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 나달은 자신의 테니스화 뒤에 9라는 숫자를 새기고 결승전 코트에 입장했다. 2014년 5년 연속 우승을 거두며 통산 9회 우승을 기록했다는 뜻이었다. 상대는 2015년 이 대회 우승자이며 지난 해 US 오픈 타이틀을 거머쥐며 전성기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는 스탄 바브린카였기에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뚜껑이 열린 결승전은 라파엘 나달을 위한 무대였다. 그가 끌어당겨 때리는 놀라운 회전수의 스트로크가 붉은 앙투카 코트 곳곳에 포인트를 찍어냈다.

4번 시드를 받은 라파엘 나달(스페인)이 한국 시각으로 11일 오후 10시 18분 파리에 있는 스타드 롤랑 가로의 필립 샤틀리에 코트에서 벌어진 2017 프랑스 오픈 테니스대회 남자단식 스탄 바브린카(스위스, 3번 시드)와의 결승전에서 2시간 5분만에 3-0(6-2, 6-3, 6-1) 완승을 거두고 대회 통산 10회 우승의 위업을 이뤘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단 1개의 세트도 상대 선수에게 빼앗기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누구보다 완벽했다.

4000RPM이 넘는 라파엘 나달의 포핸드 위력

어느 때보다 기세 좋게 결승전에 올라온 라파엘 나달은 첫 세트 여섯 번째 게임에서 귀중한 브레이크 포인트 기회를 잡았다. 4000RPM이 넘는 포핸드 다운 더 라인을 뿌리면서 바브린카를 허탈하게 만든 것이다. 다른 선수들의 평균 회전수가 3000을 넘지 못하는 것에 비하면 실로 엄청난 수치다. 바브린카가 서브를 넣은 네 번째 게임에서도 무려 여섯 번의 듀스까지 따라붙은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바브린카의 백핸드 리턴이 네트를 넘지 못해 게임 스코어 4-2를 만든 라파엘 나달은 여덟 번째 게임에서도 집요하게 바브린카의 백핸드 방향으로 포핸드 크로스 스트로크를 보냈다. 그렇게 얻은 또 하나의 브레이크 포인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렇게 45분만에 첫 세트를 6-2로 끝낸 라파엘 나달은 두 번째 세트에서도 스트로크 우위를 지켜나갔다.

바브린카가 서브를 넣은 두 번째 세트 두 번째 게임은 아예 라파엘 나달이 러브 게임을 만들어버렸다. 테니스 경기의 공격 주도권을 상징하는 서브권이 의미를 잃어버린 듯했다. 엄청난 회전수를 바브린카가 감당하지 못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봐야 할 것이다.

2년 전 이 대회 첫 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던 스탄 바브린카도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두 번째 세트 네 번째 게임에서 과감한 서브&발리 전술을 구사하는 등 공격적으로 대응 방식을 바꾼 것이다.

하지만 바브린카의 전술 변화는 자신의 서브 게임을 지킬 수 있는 만큼이었다. 라파엘 나달은 그 게임에서만 잠시 흔들렸을 뿐 이후 자신의 서브 게임은 철저하게 지켜냈다. 두 번째 세트 아홉 번째 게임에서 공을 쥐고 서브를 넣은 라파엘 나달은 스탄 바브린카를 정말로 구석으로 내몰았다. 화가 난 바브린카가 라켓 헤드를 내려치며 부러뜨렸지만 경기 흐름은 이미 라파엘 나달에게 넘어간 뒤였다.

'라 데시마'를 위한 3년의 기다림

세 번째 세트의 시작은 바브린카의 서브 게임이었지만 역시 라파엘 나달이 놀라운 수비 범위를 자랑하며 세 개의 브레이크 포인트 기회를 잡아냈다. 그리고 라파엘 나달은 시원스러운 포핸드 역 크로스를 뿌리며 그 게임을 따냈다. 보기 드물게 단 한 개의 세트도 빼앗기지 않고 완벽한 우승에 이르는 시나리오가 정말로 완성되고 있었다.

결국 마지막 세트가 된 세 번째 세트에서 또 하나의 브레이크 고비가 만들어졌다. 비교적 쉬운 백핸드 발리를 넘기지 못한 바브린카가 서브까지 흔들리며 나달에게 끌려간 것이다. 스매싱 타이밍까지 놓친 바브린카는 자신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포핸드 스트로크가 너무 길게 떨어져 라파엘 나달에게 자기 서브 게임을 내주고 말았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이 대회 4년 연속 우승,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 연속 우승의 위업을 이룬 바 있는 라파엘 나달은 클레이 코트의 최고 실력자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킨 것이다.

세 번째 세트 일곱 번째 게임은 스탄 바브린카가 서브권을 쥐고 시작했지만 라파엘 나달은 완벽한 수비력을 자랑했다. 거기서 2개의 챔피언십 포인트 기회를 만든 것이다. 라파엘 나달의 마지막 위너 포인트는 포핸드 크로스 스트로크였다. 그 공이 조금 길었다고 판단한 바브린카는 발리를 시도했지만 공은 네트를 넘지 못했다. 라파엘 나달의 포핸드 스트로크 회전수를 감당하지 못한 또 하나의 명장면이었던 것이다.

보기 드물게 2시간 5분만에 결승전을 3-0으로 끝낸 라파엘 나달은 붉은 앙투카 코트 바닥에 큰 대자를 그리며 드러누워 통산 10번째 우승 감격을 누렸다. 여자 테니스의 전설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가 윔블던 챔피언십에서 통산 9회 우승을 이룬 바 있지만 한 대회 통산 10회 우승의 위업을 이룬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스페인어로 10회 우승을 뜻하는 '라 데시마'를 라파엘 나달이 처음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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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2017 프랑스 오픈 테니스대회 남자단식 결승 결과(11일 오후 10시 18분, 필립 샤틀리에 코트, 파리)

★ 라파엘 나달 3-0(6-2, 6-3, 6-1) 스탄 바브린카
- 소요 시간 : 2시간 5분

◇ 라파엘 나달의 그랜드 슬램 타이틀(통산 15회) 기록
호주 오픈 1회 우승 : 2009년
프랑스 오픈 10회 우승 :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7년
윔블던 2회 우승 : 2008년, 2010년
US 오픈 2회 우승 : 2010년, 2013년
테니스 라파엘 나달 스탄 바브링카 프랑스오픈테니스 라 데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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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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