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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1 '평화주의자'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순, 그는 침략을 미화했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영화 <바람이 분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지로의 꿈 '나는 반드시 전투기 설계자가 될래요'

소년 호리코시 지로의 꿈을 보여주면서 <바람이 분다>는 막을 연다. 지붕 위에 설치된 프로펠러 비행기에 올라 시동을 걸고 날아오르는 능숙한 조종사의 모습. 지로는 푸르고 너른 하늘을 날며 즐거워하다 갑작스레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꿈에서 깨어난다. 이 첫 장면은 지로의 꿈이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강력한 묘사다. 동시에 비행기가 전투기로써 전쟁에 활용된 상황을 간접적으로나마 암시한 하야오 나름의 연출이기도 하다.

지로는 시련을 겪을 때마다 조력자의 격려를 받으며 꿈을 키워나간다. 그런데 특이한 것이 조력자는 꿈속에서만 등장한다. 바로 이탈리아의 비행기 설계자 카프로니 백작. 근시 때문에 비행기 조종사가 될 수 없을 거라며 낙심하던 지로에게 카프로니는 설계자의 길이 있다고 알려준다. 잠에서 깨어난 지로는 "전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고 싶습니다"라며 어머니에게 당차게 말한다. 이후 지로에게 비행기 설계는 반드시 이뤄내야만 하는 숙명이 된다.

청년이 된 지로는 숙명을 완수하고자 마음을 닫는다. 우리에게는 전범 기업으로 알려진 미쓰비시 중공업에 입사해 제로센을 설계하는 자신의 행위가 현실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철저하게 외면하려 애쓴다. 꿈속에서 카프로니는 말한다. "하늘을 날고 싶단 인류의 꿈은 저주받은 꿈이기도 하다. 비행기는 살육과 파괴의 도구가 되는 숙명을 안고 있다."라고. 이에 지로는 "전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고 싶습니다"라며 어릴 적 어머니에게 했던 똑같은 말로 응수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영화 <바람이 분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비행은 지로의 꿈이자 이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주제다. 활주로를 달리던 비행기가 떠오르는 장면, 지로가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는 장면, 파라솔이 날아가는 장면 등 불어오는 바람을 이겨내고 비행하라는 메시지가 강하다. 반면 추락의 묘사는 기묘하다. 전투기의 부품이 공중에서 분해되고 기름이 새어 나오는 상황이지만 조종사들은 가벼운 상처조차 입지 않는다. 지로는 튼튼하면서도 가볍고 빠른 전투기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내뿜는다. 전투기를 잘 날 수 있게 만들수록 학살되는 인명이 많아진다는 상식을 차단한 결과였다.

심지어 지로는 독일로 연수를 떠난다. 비행장 소속 독일 군인들이 지로 일행에게 전투기의 내부모습을 감추려 하자 지로가 "대등한 계약관계인 우리를 모욕하는 건 용서할 수 없어"라며 맞서는 장면도 나온다. 마침 지로 일행에게 호의적인 전투기 설계자 융커스 박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로가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내부를 엿보는 줄거리로 흘러가지 않았을까. 그만큼 주인공 지로에게 전투기 설계가 인생을 건 꿈이라는 것.

꿈과 현실에서 각각 이탈리아인과 독일인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장면. 참으로 기묘하지 않은가. 제2차 세계대전을 함께 일으켰던 옛 전범국 일본과 이탈리아와 독일의 결합이라니. 하야오가 지난 역사에 대한 성찰을 깊이 했다면 이런 장면을 그리겠단 결정은 절대 하지 않았으리라 본다.

하야오는 2013년 6월 24일 <바람이 분다> 완성 보고 회견에서 "판타지를 간단히 만들 수 없는 시대가 왔다. 이런 걸 만들어 보면 새로운 전개가 태어날 거로 생각했다. 정말 악전고투했다. 만화영화의 틀을 넘어서는 것은 힘들다"라고 말했다.

