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 서다> 스틸사진

<광장에 서다> 스틸 사진. 지난 촛불 광장을 기록했던 영화들이, 그 현장에서 상영된다. ⓒ 퇴진행동 기록기념위원회


프로젝트 '광장'과 '모든 날의 촛불' 지난 6개월 동안 지속된 '촛불'을 담은 영화 연작의 이름이다. 1부인 '광장'은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행동 미디어팀에 참여했던 10팀의 감독들이 만든 10개의 작품으로 구성돼 있고, 2부인 '모든 날의 촛불'은 3개의 단편으로 구성돼 있다. 다시 말해서, 각 10편과 3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다.

아마도 이 옴니버스 구성은 '촛불'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담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영화적 형식일 것이다. '촛불'은 단지 양적으로 거대한 사건이었을 뿐만 아니라, 거의 불가사의하게 느껴질 만큼 질적으로 다층적이고 복잡한 사건이었다. 그것은 박근혜 정권 퇴진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6개월 동안 1700만이 모인 집회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중심을 거부하는 '사방으로 열린' 광장의 이름이기도 하다.

촛불들은 사방에서 모여들었지만 일순간 '1분간 소등' 퍼포먼스를 할 수 있을 만큼 일사불란했고 사방으로 흩어졌지만 다시 더 많은 촛불이 돼 되돌아오곤 했다. '촛불-광장'의 언어는 말 그대로 다양하고 '다성적'이었다. 광장에서는 여전히 낡은 언어인 '국민'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그것이 '만인(비-인간 동물을 포함하는 뭍 생명)'이라는 뜻으로 새겨지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촛불이라는 거대하고 불가사의한 사건을 담는 영화적 형식으로 (적어도 현재로서는) 옴니버스 구성('옴니버스'는 '특정인의 전유물이 아닌 만인을 위한 교통수단'이라는 어원을 갖고 있다)  이외의 것을 떠올리기 힘들다.

"한 치 앞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기획되었고 촛불 집회가 종료되기도 전에 완성되어 공개된 '광장'은, 놀랍게도 단순한 '속보' 모음이 아니다. 이 영화를 구성하는 10편의 단편들에는, 숨 가쁘게 진행되는 현재의 기록과, 오래전 과거를 되돌아보는 성찰과, 다가올 미래를 위한 질문이 공존하고 있다. 그 모든 것이 '촛불-광장' 속에 존재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광장에서 달라진 사람들

 프로젝트 '광장' 중 <조금 더 가까이> 스틸사진

프로젝트 '광장' 중 <조금 더 가까이> 스틸 사진. 많은 이가 광장에 나왔고, 달라졌다. ⓒ 퇴진행동 기록기념위원회


무엇보다 광장에 나온 사람들은 "광장에서 달라"졌다. 무대에 선 청소 노동자는 비로소 자신의 일에 대해 당당해질 수 있고, 세월호 생존 단원고 학생들은 3년 동안 가슴에 품어왔던 것을 비로소 말할 수 있게 되었으며, 저마다 꿈꾸는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함께 나누었다(<광장에 서다>(김철민), <조금 더 가까이>(최종호)). 하지만 광장을 벗어나 자신의 일터에 선 청소 노동자에게 미래는 여전히 불안하다(<청소>(김정근)). 광장에 선 사람들은, '여성'의 이름으로, '청소년'의 이름으로, '비-인간 동물'의 이름으로, 위계와 혐오의 감정을 내포한 말들은 광장의 언어가 될 수 없음을, 온몸으로 질문하고, 저항하고, 수행한다(<시국페미>(강유가람), <누가 청춘을 아름답다 했는가>(김수민), <광장의 닭>(황윤)). 그것은 촛불의 미래에 대한 앞당겨진 질문이자 다짐이다.

또한 광장에 선 사람들은, 4.19에서 6.10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저항과 실패의 역사를 되돌아보게 된다(<함성들>(이창민), <천 개의 바람이 되어>(김상패)). 그것은 오랜 저항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왜 아직 '적폐 청산'이 이루어질 수 없었는가라는 과거에 대한 성찰적 질문이자 다짐이다. 아이들은 3년 만에 비로소 광장의 중심에 설 수 있게 된 '세월호의 진실'을 위해 고사리손으로 인형을 만들고(<푸른 고래 날다>(홍형숙)), '싸드' 때문에 30년 만에 '5.18의 진실'과 공감할 수 있게 된 한 '대구 출신' 사람은 광장에 합류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다(<파란 나비>(박문칠)). '촛불'은 이렇듯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이 하나로 응축된 사건이었고, <광장>은 그 '촛불-광장'이라는 거대하고 복잡한 사건이 품고 있던 다양한 정서와 다층적인 질문을 담아내기 위한 첫 번째 영화적 시도다.

두 번째 프로젝트 '모든 날의 촛불'은, 한편으로는 이제 6개월 만에 종료된 '촛불 집회'를 곰곰이 되돌아보는 복기이면서, 여전히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지속해야 할 '촛불-광장'이라는 사건의 지속을 위한 영화적 수행이다.

