창'하기에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한다.

요약하면, CCM에 '오지다'는 낱말을 쓰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청소년의 감성에 어필하기에 딱 좋다. 최근 20대 청년층의 종교 이탈 현상을 감안해 본다면 이 같은 시도는 더욱 반길 일이다. 참고로 통계청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표본 집계 결과'에 따르면 종교가 있는 인구 비율의 경우 20대가 35.1%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낮았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오지다(오달지다)'는 '마음에 흡족하게 흐뭇하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을 전해 '모든 이의 마음에 흡족하게 흐뭇하게' 하셨다. 그러니 예수는 오지신 분이 맞기는 맞다. 다만 어감으로 인해 이 낱말의 쓰임새가 많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보수성 강한 교회, 발칙한 시도 받아들일 준비 돼 있나?

 성인용 미국 심야 채널 '어덜트 스윔(Adult Swim)'에서는 지난 2014년, 예수의 재림을 소재로 한 드라마 <블랙 지저스(Black Jesus)>를 상영해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마약을 하고 욕설을 하는 흑인 예수의 등장에 미국 보수 기독교계는 강하게 반발했으나, CNN·<워싱턴 포스트> 등 언론에서는 참신한 기획이라고 옹호했다.

성인용 미국 심야 채널 '어덜트 스윔(Adult Swim)'에서는 지난 2014년, 예수의 재림을 소재로 한 드라마 <블랙 지저스(Black Jesus)>를 상영해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마약을 하고 욕설을 하는 흑인 예수의 등장에 미국 보수 기독교계는 강하게 반발했으나, CNN·<워싱턴 포스트> 등 언론에서는 옹호했다. ⓒ Adult Swim


교회는 권위주의적인 경향이 강해 사용하는 언어나 복장 등이 무척이나 보수적이다. 직접 목격한 일인데, 한 번은 다니던 교회 찬양 팀의 한 남성 멤버가 청년부 예배에서 레게 머리를 하고 현란한 일렉 기타 솜씨를 과시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담임목사가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담임목사는 예배 시간 도중 순서에도 없이 단상에 오른 다음 꾸짖듯 외쳤다. (참고로 청년부 예배에 담임목사가 순서를 무시하고 무작정 단상에 오르는 일은 흔하다)

"어디서 흔들어!"

이후 그 멤버는 다음 주에 머리를 짧게 깎고 얌전한 곡만 부르다가 자취를 감췄다.

다시 말하지만, '오진 예수'는 대단히 발칙하지도 않고, 신기하거나 쌈박하지도 않다. 그저 온라인 세대가 자주 쓰는 낱말을 노랫말에 사용했을 뿐, 노랫말 전반이나 곡의 흐름은 CCM의 큰 흐름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계속 반복되는 '예수님은 누구신가'란 가사는 '클리셰'처럼 느껴질 정도다.

문제는 이 같은 시도조차 불편하게 여기는 분위기일 것이다. 반면 미국의 경우, 지난 2014년 욕쟁이 흑인 건달을 예수로 설정한 드라마를 방영해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교회에서 거룩하게 불리는 찬송가는 그 시절의 CCM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살짝 홀대당하는 로큰롤 스타일의 찬양이 시대 변화에 따라 언제든 찬송가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 '오진 예수'에 가사 말고 더 파격적인 시도가 없었던 점이 오히려 아쉽다.

오진 예수 C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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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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