하야오가 언급한 '새로운 전개'란 결국 일제의 만행이라는 과오를 덮고 입맛에 맞게 각색하자는 흐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일제의 주력기 제로센의 설계자를 그저 꿈을 좇을 뿐인 천진난만한 청년으로 묘사한 이상, 피해자들에게 그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전쟁 시기지만 영화 속 등장인물의 표정은 좋다. 이따금 1923년 관동대지진의 여파로 화재가 난 거리, 1929년 일본에 밀려온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생계가 어려워진 서민들을 비추기는 한다. 서민들은 그냥 스쳐 가는 배경으로만 활용될 뿐 표정조차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반면 군국주의로 치닫는 일제의 전투기를 개발하려는 미쓰비시 사원들의 존재감은 그야말로 엄청나다.

동료들과 즐기며 열성을 다해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겠단 그들의 목표. 하지만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겠단 최우선 목표 아래, 전투기의 완성이 곧 전쟁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쉬쉬 된다. 전쟁의 참화는 지로의 또 다른 인격이라 할 수 있는 카프로니 백작이 꿈속에서 다음과 같이 경고하는 선에 머무른다.

"중국과 전쟁 잊는다. 만주국 건국 잊는다. 국제연맹 탈퇴 잊는다. 세계를 적으로 삼는 것 잊는다. 일본 파열한다. 독일 파열한다."

이마저도 '일본 파열'이란 표현을 써 씁쓸함을 자아낸다. 전쟁을 시작한 일본이 패배해 무너진다는 인식이 두드러지는데, 일본이 일으킨 전쟁으로 심대한 피해를 본 태평양 연안 민중들에 대한 일말의 미안함조차 찾아볼 수 없다.

엇갈린 일본인들의 반응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영화 <바람이 분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2013년 <바람이 분다>가 개봉되자 일본 현지에서 평가는 좋지 않았다. 이전까지 하야오가 연출한 애니메이션과 달리 "클라이맥스가 없다" "주인공의 목표가 없고 확실한 게 없다" "(내용을) 잘 모르겠다"는 후기가 뒤따랐다. 이와 관련 영화평론가 마치야마 도모히로(町山智浩)는 "주인공이 자신이 생각하는 걸 실제로 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마치야마에 따르면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지로의 '꿈 장면'은 "(하야오가) 자신의 경험과 연결해서 망상한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장면이다. 하야오는 지로의 꿈이라는 소재를 통해 현실의 민감한 전쟁을 회피하려는 전략을 쓴 것이 아닐까? 하야오가 당시를 그리운 시절이라고 기억하고 싶어 한들, 당시 일본인들이 태평양전쟁에 동조했다는 역사는 지울 수 없다. 아니 지워서는 안 되는 것이다. 더구나 역사를 바탕으로 삼은 판타지라면 우선 사실관계를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했다.

한편 있는 힘껏 꿈을 위해 질주하는 영화의 분위기를 호의적으로 바라본 이들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은 바로 영화 <곡성>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일본인으로 출연해 한국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새긴 배우 쿠니무라 준(國村?). 1955년에 태어난 쿠니무라는 <바람이 분다>에서 제로센을 제작한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비행기 설계에 관여하는 중역이자, 주인공 지로의 꿈을 응원하는 푸근한 고참 선배로 등장하는 핫토리 역의 성우를 맡았다. 그의 발언을 들여다보자.

"어릴 때부터 비행기라고 해야 할까. 특히 프로펠러 전투기를 좋아했어요. 제로센 프라모델도 몇 개를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어떻게 저리 아름다울까. 이리도 정말 좋아하는 제로센이 훌쩍 하늘을 나는 영화가 나왔다니 그것만으로도 이 작품에 참가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 <바람이 분다> 완성 보고 회견(2013년 6월 24일) 중에서

작중에서 지로가 일관되게 "아름답다"고 평가하는 제로센. 1945년 이후 태어난 쿠니무라에게도 제로센이 저토록 깊은 추억으로 남아있는 걸 보면, 제로센에 대한 위험한 선망은 비단 하야오만의 인식은 아닌 듯싶다. 어쩌면 전범기 제로센이 실어 나르는 지로의 꿈은 일본 사회 전반에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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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3 <바람이 분다>의 '바람'은 우경화의 바람이었나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주권방송>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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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정세, 일본의 동향에 큰 관심을 두며 주시하고 있습니다. 적폐를 깨부수는 민중중심의 가치가 이땅의 통일, 살맛나는 세상을 가능케 하리라 굳게 믿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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