< 광장@사람들 >(김환태)은, 한편으로는 가슴 벅찬 환희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가슴 졸이게 되는 두려움이기도 했던 광장의 정서를 온몸으로 겪어낸 두 활동가(박진, 김덕진)와 함께, 지난 6개월을 복기한다. <광장에서>(최종호)는 광장의 살아 숨 쉬는 다양하고 다성적인 언어들을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담아내고자 했던 1부 <조금 더 가까이>의 확장판이다. <일상의 촛불>은 서로 다른 위치에서 다양한 온도로 '촛불'을 경험한 사람들의 일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또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미시적 탐색의 기록이다. '모든 날의 촛불'에는, '광장'과 마찬가지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이 응축되어 있다.

기록 사업으로서의 촛불 영화

 프로젝트 '광장' 중 <천 개의 바람이 되어> 스틸사진

프로젝트 '광장' 중 <천 개의 바람이 되어> 스틸 사진. 세월호와 탄핵 촛불은 결코 분리된 이슈가 아니었다. ⓒ 퇴진행동 기록기념위원회


'광장'과 '모든 날의 촛불', 이 '촛불 2부작'은 '박근혜 퇴진 비상 행동'이 기획하고 있는 '촛불-광장' 아카이브 사업의 첫걸음이다. 이후 더 많은 영화가 만들어질 것이고, '백서'도 만들어질 것이다. '아카이브 사업'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단순히 과거를 기록하고 정리하고 기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촛불-광장'의 사건성을 확장시키고 지속시키기 위해 수행되는 실천일 것이다.

'80년 5월 광주'는 '백서'로 기록된 후, 20년 동안 10편에 이르는 영화적 재현이 이루어졌다. '2009년 2월 용산'은 수년 만에, 수많은 책과 영화로, 거의 동시적으로 기록되고 질문되고 성찰되었다(물론, 이 말은 그 작업들이 완료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2014년 4월 세월호'는 아직 그 본격적인 영화적 재현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세월호'는 결코 '촛불-광장'의 일부가 아니다. 어쩌면 그 '애도 불가능한 죽음의 절망'이 없었더라면, '촛불-광장'이라는 '축제의 환희'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세월호'는 이전의 패러다임(소위 '적폐'라 하는)이 유지되는 한 이 땅에서 제대로 된 삶이 불가능하다는 신호였고, '촛불-광장'은 그 경고를 무시하고 억누르려고 한 일부 세력의 맹목과 무지가 초래한 사건이었다. '세월호'와 '촛불-광장'은 그렇게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사건, 또는 한 사건의 두 측면이다. 이것이 '촛불 2부작'과 '세월호 3부작'을 꼭 함께 보아야 하는 이유다.

'촛불 2부작'과 '세월호 3부작'은 똑같이 옴니버스 구성을 취하고 있는 작품인데, 그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많은 부분 겹쳐 있다. 그들은 대부분 '활동가'와 '감독'이라는 두 가지 정체성 및 역할을 꿋꿋이 감내해 온 사람들이다.

이 '엑티비스트-예술가'들은(고다르-고랭의 '지가 베르토프 그룹'처럼) 하나의 이름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자유롭게 모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영화적 실천을 수행해왔고, 그 실천의 첫 영화적 표현 형식은 주로 옴니버스였다. '사건'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일상의 나(사회가 강요하는 역할의 수행자)'로부터 벗어나 (비록 일시적일지라도) '우리'를 구성하게 하는 순간의 이름이라면, 그 '사건'을 담는 가장 적합한 영화적 형식은 바로 '옴니버스'일 것이다. 이런 순간을 맞이하거나 만들어내지 못할 때, 어떤 일은 단지 '사고'로 머물 뿐 '사건'이 되지 못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 액티비스트들은 사고를 사건으로 전화시키는 데 일조하는 삶의 예술가들이기도 하다.

이 땅의 액티비즘 미학(특히, 옴니버스 미학)은 거듭되는 실천 속에서 깊어지고 넓어져 왔다. 특히 '촛불 2부작'과 '세월호 3부작'의 성취는 놀라울 정도다. 아마도 이 성취는 수많은 '촛불들'로 인해 가능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들은 이 땅의 액티비스트-예술가들이 촛불들로부터 받은 것을 다시 촛불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마련한 작은 보답 또는 선물이기도 하다. 23일(금요일)과 24일(토요일) 양일에 거쳐 이 작은 선물을 '광장'에서 풀어놓는다고 한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이 선물을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다.

광장에서 '광장'을 상영하다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오는 23일과 24일 양일간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기록기념위원회(아래 기록기념위) 상영회를 연다. 이번 상영회는 23차에 걸쳐 타오른 정권 퇴진 촛불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묻고 광장의 촛불을 일상의 광장으로 가져올 방법을 찾으려 한다.

23일 오후 7시에는 서울인권영화제, 인디포럼에서 상영된 박근혜정권 퇴진행동 옴니버스 프로젝트 '광장'을 상영할 계획이며, 24일 오후 6시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최초로 '모든 날의 촛불' 프로젝트가 공개될 예정이다. '모든 날의 촛불'은 < 광장@사람들 >과 <광장에서>, <일상의 촛불>을 묶은 125분의 다큐멘터리로 기록기념위가 제작했다.


촛불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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